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칸더스 ~ 향기가 사라진 꽃
다니엘은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미션을 수행하러 나간 로켓과 타샤, 그리고 계의진에게서 이틀 째 연락이 없다.
임무에 실패 한 것인가..
성공했다면 이미 세상은 흔들리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해커와 무기 엔지니어, 그리고 스나이퍼는 실패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쿵쿵쿵-
요란하게 울려대는 현관의 문소리.
그들인 것일까?
다급한 마음에 두칸 세칸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아니, 넌?.. "
"매주 수요일... 이 곳에 계시다 해서.."
조금의 희망도 다시금 심장을 짖눌르는 원흉이 되었다.
"들어오거라"
"그보다 이것 좀 봐요! 오는 길에 주워왔는데.."
여름날 말라 비틀어진 길 바닥 지렁이같이 야윈 소년이 내민 전단지에는 타샤와 계의진의 사진에 공개수배자라는 굵고 빨간
글자가 박혀있었다.
"하아.."
아찔해지는 정신.. 아득한 풍경 너머로 다니엘은 주저 앉아버렸다.
"결국 실행에 옮기셨나봐요..? 그 임무는 철저히 실패했네요.."
하지만 이상하다.
어째서 로켓은 명단에 없는거지?
이 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고..
"치코, 너는 지하실에 잠시 기다리고 있으렴. 난 그레이스를 만나고 와야겠어. 절대 누가와도 문은 열어주지 말거라.
상황이 매우 안좋아. 혹시 누군가 억지로 이 곳을 찾아 들어온다면, 달리기 만큼은 빠르다는 너는 앞뒤 가리지말고
이 곳에서 멀리 달아나. 나와 멤버들은 열쇠가 있으니 누구든 절대 열어주지 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꺼운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로 얼굴 까지 가린 다니엘은 덜덜 떨리는 손을 움켜쥐며
그레이스의 비밀 사무소로 향했다.
* * * * *
똑똑-
"계십니까? 택배 왔습니다~"
"아무도 없으니 그런 트릭은 필요없네. 들어와요 다니엘 군"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스는 잿빛을 띄며 지독한 향을 남기고 타들어간 담뱃재를 털어내며 다니엘을 맞이한다.
"지금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요. 그들이 공개 수배자가 되었다구요!! 저는.. 저는..."
그의 붉어지는 눈시울을 조롱이라도 하듯 그레이스가 빙그레 웃어보인다.
"예상 했던 일 아닌가? 이 정도의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그 만큼 우리의 적은 강하다는 것도."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말씀하실 때인가요? 그들이 아직까지 실종 사태라구요! 젠장.. 어디서부터.. 아니 어떻게!"
다니엘 눈에 들어오는 신문 한덩이.
인쇄 된지 얼마 안되었는지 잉크 냄새마저 가시지 않은 것 같은 빳빳한 맨 앞장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희대의 테러리스트 집단, 아칸더스 생포!]
"알고 계셨습니까? 어떻게 이 상황에 그렇게 말짱하실 수 있는 거죠?"
"하아.. 자넨 정말 의지만 불타는 군. 자네는 내가 이런 사회구조 안에서 진정한 정의를 위해서만 글을 쓴다면 최고의 언론 기관의 편집장이
될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나?"
어지럽다.
구토가 나올것 같고 분노에 부풀은 혈관이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그럼 당신은 애초부터.. 아니 우린 같은 팀이잖아요? 정의를 위해서 글을 쓰신다고 했잖아요.. 제가 여지껏 봐온 글들..
당신은 진짜 정의를 쫓는 사람이었어!"
"그 정도 글이야 회사의 이미지도 있고.. 뭐 하도들 언론이 정부 편이다라는 음모론을 펼쳐대서 말이지. 우리의 각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것이었지.
불순분자 거르기에 아주 유용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이야."
"그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요? 저는요? 그리고 로켓은 어떻게 되었구요? 당신은 정말이지.."
"워워 진정하게나. 질문이 이렇게 많아서야.. 시간은 아~주 많다고! 거기 앉게. 찬찬히 얘기하지, 이런 정 많은 친구 같으니라고."
* * * * *
'오늘 내에 오기는 하는 걸까?'
지하실 이곳 저곳을 돌며 치코는 아칸더스가 계획을 구상하며 끄적인 메모며 지도며 하는 것들을 곱게 접어 주머니에 챙긴다.
본부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으로 딜을 본 것은 치코.
하지만 그는 수요일이 오기 전에 아칸더스가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단순히 성급하게 실행에 옮겨서 실패한 미션때문에 이런 상황이 왔다고 믿고 있는 덩치 작은 꼬마였다.
'아칸더스의 본부와 아직 안잡혀간 멤버들의 신상. 그리고 그들의 계획 증거를 가져다 주면 분명히 그 망할 독재자 녀석도
내가 범상치 않은 꼬마란 걸 알고 낙인을 떼 주겠지!'
