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물일곱살 남자입니다.
저한테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안 지 십년이 넘었지만 저희가 남중출신이라 그런지 아직도 투닥투닥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구요.
이 친구는 눈에 띄는 타입이 아니에요. 본인도 그런 관심보다는 친한 사람 몇명과 가깝게 지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구요...
원래도 조용조용한 친구였는데
고3때 운이 따라주지 않아 입시에 실패하고 지방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가 한학기만에 자퇴하고 반수와 삼반수를 실패하고 성격이 조금씩 변한 것 같아요
입시실패 후에 나이때문에 군대를 갔다가 전역하고 나와서 가정형편때문에 가족이 일하는 공장같은데서 일하면서 연락도 잘 안되고 해서
제작년부터인가, 저를 포함한 친구들의 설득과 조언으로 학점은행제로 편입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작년 초까지는 진짜 열심히 준비하고 다시 좀 밝아진 것 같아서 안심했었는데...
편입 인원이 대폭 축소되면서 사실상 경쟁률이 3배 이상 뛰다보니까 이 친구가 다시 멘탈이 깨져서 공부를 놓더라구요.
그래도 입시준비한 기간이 긴 만큼 이정도는 가야지 하는 생각에 남들 열 군데 스무 군데 지원하는데 한양대, 고려대, 경희대 이런데 대여섯군데만 지원하고 결과는 당연히 탈락....
올해 들어선 술자리 같은 데 간간히 얼굴을 비춰서 근황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본인은 열심히 하고 있다. 올해는 꼭 성공하겠다 했는데 아마 공부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았어요.
축구보는 걸 좋아하는 애라 얼마전까진 월드컵도 꼬박꼬박 다 챙겨보고... 무슨 미드가 재밌다 꼭 봐라 이러는 걸 보면요.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고, 저희도 나름의 일이 있어서 그냥 잘 지내고 있겠거니 하면서 반쯤은 포기하고 각자 지내고 있었는데
어제 새벽에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50만원만 빌려달라고...
생전 그런 부탁을 하는 친구가 아니여서 큰일인가 싶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한편 잔고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이유가 자기가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리니지1을 시작했는데 장비가 안좋아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대요. 그래서 현질을 하겠답니다.
저도 아직 학생이고, 이제 다음학기부터 취업준비에 들어가는 터라 알바같은 거도 못 하고 해서 용돈받으며 지내는 입장이라
사고가 났거나, 누가 다쳤거나 하는 일이 아니면 그 돈을 너에게 빌려주기는 힘들 것 같다고 진지하게 얘기를 했는데
...니가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사채를 쓰겠대요. 어차피 사채 쓰는 거 그것도 천 단위로...
너무 놀라서 갚을 능력도 없는데 대부업체는 그런 돈을 빌려주냐, 이자랑 원금은 어떻게 갚을거냐 했더니
한 달 정도 열심히 해서 캐릭과 아이템을 맞춘 다음 원금과 이자를 갚고, 차액으로 계속 게임을 하겠다고 해요.
저도 온라인 게임같은걸 많이 해봐서 그게 말이 안되는 얘기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아는데, 이 친구가 지금 정상적으로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기다려보라고 말은 했는데...친구 부모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