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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서울에 온 말괄량이 엘리스)
게시물ID : history_115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왕눈이개구리
추천 : 6
조회수 : 10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12 12:34:33
1905년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의 딸 엘리스 루즈벨트가 서울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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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까지로는 가장 큰 규모의 이 아시아 순방단에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한 관리 1904년에서 1908년까지 미국의 육군성7 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 Senator Newlands. CAJ도 잇었다.
 

엘리스와 함께 온 이 순방단의 첫번째 도착지였던 일본에서 테프트는 일본의 수상 가쓰라 타로를 만나 훗 날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는다.
이 협약에서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사실상 인정하는 대신 필리핀의 미국 지배를 일본으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 밀약을 바탕으로 엘리스가 한국을 떠난 두 달 뒤 11월에 일본은 고종 황제를 압박하여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맺었다.
 

윌리엄 태프트는 훗 날 루즈벨트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1905년 경에 한국 주재 미국 공사관에서 미국 공사의 비서로 근무하던 윌러드 스트레이트(Willard Dickerman Straight)가 남긴 편지와 특히 수 백장의 사진과 그림 등이 코넬 대학교 도서관의 귀중본 컬렉션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황실에서 의전을 담당하던 독일인 엠마 크뢰벨의 기록과 엘리스의 자서전, 윌러드 스트레이트 기록을 바탕으로 보면 고종은 한국을 방문한 다른 어떤 나라의 사절보다도 더 성대하게 이들을 접대했다.
어쩌면 두 달전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맺어진 협약은 알지도 못하고 엘리스의 일행을 통해 기울어져 가던 대한 제국을 위한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엘리스의 방문에 대해 당시 서울에 있던 일본 공사관에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고 윌러드 스트레이트의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미 7월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렸으니까요.
 

1934년에 출판된 엘리스 루즈벨트의 자서전 Crowded Hours 에서 엘리스는 한국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한국은 원하지 않았으나 속수 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 아래 미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보였고 낙담한 것 같았다.그 들의 몸에서 힘이라는 힘은 모두 빠져 나가버린것 같았다. 거의 모든 장소에 일본 장교들과 병사들, 그리고 일꾼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
그리고 1960년대에 남긴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본 일본 장교들이 이례적으로 똑똑해 보였고 또 유능해 보였다는 말을 했었다.
 

그녀의 자서전에서는 계속해서 우리 고종 황제 폐하에 대한 인상도 이어진다.
 

"황제와 곧 이어 마지막 황제가 될 그의 아들(his son)은 우리 공사관 곁에 있던 궁전에서 내밀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그 궁전의 유럽식 건물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먼저 이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고 땅딸막한(squat)황제는 나에게 자신의 팔을 내밀지 않은 대신(손을 내밀어 엘리스가 잡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 특히 주목할 것 없고 조그마한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식이었는데 황실 문장으로 장식된 그릇에 담겨져 있었다. 내가 사용한 그릇들은 식사 후 나에게 선물로 증정되었다. 궁전을 떠날 때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자신들의 사진을 주었다. 그 두 사람은 애처럽고 (세상사에)둔감한(pathetic,stolid) 인물들이었으며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밀약이라고는 하지만 엘리스를 포함한 순방단의 일부는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엘리스는 한국의 미래를 확실하고 알고 있으면서 고종을 만났고
 
'애처럽고 (세상사에)둔감한 황제" 라는 생각을 실제 하지 않았을까?
 

그랬기에 서울 거리를 말을 타고 다녔고 황실의 능에까지 와서 석물에 올라탔는지도 모른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찾아온 엘리스는 결코 조용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 같다.
 

크뢰벨의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미국 대통령의 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영을 표하기 위해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황제비의 무덤(홍릉) 근처에서 야외 리셉션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 곳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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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qlstnfp11.tistory.com/1572
 
요약
 
1. 고종황제께서 일본의 침략이 두려워 미국에게 한가닥이라고 잡아보자 한국에 온 미국 엘리스를 비롯한 방문자들을 극진히 대우.
 
2. 그런데 이미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일본수상과 만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란 비밀조약을 맺음
그 조약이란 일본이 조선을 침략을 명분으로 대신 미국에겐 필리핀을 미국지배권을 인정함
 
3. 조선 궁궐에 방문당시 엘리스 루즈벨트는 승마복장과 입에 시가를 물고 인사를 받음
 그리고 명성황후 능에 설치된 석물에 올라타고 서로 사진찍음. 여기에 지켜봤던 우리나라 사람들 멘붕
당시 황실에서 의전을 담당하던 독일인 엠마 크뢰벨이 자서전에다 엘리스 루즈벨트 방문단의 행동들을 낱낱히 기록
그런데 방문했던 엘리스 루즈벨트 남편이 엠마크뢰벨의 자서전을 보고 빡침.
절대 그런일 없다고 구라침. 그리고 엠마 크뢰벨을 비난
그런데 문제의 사진이 어느 도서관에 발견되어 사실로 들어남
 
4. 엘리스 루즈벨트 방문단이 고국으로 돌아가자 마치 약속하듯이 두달만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강제로 을사조약 맺고, 조선을 침략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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