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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식당에 참 황당한 손님들이 다녀갔습니다.
게시물ID : humorbest_11637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멘붕의시간
추천 : 149
조회수 : 15593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12/09 05:51: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2/09 03:49:44

'노쇼'는 업계사람들이 식당에 예약을 잡아놓고 나타나지않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라지요.
스타셰프인 최현석셰프의 노쇼에 대한 인스타그램의 글을 시작으로 
다른 스타셰프들과 다른 식당의 인터뷰까지 더해져 크게 기사까지 났었죠.

예약을 우습게 알고 취소전화 한통 해주는 배려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예약된 자리에는 다른 손님을 받지못해 그 날 매출에는 악영향으로 돌아오고
예약을 위해 준비되어진 음식들은 전량폐기,
(저희 식당은 한식당이기에 예약상에는 시간 십 분전 반찬이 전부 깔립니다.
손도 안댄 음식들은 한 두시간씩 상온노출되어 전량 폐기해야해요.)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한 노고와 재료값을 생각하면
업주 입장에서는 참 그런 민폐 손님도 없지요. 

우리나라 정서에 예약금은 어불성설임은 분명하고요.
저만해도 먹지않는 음식값을 미리 지불하라고 하면 분명 언짢고 귀찮게 생각할테니까요.   

그래도 손님들의 발걸음이 채워져야 가게가 운영되고 
가게에 속해있는 직원들의 가정이 돌아가기에 
예약은 받아야하고 늘상 예약시간과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며 노쇼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흠잡힐 것 하나 없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살아야하나 싶지만
노쇼들에게 전화해서 음식값을 물어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사장은 사장 나름대로 직원들은 직원들 나름대로 속으로 삭히고 끝이죠.

이번에 인지도 높고 인기많은 스타셰프들이 직접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줘서 정말 감사해요.
적어도 '노쇼'에 대한 기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예약이 곧 약속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들테니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여기저기 눈팅만하다가 막상 마음먹고 글을 쓰려니 하고싶은 말이 많네요.


저희 식당은 메인메뉴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제공하는 집으로 
많은 동네 한식당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없는 식당입니다.
다같이 어려운 경기에 우리 마진을 조금 줄일테니 양껏 드시고 자주 오시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가격이 떨어졌다고 음식의 질까지 같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음식의 질은 그대로이기에 마진이 준거니까요.
반찬 리필이 안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가게의 기본 마인드 중에 음식장사는 박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어 몇 번이고 어느 반찬이고 더 드립니다. 
   
다른 식당에서는 주로 서비스로 테이블당 한 병 혹은 두 병씩 음료수를 제공하기도 하죠.
하지만 저희는 메인메뉴에서의 정상적인 마진은 기대하기 어려운만큼 
주류나 음료수 서비스가 많이 나갈 수가 없어요.
가끔 부모님 재량으로 나가는게 전부죠.
그렇게라도 마진을 남아야 가게가 운영되니까요. 
식당은 장사를 하는 곳이지 자선사업을 하는 곳은 아니니 말이에요.


얼마 전 식당에 참 황당한 손님들이 다녀갔습니다. 
문제될 만한 일은 전혀 없었고 다들 자리를 즐기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문제는 계산할 때 생겼습니다.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기에 계산하고 오시는 손님께 "맛있게 드셨나요?" 라고 인사를 건네자
다짜고짜 "음료수는 서비스로 해줘요." 합니다.
이런 손님이 있을 때마다 제가 하는 멘트는 "저희 집은 메인메뉴가 저렴해서 서비스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입니다. 
서비스가 없어 죄송하다는 것도 웃기지만 서비스업 하는 입장에서 죄송하지 않아도 될 것에 죄송하는건 일도 아니죠.
그랬더니 곧바로 "그래요? 네 알았어요 다 결제해주세요. 다신 오지 말라는 소리죠?" 라더군요.
아직 경력이 짧아 그런건지 저 말이 참 기분나쁘고 도발적으로 들려 웃고있던 입꼬리가 내려가더라구요.
"그건 아니구요, 저희 가게가 참 저렴하게 드리는거라서..." 까지 말하다보니 
입씨름이 일어난 듯한 분위기를 캐치한 부모님이 옆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 손님이라도 웃으며 보내고 발길을 붙잡아야하는 부모님은 음료수 네 병을 전부 서비스로 드렸죠.
서비스로 해준다고 해도 끝까지 말꼬리를 잡더라구요.
기분이 나쁘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서비스라고 했어야지 왜 말을 바꾸냐.

