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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억해> 리뷰
게시물ID : drama_403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211001
추천 : 4
조회수 : 58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2/03 22:44:12

*드라마를 보면서 떠올랐던 짧은 단상들. 반말로 적었어요.
**그냥 다 스포예용.





1. 지난 주말동안 KBS드라마 <너를 기억해>를 정주행했다.
  방영 중에 1,2회만 보다 말았던 게 아쉽기도 했고,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충분했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물이기도 하고, 요즘 대세라는 박보검이 나온다며 주변에서 추천해주기도 해서.


2. 재밌었다. 그런데 공중파의 한계가 너무했다. 피피엘 때문에 모두가 같은 핸드폰을 쓰고, 타는 차도 똑같고. 초반 연쇄살인 피해자들의 집 인테리어는 모두 비슷하고. 가장 심했던 건 경찰청 사무실의 그 모던함. 밤새 일하고, 집에도 잘 못가면서도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나와서 시체를 봐도 그 어떤 정신적 타격도 받지 않는 것 같은 경찰들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허구임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이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피피엘은 보는 사람도 시청에 방해를 받지만, 피피엘을 위해 작품의 미장센을 포기해야 하는 감독이 가장 큰 피해를 보지 않을까 싶다. 공중파의 피피엘은 장면 속에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는 수준을 너무 넘어선 것 같다.


3. 초반부를 보며 기대를 많이 했다. 이현, 이민 형제와 이준영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흥미로웠다. 특히 이중민(전광렬)과 대치하는 어린 이준영을 연기하는 도경수가 인상깊었다. 후에 등장하는 정선호나 어른이 된 이준영보다도 도경수가 연기한 이준영이 가장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웃는 얼굴로, 높낮이가 있는 목소리를 내는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유년시절 방안에 갇혀있던 장면에서의 얼굴은 정말 섬뜩했다.


4. 드라마의 주 구도는 이현과 이민의 대결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준영은 그 두 형제에게 일종의 자각제로서만 기능하고 사라지지 않을까 예상했다. 미국에 있는 이현을 불러들이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보고서를 보내고, 이현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살인을 저지르며 메시지를 보내는, 정선호라는 이름의 변호사로 살고 있는 이민과 그런 동생을 막기 위한 이현의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이현이 첫 살인현장에 범인이 두고간 힌트를 통해 두번째 살인현장을 찾아가는 장면을 보며 이현과 이민 혹은 이민을 앞세운 이준영과의 두뇌싸움이 부각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3,4회를 지나며 처음의 그 두뇌싸움을 사라지고 남은 건 비교적 단순한 사건들과 감정의 문제 뿐이었다. 특히 이현과 차지안의 애정씬은 과할 정도로 남발되고 있었다.


5. <너를 기억해>라는 제목 이전에 가제가 '헬로 몬스터' 였다고 들었다. 가제뿐만 아니라, 정선호로 살아가는 이민의 모습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속 요한의 외양과 참 많이 닮았다. 사실 드라마 자체가 <몬스터>의 많은 부분을 차용하고 변형시키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한 이민이 떠난 후 텅 빈 병실 침대 장면은 요한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 
  외양 뿐 아니라 극 초반 변호사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의뢰인을 통해 연쇄살인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도, 요한과 닮았다. 형에게 자신을 상기시키는 메시지를 보내 자신을 쫓아오게 만드는 것 역시, 덴마에게 집착하던 요한과 닮았다. 


6. 그런데 너무 아쉬운 게 이민이라는 캐릭터가 갈수록 단어 그대로 '쩌리'로 전락해버린다. 후반부를 보다보면 도대체 이준영은 이민의 어떤 면을 보고 그가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납치해 데려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정도 였다. 20년이라는 시간동안 가지고 있던 형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그게 아니라는 형의 한 마디에 녹아내린다는 게 '괴물'로 설정된 캐릭터에게 걸맞는 변화일까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7.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미드 <덱스터>가 떠올랐다. 양부에 의해 완벽한 사회화 과정을 습득하지만 살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범죄자들을 죽여나가는 덱스터. 덱스터는 경찰이었던 양부의 도움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동시에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습득했다. 하지만 덱스터에게 정의는 없었고,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도 없었으며, 자신의 행위가 누군가의 복수나 구원이 되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덱스터에게는 애초에 그런 사고와 감정이 부재했다.
  그런데 이민과 이준영은 덱스터와 같이 완전한 사이코패스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자신을 버린 형에 대한 복수로 '버리는 자'들을 반복살해하는 이민이나 학대받던 어린시절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학대하는 자'들을 반복살해하는 이준영이나 둘 다 너무나 감정적이다. 
  덱스터가 타고난 괴물이었다면, 결국 이민과 이준영은, 요한이 프란츠 보나파르트의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인 것처럼, 만들어진 괴물인 것이다. 


8. 드라마를 보며 나오키의 <몬스터>가 얼마나 수작이었는지를 새삼 또 깨달았다.

이준영은 어린 이현에게 묻는다.
너희 아버지는 너를 어떤 눈으로 보느냐고. 너를 무엇이라고 부르냐고.
그리고 이현의 아버지를 죽이고 떠나며 말한다.
너는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고. 괴물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준영의 이런 말들은 요한을 괴물로 만든 보나파르트가 요한의 쌍둥이 동생인 안나에게 했던 말들과 참 유사하다. 

9. 극초반 내가 생각했던 이민의 역할은 극 후반으로 갈수록 이준영에게로 넘어간다. 이민의 역할은 법의학자 이준호가 이준영이었다는 반전을 극의 중후반까지 감추기 위한 장치였나 싶었다. 이민이 형인 이현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이준영 역시 이현에게 집착한다. 이현의 주위를 맴돌며 자신을 알아봐주길 원하는 이준영의 모습은 덴마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쫓게 만드는 요한의 모습과 유사하다. 
  애초에 호적에 이름이 오르지 조차 못했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본래 얼굴마저 바꿔야 했으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모든 흔적을 지워야했던 이준호는 자신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현의 곁에서 그가 자신을 알아보기를 기대한다. 이준호는 1프로의 확신이 부족하는 이현에게 동맥이 잡히지 않는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게 함으로써 자신이 이준영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현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부르는 순간 기뻐하고, 일종의 환희를 느낀다. 


10. 왜 자신에게 집착하느냐 묻는 이현에게 이준영은, 과거 자신이 어떤 사람인 것 같느냐는 질문에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는 이현의 대답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성폭행을 당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준영은 가족으로부터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괴물로 자라난다. 아무도 자신을 자신 그 자체로 바라봐주지 않는 삶 속에서 어린 이현의 저 대답은 이준영이 처음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11. 여러모로 아쉬움이 좀 많이 남는 드라마였다. 


12. '네가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너를 들여다 본다'라는 니체의 말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차용되곤 하는데, 이중민과 이준영이 대치하는 장면은 저 문장을 참 잘 보여준다. 이준영을 들여다보다가 되려 이준영에게 잠식당해 자신의 아들을 괴물이라 오해하고, 아들 안의 괴물을 가둬두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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