어린 꼬마는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점점 절정에 치닫는 아칸더스의 독 내음이 가시는 순간, 그 역시도 온전치 못할 것임을..
쿵쿵-
"문 좀 열어줘!! 다니엘! 로켓이야. 키를 잃어버렸어.. 제발 문 좀열어줘!!"
* * * * *
"타샤라는 그 덩치 큰 계집이 글쎄 최고의 대장장이인 필립의 소총으로 도베르만 부하 가족을 겨냥했지 뭔가?
그 놈들은 너도 알다시피 독한 녀석들이라 당하고만 있진 않아. 아마 지금쯤 몸이 반 쯤 일그러진 좀비마냥 숨이나
붙어있을런지. 필립.. 하하 계의진이라 했던가 본명이? 그 친구 참 안되었지. 내가 이미 밀고한 곳에서 한가로히 커피나
마시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그래, 내가 미리 말해뒀지. 커피에 뭐라도 안타면 그녀석 순순히 따라갈 녀석이 아니라고.
주머니에 뭔 놈의 무기가 그리도 다양하게 들었던지 무거워서 그냥은 못데리고 갔어~ 근데 무기를 다 빼고 데려가려니깐
그게 무기 무게만은 아니더라고~ 너무 뚱뚱해서 였는진 모르겠는데 도베르만 녀석들이 회뜨듯이 목숨만 붙여가지고
데려갔다니까? 그 뭐야~ 마치 정육점에서 원하는 부위만 잘라서 포장해가듯이 말이야."
턱을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떨어진다.
그것이 분노에 짖눌린 입술에서 나는 피인지, 계속되는 충격에서 오는 비탄함인지, 아니면 그저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꺾여버린 희망에서 흐르는 눈물인지 다니엘은 알 수 없었다.
"로켓은? 로켓은 어디에있지?! 자꾸 웃지마! 그 잘난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찢어 버릴테니까."
"어휴 무서워라.. 그래,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재능있는 친구가 그냥 죽게 두기는 아까웠지.
그 친구 아마 지금쯤 -사회동화교육 기계-를 통해서 정신 교육을 받고 있을꺼야.
걱정마~ 그 친구는 절대 안죽여~ 그 친구도 곧 위대하신 각하님을 위해 일할것이고, 나 역시 이런 충성의 댓가로
방송국 국장 자리도 하나 받게 되었지. 이게 진짜 평화야 이친구야. 삶에 무리가 없는 것. 평온하게 묵묵히
내가 가진 것을 즐기고 또 누리는 것. 이게 진짜 영혼의 평화라는 거지."
아아- 로빈... 당신이 제게 알려준 정의라는 것은 항상 이런 결말인 것인가요..
아아- 아버지.. 우리가 소소하게 꿈꿨던 평화라는 것이 이리도 모진 것인가요..
다니엘이 약해질 때마다 떠올리는 양아버지 로빈의 말이 다시한번 그의 머리에 스친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홀로 살 수 없는 동물이었지.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고,
또 추위를 견디고 문명을 만들고.. 인간은 말이야, 혼자 내쳐졌을 때가 바로 그들의 아킬레스건이 되는 것이란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지내면 꼭 그 중에는 질투를 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기려는 사람이 생기고,
더 가지려는 사람이 생기고, 괴롭히려는 사람이 생긴단다. 그것을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그 문명사회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우리는 지금 그 문명이 변화하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란다.
너의 아픔. 다른 이들의 아픔. 모두가 아파하고 있어. 복수를 꿈꾸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란다. 그것을 꿈꾸기 위해선
아주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할지도 모르고, 아주 많은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몰라. 물론 그 결말이 후련할 것이라는
장담도 없지. 아칸더스라는 꽃을 본 적이 있니? 꽃잎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단다. 하지만 그 무리들도 결국
한 줄기 위에 있지. 서로의 무리가 상처입힐 수록 그 줄기는 약해지고 결국 전체가 나약해 지는 법이란다.
하지만 그 줄기가 먼저 썩어 있다면? 너는 그무리를 데리고 나와 줄기를 잘라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니? 아님
그저 썩어가는 대로 그안에서 숭고한 너의 무리만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니?
아칸더스는 말이다. 그 꽃말처럼 아주 지독한 복수의 내음을 풍긴단다.
그 내음이 사라지는 때, 꽃이 빠르게 시들어 간다지."
* * * *
너무 많은 떡밥을 남기고 마무리 하는 것 같네요..ㅠㅠ
앞서 써주신 분들이 너무 대단하게 쓰셔서.. 제가 물흐린 느낌 ㅜㅜ 엉엉
조금 예상보다 늦게 업로드 해서 죄송합니다.
부디 다음 분 힘내주시고..
혹시 다음 화에서 안끝나면 계속 이어가기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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