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는 조선총독부가 1925년 6월 칙령 제218호로 공포한 ‘조선사편수회관제’(朝鮮史編修會官制)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총독부 총독이 직할하는 기관으로, 일본민족의 우위성을 입증하고 한국인의 민족의식 말살을 목적으로 조선사편찬위원회규정(1921년 12월 4일 조선총독부 훈령 제64호)에 따라 발족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확대·강화하여 발족시킨 기구이다. 1937년까지 97만5534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조선사》 35편, 《사료총서》 102편, 《사료복본》 1,623을 편찬하였다[1].
조선사의 편찬과 자료 수집을 주로 하였으며,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한국사를 왜곡하여 타율적이고 정체된 사대주의적인 역사로 규정하는 활동을 하였다.[2]
일제는 조선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취조국을 두었고, 그 역할은 1915년 중추원 편찬과, 1922년 조선총독부 직할의 조선사편찬위원회를 거쳐 1925년 조선사편수회가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과 조선의 학자들이 자료 수집과 집필에 참여하였고, 1938년 《조선사》 37권이 간행되었다. 1945년 8·15 광복으로 해산되었다.
직제 및 직원 명단[편집]
이하 직책별 직원 정보는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를 기반으로 하여 작성되었다. 성명 옆의 날짜는 재임기간이다.
조선사편찬위원회 (1922~1925)[편집]
위원장[편집]
위원장직은 정무총감이 겸임하였다.
- 이완용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박영효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권중현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나가노 모토키 (1922년 12월 28일 ~ 1924년 12월 1일)
- 오다 미키지로 (1922년 12월 28일 ~ 1923년 3월 29일)
- 유맹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이능화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어윤적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정만조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3]
- 이마니시 류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이나바 이와키치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마쓰이 히토시 (1922년 12월 28일 ~ 1923년 8월 16일)
- 가시와라 쇼조 (1922년 12월 28일 ~ 1923년 8월 16일)
- 이병소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윤영구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현채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2월 3일)[4]
- 홍희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이상영 (1922년 12월 28일 ~ 1923년 3월 25일)
- 후카가와 덴지로 (1923년 4월 18일 ~ 1924년 6월 8일)
- 오쓰카 쓰네사부로 (1924년 12월 12일 ~ 1925년 6월 8일)
- 이진호 (1924년 12월 12일 ~ 1925년 6월 8일)
- 야마자키 마사오 (1924년 12월 12일 ~ 1925년 6월 8일)
- 이나바 이와키치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김동준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가네코 마사키요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가쓰라기 스에지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김용적 (1922년 12월 28일 ~ 1925년 6월 8일)
- 이나바 이와키치 (1922년 12월 1일 ~ 1925년 6월 6일)
- 마쓰이 히토시 (1922년 12월 1일 ~ 1923년 7월 31일)
- 홍희 (1922년 12월 31일 ~ 1925년 6월 6일)
- 가시와라 쇼조 (1922년 12월 10일 ~ 1923년 8월 16일)
- 이능화 (1923년 12월 31일 ~ 1925년 6월 6일)
- 다카하시 다쿠지 (1924년 6월 30일 ~ 1925년 6월 6일)
- 세노 바유 (1924년 11월 30일 ~ 1925년 6월 6일)
- 구로이타 가쓰미 (1924년 11월 30일 ~ 1925년 6월 6일)
조선사 편수회 (1925~1945)[편집]
회장직은 정무총감이 겸임하였다.
