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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이는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였을까?
게시물ID : drama_386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이아닌자
추천 : 21
조회수 : 1691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01/17 05:47:56
19화 보고 열 받아서 디씨 응팔갤에 썼던 글이기도 합니다. 처음 거기 쓸 때는 ‘쿨병 걸린 개 호구새끼’라고 썼었죠ㅋㅋ…….
여기는 오유니까, 오유 식으로 순화해서 다시 씁니다. 

김정환은 혹시 ‘이런 똥 멍청이 순둥이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입니까? ㅋ

예, 뭐,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역시 여전히 열 받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응팔갤 표현을 빌려, 기꺼이 ‘팔줌’이 되려 합니다.
이걸 서두에 쓰는 이유는, “그래도 남편은 처음부터 택이였어요!”라는 댓글이 아래 달리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말이 선택이라서 열 받은 게 아닙니다.





부모는 생활비와 장남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항상 부재했습니다. 남겨진 차남은 단칸 셋방에서 건강이 온전치 못 한 장남을 보살폈습니다. 정환이는 안 그래도 일에 치어 사는 부모에게 칭얼대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형의 못 이룬 꿈이 곧 제 꿈이라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한창 부모의 관심이 고픈 나이에, 형에 비해 자신이 덜 관심 받는 걸 서러워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제법 수다스러운 부모 사이에서 과묵한 자식으로 자랐다는 건, 정환이가 어린 시절을 통해 눈치를 읽고 속내를 숨기는 법을 배웠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복권 당첨 후 급격하게 집안 살림이 피었습니다. 넷이 낑겨 누웠던 좁은 단칸방에서 각자의 방이 생겼습니다. 짜장면 배달을 하던 아버지는 이제 잘 나가는 사장님이 되어 금성전자 대리점 로고가 크게 박힌 자가용을 몰고 다닙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일에 2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통 크게 쏠 수 있고, 신도시 땅 투기에도 큰 관심을 보입니다. 
정봉이도 큰 수술을 잘 견뎌내고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집안 살림이 핀 것도 사실은 정봉이의 덕이죠. 정봉이의 덕후 본능이 아니었다면, 복권 당첨같은 건 애시당초 없었을 일이니까.
내일 먹을 쌀이 없다는 것을 걱정하던 것은 이제 옛 일입니다. 아픈 아들은 거의 일반인과 다름없을 정도로 멀쩡합니다. 
부모의 소원은 이제 ‘장수생의 대학 합격’입니다.

부모가 둘째보다 첫째에게 보이는 관심도가 더 큰 것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입니다. 1988년, 그 시절에 4~50대를 지났던 옛날 부모라면 더더욱 그런 성향을 보이겠죠. 덕선이는 그런 부모를 향한 서러움을 보라와의 공동 생일상 앞에서 폭발시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비단 덕선이네만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실은 정환이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요.
정봉이는 라여사의 점괘 해석과는 달리 6수에 실패했고, 부모의 실망은 이만저만하지 않았죠. 그러면서도 7수에 대한 희망을 다시금 붙잡습니다. 사실 그 해는 정환이도 수험생이 되는 해였습니다. 인생 첫 큰 시험을 앞둔 본인과 가족들이 가질 부담감과 기대는 초수생이든, 장수생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헌데 부모는 여전히 장남의 실패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도, 차남의 실패에 대해서는 일말의 불안감도 보이지 않아요. 라여사가 엉터리 점쟁이(?!)에게서 받은 신년 점괘 중 “차남은 알아서 잘 한다”는 말은, 정환이가 어려운 형편에서도 엇나가지 않고 부모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듬직한 아들로 자랐다는 것을 대변하는 동시에, 이 가족의 기대와 관심이 여전히 차남보다는 장남에게 더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합격 이후에도 마찬가집니다. 정봉이는 실연의 아픔을 드디어 공부로 승화시켜, 7수 끝에 대학에 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정환이가 공사에 합격했죠. 그런데 동네에 붙은 현수막은 단 하나, 「김성균 장남 김정봉, 성균관대 법학과 합격」. 사실 저는 흐름 상 편집되었을 거라 믿고 싶을 정도로, 이 장면이 씁쓸했습니다. 장수생의 대학 합격이 부모로서 기쁜 일인 건 맞죠. 하지만 공사 합격이 성균관대 법대 합격보다 낮게 평가될 수 있는 일일지? 부모는 차남이 장남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예전 일기장을 읽어 알고 있고, 공사 합격도 본인의 의지 이전에 형의 의지도 일정 부분 반영되었을 거라는 걸 어렴풋하게 눈치 채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합격 소식을 받고 정환이가 부모에게서 축하한다, 네가 자랑스럽다, 이 말 한 마디 듣는 장면이 어디에도 없어요. 그 한 장면이면 정환이가 차남으로서 장남에 비해 덜 받은 관심에 대한 부분이 조금은 해소되었을 수도 있었을 건데, 제작진의 불친절함은 오로지 장남의 합격에 어깨춤을 추는 부모의 모습만을 그립니다.


