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로망, 주식
샐러리 좋아하는 샐러리맨이 어디 있겠냐는 말처럼, 백수들이 그렇게나 갖기를 원하는 것이 직장이지만 정작 직장인은 못 마땅해 한다. 불안한 미래, 부족한 월급, 원만하지 못한 상사와의 관계 등 직장인의 스트레스야 해본 사람만 안다. 그런 직장 생활의 오아시스가 바로 주식이 아니겠는가. 주식으로 돈을 벌고 말고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식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마음속에 부처를 모신 것 만큼이나 든든하니 그 효용이야 말해 무삼하리오.
주식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계급을 통한 착취는 불가능하다. 다만, 자본을 통한 착취가 이루어질 뿐이다. 직장인들이 똑 부러지게 ‘왜’라고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하여튼 뭔가의 이유로 직장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신의 노동력을 꾸준히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면, 직장을 취미로 다니는 거든가 아니면 엄청나게 둔한 바보일 뿐이다. 그런 찝찝함을 일거에 날려 주는 것이 바로 주식이다.
‘나도 회사의 주인이다.’
비록 만원 지하철에 실려 와서 지금 상사의 감시의 눈초리가 등 뒤에 꽂히고 있으나, 마음은 뿌듯하다.
비록 만원 지하철에 실려 와서 지금 상사의 감시의 눈초리가 등 뒤에 꽂히고 있으나, 마음은 뿌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착각이다. 주식이 비록 회사의 소유권을 쪼갠 것이고, 주주는 그 주식의 주인이니 당연히 회사의 주인일 것이라는 삼단 논법이 적용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왜 아니냐하면, 소액주주로써 그 회사의 주인 역할을 단 한번도 해 본 적도, 앞으로 해 볼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청호에다가 각설탕을 하나 빠뜨리면 그 물이 설탕물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왜? 아무리 설탕을 녹였다 하더라도 그 물이 설탕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설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유식하게로 말하자면,설탕의 함유량이 검출될 수 있는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삼성전자 주식 10주를 들고 있어봤자 삼성전자의 주인행세를 할 수 없고, 따라서주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단지 삼성전자 '주식의 주인'일 뿐이다. 주주라고 해 봤자 마음대로 볼펜 한 자루 들고 나오지도 못하고, 심지어 공장 출입도 허용되지 않는다. 소액주주의 존재 가치는 대청호에 녹은 각설탕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주식이 회사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회사의 자산을 임의로 처리할 권한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말만 '소유권을 표시'한다는 것 뿐이다.
주식 전문가라는 양반들은 흔히 ‘내재 가치’ 얘기를 자주한다. '어차피 주식이 기업의 소유권이니 그 기업의 실질적인 가치가 주식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다. 얼핏 보면 맞을 것 같지만 이 또한 개소리다. 솔직히 기업의 내재가치가 좋으면 뭐하고 나쁘면 어떤가.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주식 비율만큼 그 기업의 일정부분을 따로 떼서 가질 수도, 팔 수도 없다. 그렇다고 상장된 기업이 어느 날 모든 자산 가치를 처분해서 주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말 또한 들어 본 적이 없다. 회사의 자산을 처분해서 주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그 기업이 망해서 청산할 때 밖에 없다. 그 기업의 내재가치와는 실질적인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다만 머리 속에서만 연관이 존재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수원이나 천안에 있지 않고 설사 안드로메다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기업의 내재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순진한 개인투기자들에게 내재가치를 믿게 만들어 내가 가진 주식을 좀 더 비싸게 팔아 먹어야할 때 밖에 없다. 그래서 워렌버핏 같은 사기꾼들이 내재가치 얘기를 자주 한다. 코카콜라의 내재가치가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주식을 가졌다고 그 내재가치를 가질 수도 없는 걸. 내재가치 덕에 주가가 올라간다고? 주가가 내재가치로 결정되는 거라면 아예 그런 얘기도 할 필요가 없다. 내재가치가 좋으면 높은 배당이 기대된다고? 주식 배당 받아서 부자 됐다는 사람 본 적 없다. 배당을 해 줄 정도의 우량기업이면 이미 주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랐을 테니 아무리 많은 배당을 한다 해도 주가에 비하면 껌 값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배당보다 유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배당을 하면 배당락이 있으니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착각이다. 사내 유보로 들어간 이익은 그 기업이 망할 때까지 주주는 구경도 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주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거다. 어차피 배당락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비슷하다고 해서 본질이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 주식이 갖는 가장 중요한 경제학적 의의는, 뼈 빠지는 임금 노동으로 힘겹게 모은 노동자들의 돈을 다시금 자본가들의 금고로 빼앗아 오는데 있다. 자본가 체면에 노동자들에게 돈을 꾸자니 쪽팔리기도 하거니와, 그 보다도 이자를 주는 것도 아깝다. 또 노동자들이 돈을 모으는 자체가 자본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언제 대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항상 굶어 죽을지 말지 하는 임계선 상에 세워둬야 부려 먹기가 좋다. 또한 주식이란 떡밥은 노동자간의 분열도 유도하고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착각을 들게 해서 투쟁의식도 약화시킬 수 있는 묘약이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자본 축적도 막는다. 그럼에도 실질적인 기업 소유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보다 더 좋은 떡밥을 본 적이 있는가?
