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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레포트 (대학을 자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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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花芽
추천 : 7
조회수 : 8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07 22: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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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페이지 짜리 논문은 아니지만, 내 생의 마지막 레포트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

이제는 대학에서 문학을 더 이상 배울 기회가 없을 거라는 아쉬움에, 제가 쓴 글들을 나누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첫번째 레포트는 미학 강의, 두 번째 레포트는 한국현대시론 강의에서의 레포트입니다.



변명 
-이 글에 이론적 분석이 없는 이유- 

1. 서론 
 과제에 이론적 분석이 들어가야 한다고 교수님께서 알려주셨지만 나는 '나의 아름다움 체험기'에 이론적 분석을 넣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겠다. 

2. 죄와 벌 

    죄와 벌 

고등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땐가의 일이다. 
나는 대구 효목도서관(지금의 수성 도서관) 2층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책을 빌리려고 3층 종합자료실에 올라갔다. 
들어가려는 순간, 한 남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검은 배낭을 메고,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하얀 얼굴. 
기억은 자세히 안 나지만, 깔끔한 옷차림. 
도서관 대출증이 지금 없는데, 대신 책을 빌려주실 수 있냐고. 
그는 죄와 벌 상권을 들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화려한 색상의 유화가 그려져 있는, 페이퍼백이었다. 
나는 죄송하지만 못 빌려드리겠다고 하고, 자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 내 책을 골라서 들고 나오는데, 아직도 입구에서 그 남학생이 서 있었다. 죄와 벌 상권을 들고. 
도서관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순간 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의 책을 받아서 내 이름으로 대출해줬다. 
그 남학생은 종이 쪽지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었다. 
그의 이름은 김인상이었다. 
그는 캔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캔 커피를 자판기에서 뽑아서 2층으로 내려오면서, 그는 나에게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고등학생이라고 알려주니, 그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지는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그는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인가 그랬다. 
학교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나지 않는데, 경북댄가 계명댄가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도 그 남학생은 책을 반납 안했다. 
전화해서 반납 해달라고 해도, 알겠다는 말 뿐이었다. 
몇 달이 지나도 반납을 안했다. 
계속 전화를 걸어도, 곧 반납하겠다는 대답만 할 뿐 반납을 안 하는 거였다. 
'먹튀'를 했으면 상식적으로 전화를 안 받아야 되는데, 전화는 꼭꼭 잘 받았다. 

연체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못 빌렸다. 
할 수 없이 학교 공부를 했다. 

몇개월 뒤에 도서관에서 우편으로 독촉장이 날아왔다. 
엄마가 보시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엄마가 그 남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반납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 남학생은 책을 반납 안했다. 

결국엔 오천 얼마를 도서관에 냈다. 

이제 몇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죄와 벌을 '못' 읽는다. 
왜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데, 지금은 아직 읽을 수가 없다. 아파서. 

그 남학생, 김인상씨의 휴대전화 번호는 아직 가지고 있다. 
만약 내가 죄와 벌을 다 읽게 된다면, 꼭 전화해서 묻고 싶다. 내가 빌려준 죄와 벌 상권, 아직 가지고 있냐고. 
죄와 벌, 다 읽으셨냐고. 

 위의 시는 내가 고등학생 때 겪었던 실화를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다. 이 시를 내가 쓴 것이 2014년이니, 시에 나오는 사건을 겪은 후 5, 6년이 지나서야 시로 쓴 셈이다. 그렇게 5, 6년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사건의 면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시에 나온 사건이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던가보다. 
 이 시를 썼던 2014년 무렵에도 나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파서. 이 과제를 작성하기 전에, 나는 <죄와 벌>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그 남학생, 김인상씨가 빌려갔던 그 판본을 찾았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페이퍼북. 하지만 그 판본은 중앙도서관에 없었고, 할 수 없이 출판사 ’열린책들‘의 양장본을 빌려왔다. 꼭 김인상씨가 빌려갔던 그 판본이어야만 했을까. 왜 나는 그 판본을 빌리려고 했을까. 상하권으로 나누어진 노란 양장본을 집에 가져와 조금씩 읽으면서도, 나는 꽤나 아팠다. 하지만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달콤 쌉싸름한 마음의 고통 못지않게 생물학적 고통도 컸다. 나는 화재로 인한 호흡기 손상으로 천식을 앓고 있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플 때가 자주 있다. 게다가 정신분열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약 부작용으로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갉아먹는다. 책 페이지를 넘기기가 꽤나 어려웠다. 그래서 <죄와 벌>을 다 읽지 못하고 과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죄와 벌>의 줄거리를 알고 있다. 노어노문학과의 러시아 희곡을 전공하신 한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교양 강의에서 <죄와 벌>의 줄거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내가 이 시를 써서 블로그에 올린 며칠 후에 교수님께서 죄와 벌에 대해 얘기하셨다. 교수님께서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추천하셨는데, 그 작품은 읽어보았다. 
 그 남학생, 김인상씨는 나에게 문학을 거짓말처럼 앗아가버렸다. 그가 내 명의로 대출해간 <죄와 벌>의 미납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없었고, 시와 소설, 희곡을 읽을 수 없었다. 책을 구입하기에는 내 용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나는 남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성격이었고 줏대가 없고 나약했다. 어린 날부터 나의 소중한 것이었던 문학을 대학에서 전공으로 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강경한 반대를 꺾기 어려웠다. 나는 공대생이 되었다. 이런 내가 무슨 미학 이론을 논한단 말인가. 어떻게 내가 문학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아파서 읽을 수 없었던 <죄와 벌>을 나는 왜 읽을 수 있게 되었나. 내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무엇이었나. 글쎄, 단순히 세월이 지나서 무뎌졌다, 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시를 쓰는 사람임에도 감정에 무딘 편이다. 이 사건을 시로 쓸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죄와 벌을 다 읽는다면, 나는 김인상씨에게 전화해서 죄와 벌을 다 읽으셨나고 물을 수 있을까. 

