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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역사 살짝 맛보기... 그리고 컴퓨터 vs 인간
게시물ID : freeboard_12560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림공자
추천 : 0
조회수 : 81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2/01 04:01:52
전 바둑 아마츄어 4단입니다.
인터넷 바둑 4단이 아니라 한국 기원 공인 아마 4단이죠.
제가 4단 취득하게 된 경우는 바둑 잡지인 월간바둑을 통해서입니다.
이게 별거 아닌것 같아도 꽤 까다로웠습니다.
몇점 이상 몇회이상. 몇점 이상 띄엄띄엄이 아닌 연속몇번 맞추기..
물론 인터넷 없던시절이죠. 참고서 물론 없구요. 근데 아무리 몇날 며칠을 들여다봐도 자기 수준 이상은 안 보여요 그게 바둑입니다.
정말 빡센 입단 테스트였던걸로기억합니다.

당시 4단인가 5단서부터 바둑학원 자격증 부여가 시작됐는데 저도 바둑학원 열라다 말았습니다.
첨엔 누룽지 뭉쳐 놓은 것처럼 주물럭주물럭 생긴 이창호가 바둑계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는것을 보고 (이창호 꼬마시절 외모가 누룽지 같았음)
오호 바둑계란게 만만하겠구만.
바둑학원 차려 운영하다가 은근슬쩍 한국기원에 다리 걸치고 내친김에 이창호 정도는 가볍게 제압해줘야겠지?
이런 되지도 않은 상상으로 바둑판 위에서 가오 잡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주 망상이 아니라.
당시 아마츄어 최고수는 5단 이었고 전국대회서 한번인가 두번인가 우승하면 6단 3번이상은 7단. 최고는 무조건 7단이 한계.
그리고  6단이랑 7단이랑은 거의 폼이나 상징, 즉 명예적인 단수인거고 실질적으로 5단이 아마츄어 로서는 최고단이었던 시절임.

암튼 이런 사람이 글을 씁니다.

울나라 바둑계가 존재하게 만든 인물은 고 조남철9단입니다.
이 양반 없었으면 바둑은 장기대회쪽 났거나 상당한 변곡점이 생길수 밖에 없는 말하자면 한국바둑의 아버지의 아버님이라고 보면 됩니다.
6.25때 전후의 인물인데 집이 불에 타도 바둑판만을 꼭 챙기는으로 유명할 정도로 바둑 보급에 목숨을 건 분임.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불속에서 바둑판만을 꺼내오신 분임.
자타공인 한국 바둑의 교주라고 보면 됨.
생전 실력은 8단에 머물렀으나 나중에 바둑 프로기사 최고 존엄인 9단에 추종됨.
이 당시는 정말 바둑계의 존폐가 걸린 처절한 생존의 시대입니다.

다음은 조훈현 9단이 있습니다.
전관왕. 바둑황제.족제비.수제비. 전신. 뭐뭐뭐.... 등등 바둑에 대한 네임 호칭 또한 엄청 많은 인물 입니다.
바둑프로를 '프로기사' 라고 부릅니다.
바둑기 선비사 =  棋士 한마디로 바둑의 사짜 레벨.
기네스북에 가장 합격하기 어려운 직업군이 바둑 프로기사라고 합니다 .. 지금도 그런지는 잘;;
당시 1년에 딱 2놈 뽑았는데 몰리는 바둑 수험생이 3만명이 넘었다는...
이런 머리 터지는 경쟁을 조훈현은 9세에 통과해서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임.

사이사이 또는 전 후로 김인 하찬석 윤기현 김희중 등이 타이틀 홀더.
그리고 스타에 임요환vs홍진호가 있다면 그 이전에 조훈현vs서봉수가 있었다..등등 (2인자 칭호의 원조는 서봉수라는)
본래 조훈현과 서봉수는 동갑내기로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나중엔 감정의 금이 생겨 몇 십년째 말한마디 안나누는 원수지간 같은 사이임.
제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어우러진 시기가 한국 바둑의 낭만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당시에는 개개인들마다 바둑외적으로 인간적인 특징들도 많고 개인 특기나 바둑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둑을 통해서 산사를 찾아 다니며 구도자적인 삶은 살다가 이슬처럼 스러진 기사도 있었고
승부의 냉혹함을 떠나 술병을 기울이며 수담을 나누던 기사들도 많았고
특히나 붓글씨 같은 서예는 바둑인으로서는 필수불가결로 익혀야할 기본의무 같은 덕목이었더랬죠.
이 당시 기사들은 전국 수준급의명필들이 정말 많습니다.
(바로 이전 김인새대 까지는 김인이 타이틀을 따면 상금으로 모든 기사들이 서로 애환을 달래며 술판을 벌렸음. 즉, 상금을 독식하던 문화가 없었음)