주식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주식은 당연히 기업의 소유권이다. 그러니 주식의 가치는 곧 기업의 가치다. 기업의 가치는 또한 유 무형의 자산과 미래 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회계가 투명하다는 가정 하에 주가는 굉장히 안정적이어야 한다. 또 실제로 투명하지 않다 하더라도 주어지는 투기자들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동일하다면 주가는 크게 변동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하자. 거위는 하루에 300그램의 황금 알을 낳는다. 거위 뱃속에 황금이 들어있지 않은 거야 이미 예전에 배를 갈라본 경험이 있으니 알고 있고, 따라서 거위의 몸통 값과 거위가 죽을 때까지 낳는 황금 알의 현재가치가 그 거위의 가격이 될 것이다. 그러니 거위 입장에서 볼 때 거위 값이 오르기 위해서는, 거위가 밥을 많이 먹어서 살이 더 찌든가, 아니면 하루 하나씩 낳던 알을 이틀에 세 개씩 낳든가, 그도 아니면 거위수명이 길어지면 된다. 반면에 시장에서 볼 때 거위 고기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서 값이 오르든가 금값이 오르면 황금거위 값도 따라서 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주가도 그 기업의 자산과 미래가치로 정해지면 된다. 기업의 내부적인 자산가치가 워낙 복잡해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 해도 상관없다. 설사 틀린 평가라 해도 투기참여자들이 믿으면 그만이다. 미래가치에 대한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의 미래가치라는 것이 하루 이틀에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기업의 주가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하루에도 왔다 갔다 한다.
즉, 주가는 이미 기업의 내부적인 가치나 미래가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업의 내부가치나 미래가치를 따지는 것은 큰 손들이 개인들을 털어먹기 위해 사용하는 미끼에 불과하다. 회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개인투자가가 어떻게 그 회사의 내부가치를 알며, 또 미래가치를 평가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개인보다 훨씬 뛰어난 큰 손들은 더 먼저, 더 빨리 평가를 끝냈을 텐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기업의 내부가치나 미래가치를 감안해서 산 주식의 가격이 오를려면, 타짜 같은 전문가들도 보지 못했던 내부가치를 ‘나’만 눈치 챌 수 있어야 하고, 전문가들도 예상 못한 미래가치를 나만 정확하게 뚫어 봐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이미 그 모든 것이 주가에 다 반영되어 있어서 사봤자 재미를 볼 수 없다. 그저 500원짜리 500원 주고 사는 꼴일 뿐이지 않겠는가?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혹은 골동품이든, 모든 형태의 자산은 이미 현재 가격에 '미래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은 '운에 맡긴다'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혹은 골동품이든, 모든 형태의 자산은 이미 현재 가격에 '미래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은 '운에 맡긴다'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앞서 얘기했지만, 내부가치는 결코 주주들에게 분배되지 않는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40만평이 넘는 부지나 최첨단 반도체, LCD 생산라인은 그 자체로 소액 주주가 가진 주식의 가격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어떤 부자가 돈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서 한번 잠그면 어떤 방법으로도 열 수 없는 엄청나게 견고한 금고를 만든 다음 자신의 모든 재산을 금고 안에 넣고 잠가 버렸다고 생각해보자. 그 부자는 이제 재산을 도둑맞을 일은 없다.그런데도 여전히 그 부자는 그 금고 속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흐뭇하게 생각할까? "통제할 수 없는 재산은 재산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모든 유무형의 자산은 그것이 아무리 가치 있고 비싼 것이라 해도 망해서 청산되기 전에는 주주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그 회사가 존속하는 동안 이윤을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그 실물 자산의 평가액이 주가에 반영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즉, 주가는 그저 그 기업의 현재 이윤과 미래의 기대이윤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맞다. 그나마도 그 이윤이 실제로 주주들에게 배당된다는 가정 하에.
