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이란 ‘소비, 노동, 투자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이다. 미국의 재정·경제예측 전문가인 해리 덴트는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인구절벽 이후 한국은 장기 386시대가 올것인가? 일본의 경우처럼 약자를 배제하는 노인지배사회가 올것인가?
2차 베이비부머의 정점을 이룬 1972년생들이 태어날 당시의 인구피라미드(위쪽)와 386세대의 막내격인 1969년생과 1970년생이 50대에 접어드는 2020년의 인구피라미드의 변화. 한국의 인구구조가 드라마틱하게 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인재 영입경쟁을 보다 보면 이전과 뭔가 달라진 것을 못 느끼겠는가.”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정치적 이합집산이 벌어질 때마다 종전의 정치지도자들이 애용했던 방식은 소위 ‘젊은 피’의 수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제 젊은이들은 연민과 동정의 대상일 뿐, 더 이상 젊은이들을 통해 뭔가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전 교수와 인터뷰한 다음날인 지난 1월 2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부산청년 오창석씨(30)의 입당행사가 치러졌다. 오씨는 ‘문재인 인재영입 16호’였다. 오씨와 문재인 대표가 입당원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문 대표는 오씨의 입당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은 지금까지 했던 영입과 콘셉트가 조금 다릅니다. 지금까지 영입한 분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분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분은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직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실패를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하는 청년입니다.” 문 대표는 청년의 ‘도전과 패기’를 받아들이고 “대한민국 보통청년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한다”며 이날 기자회견을 마쳤다. 더민주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전국청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올해 치러질 청년 비례대표 후보자를 만 35세 이하의 남녀 1명씩을 내세우는 안을 상정했지만 무산됐다. 해당 안이 올라오자 40세 이상 운영위원들이 일부러 불참해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에 미달됐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 비례대표 후보자의 나이는 만 45세 이하로 결정됐다.
“왜냐고요? 지금은 2015년이니까.” 지난해 말 화제를 모았던 캐나다 신임 총리 쥐스탱 트뤼도의 답이다. “왜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남녀동수’만 특징이 아니다. 트뤼도 내각은 젊다. 트뤼도부터 44세다. 법무장관에 임명된 조디 윌슨-레이보울드 역시 45세다. 그는 캐나다 콰콰카와쿠 부족 출신으로, 최초의 원주민 출신 법무장관이다. 켄트 헤르 보훈장관(47)은 장애인이다. 1991년 차량 총격전 현장에서 총을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체육·장애인 담당장관인 칼라 칼트러프(45)는 시각장애인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과거 패럴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딴 적도 있다. 새로 만들어진 ‘민주제도장관’을 맡고 있는 메리엄 몬세프는 31세로, 내각 구성원 중 가장 젊다. 그는 최초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의 무슬림 장관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는 “파격적이고도 공정한 구성의 내각”이라고 평했다.
30년 불황의 일본 맨얼굴, 노인지배사회
의문.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총리나 국무위원의 법적 지위와 역할에는 나이 규정이 없다. 캐나다 총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나이 규정이 있다.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를 규정한 헌법 67조 4항을 보면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 경선에 나서며 제시했던 ‘40대 기수론’의 근거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40대 기수론’이 나온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45년 전이다.
“지난주 5개 부처 장관과 국무조정실장이 새로 임명돼서 오늘 국무회의에 처음 참가했다. 모두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내각에 새로운 활력소가 돼주기 바란다.” 1월 19일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날 열린 국무회의는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2016년 1월 현재,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국무위원 중 40대는 없다. 1월 13일, 청와대는 20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한 장관들의 후속인사를 단행했다. 내정된 장관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젊은 이는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52세다. 직전 40대였던 김희정 장관(45)이 빠지면서 그나마 한 명에 불과했던 40대 장관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 사회 리더십에서 ‘노쇠현상’은 행정·정치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기자는 글로벌테크놀로지 기업의 조세회피 문제를 살펴보면서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 지사의 등기부등본을 떼본 적이 있다. (<주간경향> 1159호, “글로벌 IT기업 ‘코리아 유한회사’의 미스터리” 기사 참조) 대부분 국내 언론 등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국외거주자라는 것도 특징이었지만, 대부분의 지사 대표가 ‘1970년대 이후 출생자’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테크놀로지 기업 대표들의 연령이 대부분 낮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1984년생, 올해 32세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알파벳 공동대표는 1973년생 동갑내기다. 스페이스X, 전기차로 전 세계적으로 IT 혁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대표 역시 1971년생으로 올해 45세다.
