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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 간 대학원생 이야기 보고 적는 은사님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775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밥은먹고살자
추천 : 4
조회수 : 5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14 17: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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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공계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밟고, 박사과정 하기 전에 돈 모으려고 취직한 여징어입니다.

대학원생의 애환이야 말로 다 하기가 힘들죠. 학문에 대한 열정만으로 버티기엔 힘겨운 생활입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는지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인 지도교수님을 만나, 교수님 덕분에 버틸 힘이 더 생겼습니다.

잠시 우리 교수님 이야기 좀 할까요. 일단 외모로 보자면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계시는 멋진 노신사십니다. 아직도 연구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계시고요.  학과에 무슨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하면 대부분은 교수님이 맡으셨습니다. 뭐 이건 두루두루 다른 교수님들과 마찰 없이 지내는 사교성이 크게 작용한 것 같지만요.

교수님의 연구실에선 항상 차 향기가 났습니다. 차를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다른 교수님들이 놀러오시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죠. 생신이나 명절 스승의날 같은 때 실험실에서 소소하게 선물을 챙겨 드렸는데, 주로 다과 아니면 좋은 찻잎을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면 다른 교수님들께 대접하시기도 하셨는데, 내놓으면서 우리 애들이 줬다고 자랑을 하시는 걸 복도를 지나다가 듣고 후배들과 숨죽여 웃었던 기억이 아직껏 생생합니다. 

학과 자체에서 말투가 나긋나긋하고 화 안 내시는 걸로도 유명하셨습니다. 워낙 말씀 자체를 나긋나긋하게 하시다 보니 부작용으로 수업은 좀 졸렸지만^^; 잘 가르쳐 주셨고 시험문제도 적당한 난이도라 인기가 좋으셨죠. 전공선택일지라도 항상 강의실을 꽉 채웠습니다. 

실험실 생활로 넘어가 보자면, 저희 학교는 1학년도 랩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다가 본인이 좋은 곳에 3학년 겨울~4학년 개강쯤에 정착하라는 분위기였죠. 굳이 나서서 홍보도 않으셨습니다. 들어오고 싶단 사람은 실험실 기존 멤버들과 친해질 자리만 마련해주셨죠. 어차피 같은 학과고 건너건너 다 아는 사이고, 들어가고 싶은 실험실은 자기 맘 속으로 찜해놓은 학생들이 많아 별로 필요는 없는 절차였습니다. 교수님은 그래도 길게 얼굴 볼 사이들끼리 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고요.

그러면서 항상 건강이 최고라는 말씀을 달고 사셨습니다. 아마 당신이 큰 수술을 겪어보셨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셨을 거에요. 실험을 하면 항상 천천히 무리하지 말아라, 밤늦게 남아 있으면 걱정부터 하시고 기다렸다 데려다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환절기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교수님 본인도 알러지에 시달리고 계시면서 병원 가자고 끌고 가셨고, 수업이 없으면 그대로 집에 보내셨습니다. 다음날은 약 먹었는지 검사까지 하셨는데, 자취하는 학생들은 우리 교수님은 엄마보다 더 하시다고 웃었습니다.

시험기간엔 남아있는 학생들이 많으니 모여서 저녁이라도 먹으라고 카드 주고 가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부실하게 라면 같은 거 먹고 공부하려면 배고파서 어쩌냐고요. 괜히 죄송하다고 싼 거 먹으면 다음날 그런 거 먹고 공부가 되냐는 잔소리를 듣기 마련이었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으러 가면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고기반찬은 다 밀어주시고, 특히 남학생인 경우는 두 그릇은 기본으로 먹어야 힘이 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잘 먹으면 흐뭇해 하시는 분이셨죠.

실험도 흔한 말로 보채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지적을 하실 때도 말투가 항상 부드러우셔서 민망하지 않았던 게 가장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도 좋지만 이런 방법은 어떠니? 괜찮지만 여기에 이런 걸 더 넣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떠니? 같은 이야기들. 네 생각은 어떠냐는,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하시는 것.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네 의견도 좋구나, 그렇게 해 보도록 하자. 이런 말을 듣다 보면 다 떠나서 듣기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도 돈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좀 모아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지라 취직하기로 결심했을 때, 교수님은 그래 좋은 자리가 나와야 할 텐데, 추천서가 필요하면 내가 언제든지 써 주마 하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 때 어렴풋이 내가 이만한 분을 어디 가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더군요. 물론 취직해 보니 그 걱정 현실이 되었습니다.

타지 생활에 처음 겪는 사회에 멘탈이 너덜너덜해 져서 지쳐 있을 때, 졸업해서 떠난 제자를 잊지 않고 안부문자 보내 주신 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졸업하면서 미처 논문을 다 쓰지 못하고 초안만 남겨두고 왔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실적 삼으라고 주고 왔었는데 교수님이 정리하시고 제 이름을 걸고 투고해 주셨더군요. 잘 지내냐며 시작한 문자는 네가 남기고 간 논문을 어느 학회에 투고해서 며칠 전에 게재확정이라는 답을 받았단다. 나중에 확인해 보거라. 타지에서 항상 건강 조심하고. 그렇게 끝났습니다. 근무 중에 눈물이 펑 터져서 화장실에 혼자 틀어박혀 화장을 고쳐야 했죠.

며칠 전 구정에도 선물 사들고 찾아뵈었습니다. 이직을 하려고 퇴사했다는 제 이야기에 교수님은 또 1년 전과 똑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내 추천서가 필요하거든 언제든지 오거라. 같이 취직했었고, 역시 계약 기간이 끝나 취준생으로 돌아온 동기와 슬쩍 웃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직장생활 중에 이상하게 교수님이 뵙고 싶어지더라는 말을 했더니, 너도 그랬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그래도 교수님 만나는 복은 있었더라면서.


뭔가 교수님 자랑만 잔뜩 한 글입니다. 혹여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는 오유인이 있더라면 부디 남들에게 잔뜩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좋은 교수님을 만났으면 해요.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 지쳐 있을 때 부모님에 이어 교수님이 생각날 정도로, 그럴 정도로 좋으신 분을.
출처 6년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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