삼성전자가 10조원의 이익을 내면 뭐하나,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주식은 사실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 거위가 황금 알을 낳으면 뭐하나 제가 낳은 알을 다시 먹어야 한다면.
삼성전자는 지난 10년간 거의 50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실제로 주주들에게 배당한 돈은 법인세와 배당세를 제외하고 나면 2조원도 채 안된다. 나머지 수십 조원을 배당하지 않고 회사 유보로 돌려 기업의 경쟁력을 키웠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 하나, 실제로 삼성전자 주주가 덕을 본 것은 없는데. 거위가 황금 알을 아무리 많이 낳으면 뭘 하나? 더 많은 황금 알을 낳기 위해 계속 자기가 먹어야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언젠가 죽을 때 뱃속 그득한 황금 알을 주인에게 주는 것도 아니다. 배를 갈라봐서 알지 않은가, 그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거위주인은 그저 황금 알을 낳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만 보는 재미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주식의 사용가치는 단지 ‘배당’에만 있다.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더라도 그것이 실제 주주의 손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다행히 주식의 교환가치는 다르다. 그렇게 제대로 배당도 받지 못하는 주식을 누군가가 높은 값으로 사준단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것을 사주는 사람이 왜 사주는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카지노에서 진짜 돈을 내고 원가가 몇 푼 하지도 않을 것 같은 플라스틱 칩으로 왜 바꾸는가? 도박을 하기 위해서다.주식시장에서 값어치도 없는 주식을 그 비싼(!) 돈을 주고 왜 사는가? 투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주식을 할 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 주가가 큰~폭으로 올랐습니다.” 마치 제가 큰 돈을 벌기라도 한 듯 기쁨에 찬 목소리와 다소 격앙된 성조로 헤드 멘트를 날리는 앵커가 기억 날것이다. 도대체 저 양반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자신이 사둔 주식이 오른 게 기뻐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부자가 된 것이 자기도 같이 기쁘다는 걸까?
사실 주식이 있든 없든 주가가 올랐다고 하면 그냥 기분이 좋기는 하다. 별 생각이 없는데 TV 나 신문에서 좋다고 그러니까 그냥 그런 가보다 한다.
솔직히 주식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것은 1987년의 어느 날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주식시장이 존재했었지만, 일반인들은 별로 관심도 없었고, 시장 규모도 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987년 거의 모든 일간 신문에 주식시세표가 동시에 등장했다. 그 전까지는 주식시세표는 경제신문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 뿐인가? 방송에서도 뉴스시간에 주식시장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기 시작했고 연일 특집 프로그램도 편성했다.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은 주식에 쏠리게 되었고, 하나 둘 주식시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어마어마한 주식폭등이 뒤따른다. 한정된 시장에 돈이 몰리면 가격이 올라가는 거야 당연한 이치 아닌가?
불과 2년도 걸리지 않은 1989년 3월에 종합주가지수는 최초로 1,000선을 돌파한다. 당시의 주가 활황은 1980년대 당시 3저 효과로 인한 풍부한 자금유입이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당연히 주식시장의 인위적인 활성화에 있었다. 3저 호황이든 뭐든 넘치는 부를 흡수할만한 새로운 그릇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주식시장이었다.
1960년대 3공화국 시절에도 김종필이 정치자금을 마련할 요량으로 증권 파동을 일으킨 적이 있지만 그것은 그저 한탕 사기쳐 먹는 소동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비하면 장난이었다.
주식시장이 활성화가 되고, 주가가 오르면 누가 덕을 본다고 생각하는가? 주식 시장에 참여해서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 뭐, 그럴 수도 있다. 주식 가격 상승기에 주식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하면 주식을 사서 차익을 얻는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주식시장 바깥의 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형국이다.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 10만원에 사서 20만원에 팔 건, 30만원에 팔 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즉, 주식시장이 활성화되면 원래 주식시장에 있던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다.