- 이쿠타 세이자부로 (1925년 7월 20일 ~ 1929년 11월 8일)
- 시노다 지사쿠 (1925년 7월 20일 ~ )
- 이진호 (1925년 7월 20일 ~ 1929년 1월 19일)
- 오다 쇼고 (1925년 7월 20일 ~ )
- 유맹 (1925년 7월 20일 ~ 1930년 3월 21일)
- 어윤적 (1925년 7월 20일 ~ 1935년 3월 7일)
- 이마니시 류 (1925년 7월 20일 ~ 1932년 5월 20일)
- 야마자키 마사오 (1925년 7월 20일 ~ 1928년 3월 30일)
- 이능화 (1925년 7월 20일 ~ )
- 이병소 (1925년 7월 20일 ~ )
- 윤영구 (1925년 7월 20일 ~ )
- 고타케 마사요시 (1928년 5월 22일 ~ 1929년 10월 28일)
- 최남선 (1928년 12월 20일 ~ )
- 이마무라 다케시 (1929년 12월 4일 ~ 1931년 7월 22일)
- 다케베 긴이치 (1929년 12월 5일 ~ 1931년 7월 1일)
- 하리마 겐시로 (1930년 1월 18일 ~ 1932년 2월 12일)
- 하야시 한조 (1930년 7월 15일 ~ 1937년 10월 30일)
- 우시지마 쇼조 (1931년 11월 7일 ~ 1936년 5월 21일)
- 하야시 시게키 (1931년 11월 7일 ~ 1933년 8월 4일)
- 오타니 쇼신 (1931년 11월 7일 ~ )
- 마쓰모토 이오리 (1932년 3월 4일 ~ 1934년 11월 5일)
- 후지타 료사쿠 (1933년 4월 13일 ~ )
- 와타나베 도요히코 (1933년 9월 8일 ~ 1936년 5월 21일)
- 오타케 주로 (1936년 6월 3일 ~ )
- 도미나가 후미카즈 (1936년 6월 3일 ~ 1937년 7월 3일)
- 나가타 나오마사 (1937년 11월 9일 ~ )
- 야마자키 마사오 (1925년 7월 20일 ~ 1928년 3월 31일)
- 김동준 (1925년 7월 21일 ~ 1925년 9월 10일)
- 이나바 이와키치 (1925년 7월 21일 ~ 1937년 6월 26일)
- 정교원 (1925년 9월 18일 ~ 1928년 3월 30일)
- 다카타케 사토미 (1928년 5월 22일 ~ 1929년 10월 28일)
- 이동진 (1928년 5월 22일 ~ 1928년 7월 27일)
- 손영목 (1928년 12월 4일 ~ 1929년 10월 28일)
- 엄창섭 (1929년 12월 3일 ~ 1934년 12월 12일)
- 하리마 겐시로 (1929년 12월 12일 ~ 1932년 2월 12일)
- 마쓰모토 이오리 (1932년 2월 16일 ~ 1934년 11월 5일)
- 가미다키 모토이 (1933년 12월 8일 ~ 1936년 6월 3일)
- 김대우 (1934년 2월 15일 ~ 1936년 5월 28일)
- 노세타니 간료 (1934년 12월 12일 ~ )
- 신구 하지메 (1936년 6월 30일 ~ 1937년 7월 3일)
- 김병욱 (1936년 7월 17일 ~ )
수사관[편집]
- 이나바 이와키치 (1925년 6월 25일 ~ 1937년 6월 26일)
- 후지타 료사쿠 (1925년 6월 25일 ~ 1926년 6월 23일)
- 홍희 (1925년 6월 25일 ~ 1935년 1월 7일)
- 나카무라 에이코 (1928년 12월 27일 ~ 1937년 6월 26일)
- 스에마쓰 야스카즈 (1935년 4월 13일 ~ 1935년 6월 8일)
- 가쓰라기 스에지 (1936년 8월 22일 ~ 1937년 3월 31일)
- 신석호 (1938년 9월 22일 ~ )
수사관보[편집]
- 다카하시 다쿠지 (1925년 6월 6일 ~ 1933년 6월 30일)
- 가쓰라기 스에지 (1925년 8월 8일 ~ 1936년 8월 22일)
- 이병도 (1925년 8월 8일 ~ 1927년 5월 30일)
- 쓰루미 다쓰키치 (1925년 8월 18일 ~ 1928년 4월 14일)
- 우시오다 후키조 (1927년 5월 31일 ~ 1927년 8월 24일)
