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해영 관점에서의 최초의 무전 : 이재한과 박해영의 첫 무전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의 소재는 김윤정 유괴 살인 사건입니다. 왜 하필 김윤정 유괴 살인 사건을 통해 최초의 교신이 이루어졌을까요. 박해영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실제로 목격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검거하지 못해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상황이었고 그 동안 박해영은 김윤정 양의 유괴와 죽음에 대해 내재적인 갈등 내지 일말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박해영의 관점에서 보자면 김윤정 양 사건 해결이 오랜 심적 갈등을 갈무리하고 새롭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재한은 선일정신병원에 가면 안 된다는 박해영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선일정신병원을 수색하다 결국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바로 김윤정 양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준 것은 다름 아닌 2000년 8월 3일의 이재한이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이재한과 박해영의 첫 무선 교신(박해영 입장에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김윤정 양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을 겁니다.
2. 이재한 관점에서의 최초의 무전 : 이재한은 89년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 당시 박해영과의 첫 무전 교신 이 후 2000년 김윤정 양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 자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또한 첫 교신 이 후 박해영으로부터 전해 들은 수많은 사건들의 단서를 통해 박해영에 대한 신뢰가 쌓이게 되고 점차 그 신뢰는 영구 미제화될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을 겁니다. 요컨대 박해영의 각성처럼 이재한 역시 무전 교신을 통해 새롭게 각성하는 계기로 작동했을 것이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후 지속적인 무전을 통해 이재한은 자신이 2000년 김윤정 양 사건의 단서를 박해영에게 전달해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해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일정신병원을 찾을 수 밖에 없었겠죠. 추측컨대 이재한은 선일정신병원에서 살해 당하기 직전까지 박해영이 선일정신병원을 찾지 말라고 만류한 이유가 자신이 살해 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을 개연성이 큽니다.
3.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도 변화 : 선일정신병원에서 의문의 습격을 받고 마지막 무전 교신을 했던 이재한은 "무전은 계속 될 것이고 과거를 바꿀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마 이재한은 선일정신병원에서의 무전 교신과 자신의 죽음 직전 교신 상대였던 박해영이 89년 이 후 지속적으로 교신해왔던 박해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박해영, 즉 김윤정 사건 해결 전의 박해영이었음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이재한에게 있어 무전 교신 상대였던 박해영이라는 인물은 김윤정 양 사건 해결을 기점으로 구분되어 있었을 겁니다. 설령 이재한이 박해영의 존재에 대해 명확한 시간적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가 박해영에게 단서를 알려 줌으로써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김윤정 양 사건이 해결되었듯이 앞으로 박해영이 담당하게 되는 영구 미제 사건들 역시 이재한의 도움을 통해 해결 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박해영은 이재한에게 사건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전달함으로써 과거를 변화시키고 이재한은 박해영에게 2015년에 남아 있지 않은 새로운 단서들을 전달함으로써 현재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반복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