주식거래라는 게임에서 보자면 주식 투기자를 하나의 집합으로 봤을 때 주가가 오르든 떨어지든 그 사람들이 가진 돈은 일정하다. 단순한 모형을 놓고 생각해 보자.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딱 한주가 있고 투기자는 단 두 명, A와B가 있다고 하자. A는 원래 10만원을 주고 산 주식 1주를 갖고 있다. 나중에 시장에 진입한 A는 B에게 20만원에 주식을 팔고 10만원을 벌었다. 그러면 A가 번 10만원은 주식이나 그 주식이 대표하는 기업과는 아무 관계없는 B가 노동해서 번 돈을 A가 가진 것이다. 여전히 주가가 20만원을 유지하고 있다면 A만 10만원을 번 꼴이다. 그런데 주가가 올라서 30만원이 됐다고 치자. 여전히 A는 10만원을 번 상태고, B도 미 실현됐지만 10만원을 벌었다고 느낀다. 그런데 진짜 B가 1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A가 30만원에 사주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A 또한 주식시장 바깥에서 노동해서 번 돈 10만원을 들고 들어와야 한다.
결국 주식이 투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자체로 아무런 ‘교환가치’가 발생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식시장에 참여해서 돈을 벌었다면, 그 돈은 주식시장에서 만들어진 돈이 아니라 주식시장 바깥에서 만들어진 돈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활성화된다는 의미는 주식시장 바깥의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어 온다는 얘기이며, 그 와중에 돈을 버는 이는, 원래 주식을 갖고 있던 자본가와 그 사이 거래를 주선하면서 ‘고리’를 뜯는 중개회사 밖에 없다.물론 새로이 투기판에 끼일 자격을 획득하는 ‘신규 상장업체’ 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벤처 기업들이 라면 끓여 먹으면서도 밤을 새면서 연구에 매진하고, 쥐꼬리 같은 월급에도 목숨 바쳐 영업을 뛰는 이유는, 자신들이 만든 회사의 주식을 공인된 도박판인 주식시장에 ‘공식 칩’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다.
경마장에서 사상최대의 999가 언제 주로 터지는가? 거의 예외 없이 매년 봄에 사상최대 배당이 터진다. 그것도 나들이를 막 시작할 무렵인 4월경에 말이다. 겨우내 쉬던 경마장이 다시 열렸음을 알려서 사람들의 발길과 지갑을 다시 경마장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경마에서는 누가 돈을 버는가? 물론 주식과 마찬가지다. 마권을 사는 경마꾼들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마사회와 예상지 판매업자, 그리고 경마장 커피 자동판매기 주인이 번다. 과천 경마장의 커피 자판기는 한대가 월 수천만 원의 이익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마의 승률은 70%로 정해져 있다. 999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들고 경마장을 찾아도 기댓값은 언제나0.7일뿐이고 마사회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오면 올 수 록 더 큰 돈을 번다.
경마에는 꾼들이 있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늘 돈을 딴다고 한다. 기댓값 0.7%에서 장기적으로 돈을 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상상을 해보라 10만원으로 경마장을 찾아서 배팅을 한다면, 첫 게임이 끝난 후 그 돈은 평균적으로 7만원으로 줄 테고 두 번째 게임이 끝나면 4만9천원으로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하루 12 게임을 즐기고 나면 그의 수중에는 1,380원 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98,620원은 마사회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척박한 조건에서 돈을 딸 수가 있다고? 그런데 사실이라고 한다. 경마장에는 전문가들만이 모이는 것이 아니다. 경마장의 구호가 뭔가? ‘건전한 경마’,‘가족과 함께’ ,‘ 두되 레저 경마’ 등등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문가가 아닌 호구들 좀 모이라는 말이다. 진짜 경마장에 놀러 온 사람들은 큰 돈을 배팅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낮은 배팅에는 아예 흥미가 없다. 그들은 최소 100배, 아니면 999에 작은 돈을 건다. 잃어도 아깝지 않은 돈을. 그들이 배팅한 500원짜리 게임(맞추면 50배, 49배를 더 줌)은 정상적이라면 맞을 확률이 0.02(배수)x0.7(기댓값) = 0.014 즉 1.4%의 확률이어야 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말이 들어 올 확률은 1%가 아니라 0.1%도 안 된다. 그 말은 12원짜리 게임(맞추면 1.2배, 0.2배를 더 줌)의 말이 들어올 확률이 0.83(배수) x 0.7(기댓값) = 0.583 즉 58%여야 하지만 실제로는80%도 넘는다는 말이다. 즉, 전문꾼들은 재미로 경마를 하는 사람들이 재미로 버린 확률을 주워 모아 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마사회는 재미로 할 사람들을 경마장으로 끌어 모아 주기 위해 광고도 하고 후원도 하고, 심지어999도 터뜨려 주는 것이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자본가가 아닌 이상 그냥 개인인 우리가 주식시장에 참여해서 돈을 벌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아니. 없다. 왜냐하면 기댓값이 1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 주식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을 예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그보다는 고려하지 않는 사람 중에 돈을 잃은 사람이 훨씬 많을 테니까. 피라미드 사업으로 돈을 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다이아몬드니, 골드니 하는 저 높은 단계는 진짜로 돈을 벌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위 단계에서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피라미드 사업 전체를 놓고 보면 공급되는 교환가치란 것이 새로이 그 물건을 사주는 신규회원뿐이고, 그들이 공급한 교환가치를 피라미드 내에 있는 조직원끼리 나눠 먹어야 하는데, 저 상층부에 있는 다이아몬드나 골드가 먼저 교환가치를 나눠가 버리니 나머지 조직원들의 평균 소득은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즉, 투입만큼의 산출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피라미드 자체가 신비한 능력으로 저절로 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가끔가다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위바위보를 연속으로 스무 번 이긴 사람도 있는데 기댓값이98%인 게임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없을 수 없다. 그보다 훨씬 기댓값이 낮은 로또나 복권으로도 돈을 버는 인간이 있는데 주식으로 왜 못 벌겠나?
