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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의 책이 절판되어야 한다는 한겨레, 그럼 친일파의 책은?
게시물ID : sisa_11696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유와고독
추천 : 10
조회수 : 1093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21/02/20 1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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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의 최우리 기자가 최근 연속 보도하는 내용이 있다. 아동 성추행범이 쓴 동화책이 버젓이 서점과 도서관에 자리 잡고 있으니 그걸 빼야 된다는 것이다. 최우리 기자는 자신의 기사로 책들이 회수되고 도서관에서도 빠지게 되었다고, 그리고 정춘숙이라는 멍청한 의원이 법안도 준비하기로 했다고 자랑하는 기사도 올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런 맛에 기자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요즘 이 기자는 하고 있을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파렴치한 아동 성추행범을 옹호할 마음이나 의도는 전혀 없다. 한 마디로 말해 소름 끼치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나도 자녀에게 하필 아동 성추행범이 쓴 동화책을 읽히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기사를 보면서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의문이 있기 때문에,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난 책을 빼라, 절판해라는 사회적 압력이 등장한다는 것에 대해 확실히 어딘가 섬찟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시민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소소한 자유들이 특정 세력에 의해 초법적인 방식으로 규제되고 사회적 논쟁, 시비 거리가 된다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럼 친일파인 윤치호 일기, 이광수의 무정 같은 책들도 다 빼야 하나?

 

아동 성추행은 물론 파렴치한 중범죄다. 하지만 친일 반민족행위도 그 부도덕성과 해악이 결코 그보다 못하지 않다. 내가 최우리 기자 같은 사람들한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질문, 그리고 최우리 기자가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예상했어야 할 질문이 바로 위와 같은 질문이다. 성추행범의 책이 수거되어야 한다면 이들 친일파들의 책도 다 도서관에서 빼고 절판해야 하지 않을까? 이밖에도 독재자이며 양민을 학살한 책임자인 이승만이 쓴 독립정신도 있고, 김종인도 회고록을 냈던데 이 사람도 뇌물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극단적 사례(?)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도서관에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백범일지의 저자인 김구가 사형을 선고 받은 일본인 살해 사건은 사실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백범일지도 살인범이 쓴 책인 것이다. 부패 범죄자 이명박이 쓴 책 신화는 없다는 한 때 꽤 유명해서 산 적도 없는 책이 우리 집에 두 권이나 있었다. 퇴임 후에 출판한 회고록도 있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테러범 김현희가 쓴 회고록,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 라는 2권 짜리 책도 우리 집에 있었다. 아마 제목까지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박근혜가 쓴 책도 틀림없이 여러 권 있을 것이다. 이제 최우리 기자나 그의 압력 때문에 책을 뺀 사서들이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본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언급한 책들도 전부 빼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왜 책 보는 것까지 남들이 나서서 간섭하고 시비거는가?

 

 

하지만 왜 그래야 할까? 비치해 놓고 파는 것뿐이지 누가 사거나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파렴치한 인간이 쓴 책은 꼴도 보기 싫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누구도 당신에게 볼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싫다고 해서 남들이 하는 것까지 막을 권리는 없다.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될 일 아닌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닌 한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게 옳다. 왜 그런 것까지 남들이 나서서 판단하고 강요하려 드는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실제 최우리 기자의 선배들은 저런 식의 검열과 억압에 맞서서 싸워왔고 그 결과 그나마 이 정도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동화책을 작가의 행실 때문에 빼야 한다면, 내가 위에서 예로 든 책들은 모두 작가의 사상과 입장을 대변하는 저작물들인데 그럼 이런 책들은 그야말로 영락없이 모두 금서로 지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논리적으로는 최우리 기자와 같은 입장이라면 그렇게 주장해야 일관성이 있고 맞는 것 같다.

 

 

사적 경제 활동에 대해서 사회적 매장을 선동해도 될까?

 

최우리 기자가 지성인이라면 그가 당연히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했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또 있다. 만약 아동 성추행범이라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 그럼 이 사람에게 허용될 수 있는 경제활동은 뭐가 있을까? 수입이 생기는 거의 모든 경제 활동은 다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책을 써서 파는 일이 안 된다는 논리에 따르면 다른 어떤 물건이라고 해서 딱히 괜찮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서비스 제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한 마디로 말해 범죄자는 형기를 마친 후에도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형기 마치고 나가서 굶어 죽게 해야 하는 건가? 아동 성추행이 중범죄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종신형을 살려야 하는 걸까?

