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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 코리안 드림] '최다승+이닝 이터' 승리의 화신 헥터
게시물ID : baseball_1159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은연인
추천 : 0
조회수 : 4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02 12:22:42

 - 좋아 보인다.

 ▶ 좋다, 아주 좋다. (웃음) 지금까지 모든 것이 아주 좋다.


- 고향 에스파란자와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 달라.

▶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차로 40분쯤 떨어진 작은 도시 에스파란자에서 자랐다. 어려서 아버지는 가게에서 일 하셨고 나는 아이들과 야구를 하면서 자랐다. 좀 크면서 1주일에 두 번씩 야구 경기를 했고, 그러다가 수도인 산토도밍고에 가서 정식으로 야구팀에 들어갔고 그러다가 양키즈와 계약했다. 6살 때부터 리틀리그 야구를 한 거 같다.


- 예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온갖 데서 야구를 하고 있더라.

▶ 그렇다. 도미니카에선 남자 아이들은 모이면 어디서든 야구를 한다. (웃음)


- 가정은 어땠나? 경제적으로 힘든 가운데 야구 스타가 된 선수도 많은데.

 ▶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평범한 가정이었다. 도미니카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지만 아버지가 열심히 일하셔서 우리는 괜찮았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형제가 넷이 있는데 나만 야구 선수가 됐다. 트럼펫 연주자와 의사인 형이 있고, 동생도 야구를 하다가 다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 양키즈와 계약하며 계약금은 많이 받았나?

▶ 별로, 사탕값 정도였다. (웃음) 6만5000 달러를 받았는데 꽤 많은 액수였지만 중간에 소개한 사람 등에게 돈을 내야했기에 우리에게 돌아온 돈은 많지 않았다.


- 미국 프로야구로 간 것은 2006년이었다.

▶ 그렇다. 17살 때인 2004년 12월에 계약하고 2005년에는 도미니칸 서머리그에서 뛰며 우승했고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갔다.


- 미국 생활 시작이 쉽지 않았다. 출전정지와 수술 등을 받았는데.

▶ 미국을 건너갈 때 나는 아주 말랐었다. 형제들이 놀릴 정도로 말랐었는데 그래서 근육을 키우기 위해 강화제를 먹었다. 그게 금지약물인줄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50경기 출전 정지를 당했다. 충격이었지만 그 사건이 나를 크게 성장하게 했다. 마이너에서 피칭을 하면서 어깨와 팔꿈치 그러다가 무릎까지 부상이 있었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도 받았다.


 - 수술 후부터 아주 잘 던지기 시작했다.

▶ 2009년부터 다시 던지기 시작했고 2010년 퓨처스게임(마이너 올스타전)에도 나가고 성적이 꽤 좋았다. (2009년 6승4패 2.92에 이어 2010년에는 시즌 막판 트리플A까지 진출하며 14승7패 3.20을 기록했고 양키즈는 헥터를 40인 로스터에 포함시켰습니다.)


 - 메이저리그 데뷔전이 극적이었다.

▶ 아, 아주 힘든 경기였다. 2011년 시즌 초에 빅리그에 처음 승격됐는데, 한 경기도 못 던지고 다시 마이너로 갔다. 그러다가 5월 중순 다시 빅리그에 갔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 처음 등판했다. (5월18일 원정 경기) 연장전 경기였고 불펜에 던질 투수가 없어서 내가 나갔다. (웃음) (바톨로 콜론이 선발이었고 마리아노 리베라가 블론세이브를 하며 연장전까지 간 경기였습니다.)


 - 데뷔전 구원 등판인데 많은 이닝을 던졌던데.

