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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의 그럴 듯한 이야기. '마당이 넓은 집에 사는 이유'
게시물ID : lovestory_775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3
조회수 : 10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09 19: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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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0141214_143717.jpg


설에 할아버지 할머니 잘 뵙고 오셨나요? 저는 전화로 인사드렸어요
설날마다 외가집에 가면 항상 할아버지는 불을 때느라 바쁘셨습니다. 
할머니는 손주 입에서 배고프다는 얘기가 나오면 민방위 방송이라도 나온 것마냥 돌격자세로 입에다 뭘 더 넣어주려고 바쁘셨구요
언제까지 이렇게 옆에 있어주실 수 있을까 몰라서 1년에 한 번이라도 좀 뵙고 싶은데 갖은 변명을 들면서 가질 않고 있네요
올해는 하룻밤이라도 가서 뵙고 와야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써봤습니다.
설 연휴 자식들을 다 배웅하고 두 분만 남으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구요.
재미있게 읽히면 좋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마당이 넓은 집에 사는 이유


-예진이껀데, 이걸 놓고 갔나봐요.

아내가 손녀의 곰인형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연휴 내내 깔아놓았던 이불을 개다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얼른 전화해봐요. 너무 멀리 간 거 아니면 이것 좀 챙겨서 가야하지 않을까?
 

세상이 좋아져서 핸드폰의 숫자 3만 꾹 누르고 있으면 자동으로 막내에게 전화 연결이 됐다.

전화를 받은 딸의 주변에서 시끌벅적하게 손녀 목소리가 들렸다.

-응 나다. 예진이가 인형을 놓고 갔더라. 잘 때도 손에서 놓질 않더니 이거 놓고 가서 어떡하니?

~챙긴다고 챙겼는데 짐이 많아서 빠뜨렸나봐요. 그래도 예진이는 인형 없는 줄도 모르고 지금 잘 놀고 있어요.

-멀리 안갔으면 잠깐 차 돌려서 가지고 가지 그러냐?

~지금 고속도로 타서 차 돌리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그럼 택배로라도 부쳐줄까?

~아뇨 괜찮아요 애라서 며칠 달래고 또 다른 인형 사주면 아마 금방 까먹을 거에요. 걱정마세요 아빠.

-그래라 엄마가 차 안에서 김치냄새가 너무 심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된댄다

~김치 냄새야 참고 가죠 뭐. 엄마가 신경써준 김친데. 그보다 뒤에 얼마나 많이 싣었는지 룸미러도 안보여요 아빠. 저 운전 중이라 집 도착하면 전화드릴게요.

-그래 조심히 운전하고, 올라가는 길에 애들 맛있는 거라도 사먹여라. 애들 용돈 많이 못 준게 마음에 걸려.

~많이 못 주긴요. 엄마아빠 쓰시라고 드린 봉툰데 기어코 거기서 돈 빼서 주신거면서. 이따 전화할게요

-그래 조심히 운전해라 끊는다.

-막내가 괜찮다네. 애가 어려서 금방 까먹을거라고.

-아유 그 어린 것이 오늘 밤은 또 엄청 울겠네. 밤마다 안고 자더라마는.

아내가 주는 곰인형을 받아 TV 옆에 두었다. 매 끼니마다 밥상을 물리고 나면 지 자리인 마냥 할아비 무릎 위에 앉아서 재롱을 부리던 손녀가 아끼는 인형이었다. 괜히 앉은 자리가 허전했다. 집이 너무 조용해서 틀어놓은 TV는 아까부터 고속도로의 정체상황을 공중에서 찍어 보여주고 있었다.

-저렇게 차가 막히면 운전하는 애들도 힘들텐데. 조금만 더 있다가 차 좀 빠지면 올라가라고 할 것을 그랬나봐요.

-다 자기 일 하느라 바쁜 애들이지않소. 다 어엿한 성인들인데 이제 또 할 일들 하러 돌아가야지. 저녁 돼서 전화라도 오면 괜히 그런 말 하지말아요. 애들도 집에서 쉬고 싶은 것을 여기까지 내려와서 제 부모 보고 가는 건데, 이렇게 왔다간 것만 해도 고마워합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고 작은 차들로 빈틈없이 꽉 차있는 도로를 보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룻밤 더 있는 게 힘들면 피곤할 애들 조금이라도 일찍 채비해서 보내는 게 나았을 텐데. 괜히 부모 마음으로 자식들을 더 힘들게 만든 것만 같았다.
 

-사람도 없는데 불 좀 빼고 와요.

