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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한 군생활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613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영원
추천 : 6
조회수 : 149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2/17 16:53:35
#1

필자는 군생활하면서 부대를 많이 돌아다님.

총 2번의 부대 해체와 부사관 지원으로 인한 한번의 전출, 장기파견으로 1년정도의 파견생활까지 총 5번을 돌아다님.

군생활을 그렇게 오래한것도 아님. 병사복무까지 합쳐서 5년 살짝 넘음.

1년에 1번씩 옮겨다녀서 파견지에 있는 장교들이 내가 돌아다닌 이야기를 하면 '니가 무슨 장교야? 왜케 돌아다녘ㅋㅋ' 소릴 들음.
(소령정도되면 아마 5번정도 옮겼을것임...)

#2
처음 이등병으로 전입온 부대는 괜찮았음.

좀 오래되긴했지만 신막사에 개인 관물대, 침상이 아닌 개인침대였고. 내무부조리도 거의 없는편에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음.

무엇보다도 맞선임과 군번차가 6개월.

풀린군번이 된것임.

1년정도만 참으면 분명 나머지 10달은 편하게 보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군생활을 임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부대가 제2신교대로바뀜.

(제2신교대 : 2010년 중순에 생겨 1년정도 유지하고 다시 폐지되었음..)

그전에도 바뀐다 안바뀐다 말이 많았는데 진짜로 바뀌어버린것임.

왓더.. 

그렇게 부대는 행정병및 조교를 할 인원, 전역이 6개월 미만정도 남은 병력들만 남기고 전부 전출을 보냄.

물론 그 전출에는 나도 있었음.

#3
쌩뚱맞게도 난 원래 보직인 보병에서 포병으로 바뀜...
박격포병이 아닌.. 야전 포병으로 보직자체가 아예 바뀌어서 전출을 간것임..
일반적으로 사단포병연대는 시설이 보병과 비교했을때 열악함. 전투지원부대이기때문에 시설 지원이나 보급지언이 전투부대에게 먼저감.

내가 전출간 부대도 다를게 없었음.

신막사, 개인침대, 개인철제 관물대를 쓰다가... 침상생활에 구막사, 나무관물대를 사용하게된것임.
여기서 1차멘붕...

무엇보다도 힘들었던것은 내무부조리가 정말 심했음.

뭐는 병장만 할수있고 뭐는 상병만 할 수 있고 뭐는 안되고 병사가 병사의 내무생활을 통제하고...
나는 그런것이 거의 없던곳에서 생활을하다가 이곳에 오니까 적응하기가 힘들었음, 솔직히 적응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음.

원래 LED는 상병부터 쓰기로 한건데 왜 이제 이등병 일병도 써야하냐고 상꺽이 병장한테 징징거리는걸 봤을때 분명 저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을텐데 왜저러나 싶었음.
아직도 모르겠어.. 왜그랬을까...
내무부조리야.. 더 심한일을 겪은 분들도 더 많으니까.. 그냥 패스..

#3-1
여기 생활하면서.. 진짜 잊지못할 체험을 하나 했었는데...
당시에 새로 사단장이 취임을함...
그런데.. 이아저씨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누구보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고.

뜀걸음을 할때는 가장 선두에 앞서 달린다고.. 사단에서 비명이 흘러흘러 일개 독립포대에 들릴정도니... 할말 없지..

한참 연평도때문에 부대가 빡셀때인지라.. 그런데 사단장이 하나를 제안(명령)한것임..

야간에도 적의 위협이 있을수 있으니..(맞는말).. 야간에도 부댈 운용할수 있어야 한다.

일과를 야간에 실시를 하고 낮에 잔다.

시범운용을 하겠다.
그런데 그 시범운용하는 부대가 우리부대가 된것임.

....멘붕...
단체로 멘붕...

그때가 2월초였던것으로 기억됨.

정말.. 정말 추웠음..
일반적인 군대의 생활이 오전 6시에 기상을 해서 밤10시에 취침을 하지않음?

그것이 반대가 된것임. 오후 6시에 기상을 해서 오전 10시에 잠을 자는것임.
... 미친것 같지만 사실임. 정말임.. 

일단 토요일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시차를 맞추기 위해서 우리를 금요일 오전부터 하루종일 재웠음.

진짜 잠만 재웠음.. 밥도 안주고.. 재우더라... 나중에는 배고파서 잠이 안왔음...

첫날에는 다들 좋아했음, 토요일 밤인지라 원래는 전화가 안되는 시간이니.. 주말밤에 친구한테 전화해서 노가리도 까고.. 네이트온도들어가서 이야기도 하고.. 다들 좋아했음.. 그리고 그 다음날...

