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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는 위서.
게시물ID : history_1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Ω
추천 : 7
조회수 : 875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1/04/08 00:48:01
《환단고기》가 후대에 위조된 기록이며, 사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1.용어사용이 적절하지 않다.
사백력(시베리아), 파나류산(파미르고원), 수밀이(수메르), 우루, 지백특(티베트), 남녀평권, 부권, 상춘, 세계만방(世界萬邦) 등 근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가 사용되었다

고려(高麗), 몽고(蒙古), 흑수(흑룡강), 영고탑, 산동(山東) 등 실제 사용 시기가 상이한 용어가 사용되었다.

저술연대
1911년 출간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출간연도인 1979년 보다 전에 환단고기 또는 그 저본이 되는 5권의 저서가 존재했다는 근거가 없다.
1911년에 편집된 책이 1979년에 출간되기까지 60년이 소요된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기존 사서와 부합하지 않는다.
후대의 글을 인용하는 등 내용상의 모순이 있다.
1909년에 사망한 이기가 1911년에 완성된 환단고기를 감수하였다고 설명되었다.
신채호가 《사기집해》의 주석을 잘못 해석하고 주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삼한, 후삼한설'이 반영되어 있다

이화사의 《언행록》에 수록된 시가 《단기고사》와 《환단고기》에 인용되었다.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 설명된 수메르(수밀이)와 티베트(지백특)까지 진출한 거대한 제국으로서의 고조선의 유적(거주지나 무덤)이 전혀 없다.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했다는 시기의 동아시아는 신석기 시대로 국가가 존재할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문명이 등장하는 시기도 그 이후이다


주석:몽고라는 명칭은 징기스칸이 등장할 무렵에 등장한다.
       영고탑은 청나라 시조 설화와 관련지어 청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이다.
       중국 사서 《한서(漢書)》를 인용하면서 실제 사서에 없는 산동(山東)이라는 말을 가필하였는데, 실제 산동이라는 용어  가 해당 지역을 가리키게 된 것은 명나라 때 이후이다.


단기고사'는 일부 재야사학자들마저 당혹해 하는 책이다. 이런 문장들때문이다. 

'매년 부(府)와 군(郡)의 대표가의사원(議事院)에 모이게 해… 백성에게 참정권을 허락하시옵소서.'(전단군조선 9세아술) '만국박람회를 평양에서 크게 개최했다.각종 기계를 제조했는데 자행륜차(自行輪車), 천문경(天文鏡), 자명종(自鳴鍾),어풍승천기(御風昇天機), 흡기잠수선(吸氣潛水船)등이 상을 받은 발명품이었다.'(11세 도해)

'지구도 태양계의하나의 행성이나 본래는 태양에서 분리된천체다'(13세 흘달) '입법 사법 행정기관을 세워 다스렸다'(후단군조선 7세 등올)'도덕률이라는 것은 그 의지가 항상 자기의자율법칙과 함께 생기는 것입니다'(기자조선 29세 마간) 등의 문장도 사람들을 아연하게했다.

'환단고기' 등이 과연 민족주의적인 책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고려 말 왜구와의 전투기록은 생략된 반면곳곳에서 일본 건국신화나 신도(神道)와 비슷한 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는 고대 단군민족이 일본까지 포괄하는 거대문명권을 이뤘다는 기술이 대동아공영권이나 내선일체론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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