 ▶ 그렇다, 12회에 등판해 4이닝을 던졌다. 데뷔전이었으니 당연히 떨리고 긴장됐다. 그러나 일단 마운드에 올라서는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안타도 맞고 볼넷도 내줬지만 실점하지 않았고 결국 승리 투수가 됐다. 정말 그 기분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4이닝 동안 4피안타 4볼넷 4삼진 무실점, 15회 연장전에서 양키즈가 승리한 경기)


 - 처음 빅리그에 승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 트리플A에서 선발로 뛰고 있었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불렀다. 뭔가 잘못됐나? 팀에서 쫓겨나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당시 양키즈는 불펜이 아주 강했고, 선발도 필요가 없었다. 승격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감독실로 갔더니 심각하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더라. 나는 태연한 척하며 그럼 집으로 가겠다고 했는데, 그제야 장난이라며 메이저리그로 간다고 알려줬다. 너무 기뻤고 당장 어머니,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 승격되고, 한 경기도 던지지 못했다. (웃음)


- 2012년 초 큰 트레이드가 있었다. (양키즈는 포수 헤수스 몬테로와 헥터를 시애틀로 보내고 투수 마이클 피네이로와 호세 캄포스를 받았습니다.)

 ▶ 팀으로서는 빅 트레이드였지만 내게는 원치 않는 트레이드였다. 양키즈에 머물고 싶었다.


 - 시애틀에서의 첫 시즌은 상당히 힘들었는데.

▶ 난 젊었고 경험도 부족했다. 잘 던진 경기도 있었지만 망친 경기도 있었다. 많이 기다려주진 않았다. (2승11패 5.77의 성적 후에 7월초 마이너로 배치)


 - 그 후 시애틀에서 텍사스,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는데 결국은 빅리그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 꼭 무엇이 힘들었다기 보다는 그게 야구인 것 같다. 시애틀에서는 계속해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마이너와 빅리그를 오락가락했었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웨이버에 올랐고 텍사스로 트레이드됐다. 시애틀 상대로 텍사스 데뷔전도 했는데 곧 다시 웨이버에 올랐고 화이트삭스가 나를 지명했다. 화이트삭스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2014시즌 27경기 선발로 8승11패 4.39) 그런데 2015시즌 내가 부진하기도 했지만 팀에서 1번 지명한 거액을 투자한 유망주를 빅리그로 올리려고 했고, 연봉이 많지 않은 선수를 로스터에서 제외했는데 그게 나였다. 다시 마이너로 가야했고 거기서 투구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KIA 타이거즈에서 뛸 기회가 왔다.


 -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는?

▶ 기회, 더 많은 기회를 원했다. 여기서는 나를 웬만하면 마이너로 보내지 않을 테고, 혹시 가더라도 마이너 레벨이 하나 뿐 아닌가. (웃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또 대우도 아주 좋았기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화이트삭스는 2016년 일단 마이너에서 시작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 한국 야구의 첫 인상은 어땠나?

▶ 처음에 아버지와 함께 왔었는데 어려운 것은 시차 적응뿐이었다. (웃음) 도미니카와 코리아는 완전히 밤낮이 정 반대다. 그 외에는 모든 게 좋았다. 동료들도 아주 좋고 마운드에 올라 피칭을 할 때면 음악도 흐르고 응원도 요란하고 그게 난 좋다. 미국은 조용하고 그런 게 없지 않나. 도미니칸 윈터리그에서 뛰는 느낌이고 정말 기분이 좋다.


 - 한국 야구나 문화 적응에 큰 어려움이 없는 듯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나?

 ▶ 그건 마음에 달린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마음을 먹고 적응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운전면허도 없고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데 비가 오면 힘들었다. 어려움은 그 정도다. (웃음)


 - 마운드에서 늘 편안하고 느긋해 보인다.

 ▶ 늘 그러려고 한다. 마운드에서나 밖에서나 내 성격은 느긋한 편이다.


 - 그러나 야구라는 게 늘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데,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하나?

▶ 야구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그저 침착하게 대처할 뿐이다. 만루든 홈런을 맞든 점수를 주든 그저 침착하게 계속 싸울 뿐이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혹은 쉽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멘탈이다.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 이려고 한다.

- 위험이 닥치면 마운드에서 어떤 생각을 하나?

▶ 마운드에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움이 닥치면 동료들과 농담도 하고 더그아웃에서도 즐기려고 한다. 야구는 결국 게임 아닌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건 게임의 일부이다. 경기의 일부이고 삶의 일부이다. 즐기려고 노력한다.