정환이의 수난? 이랄까, 답답한 모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족들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아버지와 잠깐의 부재 후 본인의 존재감에 대해 고민하는 어머니에 대한 고민을 동룡이에게 묻던 정환이가, 정작 자신을 괴롭히는 고민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습니다. 아니, 못 했다고 해야 맞지 싶네요.
택이의 최초 고백 이후, 타이밍을 놓친 정환이는 덕선이를 향한 애정을 혼자서만 끙끙 앓습니다. 
선우는 택이 편입니다. 둘 다 아직 같은 짝사랑이었던 시점에서부터, 쭉. 풀리지 않는 문제를 내내 붙잡고 있는 모습을 동룡이는 그것을 단순히 ‘학업에 대한 대단한 열의’로 정의하면서 친구의 집요함에 혀를 찹니다. 
그나마 본인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던 덕선이는 분홍 셔츠 건으로 정환이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제서야 하는 말입니다만, 그 부분은 정환이와 덕선이가 ‘친구 이상의 관계로는 발전하지 못한다’는 복선이죠. 그래서 정환이에게 그 건을 변명할 기회는, 극 중 어디에서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덕선이는 아마, 만봉커플이 입을 다물고 있는 한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그 분홍 셔츠에 대한 진실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덕선이를 사이에 두고 경쟁을 하는 택이는, 근본적으로 정환이의 감정을 응원하고 위로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택이 외에는 정환이의 고백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거죠. 

사실 그래서 18화의 피앙세 반지 신에 대해서는 동룡이와 선우에 대한 배신감이 조금 큽니다.
최종 화 이후, 그 신을 다시 보았습니다. 본방 때는 시원하게 털어낸다, 고도 보였던 그 부분이, 지금은 확실하게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한 번 잡아보고 싶다’로 보이네요.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죠. 
피앙세 반지라는 게, 임관반지와 처음부터 세트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임관반지 신청할 때 피앙세 반지도 따로 신청하는 거에요. 의미는 ‘분신’, 그래서 연인이나 결혼상대에게 주는 거죠. 
정환이는 애초부터 덕선이를 염두에 두고 피앙세 반지를 맞췄을 겁니다. 동룡이는 그걸 본인에게 달라고 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덕선이에게 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을 하는 정환이의 모습을 동룡이와 선우는 진심이 아닌 장난으로 치부해버리기까지 하죠. 
둘은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불알친구가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그 시점에서 덕선이의 마음은 이미 택이에게로 완전히 쏠렸다는 것 역시 둘은 아직 모르죠. 그렇다면 정환이의 행동에 놀라는 포인트는 적어도 “쟤 제정신이냐?”가 아니라 “미친, 네 감정은 언제부터였냐? 그걸 왜 여태 우리에게 숨겼어?”가 되어야 맞는 거 아닐지? 만약 제가 정환이었다면 그 장면에서 “됐냐? 네 소원이라며?”하고 시원섭섭하게 웃어넘기지 않고, 둘에게 쌍욕을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을 겁니다. 피앙세 반지를 진작 맘을 접었을 지언정, 한 때는 진심으로 좋아했던 여자에게 장난으로 건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갑작스런 고백에 본인이냐 택이냐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덕선이라면 모를까, 저 둘은 욕먹어도 싸요.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정환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외로웠다, 는 겁니다. 
쌍문동 친구들은 택이를 ‘바둑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챙겨줘야 하는 존재’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 안에 속한 정환이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되질 않아요. 정환이가 고백 타이밍을 놓친 건, 그런 우정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정환이가 택이처럼 친구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면, 선우와 동룡이는 택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환이에게도 정환이의 감정선을 조언하고 위로하고 응원해주지 않았을까요? 택이는 곁에 쭉 지켜보았기 때문에 선우와 동룡이에게 그 감정을 계속 응원받을 수 있었다, 고 한다면, 그건 분명히 정환이에게 공평하지 않죠. 애초에 그런 기회조차도 주지 않은 게 누구의 권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정리한 순간에 마저도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위로도 받지 못한 정환이를 그려버린 제작진은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해는 해요. 정환이가 친구들의 공정한 위로에 힘을 받아 특유의 승부욕을 발휘한다면, 아마 20화만으로는 다 회수할 수 없을 정도의 떡밥이 흘러 넘쳤을 겁니다. 가까이에서 본 친구들이 모두 인정했듯, 정환이와 택이는 둘 다 승리를 향한 투지가 대단한 남자들이잖아요? 그럼 남편낚시 전쟁은 지금보다도 더 엄청나게 치열해졌을 거고, 결말을 향한 제작진의 고민은 여태까지 해 온 것보다 더 커졌겠죠. 악담 좀 하면, 이 제작진의 역량으로 그걸 다 회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아니면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뭉개져 버리고 만 정환이의 승부욕에 대한 변을 지금이라도 내 놓으시든지요ㅋ.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자 캐릭터 중 김정환이라는 캐릭터는, 
단언컨대 제일 답답하고, 제일 불쌍합니다.

