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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학온지 1년만에 쉐프가 된 이야기.. 1
게시물ID : cook_1742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꼬추니꼬추
추천 : 41
조회수 : 2956회
댓글수 : 261개
등록시간 : 2016/02/14 11: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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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자게에 쓸까 요게에 쓸까 하다가 자게에 흠 자게에 쓸까 요게에 쓸까 하다가 요게에 남깁니다.

저를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뒤로 유학에 욕심이 생겨서 유학을 오게된 가난한 요리유학생입니다.

제가 한 번 쯤은 제 경험을 제가 여가시간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오유에 남기고 싶었는데요

오늘에서야 날 잡고 글을 한번 쓰게 됩니다.

 약간 길수도 있고 약간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당!

그럼 발렌타인데이에 받은 초콜렛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음슴으로 음슴체입니다.


2011년, 수능을 치루자마자 횟집 설거지를 시작으로 주방에서 일시작한지 3년...

요리유학... 아니 외국을 한번 나가보는게 꿈이었음..

그러던중 문득 요리유학을 빨리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평생못가겠다는 경박심이 들기 시작했음.

그래서 유학원을 돌아 다니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 캐나다, 미국, 유럽, 호주가 있었음. 그 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유럽이었으나,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학비가 가장 싼 캐나다로 결정함.

그런데 하나의 관문이 있었음. 아이엘츠라는 영어점수를 6점이상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음.

영어를 웬만큼 하신 분들은 우스운 점수겠지만, have 랑 had도 구분을 못했던 나에겐 아주 큰 관문이엇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주 큰 관문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아주 큰 문제였음.

유학원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입학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그렇게 까지 할 형편은 안되었고, 또 이 영어점수는 말 그대로 커트라인인데,

이 점수도 못 넘으면 유학을 가서도 패망일 거란 생각에 점수 안 나올바엔 안 간다는 생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함.

이 때, 고등학교 때 공부안 할 걸 좀 많이 후회함.. 지식이 없는 것을 후회한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도 몰랐고, 습관을 만들 줄도 몰랐음..

 그렇게 아주 천천히 대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함.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는 설명해봤자, 얼마나 성과없이 공부했는지 떠벌리는

 꼴이라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음.

시간이 흘러.....흘러 흘러

2013년...

정확하게 14번 시험을 봤음.. 1번 시험보는데 30만원정도 하는 영어시험을 14번을 봣음... 1년 반동안..

13번째에 볼 때, 울면서 시험장에 들어 갔음. 그리고 "이번에 시험봐서 안되면 다 잊고 다시 일시작하자".. 이런 생각으로 들어감.(왜냐면 이 때, 3년간 유
학가려고 모은 돈을 상당부분 까먹음. 영어공부에 집중하려고 일도 안하던 때라서, 더이상의 백수생활은 힘들었음)

그런 비장한 각오로 13번째 마지막 시험을 치룸.. 시험 다 치루고 나와서, 나오자마자 2분만에 피시방가서 다음시험을 결제함.

이 때 기분이, 한번만 더 보면 정말 잘 볼수 있을 것 같고, 30분만 지나면 이성적인 판단으로 진짜 공부를 접을 것 같아서 바로 다음 시험을 예약함.

그렇게 14번째 시험을 보는데,,

 손도 떨리고, 목은 마른데 화장실때문에 마지막시험을 망칠수 없으니 참았음. 입술이 마른 장작처럼 느껴지고, 머리 속은 처음 유학원을 어리둥절 돌아 다니던 때부터 현재까지 필름처럼 슥슥지나감.이제는 너무나 친숙한, 나에게 더이상 시험에 관한 룰을 따로 설명하지 않는 시험관과 애써 눈빛을 회피한 채, 시험을 보기 시작함... 느낌이 아주 아주 좋았음.

 그리하여 시험결과가 나오는 2주간 정말 하루하루를 아주 애타며 기다림..