세월이 흘러 이창호의 시대가 옵니다.
이시기들 맞아 바둑 외적의 예능들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당시의 라이벌인 유창혁은 우일신(又日新)이란 휘호를 이창호는 성의(誠意)라는 휘호를 즐겨 쓰게 되지만 명필과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바야흐로 바둑만 아는 기사들의 시대가 도래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바둑 5천년(?)의 역사에서 비로소 이창호가 바둑의 패러다임을 한번 바꾸게 됩니다.
이창호 이전만해도 5천년 동안 반집 승부라는건 하늘의 뜻이고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라는게 대세 였는데 이창호가 반집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끝내기가 정립이 됩니다.

바둑은 서양보다 동양에 편중되어 있는데 소위 바둑의 성인이라는 기성(棋聖)은 4명이 존재합니다.
3백년전 도책 150년전 수책 현 시대의 오청원이게 거의 불문율이었죠.
다른 하나는 비공식적인 중궁의 섭위평(중국 대빵이 독자적으로 내린 칭호임. 위 3명의 기성은 전세계에서 인정. 섭위평은다른 나라에서는 짝퉁취급)
이창호는 경이적인 승률을 자랑했는데 대국일정이 너무 살인적이었음(대국=바둑 한판 두는거라고 보면 됨)
1년에 100판 이상 두었는데 3일에 한판 두는 꼴. 이게 별거 아닐거 같지만
당시 서로의 제한 시간에 맞추어 이것저것 따져보면 아침 8시에 바둑 시작해서 점심 한시간 꼴랑 먹고 저녁 8~9시까지 둬야 끝남.
저녁식사. 기타등등 3~4 시간 훌쩍~ 소요되는 인터뷰는 덤~
당시 룰로 하루에 한판 두면 체중이 5키로 이상 빠진 다는 기사들이 많았음.

보다 못한 일본의 3대 기성인 오청원이 80 노구를 이끌고 한국을 방문.
이창호 그만 괴롭혀라 넘 혹사 당한다. 이대로 라면 10년 후 반드시 이창호는 평범한 기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의 취지로 훈계를 날리고 감.
한국 바둑계 코웃음 쳤지만 기성 오청원 말대로 됨. 이창호의 기력쇠퇴는 나이탓도 있지만 당시 대국 스타일이 넘 살인적이었음.

이세돌의 시대가 도래함.
말 그대로 사파고수의 도래.
패러다임이고 뭐고 기존의 틀을 벗어나 공식 자체를 파괴한 서유기의 제천대성 손오공처럼 무소불위의 무공을 뽐냄.
해설자 장수영이 이세돌 활약전에 한 이야기가 있음.
조훈현이 말하기를 내제자인 이창호가 잘둔다는 소리는 한번도 한적이 없는데 이세돌이가 잘한다는 소린 여러번 했다. 사고칠 놈이 분명하다.
이젠 한물 갈 나이 되지 않앗을까? 하지만 현실의 인식은 세계 최고수.
구글의 알파고가 꺽고 싶어하는 인물.

박정환 김지석 시대.
영혼이나 낭만을 배제한 승부만을 위한 살인 기계.
역대 최고의 전자계산기 같은 세대라고 불수 도 있음.
승부의 측면에선 최강에 근접한 세대인지는 모르지만 바둑 외적으로 주는 인간미는 거의 전무함.
하지만 컴퓨터랑 자웅을 겨루는 승부 일변도의 수읽기 때문에 구글의 알파고 등장과 더불어
인간의 바둑으로서의 최후의 세대가 될거라고 봄.

바둑이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의 분야. 더 나아가도 도(道)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인격 수양과 바둑외적인 소양을 같이 함양했더라면 사멸될 미래는 없었을 것이라고 봄.
결국 승부에 집착한 스포츠나 승부기계로서의 전향은 결국 컴퓨터 연산의 발달 속에 바둑은 설자리가 없어질거라고 봄.