“지난해 두 달 동안 일본에 머무르며 센다이나 후쿠시마, 이시노마키 등 도호쿠 대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지역재건에 나선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는 것이 주목적이었는데,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가 생각 외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의 말이다. “정부나 구호단체에서 재난구호 과정에서 자원을 이전에 ‘마을 리더’였던 사람에게 내려주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바로 청년, 여성, 외국인이었다. 결국 끝까지 구호를 받지 못하고 다른 데로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처지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 소장은 그 ‘경험’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려놨는데,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외부자·약자를 배제하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의 지배’라는 것이다. 제론토크라시는 <사회를 바꾸려면> 등의 저서로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학 교수의 작업가설이다. 일본 사회에 중앙부터 지역까지 촘촘하게 ‘외부인’과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고령자 지배체제가 구축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글에서 ‘65살 이상 고령인구 추이’와 ‘1인당 국민소득의 변동’ 그래프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일본의 길을 따라가고 있지 않은지 우려한다. 일본 사회에서 ‘제론토크라시’가 확립되어 가는 메커니즘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도성장이 종식되고 저성장에 접어들면서 지역에 있던 기업들은 해외 아웃소싱 전략을 택하게 된다. 공장이 떠난 지역경제는 피폐해진다. 지역경제 황폐화를 막기 위해 정부는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인구유출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악순환이다. 지역경제가 점점 공공일자리에 의존하게 되면서 공공일자리가 줄어들면 다시 사람들은 떠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공동체 지배구조를 주도하던 나이 많은 지역 토호들이 지역으로 들어오는 자원과 일자리를 배분하는 것까지 장악하게 된다. 젊은 층이나 사회적 약자는 그 과정에서 다시 배제되어 지역사회를 떠나게 된다. 중앙에서 지역까지 제론토크라시의 지배가 ‘30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내밀한 속사정이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목격되고 있는 ‘고령자 지배현상’이 이 ‘일본의 길’에 따라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이 소장의 주장이다. “사실 제 관점은 조금 조심스럽다. 노인계층의 지배가 아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노인빈곤율은 지금도 높다. 일본은 그래도 국가가 재정부담을 지면서 고령의 토호들에게 분배권을 준 셈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떡고물’도 없다. 공공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시장이 먼저 들어가 지방을 해체하고 있다.” 이 소장의 결론은? 일본과 닮은 양상을 보이면서도 보다 극심한 형태로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 1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첫 국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에코붐 세대 없는 한국이 일본보다 암담
‘2018년 인구절벽’. 미국의 재정·경제예측 전문가인 해리 덴트가 내놓은 개념이다. 그가 내놓는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이란 ‘소비·노동·투자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이다. 전 세계적인 베이비부머의 은퇴 이후 벌어질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구통계학을 장기선행지표로 사용한다. 그의 작업가설은 출생 후 46~47년이 지난 후 가계소비가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에 기반한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1989년 호황(이른바 버블경제)의 극점을 맞이했는데, 일본의 연도별 출산인구를 보면 1942년 처음으로 출산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다(42+47=89). 출산인구가 가장 최고점을 찍은 것은 전후인 1949년이었는데, 이들은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塊の世代)를 이룬다. 일본에서 부동산시장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1991년이었다. “일본 정부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적완화를 통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지출을 확대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 덴트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해리 덴트가 2014년에 내놓은 책 <2018 인구절벽이 온다>(이 책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다)를 보면 한국의 사례가 수없이 인용된다. “…동아시아는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지만 상대적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소비 흐름을 보라. 한국은 일본이 22년 앞서 그랬던 것 같은 경제 기적을 이뤘지만 2010년부터 소비가 정점에 도달해 2018년까지 정점에서 정체됐다가 이후 급격한 인구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 과정은 일본이 22년 전에 겪었던 것이다. 한국은 에코붐 세대가 거의 없어 일본보다도 상황이 더 암담하다.”(앞의 책 60쪽) 에코붐 세대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로, 그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출산 붐이 메아리처럼 이어져 그래프 상으로 보면 작은 봉우리를 형성하는 세대를 말한다.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2014년에서 2019년 사이에 대대적인 디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을 22년 후행하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부동산이다.”