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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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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Realpunch
추천 : 3
조회수 : 3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18 0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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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런 날이었다.

 

그녀가 자주 간다던 번화가에서 친구와 약속을 잡은 날이었고, 바로 그 친구 녀석이 펑크를 낸 날이었다.

 

나는 번화가 한 복판에 서서 친구에게 욕짓거리를 쏟아내며 이제 뭘 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보고 싶었던 영화가 떠올랐다. 나는 혼자 영화관에 가 티켓을 끊었다.

 

지겨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상영관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을 때였다. 저 앞으로 익숙한 뒷모습의 사람이 보였다. 분명 그녀였다. 그녀는, 나만의 것이라고 착각했었던 예의 그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옆의 남자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녀는 일주일 전,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었다.

 

그래, 그것은 통보였다. 나는 의아해했다. 내 품에 안겨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나는 그 때 그 목소리의 질감과 촉감, 그리고 그 형태마저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녀는 의아해하는 나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헀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바로 내 앞에 다른 남자의 손을 잡은 채 서 있었다.

 

나는 도망치듯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왔다.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항상 그래왔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 닥쳐왔을 때, 나는 이렇게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곤 했다. 나는 그 정체 모를 웃음을 뒤로 한 채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하늘은 파랬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 나는 티켓을 환불하는 것도 잊는 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는 버스 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그런 내 옆에 서 있었다. 아픈가 싶을 정도로 유난히 창백한 얼굴. 나는 내 코가 석자였기에, 그런 너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무릎 위로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쏟아졌다.

 

그건 바로 너의 토삿물이었다. 황당한 나와, 황망한 너와, 찢어지는 승객들의 비명 소리. 그 아비규환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일주일 전 헤어진 여자친구의 데이트 모습을 목격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어떤 여자가 내 무릎 위에 토삿물을 쏟아놓다니. 믿겨질 리가 없었다.

 

버스 기사는 나에게 정중하지 않은 태도로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너도 그런 나를 따라 내렸다. 내 무릎에서부터 역한 토삿물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너를 보았다.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너를.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나는 길 한 복판에서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너는 그런 나를 겁먹은 듯 쳐다보다가, 이내 조심스러운 웃음을 흘려다. 분명 너도 이 상황이 웃겼겠지만 미안함이 앞서 웃음을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와 너는, 아니 우리는 길 한복판에서 서로를 마주본 채로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그래,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내가 너를 처음 본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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