여기 까지가 한국 바둑의 간소한 추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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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둑이 인간을 이긴다는건 태양 흑점 그늘에 누워 아이스크림을 핥는 것보다도 말도 안된다고 그랬었죠. 첨부터 걍 쭈욱~~
사실 바둑계도 고정관념이 강하고 우기기 대마왕일때 많았죠.

제가 단증 딸때만해도
바둑을 두면 암이 안걸립니다. 이 광고 많이 했어요. 바둑월간지 지면 광고에서요.
실제로 프로기사 암으로 사망한 사람도 안 나왔구요.
그 당시 프로 기사 수가 200명 정도??
나중엔 툭툭 나왔고 그 광고는 사라졌습니다.
치매도 안 걸린다는 광고도 했었죠.
치매 계열의 질환 기사가 나오고 사라졌죠.
바둑 두는 여자는 이쁘다는 글들도 많이 올라왔어요.
개 시발 새끼들 진짜. 한국기원 간사들중엔 주둥이로만 바둑은 신성하다하고 정치질하는 새끼들 겁나 많아요.
이승만한테도 아부하느라 실제 9급 정도 실력도 될까 말까한 이승만한테 9단증 발급해줬어요.
이명박 서울시장시절 이창호랑 테니스 치게도 만들고 씨발 새끼덜..

기자들 왜곡도 존나게 해요.
뻥튀기나 오버도 존나게 해요.
뭐 이슈성이나 돈 벌이 좀 할려는 기사협회 간부들 노력이라 치부하고 걍 넘어가 줍시다.
사실 현실로도 톱 프로기사 아니고는 최저생계비도 못 버는 사람 많아요.
생활고에 시달려 은퇴한 프로기사도 여럿 있구요.
이걸 해결하는 밥업을 찾고 해결하는게 이사 및 임원인데 아참...
능력 안되면 내려들 오던가..

실제로 프로기사중에 서울대 출신들 여럿 있어요.
문 모 프로기사 경우 서울대 박사출신이죠.
이런 사람들이 성적을 못 올리면 최저 생계비도 못 벌어요.
더군다나 프로라고 2충직업도 못갖고...지금은 2중직업 허용하나 모르겠네요.
최하 1만대 :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는데 최저 생계비도 못 받는다니......헐
1만대 1 상상이 가세요?

하지만 아마츄어는 바둑은 돈 안 걸어도 재밌는 유일한 게임이라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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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알파고 VS 이세돌 대결 기사가 떠서 저도 개인적으로 엄청 놀랐습니다.
이게 그동안의 상식과 기사를 통털어 볼때 아직은 이세돌 한테 4점 깔고 둬도 부족한 시대아냐? 오타 맞겠지?
하면서 네이버 뒤지다가 구글 뒤지다 보니..진짜더군요.
헐...헉..꽥...이럴,,수가..
어떤 원리인지 정보 쪼가리 하나 얻어 보자 하고 엄청 검색했는데 아쉽더군요.

오유는 바둑관심이 거의 없어요. 글도 드물고.. 바둑은 새누리 게임인듯..ㅜㅜ
딴지는 있더군요.. 하지만 두루뭉술한 포괄적인 서술의 글만 존재하고 뭔가 전문적인 기술은 없더군요.
모든 신문사에도 다들 인용항  문구..그치만 아무리 검색해도 걍 눈치성 지식으로 포장한 기사만 ㅜㅜ

혹시나 일베 시키들은?
하고 가봤드니...
헐...

지식이란 것은 성향과 싸가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겠구나 하는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무슨 논문급으로 기술한 놈들의 글들이 있어 읽어 봤는데 바둑에 대한 글 하나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전 알파고 때문에 검색 트리 타면서 뇌내 망상으로는
한국기원.타이젬. 네이버.다음.오유.딴지.루리.인벤...구글하면 만족할 만한거 당연히 건질줄 알았습니다.
현실은 없어요. 걍 뭉실뭉실한 기사만 있을뿐.
근데 그 지식을 일베에서 건질줄이야.
이번만큼은 일베 정보를 인정합니다.
아울러 더 검색을 해봤는데요.
조훈현.이창호.이세돌. 모두 고향이 전라도 인데요.
엄청 존경모드인거 보고 또 한번 놀랬습니다.
이쯤되면 일베놈들도 착한건가요??? 혼동

타 커뮤니티를 떠나서
오유에서 바둑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든건 어떤 사연이 따로 있나요?
오유에는 유난히 바둑이야기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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