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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미소
게시물ID : readers_236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4
조회수 : 3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1/19 11: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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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삼시 세끼:

아침은 우유 한 잔.
점심은 우유 한 잔에 바나나 하나.
저녁은 커피 한 잔.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뭘 제대로 안 먹었다.

어제저녁을 먹은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이컵, 플라스틱 뚜껑이랑 빨대, 등등 쓰레기를 다 분리해서 버리려는데 직원분이 자기가 하겠다며 그냥 두라고 하시더라.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직접 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쓰레기를 다 처리할 때까지, 직원분은 내 옆에 서 계셨다. 할 일을 끝내고 손을 털었을 때가 되어서야, 그분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활짝 웃으셨다. 나는 그 예쁜 미소가 그저 학습된 친절에 의한 것이 아니길 바랐다.

몇 개월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주말에 혼자서 장을 보고 오는데, 몸이 굉장히 힘들더라. 양손에는 짐이 가득하고, 날씨도 마음에 들지 않고, 기숙사에 도착하면 밥을 해먹어야 할 텐데 귀찮기만 하고. 그래서 인상을 잔뜩 쓴 채로 뒤뚱뒤뚱 길을 걷고 있었다. 한 레스토랑을 지나야 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과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시선을 돌려야겠다,라고 생각한 순간 그 사람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토록 멋진 미소에, 나는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짐에 팔이 빠질 것 같았어도, 괜찮을 수 있었다.

웃는 사람이 좋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잘 웃지 않는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잘 웃었던 거로 기억한다. 중학교 일 학년 때, 같은 반의 한 남자애가 항상 내 자리를 돌아보며 인사하듯 손을 흔들고는 했다. 똑같이 손을 흔들어 주는 게 어색했던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작게 미소만 지었다. 그건 아마 친절이었을 것이다.

'왜 미소만 짓는 거야? 내가 인사하면.'

그 애가 당당히 그렇게 물어왔을 때, 뭐라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 애가 또 손을 흔들면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 그 애가 내게 인사하는 걸 관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애한테서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다. 다짜고짜 볼에 뽀뽀를 한다든지, 등을 밀어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찧게 한다든지, 지워지지 않는 형광 페인트를 옷에 붓는다든지, 수정액을 새로 산 책가방에 쏟는다든지. 십 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도 도저히 글로 적을 엄두가 나지 않는 아픈 말을 뱉는다든지.

오로지 그 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는 언제부턴가 잘 웃지 않게 됐다.

오늘 아침은 반찬이 다른 날보다 훨씬 많다. 밥그릇에 밥이 한가득 있는 걸 놀란 눈으로 보고 있자니 아주머니께서 내게 물으신다. 어제 밖에서 친구들이랑 저녁 잘 먹었느냐고. 커피만 마셨어요,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나는 거짓말을 한다. 네, 맛있게 먹었어요. 얼굴엔 친절한 미소을 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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