2. <장미의 이름>에서 시학이 단지 장치일 뿐인 이유 
 한 교양 강의에서 내가 속한 조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대한 발표를 맡았다. 우리 조는 호르헤와 윌리엄의 철학적 이념 대립에 대한 것으로 발표의 방향을 잡아갔다. 인간은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풍자할 수 있다는 윌리엄과 인간의 감정은 신의 섭리를 따를 뿐이라는 호르헤. 
 하지만 한 선배가 말했다. 그는 국문학도로, 우리 조의 유일한 문학 전공자였다. 그는 <장미의 이름>에서 시학은 단지 장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당시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학승들이 자유롭게 인간을 연구하고 싶다는 열망에 의해 시학 희극편의 판본을 훔쳐보다가 차례로 의문사한다게 핵심 사건인데. 나는 윌리엄과 호르헤의 이념 대립에 초점을 맞추어서 조 발표와 내 개인 과제를 진행했다. 
 이제야 선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장미의 이름>의 아드소에게 시학은 단지 장치일 뿐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장미, 사하촌의 그 소녀다. 그 소녀와의 사랑이다. 아드소는 그 소녀를 저버리고 수도승의 길을 택했다. 아드소의 스승인 윌리엄은 풍자와 희극의 필요성을 설파하지만, 이 소설 자체는 비극이다. 소녀는 소설 <장미의 이름> 에서 결국 화형대에 올라 죽었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는 소녀가 살아있는 채로 아드소와 작별한다. 소녀는 아마 아드소의 아이를 홀로 낳거나 계속 창녀로 살아갈 것이다. 어찌됐건, 비극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와 신플라톤주의자의 이념 대립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랑이었다. 나는 왜 <장미의 이름>이 비극이라는 것을 그 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이제는 깨달을 수 있을까.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시인의 두 가지 의무, 서정성과 정치성 
-『서정성과 정치적 상상력』을 읽고- 

1. 민주화에 대한 거대 담론이 소멸한 또 다른 이유 
 『서정성과 정치적 상상력』에서는 거대담론이 소멸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마르크시즘이 소멸한 이유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이다. 민주화에 대한 거대 담론이 소멸한 이유는 87년도에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져서이다. 하지만 형식적 민주화가 곧 실질적 민주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민주화에 대한 거대 담론이 소멸한 또 하나의 이유로 ‘불의의 다각화, 지능화’로 저항해야할 대상이 불명확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박노해 시인의 「시대 고독」에서 잘 드러난다. 

한 시대의 악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의 저항은 
얼마나 괴롭고 행복한 시대였던가 

한 시대의 악이 
한 계급에 집약되어 있던 시절의 투쟁은 
얼마나 힘겹고 다행인 시대였던가 

고통의 뿌리가 환히 보여 
선과 악이 자명하던 시절의 자기결단은 
얼마나 슬프고 충만한 시대였던가 

세계의 악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 
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버린 시대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시대 
합법화된 민주화 시대의 저항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 
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하는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옮음도 거짓도 다수결로 작동되는 시대 
진리는 누구의 말에서나 반짝이지만 
그것을 살고 실천할 주체가 증발되어버린 시대 
혁명의 전위마저 씨가 말라가는 
이 고독한 저항의 시대는 
  
-박노해, 「시대고독」전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 걸음, 2010 

 위의 시에 나타난, 형식적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신자유주의로 인한 자본의 독식과 민중의 소외 등으로 실질적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 저항하는 시를 쓰는 새로운 시인은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2. 미적 자율성과 정치성은 반비례 관계가 아니다 
 시인의 삶을 살다 지난 2012년 돌연 정치인으로 변신한 도종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초선)은 3년 전 처음 국회에 입성한 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에 검은 리본이 달린 근조화분이 배달됐던 것이다. ‘시인 도종환’은 이제 끝났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도 의원은 지난 3년간 그 화분을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정말 나는 끝났는가’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매일 자신에게 반복하고 있다고.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무렵 잡지 <좋은 생각>의 칼럼에 위의 일화를 직접 쓴 글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좋은 생각>의 칼럼을 직접 인용하고 싶었으나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좋은 생각> 최근 호들이 없으므로 찾을 수 없었다.)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면, 시인으로써 죽은 것인가. 정치성을 띄는 것이 미적 자율성의 ‘죽음’을 의미할까. 이런 물음들에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미적 자율성과 정치성은 반비례 관계가 아니다. 