이때,  이미 일을 구해서 일을 하고 있었음. 그러니 결과가 나쁘든 좋든 나는 이제 더이상 시험을 볼 기회가 없음.

하루 12시간 주 6일 일하는 환경에서 이시험을 붙는건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음..

손에 땀이나고, 별의 상상이 다되는 시험결과 날.. 점수가 정확히 듣기 6.0 읽기 5.5 쓰기 5.5 말하기 5.5가 나옴.. 절망했음.  모두 6점이 나와야함.

다른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쉽게 나오는 점수가 나는 왜 하루에 회화 4시간 그외 9시간이상을 하는 나에게는 안나올까 그냥 한숨만 나옴..

그렇게 체념을 하고, 그냥 일에 집중했음..

그렇게 3일 뒤에 시험 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옴.. 내용인즉 "저번에 재채점 신청 하신 거, 점수 수정됬습니다"...

몇 달전에 11번째 시험본 결과가 하도 이상해서, 12만원을 또 내고 재 채점을 신청했는데, 그게 상향 수정되서 점수가 모두 6점이 나옴..

흠.... 이 때 느낌은, '그럼 이제 머하지?'...

시험준비를 하던 2년간, 이 영어 점수가 나오기 만을 기도하고, 나왔을 때의 희열을 상상하며, 나왔을 때 제스쳐까지 상상하며 공부를 해왔는데,

막상 점수가 나오니까너무 어리둥절 했음...

그렇게 이제 본격적으로 유학원을 통해서 가려는 학교에 입학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음.

유학을 가려면 되게 여러가지의 서류가 필요함, 고등학교 성적증명서부터 시작해서 아주 많았음.

특히 14장의 아이엘츠 시험성적표(계속 영어공부를 해왔다는 증명도 도움이 됨) 스캔해서 유학원에 보여줬을 땐, 나를 1초정도 안쓰럽게 쳐다봄..

그렇게 신청을 하고 기다렸는데, 나에게는 아주 무리한 소식이 날라옴..

가려는 학교에서 내 고등학교 수학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직접 와서 자기들이 낸 수학시험을 봐서 커트라인을 통과해야지 입학을 허가 할 수 있다고함. 온라인 시험은 절대 노...

고등학교의 내가 아주 미워졌음. 수업시간에 밥먹을 생각만 안했어도 괜찬았을 텐데...

솔직히 나에겐 수학시험하나를 치루기 위해, 캐나다를 간다는 것은 무리였음. 이미 모아논돈의 반을 쓴 상태였고,

 수학시험을 봐서 통과를 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통과 못했을 경우에 나는 그냥 비행기값을 날리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였음..

이 때, 주변의 조언을 아주 많이 받음.. 나로써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느껴졌음.

결국, 단 1시간의 수학시험을 위해서, 캐나다 행 비행기를 탐...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제주도 갈 때 빼고 처음 타는 비행기는 너무너무너무 신기했음.

비행기 맵을 봤을 때, 내가 한국땅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을 봤을 때, 벌써 먼가 꿈을 이룬것 같고, 무섭고, 그랬음..

결국 1시간의 수학시험을 위해, 비행기안에서도 도착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수학공부만함..

그렇게 비장하게 아이엘츠시험을 보듯이 떨며, 시험을 치루기 시작함..

10+x=15, x=?.. 진심 이런 문제가 나옴... 덧셈뺄샘.... 루트가 이해가 안되서, 루트를 엄청나게 공부해서 갔는데, 루트 문제 1개 나옴.. 그게 가장 난이도 있던것...

또다시 시간이 흘러...



2014, 4월 28일..

드디어, 캐나다 유학행 비행기를 타기 1일을 앞두었음.. 모든 짐을 정리하고, 지인들을 만나며 덕담도 듣고,,, 얼마나 큰 모험을 하게 될지 설레며 잠에듬.

앞으로 닥칠 고난과 역경은 생각도 못한 채로 겁도없이, 일본 경유하는 김에, 3일정도 일본 여행을 하고 감.. 말도 안통하지만 참 좋았음

5월 3일날짜로 학교가 시작이었음. 정확히 5월 1일에 캐나다 공항에 도착함..

