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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생각하는 일본서기
게시물ID : history_250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들의유머
추천 : 0
조회수 : 1322회
댓글수 : 54개
등록시간 : 2016/01/17 21: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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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王은 479,496,502 년 3회에 걸쳐서 南朝에 조공했으나, " 일본서기"에
따르면 雄略 천황의 재위연대는 456-479년이므로 연대적으로 대부분
일치한다. 또한 武라고 하는 외자로 이름을 나타낸 것은 雄略 천황의 이름인
오오하츠세와타카게 ( 大泊瀨幼武 ) 의 어간에 해당하는 타케(武)를 따서
武王이라 쓴 모양이다

- 이노우에 미츠사다 " 일본의 역사 신화에서 역사로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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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미츠사다는 일본 고대사 최고 권위자 중의 한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서기에 479년에 다이한 사람이 502년에 중국에 조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냥 일본서기가 만화책이라고 해서 그렇다고 쉽게 이해하면 되는데
 
아래의 이나리야마 철검의 금석문을 가지고 실존 인물이라고 박박 우깁니다.
辛亥年七月中記 - 신해년 7월 중에 적다라는 문장과
 獲加多支鹵大王寺在斯鬼宮時 - 획가다지로왕이 사귀궁에 있을 때에 두 문장에서
 
多支 다치 이것이 武 이것의 일본어 훈독 타케와 비슷하니 일본서기 웅략 천황 의 공식 명칭
오오하츠세와타카케 에도 武가 들어가니까 결국 일본서기 인물은 중국 정사에도 확인이 된다
바락바락 우기고 있는데 물론 뻥입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일본 얘들 교과서에 보니까
이 내용으로 일본 유라크 천황은 틀림없는 실존 인물이다. 이렇게 하더군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 같은 일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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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이전의 일본 역사는 그 사실과 기록상의 의문점이 많다. 일본인은 고대 중국이나 유럽에 대한 역사적 지식은 잘 알고 있어도 자기 나라가 어떻게 성립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고대사의 연구가 정체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의도적으로 방치해 둔 느낌마저 든다. 전쟁 후 일본의 고대사 연구는 황국 사관 ( 史觀)에서 해방되어 크게 진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는 제국 시대와 별 차이가 없다. 이러한 정체는 고대 사학자나 고고학자의 사관(史觀) 과 매우 관계가 깊다. 전쟁 전의 황국 사관에서 유래하는 야마토 (大和) 중심 사관이 일본의 고대사 연구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야마토 중심 사관은 고대 일본 국가의 형성이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야마토에 태어난 야마토 왕권혹은 야마토 정권이 야요이 시대나 고분 시대 초기부터 일본 열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관이다. 현재 일본의 고대 사학자나 고고학자는 이 야마토 중심 사관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체적인 연구는 할 수 있어도, 그 성과를 이용하여 고대 일본을 명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 이시와타라 신이치로 " 백제에서 건너간 일본 천황 "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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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떤 분이 일본서기 일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땡깡 부려서 그냥 사료만 올립니다

땡깡 부린 분이 추천하시면 밑에 댓글에 썰 풀고 아니면 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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