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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위로받지 못해서 그래요.
게시물ID : drama_389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후레쉬코드
추천 : 15
조회수 : 858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1/18 19:50:35
경쟁에서 이기는 거 아니면 답이 없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응팔이 보여준 건 경쟁이 아니라 나눔과 따뜻한 정이 있던 과거의 모습이었어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그립고, 또 그만큼 지금이 서글퍼서 더욱 그리웠죠.
특히 나레이션, 핵심 화자 시점은 덕선이, 그리고 정환이었어요.
정환이가 남편이 되지 않은 거야 별 문제가 아니죠. 
어차피 첫사랑에 성공한 '우리'가 얼마나 된다고요. ㅋㅋ
하지만 자신보다 가족과 친구를 소중히 생각했던 정환이의 선택이
마치 '승자가 아니면 링 위에 다시 설 자격 없다, 네 인생은 다시 볼 가치 없다'라는 의미처럼
패자로 그려진 것 같아 분노하게 된달까요.
우리를 대변하는 주인공은 덕선이와 정환이었는데, (화자 자체가 그랬죠)
덕선이는 1인칭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심리 자체가 반전이 되면서,
('꿈에' 키스신이 사실이었음을 반전으로 쓴 자체가 덕선의 심리를 감춘 것)
감정라인이 뚝 끊겨 더이상 이입이 불가했어요.
'내'가 아니라 관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남은 정팔은 구구절절 '덜 절실해서' 첫사랑을 이룰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죠.
그 울고 있는 정팔의 모습은, 스스로 '선택'했기에 담담하게 슬픈 게 아니라,
분하고 억울하고 후회하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패자처럼요.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화를 봤죠.
끝까지 공감했던 정환이는, 그냥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남은 건 승자들.
감히 '나 같은 사람'이라 말할 수 없는 의사, 검사, 천재 바둑기사, 그리고 
1인칭으로 '나'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그다지 이해할 수 없는 남이 되어버린 덕선이.
첫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냈던
제 자신을 대입시킬 수 있는 사람의 의연하고 행복한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정환이도, 또 그만큼 평범하던 도롱뇽도요.
경쟁이 아니라 나눔과 따뜻한 정이 있던, 그 그리운 기억을 추억하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정환이는, 나는 없었어요.
이야기의 주제가 무색할 정도로 승자들만을 위한 엔딩.
화나 날 정도로 외면받고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누군가에게 크게 감정이입을 하지도 않았고,
러브라인이 마무리되는 스토리에도 별 기대 없이
그저 가족 이야기 자체가 좋았던 사람이예요.
17화가 시작되기 전에, 그리운 88, 89년도가 끝나면서
'나의 응팔 이야기는 이미 끝났어. 나머진 군더더기야.'라고 공언하고 다닐 정도로요.
그래도 끝까지 봤는데, 화가 나더라고요.
위로를 바랐는데, 철저히 무시당한 것 같아서요.
나, 그래도 이만큼 살아냈다고
지금 비록 헬조선이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누군가 내 대신 이야기해주길 바랬어요.
그나마 언뜻 언급된 단 한 사람은
또 하필 가장 성공했다는 봉선생이더라고요?

왜 이렇게 화를 내냐고요?
평점이 그 정도가 말이 되냐고요?

저는 평점 매기지 않았지만, 16화까지는 최고,
하지만 엔딩까지 다 포함해서는
주제마저 완전히 붕괴시킬 정도로 망작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안타깝고 속상하기도 하죠.

드라마는, 특히 응답 시리즈처럼 암시나 단서 찾기가 활발한 드라마는
그냥 개개인의 투사도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누군가 응팔 엔딩을 아름답게 봤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 엔딩에서 분노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드라마를 잘못 본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냥, 위로받고 싶었는데
전 여전히 지옥불반도에서 살고 있다는 확인사살만 당했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택이가
정말 부럽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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