영어를 아무리 배웠다 한들... 애들이 쏼라쏼라 해대는게 한마디도 안들림 ㅠㅠ 스피커로 깨끗하고 정확히 듣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음 ㅠ

덕분에 공항에서 2시간 동안, 코리아 돌아갈 수도 있다고 협박을 받으며, 붙잡혀 있었음..

힘들게 힘들게 내 상황을 설명해도 내 서류에 머가 잘못 됬는지, 계속 겁을 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라는 대로 가니, 이미 심사대를 지나 있음.. 시간은 저녘 8시.. 그래도 한번 와본 경험으로 버스를 타고 내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감.. 이미 심신이 너무 지쳐있고, 무서워서, 침대에 눕고 캐리어를 손에 붙들고 잠을 잠. 이상하게 눈물이 엄청 났음.

그렇게 다음 날, 학교를 처음 가게 됨, 본능적인 생존본능으로 한국인을 찾아서 말을 붙임. 그렇게 대화를 하는데

누나-"캐나다 언제 왔어요?"  나-"어제요" 누나-"아 잠깐 한국갔다 오신거에요?" 나-"아니요 어제 처음 왔어요"

누나-"헐... 좀 도와줄게요 잇다가 연락해요 번호 머에요?" 나- "저 폰아직 없어요 집도 알아봐야대고, 돈도 현금밖에 없어요 계좌열어야 해요;;"

이렇게 내 유학생활은 시작이 됨...



그렇게 무식하게 캐나다에 와서, 학교 생활을 한지 1주일..

1주일 사이에 아주 많은 것을 격음..

혼자 은행에 가서, 한국에 있는 내돈을 송금받을 계좌를 만듬. 계좌를 만들고 나왔을 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음.

내가 하도 못알아 들어서 아주 답답해 했지만, 그래도 만든게 어디임,.

폰도 개설함. 이건 친구가 도와줘서 쉬웟음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도 샀음( 근데 두달동안 지하철만 무제한인줄 알고, 버스는 안타고 걸어다닌게 함정)

집도 구함. 한국돈으로 45만원의 비싼돈이지만, 여기서는 싸게 구한 편임 싸게 구한만큼 그 값을함. 이게 가장 힘들었는데, 게스트하우스를 3일만 예약을 하고 와서, 2일만에 집을 구한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음 ..

무식한 짓이었던 만큼, 딱 그에 맞는 쓰레기같은 집을 구함.

친구들이 어디사냐고 물어봐서 주소 알려줄 때마다,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내 안부를 걱정해줬음

또 그런 말은 철저히 지켜서 해떨어지만 아에 방에서도 안나옴

 8명이서 하우스하나를 쉐어하는 곳이었는데, 내 인생에서 다시는 그런 곳에서 사는 일이 없도록하는게 내 목표임

방은 개조를 했는지 너무 작아서, 책상에 앉거나, 침대에 눕거나 둘중에 하나였고, 앞방에서는 방안에서 담배를 그렇게 펴대고, 뒷방에서는 대마초를 그렇게 펴댔음.

맨날 집에 들어갈 때면, 집앞에서 약에 취한 애들이 반겨줫음

게다가 자다가 천장에서 물벼락이 떨어서 침대 다 젖고, 또 이 걸 주인한테 설명을 못해서, 그냥 지나가기도 했음.

벌레는 기본이고, 밖에서 한번씩 들리는 총소리는 폭죽소리랑 햇갈리기도하고 가끔 집앞에 핏자국은 물감이라고 애써 달랬음

그래도 하루하루가 즐거웠음

모든 것이 새롭고, 나에게는 충격적이었음. 거지도 영어를 잘하는게 너무 신기했고, 내가 영어를 하면 이사람들이 알아 듣는 것도 너무 신기했음

학교도 너무 재미있었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식재료들이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고,

 흔한 음료수도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대서, 외국애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햇음.