(앞의 책, 한국어판 서문) 책을 보면 2018년 인구절벽과 동시에 한국이 맞이하게 될 상황에 대한 언급은 또 있다. 바로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연결되었던 미국의 버블보다 더 악성인 중국의 버블이다. 덴트는 중국에서 버블이 터지는 것을 ‘거대한 코끼리가 넘어지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는 어디일까? 전체 수출량 가운데 50퍼센트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이 중국 의존도가 가장 높다.(…) 특히 한국은 GDP(국내총생산)의 12%가 중국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어 가장 취약하다. 중국 수출이 50%가 줄면 한국은 GDP의 6%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깊은 침체를 의미한다.”(앞의 책 312쪽)
“한국, 중국 버블붕괴로 심대한 타격”
비슷한 우려 또는 경고는 이미 국내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에 집(부동산)은 ‘노후를 지키는 최후 보루’였다.”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객원연구원을 지낸 박종훈 KBS 기자의 책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에 나오는 표현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부를 증가시켜준 부동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세대에게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노후생활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의미한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낙타 등의 혹처럼 2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1955년부터 1963년까지가 1차이고, 1968년부터 1974년까지가 2차 베이비붐 세대다. 한국 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만들어졌던 ‘부동산 불패 신화’의 주체는 1차 베이비붐 세대였다. 박 기자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붐 세대는 ‘가장 많은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지닌 세대’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는 버블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구절벽 후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악몽은 시작된다. 2015년 이후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부동산 자산은 처분돼야 하나 2차 베이비붐 세대나 에코 세대는 시장에 나온 부동산을 구입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인구절벽 후에는 부동산에 대한 수요를 가진 젊은 세대의 총수 자체가 줄어든다. 박 기자는 그러나 일본과 같이 집값이 반토막 나는 형태로 격렬하게 버블 붕괴가 전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관련 우려가 제기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부동산과 관련한 장치를 정부가 많이 만들어놨다. 사실 집값 폭락보다 더 무서운 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만성적 위기다. 펄펄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튀어나오겠지만, 서서히 온도를 높여나가면 그대로 안에서 죽을 것이라는 비유가 있는데, 딱 그것이다. IMF 사태 때처럼 위기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극복할 수 있지만, 이제는 위기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해결책도 없는 장기적인 불황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우려된다.” 요약하자면 가장 큰 딜레마는 불황을 막을 수 있는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버린 상황에서 중국 버블 붕괴 등 대내외적 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경우 손 쓸 수 없는 장기적인 경기위기로 들어갈 것이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만약 인구절벽 이후의 사회구조가 일본을 따라가는 추세라면 한국이 맞이하게 될 상황을 보여주는 예측은 또 있다. 일본 총무대신을 역임한 마스다 히로야가 주도하는 일본창성회의가 2014년 5월 펴낸 ‘마스다보고서’다.(한국에서는 지난해 <지방소멸>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일본의 출산율은 1.43명(2003년)에 머무르고 있다. 사망이나 이민 등의 요인에 의한 자연감소율을 전제하면 현재의 인구가 유지되려면 약 2.1명이 돼야 한다. 마스다 보고서는 현재의 ‘출산율이 계속된다면 사회는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될까’를 다루고 있다. 결론은 충격적이다. 일본의 장래 추계인구는 2010년 1억2800만명이었지만, 2048년 이후 1억명까지 떨어지게 된다. 100년 후인 2110년에는 5000만명 미만으로 떨어지게 된다. 단지 인구 감소가 아니라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격감 단계로 진행되게 된다. 보고서는 그 첫 단계를 ‘극점사회의 출현’이라고 주장한다. 도쿄와 같은 대도시 입장에서 보면 인구 감소의 첫 단계는 역설적으로 인구 증가로 나타난다. 그런데 지방에서 대도시로 이동한 젊은 층의 출산율은 낮다. 결혼보다는 취업생활이 우선되고, 지방출신자의 경우 부모가 지방에 있기 때문에 출산이나 육아에서 가족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점, 1인 가구 증가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구의 대도시 집중은 역설적으로 인구 감소 경향을 가속화시킨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이 단체가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2040년까지 일본의 시·구·정·촌(市?町村: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읍·면·동·리) 896개가 ‘소멸 가능성이 높은 도시’로 나왔다. 896개는 전체 시·구·정·촌의 49.8%다. 