- 스에마쓰 야스카즈 (1928년 3월 21일 ~ 1935년 4월 13일)
- 신석호 (1930년 5월 2일 ~ 1937년 9월 22일)
- 하기와라 히데오 (1933년 6월 31일 ~ 1936년 3월 6일)
- 다가와 고조 (1935년 4월 12일 ~ )
- 이종명 (1936년 3월 12일 ~ 1937년 5월 10일)
- 현양섭 (1925년 6월 6일 ~ 1934년 8월 28일)
- 가네코 마사키요 (1925년 8월 18일 ~ 1928년 3월 18일)
- 김용적 (1925년 8월 18일 ~ 1930년 12월 23일)
- 오노 도쿠조 (1925년 9월 28일 ~ 1929년 4월 5일)
- 가쓰라기 스에지 (1929년 2월 17일 ~ 1936년 8월 22일)
- 가치 세이지로 (1933년 7월 14일 ~ )
- 마에다 고조 (1935년 4월 12일 ~ )
촉탁위원[편집]
- 이나바 이와키치 (1925년 6월 6일 ~ 1925년 6월 25일)
- 사사카와 다네오 (1925년 6월 6일 ~ 1925년 8월 31일)
- 홍희 (1925년 6월 6일 ~ 1925년 6월 25일)
- 세노 바유 (1925년 6월 6일 ~ 1935년 5월 20일)
- 이와타니 다케이치 (1925년 7월 25일 ~ 1928년 6월 6일)
- 가와구치 우키쓰 (1925년 7월 25일 ~ 1931년 12월 17일)
- 시부에 게이조 (1925년 11월 4일 ~ 1934년 4월 16일)
- 나카무라 에이코 (1926년 5월 31일 ~ 1927년 12월 31일)
- 이마니시 류 (1926년 9월 28일 ~ 1932년 5월 20일)
- 박용구 (1926년 12월 31일 ~ 1932년 1월 23일)
- 스에마쓰 야스카즈 (1927년 5월 13일 ~ 1928년 3월 21일)
- 이병도 (1927년 5월 31일 ~ )
- 육종윤 (1927년 6월 10일 ~ 1927년 7월 20일)
- 권중익 (1927년 7월 31일 ~ 1927년 12월 16일)
- 김태두 (1927년 10월 20일 ~ 1928년 12월 20일)
- 조중관 (1928년 3월 31일 ~ 1932년 1월 23일)
- 최남선 (1928년 10월 8일 ~ 1936년 6월 25일)
- 신석호 (1929년 4월 27일 ~ 1930년 5월 2일)
- 하기와라 히데오 (1929년 6월 17일 ~ 1933년 6월 31일)
- 구찬서 (1929년 6월 20일 ~ 1936년 4월 23일)
- 조한직 (1929년 12월 31일 ~ 1938년 3월 15일)
- 윤용균 (1930년 4월 15일 ~ 1931년 9월 14일)
- 이마무라 도모 (1930년 7월 21일 ~ 1931년 12월 21일)
- 소노다 요지로 (1931년 9월 30일 ~ )
- 마에다 고조 (1932년 12월 31일 ~ 1935년 4월 12일)
- 다보하시 기요시 (1933년 3월 15일 ~ )
- 다가와 고조 (1933년 3월 31일 ~ 1935년 4월 12일)
- 스도 요시유키 (1933년 9월 15일 ~ 1936년 10월 24일)
- 마루가메 긴사쿠 (1933년 9월 15일 ~ )
- 구로다 쇼조 (1934년 4월 30일 ~ )
- 이시하라 도시오 (1934년 4월 30일 ~ 1937년 3월 15일)
- 마쓰오카 이와오 (1934년 6월 18일 ~ 1936년 11월 29일)
- 스에마쓰 야스카즈 (1935년 6월 18일 ~ )
- 다나카 한지로 (1936년 6월 30일 ~ 1937년 3월 15일)
- 후지이 세이치 (1936년 6월 30일 ~ 1937년 3월 15일)
- 이나바 이와키치 (1937년 6월 26일 ~ )
- 나카무라 에이코 (1937년 6월 26일 ~ )
간행 서적[편집]
- 《조선사》, 전 37권, 1938년
- 《조선자료총간》
- 《조선자료집진》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