그리고 제일 찌질해요.

1997의 윤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형과 시원이의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그 형은 기꺼이 서울로의 진학을 접고 진로마저 변경할 정도로 윤제에게 극진했어요. 태웅에게 윤제는 저 자신보다 먼저 보살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형과 연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태웅의 애정이 송주(죽은 시원이의 언니)를 향해 있던 애정을 바탕으로 발전된 것이라는 점에서 순수하게 시원이를 좋아했던 윤제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죠. 그래서 시원이에게 스스럼없이 확인키스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토니안은 성시원의 빠순력을 보여주기 위한 매개였을 뿐이니, 그걸 연적으로 치부하는 건 논외죠ㄲㄲ.

1994의 쓰레기는 죽은 태훈을 대신할 오빠가 되느냐, 남자로서 나정이 앞에 서느냐의 기로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적으로서 대적해오는 칠봉이에게 패기있게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연적이었던 칠봉이 역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습니다. 나정이가 철벽을 치는 것에도 굴하지 않고, 나정이를 향한 애정을 계속적으로 어필해왔죠. 가족의 관심사적인 부분에서는 ‘부모의 이혼’이라는 결핍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 점에 대해 제작진은 칠봉이 스스로가 거절한 부분도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신 사촌인 동준을 옆에 붙여주었고, 비록 야구선수로서의 관심이기는 하지만, 성코치 역시 아들에 버금가는 애정을 칠봉이에게 쏟아 붓죠.


저는 정환이를 보면서 1997의 준희가 떠올랐습니다. 
정환이가 공사로 진학하게 된 걸 보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네요.

준희도 정환이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공사를 지망했습니다. 
그 이유에는 윤제와 떨어져 있고 싶다는 것도 분명히 작용했다고 봅니다. 
준희는 윤제를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그 감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한 순간의 혼란에 불과한 것인지, 시간과 거리를 두고 결론을 내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준희는 의대를 진학했고, 윤제와 동거를 하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게 되죠. 자신의 감정은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그건 실낱같은 희망인 동시에, 엄청난 고문이 되었겠죠. 

준희가 공사를 가지 못한 것과 다르게, 정환이는 공사를 갔죠. 작가의 공사 사랑은 아렇게 정환이로 완성됩니다ㅋ……. 

이런 진행은 단순히 작가의 취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김정환’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개연성을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첫째는 정환이가 형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어 했다는 것. 정환이 본인이 정봉이에게 아니라 부정했다 해도, 어릴 때부터의 소망이었던 만큼 그 점이 공사 진학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어떻게도 말할 수 없겠죠. 
둘째, 저는 이 두 번 째 부분이 사실 제일 크다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혼자 앓을 수 밖에 없는 이상, 혼자서 결론을 내릴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환이가 서연고같은 인서울로 진학하게 되면, 위 아랫집에 사는 덕선이와는 계속 얼굴을 마주쳐야 합니다. 한 골목에 사는 택이 역시 마찬가지. 둘과 매일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제대로 답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번뇌만 더 커질 뿐이죠. 준희가 그랬을 거라 추측하는 것처럼, 정환이 역시 둘과 공존하는 공간인 쌍문동에서 벗어나 본인의 감정이 단순히 사춘기의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진심이었는지를 따져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변덕이었다면 떨어져있는 4년간, 고민을 해소할 수 있었을 테죠. 
그리고 떨어진 동안 결론을 냅니다. 그 답의 산물이 피앙세 반지입니다. 진심이었다는 거죠. 