그 결과 얼치기 같은 인간들이 주식전문가랍시고 경제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종목이 유망하느니, 저런 종목을 관심있게 지켜보라니 떠들고, 주식투자(!)는 이렇게 해야 하느니 저렇게 해야 하느니 하면서 설레발을 떨고 책을 쓰고 난리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맞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 의도 자체가 사기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슨 파동이론이 어쨌다는 둥, 차트를 분석하는 방법이 어쨌다는 둥, 피보나치수열을 저렇게 이용한다는 둥, 상승상의 조건은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열심히 떠들어 댄다. 우물 속에 갇힌 개구리들이 우주의 원리를 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기야 일본에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기술에 관한 책만 수백권이 출판되어 팔리고 있다하니, 거기에 비하면 주식에 관한 이론서는 엄청나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식관련 책을 쓴 인간들이 그 책을 산 사람들이 그 책을 사서보고 주식투기에 성공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책 팔아먹고 벌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주식시장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크게 주식시장이라는 투기판에 판을 깔아 놓고 있는 편과, 그 투기판에서 게임을 즐기는 두 패로 나눌 수 있다. 판을 벌인 이들은 다름 아닌, 그 투기판의 도박 칩이라고 할 주식을 발행하는 회사들, 투기를 운영해주고 고리를 뜯는 증권회사, 투기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꽁지역할을 하는 금융사들, 어디를 찍을 지를 알려주고 수고비를 뜯는 투자 자문사 등등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돈을 싸들고 게임에 참여하는 직접 투기꾼들이 있다. 물론 그 투기꾼들 중에는 월급에서 한푼 두푼 모은 쌈지 돈에 반찬값 아껴서 모은 돈 들고 따라온 주부들도 있지만, 수백억을 굴리는 큰 손도 있고, 또 엄청난 돈을 굴리는 타짜같은 전문 투기회사들도 있다.
이 게임은 보지 않아도 승자와 패자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은 무조건 남는 장사다. 투기참여자들이 들고 들어온 ‘교환가치’를 뜯어 먹기만 하는 입장이니까. 반면에 투기참여자들은 항상 ‘Below Zero Sum'이다. 첫 번째 그룹에게 미리 고리를 떼이고 시작하니까. 그나마 큰손들은 화투판의 마귀나 타짜 쯤 된다. 주식 판의 타짜들에게는 몇몇 기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공매도가 그 대표적인 기술이다. 게다가 그들은 정보 수집능력이 앞설 뿐 아니라 심지어 정보를 만들어 내고 유통시킬 힘도 있다. 그 와중에 개인들이 자칭 전문가라는 이들이 쓴 책을 보고 주식을 해서 돈을 딴다? 정말로 웃기는 얘기다. 어떤 면에서 그런 책들, 주식 투기에 관한 책을 써내는 놈들은 진짜 양심도 없는 놈들이다.
주식시장이 갖는 경제적 의의는 개인들이 주식시장 바깥에서 힘들게 벌어서 주식시장 안으로 쏟아 붓는 ‘교환가치’를 하우스 주인과 꽁지, 재떨이 같은 놈들이 빨대를 꽂아 놓고 주구장창 빼먹는 그런 메커니즘이다. 그러고 남은 판돈을 마귀와 타짜들과 붙어서 돈을 따야 한다. 가능해 보이는가?
