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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수도 ‘상경’ 은 황제국의 도성을 가리키는 명칭의 시조...
게시물ID : history_251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룡815
추천 : 4
조회수 : 165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1/29 09: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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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황제국 상경 관련 글이 역게에 올라온적이 없어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의견에 매우 동감이 가네요...



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36110

동북아역사제단, 발해 수도 ‘상경’ 은 황제국의 도성을 가리키는 명칭의 시조한러공동학술회의 "한국사 속에서 발해의 역사와 그 위상"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은 오는 12월 16일(화), 17일(수) 이틀간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사 속에서 발해의 역사와 그 위상”이라는 주제로 한러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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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길을 끄는 논문은 정석배 교수가 발표하는 ‘발해문화에 보이는 황제국의 요소들’이다. 


이 논문에서 정 교수는 동북아시아에서 수도에 ‘상경(上京)’이란 용어를 사용한 첫 국가는 발해인데 이후로 요와 금의 첫 수도 역시 ‘상경’이었으며 원 역시 ‘상경’과 비슷한 ‘상도(上都)’란 명칭을 사용했다고 하며 발해 이후 북방민족들이 세운 황제국들이 발해의 상경제도를 채택한 것을 볼 때 발해가 차지하였던 국가적 위상 역시 ‘황제국’이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발해 상경성의 전체 둘레는 요 · 금의 상경과 원의 상도보다 훨씬 긴 16,293m로 추정되며, 규모면에서도 수당의 장안성을 뛰어넘는 시설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발해가 남긴 문자 자료를 봐도 발해 거의 전 기간에 걸쳐 독자 연호를 사용하고 왕과 왕비를 ‘황상’과 ‘황후’로 부르고 스스로를 ‘천손’이라 인식하는 등 발해가 황제국이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http://news.donga.com/3/all/20121216/51644904/1

唐장안성 빼닮은 상경성, 발해가 황제국이란 반증


발해 상경성의 궁성 안에서 바라본 정남문의 흔적. 정남문의 동서 길이는 약 82m로, 당나라 장안성의 궁성 대명궁의 정문(74.5m)보다 길다. 왼쪽과 오른쪽에 뚫린 2곳이 사람이 드나드는 문길이다. 정석배 교수 제공
발해의 수도 상경성(上京城)은 당의 수도였던 장안성과 닮았다. 중국학계에선 이를 놓고 발해가 당의 지방정권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발해가 당과 대등한 황제국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좌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석배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사진)는 “중국의 최신 고고학 발굴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발해가 상경성 축조를 통해 황제국이자 고구려 계승국의 면모를 과시했음이 드러났다”는 논문을 발표한다. 22일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발해 상경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제로 열리는 고구려발해학회 학술회의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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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이날 발표할 ‘발해 상경성의 도시계획: 황제 도성으로서의 발해 상경도성’이란 논문에서 당의 장안성과 일본의 도성 헤이조쿄(平城京), 그리고 상경성이 동일한 평면구조의 황제 도성임을 먼저 밝혔다.

 세 도성 모두 궁성을 가장 북쪽의 가운데에 배치하고, 외성 내부를 남북 방향의 중심도로를 기준으로 동구와 서구로 구분하면서, 종횡으로 연결된 도로들을 통해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했다. 

그는 당의 지방성들을 모두 확인한 결과 장안성이나 상경성과 같은 구조를 가진 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당의 지방성 가운데 상경성과 크기가 비슷한 대형 성들에는 주작대로와 같은 중앙대로가 없고, 궁이나 관청이 성의 서북쪽 혹은 서남쪽에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상경성이 당의 지방정권이라면 장안성의 등급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실제 상경성에는 예제(禮制)를 벗어나는 시설이 적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장안성 밖 동북쪽에 있던 궁성인 대명궁 북문의 문길은 1개다. 반면 상경성 궁성의 정북문은 문길이 2개로 더 많다. 상경성 외성의 정남문은 동서 길이 57.6m, 상경성 궁성의 정남문은 동서 길이 약 82m로, 장안성 외성의 55.5m, 장안성 대명궁 정문의 74.5m보다 길다. 또한 상경성의 2호 궁전은 기단의 가로 길이가 92m로, 장안성에는 정면에서 볼 때 이보다 더 큰 건물이 없다.  

발해가 황상(皇上), 황후(皇后), 천손(天孫) 등의 용어와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다는 역사적 기록과 이를 결합하면 발해가 당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중국 관변학자들의 주장은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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