 친구들이 착해서, 교수가 나에게 머 물어봐서 내가 못 알아 들을 때마다, 옆에서 대답을 해주는 친절함도 있었음



그런데,,,,,,

슬슬 문제가 생기기 시작함. 방도 싸게 구했고, 소비도 최대한 줄이는데,

문제는 내가 딸랑 600만원만 들고 왔다는 거임..

그게 내 전재산이었기 때문에, 600만원을 다 쓰면 난 그냥 털털 거지였음

처음에 한달에 100만원씩 쓰면 6달정도 버틸 수 있겠다고 계획하고 캐나다를 옴..

당연히 첫달에만 350만원을 씀.. 요리도구등. 준비물들이 너무 비쌋음..

그렇게 온지 2달만에 잔고가 50만원 이하로 떨어짐..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때 부터 법이 바뀌어서, 따로 비자를 받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음



그래서 이 때부터, 일을 알아보기 시작함. 생전 써본 적 없는, 영어 이력서를 들고,

레스토랑이 한가한 시간에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함.

말을 못알아 들으니, 대본을 외워서 딱 말하고 주고, 머라머라 말하면, 땡큐라고 하고 나옴..

 그게 최선이었음.  못알아들은게 티가나면, 영어 못하는게 탄로날 테고, 누가 날 고용하겠음?


일을 알아보며 이메일작전도 씀, top10레스토랑들에 다 내 메일을 뿌림..

캐나다 요리유학을 와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금이래도 배울 수 잇는 곳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정말 쉬운일이 아니었음...

그러던중, 최고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부재중 전화가옴...

다시 전화를 걸려던 찰나,,, 실제 회화도 잘 못알아 듣는데 전화통화는 100프로 못알아 들을 게 뻔하니, 전화해봤자, 바로 탈락될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검색해서 찾아감

그렇게 그 레스토랑 주변을 헤매던 중에, 다시 그 레스토랑에서 전화가옴,

이게 내 유학생활의 지옥의 시작이었음


하루 시험삼아 일을 해보고,

영어는 못하지만,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 시키면 잘한다는 것이 조금 느껴 졌는지, 바로 고용이 됬음..

 이 레스토랑에서 모든 것을 배우기 시작함.. 정말 모든 것을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재료와 지식을 영어로 외워야 했음,, 이탈리아어랑 같이 쓰는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지만, 영어로만 써도 봐주는 곳이었음

영어, 문화, 요리..

여기서 처음 6개월동안 겪은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쓰자면 정말 끝도 없을 거임..


배움도 많았지만, 몸이 정말정말정말 고됫음

여기가 bar 레스토랑이라서, 새벽 2시에 크로징을 하고, 청소를 하고 끝이나면  새벽 3시 에서 3시 반 ..  바쁜 날엔 3시반에서 4시였음 ..

근데 학교 수업은 7시 시작임,,, 수업시작하면 교수가 문을 잠궜음..

이렇게 내 육체의 한계를 체험할 수 있는 좋고도 나쁜 경험을 함

여기서 일주일에 3일을 일했는데,

아침 5시반에 일어나서, 씻고, 7시까지 학교를 감.. 그렇게 4시간짜리 수업을 두개 듣고, 4시에 학교가 끝나면, 곧장 레스토랑으로 일을 하러감..

거기서 바쁘면 4시에 끝남.. 그럼 이제 학교를 갈까.. 집을 갈까 고민하게됨..

그래도 땀에 흠뻑젖은 몸은 씻어야하니, 집을 가기로 결정함. 새벽 4시.. 30분마다 한번씩 오는 버스를 영하 30도날씨에서 기다리는 기분은 정말 짜릿함.

또 갈아 타야됨.. 그러다보면, 집에 도착해서 씻고 바로 학교로감.. 학교끝나고, 일이 없으면 천만 다행이지만, 그런 럭키는 흔치않음

다시 일을감. 일 끝남.. 이번에는 집에 가기가 무서움. 가면 하루종일 서있던 다리를 쉬느라 침대에 앉을 것 같고, 그러면 잠이 들것 같고, 그러면 못일어 날것 같음...

