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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이 발동한 수사지휘권
게시물ID : sisa_11601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희끄므리
추천 : 0/11
조회수 : 1974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20/07/27 17:32:16


[경향신문]
수사지휘권까지 발동된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은 한편의 허무개그로 막을 내렸다. 공개된 두 개의 녹취록에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유착을 입증하는 발언은 없었다. 거기서 한동훈 검사장은 신라젠 사건은 민생사건이라며 유시민에 대해선 “관심 없어”라고 잘라 말한다. “그 사람 정치인도 아니잖아”라고도 했다.

머쓱해진 수사팀에서 입장을 내놨다. “범죄 혐의의 유무는 특정 녹취록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확보됐거나 앞으로 수집될 다양한 증거자료들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확보”됐다는 그 증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남은 것은 “앞으로 수집될 다양한 증거자료들”뿐. 그들의 증거는 이렇게 미래에 존재한다.

이 발언은 징후적이다. 수사가 ‘증거’가 아닌 ‘예단’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예단’의 근거는 허황한 음모론이다. 즉 한동훈 검사가 이동재 기자와 짜고 감옥의 이철씨를 압박해 유시민 작가의 비리에 관한 허위자백을 받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건을 미리 ‘검·언 유착’이라 불렀다.

이 음모론의 근원은 유시민 이사장의 피해망상이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그는 검찰이 자신을 노린다고 믿는다. 그 근거로 검찰만이 가진 사진과 정보를 기자들이 들고 온 것을 든다. 그런데 그 사진과 정보들은 실은 서울경제TV 전혁수 기자가 제공한 것이란다. 기자는 취재 중 검찰과 접촉한 적 없다고 한다.

유시민 이사장은 검찰이 제 계좌를 들여다봤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6개월이 넘도록 은행에서 아무런 통보도 못 받은 모양이다. 검찰에선 계좌를 들여다본 적 없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이 자신을 잡아넣으려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겁이 많다고 인정한 유시민 이사장의 근거 없는 두려움이 빚어낸 주관적 망상일 가능성이 높다.

공개된 두 개의 녹취록 속에
‘유착’을 입증할 발언은 없었다
한 피해망상과 두 거짓말의 증폭
증거가 아닌 예단에 의한 수사
그들은 ‘검·언 유착’이라 불렀다

이러한 망상을 사실로 둔갑시킨 사람은 열린민주당 대표인 최강욱 의원이다. 그는 이동재 기자가 녹취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철) 대표님,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 그런데 녹취록에는 그런 말이 없다. 그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다. MBC는 이 거짓말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또 다른 녹취록의 왜곡은 KBS에 맡겨졌다. “한동훈이 ‘유시민과의 연관성 모른다’고 말한 건 초반부이고, 나중에 가면 취재를 독려하고 도와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이 공개된 녹취록에는 “취재를 독려하고 도와주겠다”는 말이 없다. 누군가 KBS에 보도청탁을 하며 또다시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하나의 망상과 두 개의 거짓말이 빚어낸 음모론. 그 망상이 공영방송과 친여매체들을 통해 증폭되면서 현실로 둔갑했다. 이 정권의 지지자들은 아직도 그 가상현실 안에서 산다. “나의 상상이 곧 너희의 세계다.” 히틀러의 말이 실현된 것이다. 검·언 유착의 망상은 그렇게 대안현실이 되었다.

‘수사지휘권’ 조항은 원래 독일법과 일본법을 보고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조인 독일에선 한 번도 발동된 예가 없다. 딱 한 건 있었던 일본에서는 법무대신이 그 일로 옷을 벗었다. 권력의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예외’를 만드는 조치이기에 수사지휘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무거운 수사지휘권이 고작 ‘강요미수’ 사건에 사용됐다. 왜 그랬을까? 정치적 편견에 사로잡혀 처음부터 사건의 본질을 검·언 유착으로 예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처럼 검·언 유착은 거짓말로 빚은 망상일 뿐이다. 수사지휘권 발동의 근거가 고작 음모론이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수사팀이 “앞으로 수집될 다양한 증거자료들” 운운하는 것은 장관의 음모론 신앙을 기필코 입증하겠다는 사명감의 표현이리라. 수사심의위의 권고와 관계없이 그들은 한 검사장을 기소할 게다. 권력의 명에 따라 허구를 대안사실로, 망상을 대안현실로 바꿔드리는 게 ‘개혁 당한’ 검찰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하명수사, 무리한 기소, 언론과의 유착. 검찰개혁을 해야 할 이유로 그들이 내세웠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 못된 짓을 자기들이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게 개혁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우리가 고작 이런 꼴이나 보려고 촛불을 들었던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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