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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가장입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살지 마세요.
게시물ID : freeboard_12330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샤워하고와
추천 : 5
조회수 : 46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1/16 23:52:17

안녕하십니까. 오랬만에 글을 써 봅니다.

지금 현재 아웃렛 옷 파는 매장에서 판매직 사원으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월급은 200만원에 사대보험이 없이 세금안떼고 받고 있고요.

가족은 어머니, 저, 아내, 그리고 뱃속에서 나올준비가 된 '우리 미역이' 가 있습니다.

집은 불법 건축물로 지어진지 25년된 창고같은 집에서 살고 있어요. 겨울이면 엄청 추워서 아침에 입김이 보일정도네요.

여름이면 곱등이는 기본이고 그리마와 곱등이가 공존하는곳에서 곰팡이와 생활한답니다.

이런 생활 환경에서 제 2세를 준비하는 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여 글을 써 봅니다.

나이도 많고 벌어 놓은것 없이 아이를 낳는다는 무책임한 가장이 되어버린 상황이네요.


제 인생은 그리 굴곡진 인생은 아닌데 소심하고 주관없이 그냥 사는대로 흘러가다보니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이 된지 오래입니다.


제 아버지도 젊었을적부터 힘들게 일만 하시다가 제가 국민학교 5학년때 부터 XX일보(조중동 아님) 지국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집안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그래봐야 간장에 밥 비벼먹다가 계란후라이 하나 얹는 정도 지만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쳐서 집안에 수익이 전혀 없어서 집안살림이 점점더 어려워 졌습니다.

공부도 잘 하지 못하고 해서 저는 오락실 게임에 빠져 살았네요. 나이또래 애들처럼, 강하게 보이려고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건

해보지도 못하고(지금까지 담배,술은 안합니다.)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했으니 성적은 바닥을 치고 고등학교 3학년때는 학교가 가기 싫어서 자동차 정비 학원을 간다는 핑계로 4교시 후에

학원으로 갔지요. 학원에서 시험준비를 해서 자동차 정비 필기는 합격했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실기 준비를 못한것이 많이 아쉽네요.

제 삶을 제가 이끌어 나가야 되는데 누가 이끌어주길 바라기만 했기에 실행하지 못했네요.

그리고 취업을 나간곳이 공장이었는데 야간근무, 철야근무 등등을 하면서 90만원을 받으며 일을했습니다.

그마저도 공장이 지겨워져서 탈출할 목적으로 군대를 택했지요.


군대는 공군을 복무하고 2년6개월 만기 재대후 할일을 찾던저는 또다시 공장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일년을 일하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하루하루 일하고 자고 또 일하고 하는 생활로 돈도 재대로 못벌고 지내다가.

용산 전자상가로 다시 이직을 하게되네요. 그것도 교회목사님 지인의 소개를 받아서 취업을 합니다.


용산전자상가 일할때는 월급이 70만원이었는데 일은 엄청 재밌었어요. 컴퓨터 부품 조립하는것, 세팅하는것, 시간되면 앉아서 인터넷 하는것

그렇게 일을 2년간 하는데. 집에 돈이 하나도 안모이는 겁니다. 제가 출퇴근 하면서 돈을 생각없이 쓰다보니 버는건 70만원인데

교통비며 점심값이며 쓰는게 50만원 가까히 쓰고 있었습니다.

정말 무계획적으로 또한 미래에 대한 걱정없이 지내다가 아버지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다른 지인을 통해 월급 90만원짜리 일자리를 얻게되어

그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

옮긴 직장은 의류에 들어가는 케어라벨 제작회사인데 기계조작에 능숙한면이 있어서 일은 금방적응이 되어 힘들지 않게 일을 하게 되었네요.

그 직장에서 3년간을 보내며 돈은 조금 더 모으게 되는데 제가 일을 그만두면서 6개월을 집에서 놀면서 거의다 써버렸네요.

그때 나이가 27이었는데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나서 사귀다가 3개월만에 헤어졌었네요.


다시 집에서 6개월 허송세월 보내다가 다시 아버지의 권유로 집 근처에있는 아스콘 제조업체로 취업을 갑니다.

이번엔 월급 120만원이라서 할만했어요. 아스팔트 플랜트 오퍼레이터라 일도 금방 적응이 되었고 퇴근시간도 일찍 끝나서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다음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많이 힘들었네요. 아버지는 그전부터 우울증을 겪으셨는데 아들인 제가

한번도 돌아보지 못하고 저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많이 후회가 됩니다. 집에 계실적에 대화도 많이 나누고

했어야 되는데 집은 잠만자고 일하러 나가고 이런생활만 했었네요. 돌아가시기전에 잘해드려야지 생각이 절실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님께는 아침에 출근할때 인사꼭 하고 엄마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 다니고요. 뭐 돈버는건 쥐꼬리 만큼도 못벌지만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 제 아내를 3년만에 다시 만나 교재하면서 6개월만에 결혼을 후다닥 해버렸습니다.

통장에 잔고 400만원과 할부 30개월 남은 모닝을 가지고 꼬셔서 결혼을 해버렸습니다.


아내가 120만원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해서 아내가 다니던 공장에 취업해서.

둘이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공장은 하루 14시간씩 일을 하는 공장이었네요. 아침 7시 40분에 출근해서 밤 9시 40분에 퇴근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3년간을 같이 아내와 일을하다가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아기를 가질 준비를 했습니다.

매일 야근하는 몸으로 아이 만들었다가는 너무 힘들것 같아서 일을 그만뒀어요. 그런데 쉽게 생기는 아기는 아니더라구요.

아내는 1년동안 준비했는데 안되니. 판매직으로 다시 취업을 나가고 저 또한 공장일이 무릅관절에 물이 찰 정도로 힘이들어 그만두고

아내와 같은 쇼핑몰에서 판매직으로 월급 200만원을 받으며 취업을 했습니다.


아내와 같이 출근하면서 2년동안 참 많이 좋았네요. 하지만 그게 끝입니다. 판매직을 하면서 꿈도 희망도 바라는건 사치였으니까요.

그러다가 작년 5월에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저는 집안의 가장으로 월급 200만원에 3식구 이제 곧 4식구를 이끌고 가야하는데,

지금 월급으로는 4대보험도 안되어 아기 병원갈때 많이 힘든데 해결할 방법이 만만치 않아요.


200만원 이상받으면서 4대보험 되는 직장을 알아보다가 운전직을 찾게되는데요. 그나마 그전에 대형면허와, 트레일러 면허를 따둔덕에

화물운송자격증,버스운송 자격증은 쉽게 땄네요.


운전직을 알아보니 현실은 더 암담하더라구요. 큰차를 몰아본 경험이 없어서 취업 자체가 안되고.

버스운전직을 알아보니 마을버스부터 해야하는데 집 가까운 마을버스 운수회사는 50세 이상만 뽑는다고 하더라구요.

파주시에서 돈 많이 주는곳은 2교대나 3교대 공장인데. 나이가 이제 40이 되다보니 면접도 못보고 서류심사에서 탈락이기 일쑤더라구요.

아이 키우려면 돈도 많이들고하는데.


생각이 깊어져 잠이 안와 넊두리를 올립니다.


3줄요약: 작성자 다음달이면 집사람 출산함

             벌어놓은돈 없슴.

             한달에 200만원 이상 벌고싶은데 벌곳을 못찾음.

             글 요약도 못하네요. 판매직 하면서 말재주는 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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