이제부터 말도안되는 코미디가 시작이 됨 ㅋㅋ

주말인지라 종교행사를 해야함.

그런데 누가 야밤에 종교행사를 하겠음? 목사님도 주무셔야지.

그런데 종교행사는 해야함. 무조건 해야함.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일과임.. ..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부대에 티비가 총 3개있었는데..

티비 하나는 CBS 또 하나는 불교티비, 또 하나는 평화방송...

보라는거임

그게 종교행사임 아옼ㅋㅋㅋㅋ

당시 다들 난리났음..

그날 시크릿가든 최종화 하는 날이었기때문에...

독립포대인지라 PX가 없는데.. PX를 이용하려면 주말에 종교행사를 가서 사재기를 해야함.. 그렇게 1주일을 버티는거임..

그거 아니면 어쩌다가 대대 갈일 있으면 물건 사오던가.. 둘중하나임.. 그런데.. 못감.. 그런거 음슴.. 걍.. 있는거임.. 방법이 없었음..

일과는 더더욱 가관

행정계는 업무가 마비됨.

애초에 낮에 대대에서 업무를 받아서 처리하고 오후에 업무를 마무리 해야하는데.. 장사 다 끝났는데 가서 뭘 하겠음..?

행정병들은 할게 없어서 가시방석이어서 멘붕..

간부들도 결산과 조회때문에 정신 없었을것이라 사료된다만 거기까진 당시엔 잘 몰랐으므로 패쓰.
그렇게 1주일 하고 난 후에 다들 좀비가 되었음.. 사람은 낮에쉬고 밤에 자야한다는 불변의진리를...어긴탓...

다들 사소한것에 화를 내고 짜증이 늘어만 가다가.. 끝...
절대 못잊을 경험이었음...

4#
부사관 전입을 왔는데.. 또 부대를 옮기게 됨..

사실 장비가 오래 된지라 더이상 실제포탄사격을 할수없는 장비였고.. 해체는 예정된 수순이었음..

부대 행정보급관이 병사때부터 이부대 곧 없어질껀데 왜 왔냐는 쿠사리를 먹으면서 이등병 생활을했었다니...

그때부터 이제 나는 동기들에게 부대브레이커란 별명이 붙음.

부대 파괴자, 해체 마스터,

우리 부대에 잠깐 와서 3일만 있어달라는 청탁도 들음.

하사생활이 힘들긴 힘든가봄.

전출 말년에 겪은일은 사이다 게시판에 상세하게 적어놨음.. 여기서능 패쓰...

5#
새로 온 부대에서 9개월정도 생활을 하고 있는데, 상급부대 장기파견 이야기가 들림.
앞중대에서 상급부대에 보냈으니 이번에는 우리 중대차례.. 난 그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갈수있는지를 문의하였음. 
지휘관은 나보다 1년 선임인 이미 다른사람을 찍어놨었는데... 문제는..

이사람이 파견간다는 소식에 입이 귀에걸려서.. '아~ 가기 싫은데 보낸다~ 나 왜보내냐~'이런식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다니능거..
(허세끼가 좀 있는 사람..이었음)
그런 와중에 나는 진지하게 내가 한번 가보고 싶다. 귀중한 경험이 될것 같다. 라고 간단하게 어필을 함.

그러던 와중에 지휘관이 대대장님한테 보고. 대대장님은 날 호출해서 정말 가고싶냐고 물어보시고, 난 꼭 가고싶다고 얘기함

OK, 가서 잘하고 와.

그 말 한마디로 나로 바뀌게 된것임.

그 선배는 계속 입이 귀에 걸린상태에서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진짜 안가게 됐으니 기분이 좋을진 알랑가몰랑
사실 그 앞에서 나로 결정되었다고 차마 이야기를 못했었음...

6#
파견생활은 힘들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재미있고, 잊을 수 없는 일들 투성임. 일단은 원래 부대보다보니  출입통제가 빡빡하지 않아서.. 밤에 뭔짓을 하고다니든 아침에 출근만 똑바로하면 크게 터치안하는 입장이고.. 파견된 인원이다보니 사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이 없었음..

평일 늦은밤에 부대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한잔 마신다는것이 너무 어색할정도였으니..

오히려 통제가 풀리다면 스스로 몸을 사리게 됨. 사람이란게 하지말라고 하면 자꾸 하고싶고 신경안쓰다보면 알아서 조심하게 되는법이니까.

