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어릴 적 방 하나의 단칸방에서 살았고 부모님 두분은 사이가 좋다가도 갑자기 바뀌어 크게 싸우는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싸움은 밤에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발생했고, 아버지는 늦게 들어와 집 방안 문을 쿵쿵쿵 두들기며 문 열라 소리지르는게 레파토리였어요.
늦은 밤 곤히 자다가 갑자기 하나뿐인 문이 쾅쾅쾅 소리나며 두들겨지면 그날은 어김없이 부모님이 싸우는 날이었습니다.
쾅쾅쾅 소리는 제게 있어 일종의 부부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고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날때면 늘 "아 또 시작이구나." 하는 절망감이었어요.
10년쯤 지난 지금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했고 이젠 그나마 덜 싸우시는 두분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아직도 쾅쾅쾅 두들기는 문 소리는 갑작스런 불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심하게 패닉에 빠지거나 하진 않아요. 다만 속으로 흠칫하고 놀라고 어릴적 안좋은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기분이 나빠지죠.
다른 사람들에겐 제가 있는 방이나 사무실에 들어올때는 차라리 노크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몇년 전부터는 증상이 더 심해지는지 문 소리가 아니라도 어디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놀랍니다.
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큰소리가 나면 놀라겠지만요.
제 경우는 놀란 이후로 기분이 급격히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긴다는 겁니다.
휴대폰 또한 지난 수년간 단 한번도 진동모드를 해제해 본적이 없어요.
갑자기 벨소리가 울리면 놀라니까...
부모님은 진동 땜에 자주 전화를 안 받는 제게 전화 좀 받으라고 하시지만 차마 내가 벨소리로 못 바꾸는건 당신들 때문이란 소린 못해요.
저 혼자 너무 어릴적 기억에 얽메여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다른 사람도 그러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