2.1. 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통합적 시의 제시 - 박혜인, 「노동절 전야제」 
 이에 대한 근거는 『서정성과 정치적 상상력』의 「전형기의 피로, 수사학의 탕진」제 1장 “문학과 정치에 대한 지루한 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통합된 인간형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제시하는데 나는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여러 차원의 인간이 한 인간 속에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 ”윤리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미적 인간이며 동시에 정치적 인간, 자신 속에 여러 층위의 자신이 소통하는 협업적 인간“으로서 나는 감히 나 자신의 시를 예로 들고자 한다. 

오후 6시, 아직 날이 밝은데 
낮달이 떴다 

평일 저녁 고된 노동을 마치고 
스타렉스를 타고 관광버스를 타고 
속속 도착하는 노조 동지들 

경찰들이 국채보상공원을 둘러싸자 
순간, 긴장! 
누군가가 경찰에게 쌍욕을 던진다 

나는 상현달보다 크고 보름달보다 작은 저 달의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사회자의 진행을 듣고는 
노동절, 로 3행시를 지어본다 

건설 노조 아재들이 양반다리로 앉아 
담배 연기를 흩날린다... 
기침! 

한 아재가 구운 계란을 나눠준다 
계란달, 
저 달의 이름은 이제부터 계란달이다 

-박혜인,「노동절 전야제」전문, 2015 

 위의 시에서 화자는 노동절 전야제에 참여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낮달을 보며 “상현달보다 크고 보름달보다 작은 저 달의 이름이 뭔지 생각하”는 미학적 행위를 하고 있다. 정치적 인간인 동시에 미학적 인간인 것이다. 이 시를 쓸 당시의 나는 알바 노조 조합원으로 대구 국채보상공원에서 열린 노동절 전야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늦은 저녁이 되자 배가 슬슬 고팠고, 노조 동지가 나눠주는 구운 계란을 반갑게 받아드는 순간, 그 달의 이름인 계란달이 떠올랐다. 아마 낮달을 보면서 계란을 먹는 경험을 처음으로 그 당시에 했기에 그러한 명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먹을 것을 나눠먹는 작은 연대 행위가 마법적이고 황홀한 서정성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문학이 정치성을 띌 수 있는 것과 마찬가로, 정치도 미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학과 정치는 한 쪽이 한 쪽에 우위를 점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유기적 관계이다. 

2.2. 문학과 정치의 유기적 관계 -  송경동,「혜화경찰서에서」 
 위의 시를 쓰기 전에, 문학과 정치의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대한 예시로 생각한 작품은 송경동 시인의 「혜화경찰서에서」이다.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아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송경동, 「혜화경찰서에서」전문,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 2009 

 위의 시에서는 경찰들의 압수 수색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사랑이 없이, 인간을 조사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을 비판하는데, 그 수단은 서정성이다. 위의 시에서처럼 서정성이 정의롭지 못한 정치에 대한 비판 수단으로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3. 결론 - 정치와 문학의 상호 영향과 이들에 대한 시인의 의무 
 문학에서의 정치적 감수성은 불의에 대한 '분노'와 불의를 당한 이들에 대한 '연민'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곧 '연대'로 이어진다. 깨어있는 사람들의 연대는 곧 정치적 행동과 정치적 변혁으로 승화된다. 문학이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가 문학에 끼치는 영향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시 「노동절 전야제」에서처럼, 작은 연대 행위가 마법적 서정성으로 바뀔 수 있는 예를 보았다. 
 이처럼 정치와 문학의 관계는 한 쪽이 한 쪽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양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관계이다. 
 '분노'와 '연민', 더 나아가서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감수성이 있는 시를 쓰는 것은 시를 쓰고 있는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 작은 한 걸음이 집회 현장에서 먹을 것을 나누는 작은 연대 행위를 서정성으로 승화시킨 「노동절 전야제」이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사는(生)것임이 나의 시론이다. 브레히트가 노래했듯이 "서정시가 어려운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이 시대에 그러한 시를 쓰는 것은 당연히 시인으로서 의무이다. "상현달보다 크고 보름달보다 작은 저 달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시인의 마땅한 의무 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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