그래서 학교로감..학교가서 강의실앞이나 식당가서 쪽잠을 잠.

원래는 일주일에 3일만 일하기로 햇으나, 이때가 이 레스토랑의 격변기여서, 갑자기 나와달라고 하는 경우가 아주아주 많앗음. 그럼 난 나갈 수 밖에 없음

왜냐면 안나가면 영어도 못하는 나를 받아준것도 고마운데 거절하면 짤릴 것 같은 공포감이 피로를 이겼음.

이때 불만은 좀 하루 이틀전에 미리 알려줬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텐데.. 쉬는줄 알고 "이 수업만 끝나면 집가서 잘 수 있다!!!!!"라는 희망이 고문으로 바뀜..

이런 생활을 정확히 3개월정도 하니까 오줌에서 피가 나왔음. 잠을 안자고 3일정도 연속된 스케줄을 할때는 진짜 진한색이 나오고, 1일 반정도 할때는 약하고, 평소에는 정상이었음 .

그래도 이 때 일하면서, 정말 많이 배움.. 그리고 정말 열심히 했음. 남들이 걸을 때, 난 뛰어다녔고, 쉐프가 냉장고에서 머 가져오라고하면, 못알아들어도 다시 안물어보고 쉐프가 지금 필요할 것 같은거 4~5개 집어서 가져가서 보여주고 다시 갖다놓고, 혹시래도 잘못 갖고왓으면 뛰어 갔다왔음. 이런 태도로 계속일을함.  외국인 쉐프입장에서는 이런 태도로 일하는 내가 아주 좋았을 거임

2015년 8월 ..

1년 3개월이 지남.. 이상한 이 학교의 시스템때문에, 방학없이 학교를 다녀서 벌써 졸업을 하게됨..

졸업을 햇음.. 모든 게 스쳐지나감..

영어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모든게..

아무리 고생을 했다지만, 그래도 영어공부할 때가 가장 심적고생을 많이 햇음. 참.. ㅋ 생각해보면, 가장 큰 산을 앞에 두고, 그 뒤에 더 큰 산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꿈을 포기 하려고 했던 것 같음.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처음 나랑 한국말로 대화한 누나랑 정말 거의 울뻔함.

서로 정말 고생많았다고..(이누나는 잡이 3개였음) 해냈다고.. 정말 아름다웠다고, 정말정말 그리울거라고..

어쨋든

이제 진짜 풀타임 잡을 찾을 때가 됬음..

쉐프가 나한테 계속 물어봄. 너 여기서 계속 일할 꺼나 다른데 갈꺼냐

나는 당연히 다른데 가서 더 배우고 싶다고 함. 실제로 다른데로 가고 싶엇음. 캐나다에 왔으니 여러 레스토랑을 찾아보고싶엇음

그리고 3일뒤?

쉐프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함.

그말인즉 나를 수쉐프(부주방장)으로 올려 주겠다는 거임 그러니까 계속 같이 일하자는 거임

내 표정은 ????????? 머라고?

자기가 지금까지 나같은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했음. 좀 오글거리지만 너랑 함께라면 XX(도시이름) 탑레스토랑으로 만들수 잇을 것같다고함..

1년전에 자기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고함 . 그러니 내가 해줄수 있는 건 직급을 주는 거라고... ARE TOU READY? TAKE IT




그렇게 해서 수쉐프가 되어서, 지금 일을 하고있습니다..

수쉐프가 되고나서 또 문서작업, 발주 등등 새로운 직면에 부딪혀서 아주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지만, 그럭저럭 잘 하고 있습니당..;; 제생각엔;;ㅋ

.. 너무 정신없이 막써내렸내용

이땅의 요리사들 모두 화이팅. 열심히 일하는 당신!!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들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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