그렇지만 준희와 정환이가 속내를 감춘 까닭은 상황적으로 분명 다릅니다.
준희는 애초에 자신이 윤제를 좋아한다는 점을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죠. 그건 본인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하는 거니까. 정환이가 친구들에게 “나 덕선이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과는 상황의 경중 자체가 다릅니다. 준희의 경우, 만약 무리 중 누군가가 호모포비아라든지, 성재처럼 입이 싼 친구가 있어서방성재 미안;;; 실수로라도 주변에 본인의 성적 지향에 대해 아웃팅을 해버리면, 아주 사회적으로 매장되어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이 둘을 같게 치부한 것만 같습니다. 
준희가 속내를 감춘 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단순히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함만이 아니에요.
하지만 정환이가 속내를 감춘 건, 아무리 봐도 그냥 쿨병입니다. 잘못되더라도 쌍문동 친구들과의 우정 전선만 미묘해 질뿐이니까요. 그런데 그 나이대의 우정이라는 게, 아무리 불알친구라도 하더라도, 내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깨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 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네요. 현실적으로는 평생을 알고 지내도 한 순간 수틀리면 깨지는 것이 친구 관계입니다만ㅋ. 

긴 고민의 결말이 믿고 있던 친구들에 의해 한 순간에 장난이 되었습니다. 
정환이는 다시 사천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한 때 연적이었던 친구가 찾아왔을 때 얼른 잡으라며 본인의 패배를 선언합니다. 
앓고, 떠나고, 고민하고, 해묵은 감정을 털어내는 것, 모두 정환이는 오롯이 혼자서 합니다.
그러고도 그들은 여전히 절친한 친구입니다.
뭐래요, 이게……? 이걸 순순히 납득하라고 하면, 시청자에게 정환이를 보살로 인정하라는 강요 밖에 더 되나요ㅋ. 



네, 뭐, 결론적으로는 그래요.

남편낚시를 위해, 제작진은 ‘김정환’이라는 캐릭터를 대단한 병신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그것도 막판, 한 순간에요.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애어른의 비애를 정환이를 통해 그렸습니다.
동네 아이돌에게 밀린 일반인의 비애를 정환이를 통해 그렸습니다.
고백 한 번 못 해 본 쑥맥의 비애를 정환이를 통해 그렸습니다.
외로운 쿨병 환자의 비애를 정환이를 통해 그렸습니다.
그래놓고도 회수를 위한 한 신 조차 내 보내지 않은 제작진은 무책임합니다. 

응답하라 1988을 보는 내내 지루하고 짜증나는 남편낚시보다 공감가는 쌍문동 가족 이야기를 더 많이 다뤄주는 훈훈함에 행복했었지만, 문득 그 와중에 막판에 캐릭터가 와장창 무너진 정환이를 곱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네요.

매 번 이따위라면 응답하라 시리즈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겠죠. 시청률이 얼만데ㅋ.

남편낚시는 이 시리즈의 주된 화젯거리입니다. 다음 편이 나온다고 하면, 그래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누가 뭐래도 시청률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니까.
이 화젯거리를 어떻게든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면, 매 시리즈 연적 역할을 맡은 캐릭터는 어떻게 해도 찌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송주에 이어 시원마저 사랑해 본업도 박차고 달려오는 윤태웅, 나정이의 마음이 향하는 곳 따위는 아랑곳없이 본인을 위한 직구를 던졌던 칠봉이, 그리고 고백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한 순간에 쿨 병 환자가 되어버린 정환이.
문제는, 그래놓고 그 캐릭터에 대한 변은 안중에도 없다는 거.
제작진은 응8 방영 전부터 남편낚시는 부수적인 거다, 라고 선언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냥 맘 편하게 15~16화, 늦어도 18화 쯤으로 일찍 결론 내 버릴 수도 있었던 거거든요. 남편 떡밥은 그 사이에 충분히 던져댈 수 있고, 결론 내고 남은 회차로 한 순간에 쩌리가 되어버린 캐릭터에 대해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에브리바디 해피엔딩~을 그릴 여유가 생기니까요.


극이 진행되는 동안, 
덕선이는 ‘무작정 사랑을 받고 싶어만 했던 철부지’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선우와 택이는 첫사랑을 지킨 승자가 되었습니다. 
동룡이는 분위기 메이커로, 조언자로, 협력자로, 친구들을 도와주는 감초가 되었습니다. 

남편낚시를 더 일찍 결론 내렸다면, 정환이도 지난 감정에 연연하지 않는 쿨 한 남자 이상의 더 멋진 캐릭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잔인함이 화가 나고, 안타깝습니다.







막판의 사족.

최종 화, 선우와 정환이가 나란히 앉아 같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면서, 선우가 피앙세 반지 신에서 자신이 보인 반응에 대해 정환이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선우는 정환이와 덕선이를 제외한 셋 중 진심이 접혀 본 아픔을 아는 유일한 캐릭터니까. 
그러니까 정환이의 씁쓸함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걸 한 순간이라도 장난으로 받아들였던 본인을 반성하면서, 옆에 앉은 절친의 빈 술잔을 채워줬으면 하고…….

물론 본인 상황만으로도 복잡해서 그럴 여유 따윈 없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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