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want you. ]
꿈을 꿨다. 무한히 이어져있는 붉은 카펫에서 하나의 의상을 입고는 계속 워킹을 했다. 계속. 언제까지고. 하이힐을 신은터라 발은 상당히 아파왔고. 있는지도 몰랐던 스피커에서는 소리가 점점 내려왔다. 이 사라 모델. 워킹이 불안정합니다. 자세가 좋지 않습니다. 옷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연습생 시절에 수도없이 들은 말들이였다. 그 말은 진짜 모델이 되고나서도 가차없이 꽂혀 들어와. 상당히 내 마음들을 아프게 하는 말들이였다. 하지만 그딴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건 상관 없이- 내 스스로 잘 해내면. 잘 해내면 가능한것이였다. 가능.. 할것이다.
워킹을 계속했다. 발가락에는 이미 아무런 촉감도 없었다.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고. 그 다음발을 체중을 실어 내딛는다. 몇번이고 반복하는 간단한 행위. 그와 동시에 몇번이고 반복되는 나의 평가. 따가운 시선들은 역겨웠다. 옷에서부터 몸과. 다리를 보는 시선들은 아무리 심사라고 하지만. 나는 끝까지 소화해내지 못헀었다. 결국, 즐기지 못하고 부담되는 워킹의 끝은 당연한것이였다. 이대로 점수도 낮게받고. 안좋은 평가로 들어올것이다. 이 일에 슬슬 슬럼프가 오는건가. 하고 그저 워킹을 계속했다. 그 순간.
우득, 우드득. 하며 힐이 부숴졌다.
우득, 우드득 하며 레드카펫이 찢어졌다.
우득, 우드득 하며 땅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꿈이라는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힐도 신지 않은채로 무한한 하강을 계속 하던 나는 눈을 침착하게 뜨자 보였다. 내려가고 있는곳은, 바로 또다른 레드카펫이였다. 그리고 내려가는중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디자이너들과 팬. 그리고 심사위원들이였다. 갑작스러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시선에 박동수가 슬슬 빨라졌다. 식은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조금은 괜찮아졌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호통. 시선을 처리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어쩌자는거야! 라는 가슴아픈 또 하나의 소리가 내려왔다. 이내 그 소리는 둘로 갈라져 나를 비난했고. 그 두개의 소리는 넷으로 갈라져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강은 계속되어 레드카펫 위에 낙하했다.
아니, 확실히 말하자면 떨어졌다. 눈과 귀를 몸을 웅크린채 가리고. 몸을 벌벌 떨며.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거 봐, 너는 모델같은거 못해. 몸같은거 하나 믿고 모델을 하면 다야? 라는 말이 아프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와중에 수긍하고 있었다. 그저 재능도 많지 않고. 부담감을 느끼는데 모델을 선택한 나 자신이 미워졌다. 미워. 미워. 없애고 싶어- 라는 말이 소용돌이 쳐 나에게 돌아왔다.
" 그런 직업을 하고싶단건, 너였잖아? "
나지 않던 눈물이 한방울 떨어졌다. 이내 몸이 사라져가는 감각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젠장. 또 그딴 꿈이야. 이래서 내가 자는걸 싫어한다고. 단숨에 5층까지 올라가 물을 벌컥 벌컥 마셔댔다. 숨을 고르며 겨우 마음을 진정했다. 하지만 소용돌이치는 꿈은 잘 진정되고 있지 않았다. 그런 직업을 하고싶단건, 너였잖아? 라는 소름돋는 말에. 팔에 나고있는 닭살은 수그러들 기미가 안보인다. 가지고 온 인형을 끌어안아도. 그 말은 작아질뿐 사라지지 않았다. 이럴때 너였다면. 아니, 네가 있었다면 그나마 좀 나았을텐데.
" -네가 같이 있어줬었으면. "
어젯밤에도 잘자, 라고 배웅해줬고. 그리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던 너야. 네 온기는 언제나. 어머니나 부모님처럼 매우 포근했지. 그래서 조금더. 조금더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중얼거린걸지도 몰라. 계속 너를 상상하고 있더니. 소용돌이 치는 말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어. 이내 탁자위에 엎드러서 조금 생각했지.
아, 나는 널 좋아하는구나. 너와 함께 있고싶은거구나. 라며. 분명 너는 더 좋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사랑은 쟁취하는거라고 누군가 소위 말하지만 그런건 힘들어. 누군가를 상처주고 그 상처를 댓가로 내가 그 행복을 만끽하고 누린다는건- 있을수 없는일이야. 하지만 난 네가 없으면 안될것같아. 정말로 안될것같아. 이대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날 붕괴할것만 같은 일상이 계속될거야. 아니, 최소한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어. 그러니까. 너도 대답을 잘 들려줘야 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해 오고있는 너니까.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 너니까 이렇게 예쁜 마음을 너에게 전하려고 하고있어.
" 향을 좋아한댔는데. "
주머니에 있었던 티백중 하나. 국화차를 하나 꺼냈다. 대충 따끈한 물에 티백을 두자 향긋한 향이 올라온다. 코로 살짝 쉼호흡하자 안정되는듯한 기분이였다. 게다가 조금 달콤했다. 그리고 뭔가- 또. 네가 그 아이를 좋아할 자격은 있어? 라는 날카로운 말도. 허나 그따위 말은, 억지로 뜨거운 국화차를 들이마셔 집어넣었다. 필요없어. 그런 말은.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누굴까, 너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
익숙한 사투리가 들렸다. 이내 긴장이 풀리고 진심으로 만나고 싶었던 상대가 앞에 있는것에 눈물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바보같이. 눈물이 살짝 흘렀다. 언제나 너는 달래주고.또 언제나 친절했지. 그렇기에 널 좋아하는 사람도. 아껴주는 사람도 많아. 너는 그저 친구나, 착한 언니로 나를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난,
너를 좋아해.
라는 말이 턱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나오지는 않았다. 뱉고싶었던 이말을 말해버리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마음을 고백한뒤, 그리고 차인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은 일상은 사라진다- 라는, 슬프디 슬프지만. 어딘가 속이 시원한 결말은 있는걸까, 나를 이상하게 볼거지만. 그래도, 그래도.. 난, 내 마음을 고백하고싶어, 너를 좋아하는걸, 너에게 알리고 싶어. 그니까 내 말을, 잘 들어줘.
" ..너를 아끼고싶어, 네 모든걸. 사랑해주고 싶고. 네 옆자리에 언제까지고 계속 있고싶어. "
말했다. 목소리는 완전히 떨리고 작았지만. 그래도 말했다. 네가 듣지 못했으면 하고 있었다. 이제 너와 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질것이고. 엔딩은 뻔했다. 정해진 대답이였다. 말없이 탁자로 시선을 내린채 그 다음, 네가 할 말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