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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유럽의 대단함!
게시물ID : history_254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침
추천 : 10
조회수 : 2252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6/02/14 10: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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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시인이자 작가, 외교관이었던 우사마 이븐 문키드(1095~1188)는 동시대 프랑크인들의 생활모습을 기록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황당하거나 부정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알 아크사 사원을 찾았다. 그곳은 나의 벗들인 성전 기사단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였다. 사원 한 귀퉁이에 작은 예배당이 있었는데 그곳에 프랑크인들이 예배소를 만들어 놓았다. 성전 기사단은 내가 기도를 드리러 이 사원에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해 주었다. 어는 날 그곳을 찾은 나는 "신은 위대하시다" 라고 말한 다음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때 한 남자가 나를 덮치더니 나를 붙잡고 내 고개를 억지로 동쪽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도를 드릴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 즉시 성전 기사단이 뛰어와서 그를 떼어놓았고, 나는 하던 기도를 마저 하였다. 그러나 내가 방심한 틈을 타 그 사내가 다시 달려들어 내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서 다시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한단 말이다!" 이번에도 성전 기사단이 그를 떼어놓은 뒤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자는 뭘 모르오. 방금 프랑크의 나라에서 온지라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본 적 없었을 것이오." 나는 기도를 다 올렸다고 말하고는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렸다며 길길이 날뛰는 그의 포악함에 질겁하며 사원을 떠났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번은 프랑크인들의 축제를 구경한 적이 있다. 기사들은 마상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도시를 나섰다. 그들은 남루한 차림의 노파 둘을 데리고 와서는 경기장 한쪽 끝에 세웠다. 맞은편 끝에는 돼지고기를 걸어둔 바위가 있었다. 기사들은 두 노파에게 달리기 경주를 시켰다. 그들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구경꾼들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마침내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노파 한 명이 자랑스럽게 돼지고기를 낚아챘다.



​프랑크의 재판과정은 더더욱 가관입니다.

​나블루스에서 나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재판에서 젊은 대장장이가 늙은이를 고소하였는데, 법정에서는 이들 둘이 무기를 잡고 싸우라고 명했다. 늙은이는 손가락을 딱딱 마주치면서 맞설 의사를 표시하였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노인이 대장장이를 밀었다. 그는 군중 쪽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결투장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수 차례의 가격이 오갔는데 어찌나 격렬하던지 결투자의 피만이 일직선으로 오가는 듯 하였다. 속히 매듭을 짓기를 바라는 영주의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끝날 줄 몰랐다. 마침내 노인의 기운이 다 빠지자 대장장이는 그에게 일격을 가해 넘어뜨렸다. 대장장이는 노인에게 달려들어 그의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으려 하였으나 피범벅이 된 상태라 조준이 힘들었다. 그래서 대장장이는 일어서 결정적으로 창을 꽂았다. 사람들은 즉시 시신의 목에 밧줄을 걸고 그를 교수대까지 끌고 갔다.


보시라. 이것이 프랑크인들은 재판이라 한다!



​참고로 이때당시 이슬람 세계는 쿠란에서 정한 논고, 변론, 증언이라는 확실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프랑크인들의 재판은 말그대로 '신의 뜻에 따르는' 재판이었지요.


이 밖에도 물의 심판, 불의 심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물의 심판은 죄인을 대야에 넣고 끝까지 가라앉으면 유죄, 가라앉지 않으면 무죄였다 전해지며, 불의 심판의 경우에는 뜨겁게 달궈진 길을 걸을 때 끝까지 가면 무죄, 중도에 화상으로 죽으면 유죄였다고 하니 말 다했습니다. 이런 심판은 받지않고 싶다고요? 그럼 화형입니다.



​그들은 물을 가득 채운 커다란 통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혐의를 받은 청년의 온몸을 결박한 채 배꼽 근처에 밧줄을 매달아 통 안으로 떨어뜨렸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결백하다면 물통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니 그 때 밧줄을 당겨 끌어올릴 것이라 했다. 반대로 그가 죄가 있으면 물 속으로 빠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불행한 사내는 물 속으로 던져지자마자 사력을 다해 바닥으로 가라앉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가혹한 법 집행을 받아야만 했다. 신이여, 그들을 벌주소서! 이윽고 그들은 벌겋게 달군 꼬챙이로 그의 눈을 찔러 소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사마는 또한 프랑크의 의학에 대해 논평하기도 하였는데, 역시 부정적인 논평이었습니다.

​어느 날 무나이트라의 프랑크인 통치자가 나의 숙부에게 위중한 환자 몇몇을 돌봐줄 의사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숙부께서는 그리스드교 신자 중에서 타비드라고 하는 의사 한 명을 뽑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며칠 만에 돌아왔다. 우리는 그가 무슨 수로 그리 빨리 환자들을 치료했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자 타비드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들은 다리가 곪아 들어간 기사 한 명과 결핵을 앓던 여인을 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나는 그 기사에게 고약을 붙였고, 여인에게는 열을 내리게 하는 식사 요법을 처방했습니다.그런데 프랑크인 의사가 와서 말하기를, "이 자는 환자들을 고치는 법을 모르오!" 그러고는 기사를 향해 "어느 쪽을 택하겠소? 한쪽 다리만으로 살아 남는 길을 택하겠소, 아니면 양쪽 다리를 다 가진 채 죽겠소?" 환자는 한쪽 다리로 살아남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곧 프랑크인 의사는 나무 작업대 위에 다리를 올려 놓게 한 뒤 기사의 다리를 잘라버렸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완전히 절단되지 않자 다시 내려치는 것이었습니다. 다리의 골수가 사방으로 튀었고 결국 환자는 즉사했습니다. 이번에는 결핵에 걸린 여인을 향해 이러한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 여인의 머릿속에 악마가 들어앉아서 이 여인과 사랑에 빠졌소!"


사람들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는 악마를 퇴치한다는 마늘과 겨자를 먹였습니다. 그러나 이 처방은 도리어 증세를 악화시키기만 하자 의사가 소리쳤습니다.


"악마가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아서요!"


그는 면도칼을 집어들고 여인의 머리 위에 십자가를 그은 다음, 두개골이 드러나게 하더니 그 위를 소금으로 마구 문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인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가 필요없겠지요?"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프랑크인 의사들에 대해 몰랐던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프랑크의 의학기술은 역시 대애애애애애애애애단!

​우사마의 기록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면 참으로 가공할 노릇입니다. 오줌쌀거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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