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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오유에.
게시물ID : freeboard_11642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나나우유♬
추천 : 1
조회수 : 1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19 17:17:32
출근하자마자 원장의 성난 얼굴이 날 맞이했다.
 
그녀는 화가 나면 늘 그렇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콧볼을 벌렁거렸다.
 
그리고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따지듯 첫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아, 너 정산 처리를 어떻게 한거니?"
 
정산처리는 내가 어떻게 할 것이 없다.
 
원생들이 카드로 출석 체크를 하면 자동으로 전산이 출석률을 계산해 학원에 지급될 훈련비를 계산한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독박은 나에게 쏟아진다.
 
어제 뇌 내시경 검사때문에 입원한 아빠때문에 하루 쉰 사이 많이 바빴다고들 하더니. 저것 때문이었나보다.
 
난 다시 계산해보겠노라 말하고 아홉시 반부터 열 두시까지, 오전 내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비는 것인지 찾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늘 그렇듯이 커다란 문제의 원인은 별것도 아닌 작은 일이다.
 
실업자 내일배움 카드로 등록했다가 취소한 한 사람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취소된 대금이 나중에 한꺼번에 빠져나가 딱 그만큼 돈이 조금 비었던 것이다.
 
일을 하나 해결하고 나자 원장실로 불려가 한시간 가까이 혼났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내가 이렇게 자꾸 너를 부른다는 것은 니가 일을 아주 잘못 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렇게 꼬우면 그냥 자르고 다른 사람 구하면 되지 뭐하러 계속 끼고 일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 학원에 들어와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난 상담(원생 등록)도 못하고, 정산도 못하고, 홍보도 못하고, 시간표도 못 짠다.
 
학원에 필요한 주요 업무를 취직하고 삼 개월이 넘도록 하나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참 쓸모 없는 인간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우울하다.
 
이렇게 이 일도 저 일도 제대로 못하고 여기 저기서 쓸모 없다는 소리만 듣느니,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지구에 도움이 되는 일 같기도 하다.
 
나는 정말이지, 잘난 부분이라곤 하나 없어서 억지로 잘나보이려고 자존심은 죽어도 안굽히려 드는, 그런 못난 사람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까발리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하루 하루 제대로 할 줄 아는 일도 없으면서 직장에 죽치고 앉아 시간만 보내는 나라는 존재가 거대한 애벌레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랴. 살아가려면 별 수 없는 것을.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더더욱 '그럼 죽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정답일까.
 
정말 죽으면 다일까.
 
그건 정말 이기적인 결정인 것 같다.
 
죽으면 나야 편하겠지만, 평생 가슴아파할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차마 못할 짓인 것 같다.
 
그리고 죽는 것은, 비겁한 행동 같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극단적 회피를 선택하는 비겁함일 뿐이다.
 
그렇다면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내가 정말 쓸모없는 존재일까'
 
내 마음은 이렇게 대답했다.
 
'실수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처할 수 있을 때, 우린 '익숙해졌다'고 하는 거야.
 실수가 없길 바라는 건 완벽주의고, 그건 너 스스로를 아프게 할 뿐이야.'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어.
 지금 너는 분명 처음보다 나아.
네가 보잘것 없다는 바깥 소리에 귀기울여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마.
넌 그보단 더 나은 아이니까. '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비록 비겁하고 저열하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것 외에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못난이지만, 그럼에도 난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출처 이틀연속 칙칙한 하늘때문에 옷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못해도 내 마음도 그 냄새만큼이나 퀴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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