이것은 아무리 주가가 3,000 아니라 10,000을 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공식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돈만 생기면 들고 주식시장으로 가냐고? 그건 로또를 사는 사람이나 마권을 사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된다. 똑 같은 답이 나올 테니까.
‘나는 다르니까’
그렇다면 주식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일까? 내가 경마장에 가지 않으면 경마로 돈을 잃을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카지노에 가지 않으면 블랙잭이나 바카라로 돈을 잃을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주식시장에 참여하지 않으면 주식으로 돈을 잃을 일은 없다. 그러면 된 건가?
근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자면 주가가 실제 사용가치를 넘는 가격으로 치솟더라도 언젠가는 그 거품이 꺼지게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투입된 노동가치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전이라면 투기적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하더라도 그 주식을 보유한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 더 많은 부를 가진 사람처럼 행세한다. 실제로 그가 가진 주식이 실제 화폐와 무리 없이 교환되고, 또 그 돈은 다른 사람의 실질 노동 가치를 구매하는데 쓰인다. 나야 주식시장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쳐도, 꾸준히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이 계속해서 주식시장 바깥에서 번 돈을 주식시장으로 넣어주는 한 주식시장이라는 거대한 돔은 무너지기는커녕, 더더욱 커져만 간다. 그러니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한 나는 상대적으로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또한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기업은 허접 쓰레기 같은 기업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보통 기업 이상으로 우량한 만큼 실제로 주식시장이라는 돔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은 주식시장의 바깥에 있는 나의 위치가 점점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풀려진 주식으로 교환한 돈이 내 노동을 사간다. 주식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100원이었던 돈이 거기 들어갔다 나올 때는 150원이 돼서 내 노동을 사가는 것이니, 사실은 나도 모르게 나는 50원 어치의 노동을 더 제공해야 하는 꼴이다. 게다가 천만 원을 들고 들어간 놈이 이제는 1,500만원이 됐다고 자랑하기까지 한다.
그러면 도대체 뭘 어쩌라는 것이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주식시장에 참여해도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식을 외면해도 주식시장 참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사실은 뭘 어쩌란 것이 아니다. 그냥 ‘자본주의’세상에 사는 우리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뿐이다. 하루하루 꿈을 갖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 하기는 뭐 하지만, 우리가 태어난 시대가 자본주의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고, 그 안에 자본의 논리에 따라 주식시장이란 것이 생겼다면, 우리는 이미 어떤 식으로든, 싫든 좋든, 내 노동을 뺏기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실 주식시장을 예로 들어서 그렇지, 정말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의 아까운 노동을 빼앗기고 있다. 우리가 돈을 벌어 은행에 저축을 한다고 치자. 은행은 그 돈을 빌려주고 차액을 먹는다. 또 그 돈을 빌려간 기업은 투자를 할 테고 당연히 기대 투자수익은 금리를 넘을 것이다. 즉, 이자보다 기업이 얻는 이윤이 더 크기 때문에 국가 전체적으로 부가 늘어나는 속도는 이자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르고, 따라서 돈을 맡긴 사람의 돈이 이자가 불어 총액이 늘어나더라도 그가 가진 부의 지위는 낮아진다. 이자가 인플레이션을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뿐인가? 경제가 나빠져서 기업들의 이윤율이 낮아지고 심지어 이자를 갚지 못할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던가? 은행이 부실해지고, 결국 공적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멀쩡한 국민의 돈을 뺏어다 메꾼다. 그 은행 근처에도 안간 내개 무슨 죄가 있다고?
자, 남는 돈을 은행에 맡겨도 손해고, 맡기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본다. 마치 한 대 맞을래, 두 대 맞을래를 선택하라는 것과 같다. 환율이 변동하든, 인플레가 진행되든, 금리가 바뀌든, 자산가치가 변동하든 실질적인 결론은 똑같다. 바로 이 한 가지 딜레마로 귀결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돈이 흐르는 방향은 딱 한 방향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엔트로피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듯이, 자본주의에서 돈의 흐름은 없는 놈 주머니에서 있는 놈들의 금고로 향하는 오직 한 방향이다.
<세줄요약>
1. 주식이 갖는 가장 중요한 경제학적 의의는, 뼈 빠지는 임금 노동으로 힘겹게 모은 노동자들의 돈을 다시금 자본가들의 금고로 빼앗아 오는데 있다.
2.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은 '운에 맡긴다'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3. 주식을 외면해도 주식시장 참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