 

우리나라를 포함해 거의 모든 나라들은 범죄자의 사회 복귀를 보장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죗값은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치르게 하면 되고 논리적으로도 상응하는 죗값을 치렀다면 사회 복귀를 보장하는 것이 옳기 때문일 것이다. 형벌이라는 것은 사적 제재를 금지하는 취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나서서 사적으로 처벌에 나서게 되면 평화와 사회질서 유지 측면에서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합당한 형벌을 부과하되 그 이후에는 사적 경제 활동은 보장될 필요가 있다. 정말로 합당한 형벌을 부과했다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최우리 기자와 같은 선동은 형평성 측면에서도 꽤나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초법적 제재에 대한 선동으로 범죄를 저지른 작가들은 생계가 막막해질 것이다. 그런데 삼대가 대를 이어가며 부패, 파렴치 범죄 전과를 기록하고 있고 여전히 그들 가문에 의해 경영되고 있는 삼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결국 저런 식의 선동은 정작 더 큰 범죄를 저지른 힘 있는 사람들은 건드리지도 못하면서 만만한 먹이감을 찾아 자기 권력과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최우리 기자는 박진성 시인이 겪는 고초를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미투 무고의 피해자인 박진성 시인의 사례가 생각났다. 박진성 시인은 미투 무고의 피해자임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사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사회적 압력을 우려한 출판계와 학계의 외면 때문에 생계와 창작 활동에 큰 좌절을 겪고 있다고 하며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암시했었다. 초법적인 사회적 제재와 압력에 따른 폐해는 이토록 심각하다.

 

박진성 시인은 무고임이 명백히 밝혀졌는데도 왜 출판사는 그의 작품을 외면하는 것일까? 언듯 이해가 잘 안 갈 것이다. 인간의 더러운 속물근성에서 우리는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투 무고의 피해자가 보란 듯이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고 주목을 받는 것은 미투를 권력의 도구로 여기는 페미니즘 세력에게는 영 불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미투는 언제나 순수하고 신성한 것으로 남아야 하며 신뢰성에 대한 의심이 용납되어선 안 된다. 이게 나의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실제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같은 언론에서 박진성 시인의 사례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 성범죄자로 낙인 찍던 것과 달리 무고임이 밝혀진 후에는 철저한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음이 확인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가 미투 무고 피해자의 책을 출판하는 것은 페미니즘 세력의 눈 밖에 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내가 보기에 최우리 기자가 선동하고 있는 출판물에 대한 절판, 회수 사태는 마치 박진성 시인이 겪고 있는 고초를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런 식의 선동은 간접적으로나마 분명 박진성 시인의 고초를 가중시킬 가능성이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투 무고 작가에 대해서는 엄연한 2차, 3차 가해에 해당하는 셈이다.

 

저런 식의 선동으로 사회에 돌아오는 혜택은 무엇인가?

 

저렇게까지 해서 우리 사회나 사람들이 얻게 되는 이익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의문도 든다. 최우리 기자는 출판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책을 회수한 것을 자랑스럽게 기사로 올리고 있지만, 과연 누구의 어떤 이익을 위해 저 사람들이 저런 비용을 감수하는 것일까?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는 합당한 형벌로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 범죄자의 책이 꽂혀 있다고 누구에게 손실이 발생하는 게 있나?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손실은 금전적 손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 이익의 침해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출판사가 저런 손실을 감수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딱히 무슨 이익이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알면 가르쳐 주기 바란다.

 

그렇게 보면 작금의 사태는 한편으로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어떤 공공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어떤 힘센(?) 언론사, 언론인의 선동으로 입게 될 사회적 비난이라는 피해가 두려워서 사람들은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최우리 기자와 한겨레신문의 언론 활동으로 이 사회가 얻은 것은 편익이나 이익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피해뿐이었던 셈이다. 물론 기자 본인만큼은 사람들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사람들에게 함부로 사실상 강요함으로써 타인을 지배하는 데서 오는 커다란 만족감과 도덕적 우월감, 인정 욕구 등 온갖 속물적 욕구를 충족시켰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문화혁명이나 마녀재판, 유신정권의 사례에서 보듯이 나쁜 권력은 흔히 순전히 자신들의 지배 이념의 신성함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위협하며 그에 따른 커다란 사회적 비용과 희생을 강요하곤 한다. 물론 이 언론인은 아직은 악소배 수준인 것 같지만 말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novushomo/222250206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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