걸리면 본인이 책임을 지면되는일이고, 군이라는게 자신에게 책임이 올때는 꽤  무거운 무게로 돌아오기때문에.. 나같은 경우는 강제 원복조치였겠지만..

무튼 몸사리면서 신나게 놀았음.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니 군이라는 것에 대해 시야도 넓어지고 상급자를 상대하는 스킬을 많이 익히게 됨.

대대야 영관급 장교가 한두사람뿐이지만 여기는 기본업무가 영관급부터 시작되니 내가 무섭거나 쫄게 없었음.

그리고 그런분들은 오히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때에 조리있게, 해야할 말을 똑바로 하는것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더 많았고, 그러다보 말주변도 많이 늘어났음.

전임 선배는 손재주도 좋고 못하는게 거의 없는 만능 포지션이어서 뭐든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내가 해야할일이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으면 해매는 스타일이라 업무분장이 깔끔하게 안되있는 상황에서..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주변사람들한테 조금씩 뺏어오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면서 일과를 진행함. 
나중에는 단기파견 오는 인원들을 맡아서 해야할 업무를 지시하기도 하고, 내 상급자 분이셨던 장교분이 하던 간단한 교육사항을 내가 맡아서 하다보니 나름 사람들한테 인정받음.. 옆에서 이야기 하는거보면 훌떡 넘어간다고... 신박하다고.. 나가서 선생님하라는 소리 들었을떄는 기분 되게 좋았었음..
7#
상급부대 있으면서 가장 큰일은 장군님한테 찍힌것...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지내다가 이쪽으로 오셨는데.. 이분은 아메리칸 스타일임..

운동하는거 완전 좋아하심.. 오자마자 운동시간 강제로 팍팍 늘리고 운동 신나고 즐겁고 빡세게 하라고 엄청 강조하심..

훈련 큰거 한번 끝내고 난 후에 회식하는데 삼겹살이 아니라 스테이크 구웠음... 아메리칸 스타일... 지금은 다른곳에 계시지만 아직도 많이 화자가 됨.

축구를 엄청 잘하시는데.. 그때 마침 내가 수비를 보고있었음.

필자는 축구 못함, 세모발임. 아직도 난 공을 강하게 높게 띄우는건지 잘 모르겠음.. 암만 해도 안됨.

그래서 축구할때는 무조건 수비를 봄. 공을 걷어낸다기 보단 몸으로 막고, 공은 골라인 아웃시키는 스타일로 축구를 했음... 하게된다면..

사실 축구할때는 다들 으리축구 하는게 정상임. 한부대 장이면 적당히 피해주고.. 적당히... 사리고..


근데 내가 공을 뺏어버림.....

ㅇㅇ... 다들 사리고 있던중에...

가장 낮은계급..
계급으로 따지면 13개 이상 차이날.. 놈이.. 공을 뺏은것임..

그리고 별명이 붙음. '땡크'라고... 사람만 보고 쫓아가서 막는것을 보고 지어주심...

그런데 참 신기한게.. 한 부대의장이 저놈 축구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는데..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악담을 하겠음?

다들 나를 축구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주고..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불러주고..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공 차는 시간이 막 기다려지는것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의미가 나에게 그렇게 와닿았음.

#8
그렇게 10달간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자대로 복귀함.
복귀 하자마자 상급부대(즉 내가 10달정도 있던...)에서 평가를 왔는데..

몇일전만해도 부대에 있던놈이 여기 있으니까 다들 놀라는 분위기, 그리고 반가워함.

영관급 되는 분들이 아는척을 해주니..

대대 막 온 초임 장교들은 어리둥절. 저사람은 하산데 뭥미? 뭔가 있네보네.. 하고 생각하기 시작함.

당직근무 설때도 참 편했음.. 다아니까..

본인은 당직을 상황이 아닌 부관을 섰는데.. 상급부대에서 예하 대대를 파악하던 업무를 해봤으므로 상급부대에서 뭘 원하는지 모를수가 없음.

상황병들이 상황걸려서 어버버할때 내가 깔끔하게 업무 분장해줘서 일처리 하니..

위병소가 빵꾸가 났었는데.. 내가 전화를 받으니 그냥 한번 넘어가준 일을 계기로... 나는 근무 선호도 상위권에 올라감..

상급부대 있던 장군님이 한번 대대에 교욱차 오셨는데 탱크가 어리버리했는데 파견갔다오더니 사람됐다고.. 이야기하시면서...

내가 있던 자리는 갱생의 보직으로 바뀐건 함정.

이상하게 사고친 사람들은 그쪽 업무로 보내기 시작함.. 효과를 봤다는게 더 신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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