깔았던 이불들을 다 치우고 걸레로 바닥을 훔치던 아내가 말했다.

-그래야겠네. 장롱에 이불 넣는 건 내가 할테니까 걸레질만 해요.

차로 꽉 찼던 마당은 다시 텅 비어있었다. 바퀴에 붙어있었던 것들인지 곳곳에 덩그러니 남은 흙들만 곳곳에 붙어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 앞을 대빗자루로 쓸던 맏사위도 저 흙들은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날이 좀 따뜻해지면 마당을 좀 쓸어야겠다. 쉬라고 해도 듣지 않고 마당을 쓸었던 사위 덕에 요 며칠은 집 앞이 깨끗했다.

눈이 안 와서 다행이었다. 햇빛이 늦게 들고 빨리 지는 산골이라 눈이라도 왔으면 오가는 사람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설은 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날이 좋았다. 길이 좋아서 아내를 데리고 시내에 나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애들이 오기 전에 뭘 그리 준비하는 게 많은지 아내는 올해도 작년처럼 분주했다. 쌀을 챙겨서 떡을 뽑고, 참기름을 짜고, 손주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냉장고를 채웠다. 긴 시간이 걸려서 오는 애들 괜히 손 무겁게 오게 하지말자며 차 뒷자리에 먹을 것들을 실었다. 요 며칠은 늙은이 두 사람이 사는 집답지 않게 가득 찬 냉장고였다.

아내는 아내대로 음식들을 장만하고, 나는 나대로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 옆에 쟁였다. 간만에 지게를 들었다. 나뭇짐이 무겁지 않았다. 내가 해온 나무로 내가 때운 불에 우리 자식 내외와 손주들이 따뜻하게 잔다면야 무거울 게 없었다. 설날 새벽에는 밖에 나와 아궁이에 장작을 더 집어넣었다. 나가는 문 앞에 솜이불을 차고 자던 손자의 얼굴이 보였다. 충분히 훈훈한가보다. 행여나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 때문에 내 새끼가 깰까 조마조마했지만 부드러운 볼을 놔줄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녀석을 쓰다듬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온 밖은 새벽 공기가 찼다. 저도 남의 귀한 집 아들인데 사위에게 자다 깨서 불 좀 때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귀한 아들에게 밖에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늙으면 잠이 주는 건 새벽에 깨어나 자식들이 잘 자도록 불을 때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저 나이일 때도 내 아버지 역시 나처럼 새벽에 나와 불을 땠을 것이다. 말하자면, 아버지란 항상 자식들이 따뜻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인 것이다.

애들이 다 나가고 둘만 남은 집은 안방만 훈기가 돌아도 충분했다. 불을 떼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남기고 간 온기로 한동안 집이 따뜻할 것 같았다. 평소에는 쓰지 않지만 애들이오면 잘 곳이 부족해 열어뒀던 방의 문들을 하나씩 닫았다. 9월 추석까지는 이 문을 열 일이 없을 성 싶었다. 우리는 둘만 살기에는 넓은 집에 살고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자라던 오남매가 하나둘씩 독립을 하고 분가를 하면서, 일곱 명이 살 때야 비좁아보이던 이 집은 어느새 두 사람이 살기에는 많이 넓은 집이 되어있었다. 아이들은 내려올 때마다 이 집을 팔고 병원이 가까운 시내로 이사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비가 샐 때마다 지붕을 덧대가며 살아온 집이고, 자식들과 함께 살았던 집이라 얼마나 애착이 가실지 알겠지만 나이를 생각해서 더 좋은 집으로 옮겼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너희들 말은 잘 알겠다. 생각을 좀 해보마했지만 사실은 내 생전에 이 집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병원이야 아직 운전하는 데 무리가 없고 차도 잘 굴러가니 괜찮았다. 먹는 거야 노인 둘이서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텃밭에서 나오는 푸성귀에 밥만 있으면 됐다. 아이들 말처럼 가족이 함께 큰 집이라는 것도 이 집을 떠날 생각이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그 것은 무엇보다도 이 집의 마당이 넓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차 5대가 한꺼번에 서있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이 집의 마당은 넓었다. 그리고 내 자식들이 언제 와도 여유롭게 맞아줄 수 있는 이 마당이 있어 나는 이 집이 좋았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것 없이 눈치 볼 것도 없이 아이들은 언제든 와서 이 마당에 차를 대고 집 문을 두드리면 됐다. 그러면 나와 아내는 웃는 낯으로 내 자식을 반겨줄 터였다. 좋은 일이 있어 올 때도, 혹여나 힘들어서 오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빗장 걸린 대문에 막히는 일 없이 집 앞까지 들어올 수 있게끔, 그래서 나와 아내는 이 집에 머무는 것을 고집했다. 부모이기 때문이다.
 