그 손님은 음료수를 주문하면서도 '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손님이 가고나서도 한참을 참 분하고 또 분하더라구요.
그 음료수 네 병, 사실 몇 천원 입니다. 
그런데 그 몇 천원이 매일 쌓이고 쌓이면 한 달이면 몇 십이 됩니다. 
그 몇 십은 가게 운영에 세금이 되기도 하고 알바의 월급이, 거래처의 결제금액이 되기도 합니다.
사장이나 직원이 가져가야 할 월급의 일부분이기도 하죠.

아니, 다 떠나서 사장이 몇 십만원 안가져간다 치더라도
서비스는 주인이 주는 것이고, 손님이 받는 것이지 
손님이 뺏어가는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부모님이, 직원들이 꾀 하나 부리지않고 만든 음식들입니다.
그 정성과 맛을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즐기고도
또 다른 집보다 저렴한 가격임에도
사장이 줘야 할 서비스를 손님이 억지로 뺏어가는건 정말 
매너도 배려도 아닌, 경우가 없는 짓이잖아요.


이연복셰프의 만두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일본에서 만두만드는 법을 배워와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내자 
만두는 서비스인줄 알고 만두 값을 계산하지 않으려하는 손님들 때문에
만두 대신 춘권을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서비스 좋아합니다. 
저라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서비스' 단어에서 오는 달콤함이 참 좋습니다 저도.
그래도 적어도 서비스를 달라고 말한 적은 식당을 하기 이전에도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서비스를 받으면 언제나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부모님께 그렇게 교육받기도 했고요.


음식으로 돈 버는걸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는 가격에 맞지않은 음식의 질과 서비스에 '농락' 당한 사람들도 많죠.
그따위로 음식 만들어서 이 가격이면 돈이 차고 넘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겠죠.

그런 집들, 오래 못갑니다. 
돈 내는 사람들은 느껴요.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이 돈이, 제 값만큼 쓰여졌는지 아닌지.
저도 제 주머니에서 돈 나갈때마다, 제 입에 음식이 들어올 때마다 느낍니다.
이 집은 다시 올 집인지 아닌지. 
정성으로, 진실되게, 최선으로 음식을 만들어내고 서비스를 해도 문닫는 집들이 허다합니다. 
한 번 왔던 손님의 발길을 다시 이끌어내지 못하는 집들이 오래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어떤 식당에게 농락을 당했다면 그 식당과 이야기할 문제지
식당들 모두를 두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지않습니까.



사람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들은 전부 진실해야 합니다.

장사는 돈 벌려고 하는 것이지 자선을 하기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비스는,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제 값에 맞는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받았다고 생각되시면 
식당 사람들 입장을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주세요.
식당을 문닫기 전까지는 
손님들만 웃는 곳이 아닌
사장도, 직원도 웃는 곳에서 
손님들이 맛있고 배부르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집이고 싶습니다.




 
맛집게에 쓸까 고민게에 쓸까 요리게에 쓸까 하다가
아무래도 먹는 즐거움을 아는 분들이 좀 더 많이 계시는 요리게에 써야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긴 글을 남겼습니다.
게시판과 맞지 않는 글이라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어느 가게의 손님 입장에서 기분이 나쁘셨다면 
그 또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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