- 한국 선수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선수도 많다.

▶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좋은 투수를 상대한다면 오늘은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음이 그러면 더 힘들어진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동료들에게도 말하곤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고, 누가 투수든 누가 타자든 우리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 올해 더 좋은 피칭을 보여주는데 스트라이크존이 영향이 있나?

▶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훨씬 편안해졌다는 점은 큰 영향이다. 모든 게 작년보다 훨씬 편하고 익숙하다.

- 작년에 처음 왔을 때 200이닝을 던지겠다고 했고 실제로 해냈다. 참 놀라웠는데, 올해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겠지만 난 200이닝을 던질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올해는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매일 즐기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요즘 내 방식이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 더 나은 투수가 됐다고 생각하나?

▶ 처음 프로에 왔을 때부터 늘 더 나은 투수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보다 올해 더 나은 투수인 이유는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또, 내가 더 나이진 이유는 볼을 던질 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스트라이크만 던질 줄 알았다. 그러나 위, 아래, 좌우를 사용하며 공을 던진다. 홈 플레이트에 근접한 스트라이크 같은 볼을 잘 던질 줄 알게 됐다. (아주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 한국 생활은 어떤가? 야구가 없는 날은 무엇을 하는지.

▶ 많이 잔다. 가족들이 돌아가서 가끔 골프도 한다. 이제 초보자라서 배우는 재미가 있다. 동료들과 맛있는 저녁도 먹고 맥주 몇 잔 마시고 푹 쉬기도 한다. 작년에는 매운 한국 음식은 잘 못 먹었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다. 갈비와 삼겹살도 아주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이 아주 많다.


- 한국어는 어떤가? 많이 늘었나?

▶ 조금씩 늘고는 있다. 여기선 말 할 수 없는 단어도 많이 배우고. (웃음)


- 팬들의 질문도 있는데, 왜 헤어스타일을 바꿨나?

▶ 시즌 끝나고 고향으로 갔는데 정말 더웠다. 그래서 짧게 잘랐다. (웃음) 그런데 팬들 때문에 다시 기를지도 모르겠다.


- 메이저리그 복귀 의향은?

▶ 그건 잘 모르겠다. 이제 KIA 타이거즈는 내 가족이다. 이곳에서 뛰는 것이 정말 즐겁다. 그리고 마이너리그로 다시 갈 생각은 전혀 없다.


- 누구랑 가장 친한가?

▶ 동료들과는 정말 모두 잘 지낸다. 가장 친한 동료를 꼽으라면 지금 2군에 가 있는 배힘찬이랑 친했고, 임기영도 점점 친해지고 있다. 재밌는 친구다, 질문도 많이 하고 더그아웃에도 장난도 많이 친다. 포수들과도 친하고 모두 친구들이다.


 - 상대하고 싶지 않은 타자가 있나?

 ▶ (타격 자세 흉내를 내며) 넥센의 파울볼 많이 치는 그 타자는(서건창) 정말 상대하기 까다롭다.


 -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 사업을 할 것이다. 야구는 선수로 족하다. 현재 모토숍이 산토도밍고에 있고, 자동차 사업도 하고 싶다. 던질 수 있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면 개인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


 - 올해 팀의 전망은.

 ▶ 우리는 올해 끝까지 갈 것이다. 작년에는 아쉽게 플레이오프 초반에 패했지만 올해 우리는 훨씬 강하다. 우승을 향해 갈 것이다.


- 헥터 노에시에게 한국이란?

▶ 아, 정말 의미가 크다. 내게 기회와 직업을 준 나라다. 그리고 나를 가족처럼 대해준 곳이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 한국에서 아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헥터 노에시는 또한 단단한 사고를 지닌 선수입니다. 의외로 말은 많지 않았습니다만 피칭과 팀, 그리고 삶에 대한 자신의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등판할 때마다 팀에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 진정한 에이스. 헥터 노에시는 KBO리그의 많지 않은 진정한 에이스 중에도 첫 손에 꼽을만한 투수입니다.

출처 http://v.sports.media.daum.net/v/2017060211375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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