전체의 반에 이르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실상 소멸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고루 인구 감소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구이동, 특히 젊은 층의 대거 유입에 의해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팽창이 일어난 후 지방은 인구재생산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사실상 지자체로서 기능이 마비되고 텅텅 비는 궤멸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출산율 감소 문제는 심각하다. 일본의 경우 2012년 1.41명에서 2013년 1.43명으로 출산율이 다소 증가했지만, 인구재생산이 가능한 출산율(2.1명)에 못 미치는 출산율을 보였던 시기가 남긴 상처는 나이테처럼 그대로 인구구조에 반영된다. 출산율이 늘었다고 바로 인구구조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여 결혼·출산을 하기에는 적어도 약 20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마스다 전 대신은 보고서에 실린 대담에서 “일단 저하된 출산율을 최대한 끌어올려 극점사회로의 진입을 막는 것이 1차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 2040년까지 지방 50% 소멸, 한국은?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시기인 1960년도에 6.16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인구의 현상유지가 가능한 2.06명 선을 1983년에 통과해 지속적으로 급락해 왔다. 현재까지 가장 최하는 1.08명을 기록한 2005년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5년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1.25에 머무르고 있다. 2015년 1.40을 기록한 일본보다 낮은 수치다.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우 지방의 몇몇 군 단위에서 평균연령이 급속히 가속화되는 경향성을 이미 보이고 있다”면서 “일본에서 마스다 보고서가 출간된 이후 한국에서도 같은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사용해 추계를 내는 작업을 했는데, 그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라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해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실제 정부 용역을 받아 이 작업을 수행한 연구팀과 접촉할 수 있었다. 연구팀 핵심 관계자는 “일본과 비슷하게 한국의 상당수 시·군·구가 소멸단계로 나오는 결과가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치권에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아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인구학회 등에서 ‘인구절벽 이후의 한국 사회 변화 예측’을 다룬 논문 등을 보면 의외로 중앙과 지역의 지배구조를 다룬 논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원재 소장의 예측처럼 제론토크라시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가 오게 될까.
< 주간경향>은 “한국 사회의 인구구조 변화의 결과로 386세대가 명실상부한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권자로 올라선 뒤 그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는 ‘장기 386시대’가 도래할 것”라는 가설을 제기한 적이 있다. (<주간경향> 1128호, “‘장기 386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기사 참조) 기사에서 현재를 ‘장기 386시대의 서막’으로 규정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연공서열 형태로 조직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 정점의 ‘의사결정권자’ 지위에 올라서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386세대의 지배가 시작되는 시점은 이들의 마지막 세대인 1969년생이나 1970년생이 50대에 접어드는 2020년 이후로 봤다. 다시 말해, 인구절벽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질 ‘제론토크라시’에서 핵심 수행자는 사회의 전 영역에서 의사결정권자로 올라설 386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고, 다시 기득권화된 386 권력의 지배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대의적 민주주의 확립을 가능케 했던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동맹’이 일정 시점이 지난 후에는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는 기득권으로 전화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이윤석 교수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뿐 아니라 경제나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정한 집단의 수가 많고, 전체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면 당연히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우위에 설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재 소장은 ‘노쇠한 386의 장기지배’를 가능하게 한 두 모멘텀이 있었다고 말한다. 첫째는 1987년 민주화과정을 통해 이 세대가 사회적으로 발언권을 얻은 시기와 3저 호황 등으로 고소득 노동자로 정치적 발언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때이고, 두 번째는 1990년대 말의 IT버블이다. “학생운동을 통해 모멘텀을 얻었던 이들 세대가 IT버블을 통해 그 전에 형성된 60~70대 엘리트와 블록을 형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월 14일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규탄 범청년·노동·시민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가들이 노동개악을 반대하는 손핏켓을 들고 있다. | 정지윤기자
기득권이 될 민주화·산업화 동맹
