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기억나는 음식도 있겠지만 기억나는 요리인도 있었다.
게시물ID : cook_1175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돼람쥐
추천 : 17
조회수 : 1762회
댓글수 : 32개
등록시간 : 2014/10/05 00:40:18
나는 성동구 마장동에 살았슴.

마장동...하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대한 축산시장이 있는곳.

그 축산시장 안쪽에 살았을 때,

우리집은 아들만 셋이라 시장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놀러나갈때면 생고기냄새와 핏물냄새, 돼지 족 삶는 냄새를 맡고 가야했죠.

집에 있는 신발은 전부 검정색 운동화였는데

이는 바닥에 흘러나오는 핏물에 흰 운동화가 물들면 안되기 때문이였겠다 생각합니다.

마장동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이사를 하고,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죠.

그 때,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연말 회식은 항상 고기!

왜냐, 마장동은 고기가 싸니까...

그리고 난 항상 회식자리에 꼈죠.

...사장 아들이니까

(그리고 연말에 바쁠 땐 나도 공장일을 도왔다, 지금으로 따지면 아동노동법위반이겠지)

그 중에 OO회관이라고 구청 뒤쪽에 있는 고깃집을 자주 갔는데

고기를 굽기 전 소지방을 한번 달군 판에 굴려주고 소고기를 구워주던

고기를 다 먹고는 밥과 다진깍두기를 넣어 밥을 볶아주던곳이 생각남.

애새끼가 배가 불러서 고기보단 그 볶음밥이 맛있어서 고기는 안먹고 볶음밥만 먹었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발로 한대 뻥 차버릴텐데...

여튼 회식은 항상 그쪽으로 자주 가다가

나 초등학교 1학년 겨울 연말회식은 사업이 번창했는지

축산시장으로 가는 사거리에 커다란 고깃집으로 감.

이름도 기억해, 선샤인

아마 그 동네에서 가장 크고 신선하고 비싼 고기 쓰는곳이라고 알고있는데

하필 그 날, 내가 뭘 잘못먹었는지 장이 꼬였는지

배가 땡기고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고 난리가 났는데

엄마는 그래도 자식들 고기한점 먹여서 살찌워 이 추운 겨울을 버티게해야겠다라는 마음이었는지

굳이 아픈 날 끌고 그 고깃집에...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비만의 원인은 엄마한테도 있는듯.

고기 주문하기도 전에 나오는 생간이랑 천엽

어린 나에게 그건 핏덩어리와 학교 마대걸레 잘라놓은 모양...

엄마는 기름장에 푹 찍어 아픈 나에게 들이밀었고

나는 못먹어!! 하면서 젓가락을 쳤다가 쳐버린 젓가락보다 쎄게 엄마한테 쳐맞고 

방석 두개를 깔고 구석에 짱박혀 흐느끼며  배아픔에, 

그리고 난 아파죽겠는데 웃음소리가 넘치는 회식분위기에

아...세상이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음.

그 때 사장아저씨가 플라스틱 국그릇을 하나 가져오더니

어른들 술자리에 애들이 먹을게 없어서 어쩌냐

아까 보니까 배아프다고 하는것 같은데 이거 한번 마셔봐라 하면서

내 앞에 숭늉같은걸 주시더라.

처음엔 한약인줄알고 싫다했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맛있는 갈비탕냄새가 나.

수저로 한입 두입 떠먹었더니 정말 맛있더라...

그래서 꿀꺽꿀꺽 마셨는데 맙소사

배 아픈게 싹 나은거야.

정말 아픈게 싹 나아서 너무 신기하고 사장아저씨가 멋져보이고.

한창 티비에서 하던 요리왕비룡이

실제인물이나 사건과는 아무런관련이 없습니다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 후로 두세번 더 갔는데 갈때마다 내 얼굴을 기억하시고 오늘은 배 안아프냐고 물어주셨지.

손님들이 뭐가 맛있냐고 하면 덩어리고기를 들고와서 자랑하시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사장님이라는걸 이제야 알게되었죠.

그리고 그 철없던 놈은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만 읽다가

밤비노라는 만화를 읽고 요리에 꽂혀서 요리의 길로 접어들고

지금은 23살에 지나치게 건장한 청년이 되었고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면 항상 그 생각을 하죠.

선샤인 사장님의 고기국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그 생각도 합니다.

나도 나중에 그런 사장이 되어야지.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