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본영화를 좋아합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덤덤하게
풀어내서 잔잔한 감동이나 여운을 주는 영화를 말이죠.
최근에 본 우드잡(비교적 극적인 요소가 있는 편이긴 함.)을 비롯해서 까모메식당, 안경,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러브레터 등등
무리하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가 없어도 진한 감동을 주는 그런 영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왜 우린 이런 영화가 별로 없을까...하는 부러움이 들기도 했었죠.
그런데 며칠 전 이런 한국영화를 보게 되었죠.
바로
이 영화입니다.
영화는 소외된 사람들...그 중에서도 선천적으로 정신장애를 갖고 태어난 다슬이라는 아이의 일상을 담은
영화입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표현력이 부족하고 정신지체가 있는 다슬이는 할머니, 삼촌과 함께
어촌의 작은 마을에서 생활을 합니다. 입학을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않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늘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에 낙서를 하죠. 상상력이 풍부해서
늘 지니고 다니는 쌍안경 넘어로 보는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보통의 영화와는 달리 극적인 연출이나 무리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채 그저 덤덤한
시선으로 다슬이를 따라 다니면서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마치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 내내 보여지는 다슬이의 행동들이 딱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냥 정신지체아가 보이는 평범한 모습이겠거니
가볍게 넘기게 되지만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모든 실마리가 풀리면서 이해가 되고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극 중 다슬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의 연기력은 완벽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 원래 정신지체아가 출연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유해정이라는 이 아역배우의 앞길이 탄탄하기를 바랍니다.
음...뭐랄까...? 다큐형식을 빌린 반전영화라고나 할까요...?
반전이라고 표현하는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내내 덤덤하게 흘러가던 감정의 흐름을 결말부에서는
확 뒤집어 놓고 격렬하게 흔들어 버립니다. 정말 감탄하고 감동을 느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요.ㅠㅠ
거기다가 슬프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관객에게 슬픔과 눈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니가 안울고 버틸거야!?"...하는 한국영화의 흔한 신파적 요소 따위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영화 중반에에서는 '관객들이 혹시라도 지루해 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였을까요?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집어 넣어
한바탕 크게 웃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장면도 극적인 연출따윈 없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다슬이의 모습을 비춰주기만 할뿐...
한국영화 사상 이렇게 반전을 주는 영화가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반전영화야 흔하고 흔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나 반전을 담고 있으니간 나중에 놀라게 될거야. 그러니 다들 긴장들
하라고!" 하는 분위기를 영화 내내 팍팍 풍기면서 잔뜩 힘을 주기 마련입니다. 그로 인해 관객들로 하여금 결말을 미리 예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게 어떻게 생각해 보면 반전이 뭔지를 찾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그로 인해 영화를 보는 본질적인
이유나 재미를 퇴색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잔뜩 힘을 주고 뭔가 있는듯한 분위기를
풍긴 나머지 나중에 밝혀진 반전이 생각보다 기대에 미치치 못했을 때 느껴지는 실망감도 크기 마련이죠.
하지만 다슬이는 꽤 다르더군요.
이 영화는 결말부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떠한 분위기를 풍기거나 힘을 주거나 하지를 않습니다. 그저 덤덤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반전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극적인 연출이 없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덤덤함을 넘어서 지루하거나 무미건조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본다면 분면히 큰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이
정화되고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개인적으로 받은 큰 감흥으로 인해 감상평에 반전이라는 요소를 조금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하지만 일단 보시면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반전에 연연해 하지 말고 그냥 영화를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보시면 좋겠네요.
저는 설을 맞아 어머니랑 함게 봤는데 어머니도 너무 좋은 영화라고 극찬을 하시면서 한번 더 보자고 하셔서 연달아 두 번 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