인구절벽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버블 붕괴와 불평등, 제론토크라시의 지배구조 심화는 ‘탈출구’가 없는 예정된 결론일까. “유럽과 미국의 경우 세대교체가 일어나는데, 왜 우리는 일어나지 않는 걸까. 유럽의 경우 복지제도로 기성세대가 은퇴한 후 노후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핵심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고 은퇴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공정한 룰을 바탕으로 같이 경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력도 안 되는데 청년세대를 내리누르는 것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전 세계로부터 청년 인재를 불러모아 혁신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저자 박종훈 기자의 말이다. 그는 이런 ‘경험담’을 덧붙였다. “한국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계급장을 떼고 싸울 수가 없다. 한국과 핀란드, 전 세계의 벤처 인큐베이터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다른 나라는 멘토와 멘티가 대등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멘토라는 사람이 완전히 하대한다. ‘너는 이렇게 잘못 만들었잖아.’ 심지어 카메라가 돌아가는데도 야단을 치고 있다.” 이원재 소장은 이렇게 한국 사회가 흘러간 가장 큰 이유를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면 ‘불안’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과 지금, 지난 20년을 비교해보면 한국 사회가 완전히 바뀌었다. 고용, 일자리, 투자 이슈가 모두 달라졌다.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그 당시 한국 사회를 이끌던 리더십이 지금도 이끄는 것이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오래된 지혜는 물론 존중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리더십이나 성장동력은 젊은 세대에게 맡기고, 그 윗세대는 팔로어십을 발휘하는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버넌스 구조와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윤석 교수는 “단기적으로 2018년을 이야기하지만 실제적으로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오기까지는 10여년의 여유가 있다고 보지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며 “출산율을 올리고 인구의 도시 집중을 막기 위해서도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86세대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외국에서 30대 초반의 장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의 훈련이 선행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한국 사회의 미래가 장기적으로 리더십이 교체되지 않는 소수 기득권 층을 위한 사회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40대에서 50대에 걸쳐 있는 이 세대의 자기 성찰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세대전쟁 아닌 세대게임?
“세대전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평등 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것은 우석훈 박사·박권일씨가 저술한 <88만원 세대>부터이지만 세대전쟁 담론을 더 활용한 쪽은 오히려 기득권 세력이나 정부였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말한다. “이른바 4대 개혁 주장을 보자. 대통령이 길거리 서명까지 나서며 노동개혁을 강조하지만 청년들의 절망과 고통의 원인을 고임금 정규직 기성세대의 기득권에서 찾는 논리 아닌가. 청년고용과 장년고용의 연관성은 실증도 안 된 주장이다. 지난해 봄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재원 고갈을 이야기하며 ‘세대 간 도둑질’을 언급한 것이나 이른바 청년단체들 대표가 민주노총 앞에서 ‘정규직 기득권 양보’ 시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평등을 세대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전 교수는 이것을 ‘세대게임’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임의 전가나 회피, 비난을 위해서 세대를 이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영국 노동당이 집권 당시 정초한 개념이다.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의 저자인 박종훈 기자 역시 “세대 내 공모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불러내 이용하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대전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의 이해를 참칭한 기득권세력이 벌이는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특정 코호트를 지칭하는 386에 오면 조금 복잡해진다.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386세대의 경우 비록 세대규정에서 1980년대 학번이라는 대학 졸업 여부가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통계적으로 여론조사 데이터로 구분을 해보니 대학 출신 여부는 정치성향을 결정짓는 데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했다. 386세대의 경우 자신들이 예컨대 대학에 들어가거나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광주 민주화항쟁이 있었고, 군사독재 시절을 경험했다는 ‘압도적인 경험’이 그 후 이들이 장년층이 돼서도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 일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오 연구원은 “서구사회에서 68혁명세대가 일정한 코호트를 형성하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처럼 이들은 진보적 입장으로 나이를 먹어가는 최초의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원재 소장은 “인구절벽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제론토크라시의 대두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리더십 교체의 지연현상을 말하는 것이지, 세대 전체가 승자가 되는, 이를테면 승자세대와 패자세대가 나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리더십에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것도 한 세대 전체가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교체되는 것을 말하며, 그러기 위해서도 오히려 필요한 것은 세대연대”라고 덧붙였다.
< 정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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