-들어와서 전화 좀 받아요. 용빈이가 할아버지 좀 바꿔달라고 하네.
 

-어 누구냐? 용빈이냐?

~네 할아버지 용빈이에요! 어떻게 잘 지내셨어요?

-어야 나는 잘 있지! 밥은 먹었냐?

~네 할아버지 밥 엄마가 차려줘서 잘 챙겨먹었어요! 방학이라 집에 내려와 있어요

-그래 엄마 말 잘 듣고. 학교 다닌다고 타지에 나와 사는데 집에 있을 때 집 밥 많이 먹어! 몸 잘 챙기고!

~네 할아버지 설인데 못 찾아뵈어서 죄송해요. 엄마도 죄송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멀리서 전화로나마 말씀드려요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못 오는 건 괜찮다 바쁜 거 다 안다 몸 건강히 잘 챙기고!

~네 할아버지 올 한 해도 아프지 마시고 할머니랑 건강히 잘 계세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어야! 그래 잘 지내고 시간되면 놀러와~

~네 할아버지!
 

-용빈이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네.

-아유 우리 이쁜 손자, 설이라고 전화도 할 줄 아네. 다 컸어요 다 컸어

-나중에 시간 되면 놀러오겠다하고 끊네. 여름 방학에야 한 번 올 모양이야.

-그래요? 아이구 그럼 또 우리 용빈이 좋아하는 수박 사다놔야겠네.

-큰 애가 못 왔다고 마음이 안 좋나봐.

-저 멀리 전라도까지 내려가 사는 애가 어디 올라오기가 쉽나 우리도 다 알지. 아마 저녁에 전화할 거에요. 받으면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당신이 잘 얘기해요.

-아무렴, 그래야지. 큰 애한테도 이것저것 좀 보냈소?

-김치하고 잡채하고 두부하고 좀 챙겨서 보냈어요. 그 집은 애들이 다 커서 많이 먹을 테니까 박스만 세 박스를 보냈네.

-잘 했네. 온 애들은 다 밥 잘 먹던가?

-셋째가 속이 좀 불편한가 오늘 아침은 잘 못 먹대요. 그래서 내가 손 좀 따주겠다고 했더니 자기도 이제 다 큰 어른이라고 웃대요. 셋째도 이제 개구쟁이 어린애가 아닌데 내가 그걸 자꾸 까먹어.

-그걸 까먹는 게 어디 당신뿐인가. 나도 밥 먹을 때 고기 살점 발라다가 애들 수저 위에 올려주고 싶은 걸 겨우 참았네.

-냉장고에 삼겹살 남은 것들도 좀 싸줄걸 그랬어요. 하나라도 더 챙겨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데. 애들한테 돈 받은 건 저축해놓게요. 우리 예진이 중학교 들어가면 교복이라도 맞춰줘야지.

-예진이 교복만 맞추겠는가 우리 용빈이 장가가면 쓰라고 또 돈 줘야지.

-알뜰하게 다 모아야겠네. 나중에 다 우리 강아지들 줘야지. 우리, 용빈이 장가갈 때까지 만이라도 건강하게 삽시다.

-그럽세.

-나 여기 팔 좀 주물러줘요. 차가 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었더니 팔이 다 아프네.

-우리가 늙어서 어딜 가겠는가. 왔다 가면 가만히 서서 애들 맞이하고 배웅해주는 게 이제 우리 할 일이지.

-다리도 불편한데 서서 애들 보내느라 고생했네요.

-애들 가는 길에 불편하다고 앉아서 보내면 또 얼마나 걱정을 하겠는가. 자기 일들만 해도 신경 쓸 일이 많을 텐데 우리까지 걱정시키진 말아야지.
 

-우리가 정정하게 웃는 낯으로 애들 배웅하는 게 자식들 걱정 안시키는거야. 앞으로도 나는 되는 날까지 우리 애들 똑바로 선 채로 보낼라네. 자네도 그리 할런가?

-그래요 같이 낳은 자식들인데, 우리 같이 오래오래 건강해서 오래오래 애들 맞아줍시다.
 

마주보고 앉은 방바닥은 여태 뜨뜻했다. 온 가족이 앉았던 방바닥에 지금은 우리 내외만 앉아있지만 그리 허전하지 않았다. 아마도, 텅 빈 마당이 텅 빈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출처 www.facebook.com/some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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