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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친일재판' 다섯 번 폭탄 돌리기 (2015. 6)
게시물ID : humorbest_11779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sert_Fox
추천 : 28
조회수 : 2171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12/31 11:02:09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2/27 10:31:11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0628204018874

 

행정6부→행정3부→행정5부→행정7부(인사)→행정7부(인사)→행정7부


2011년 증손자인 동아 사장 항소


재판부 6번 바꿔가며 8번째 변론


주장만 듣고 선고 기약없이 미뤄

 

 

"학병 선동을 위해 존경받는 인촌의 이름으로 기자와 편집자가 기사를 왜곡·조작했다."(이용구 변호사)

"그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상징인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김경현 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제1별관 306호 법정. 원고와 피고는 한 사람의 행적을 두고 다른 평가를 내놨다. 재판의 '주인공'은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1891~1955)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자, 증손자인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이 이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은 김성수의 활동에 대해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으로 이름만 올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활동 내역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태평양전쟁 때 "충용무쌍의 황병(일본 천황의 병사) 되라"는 내용의 기고 활동 등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하고 동포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데 적극 협력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2011년 11월 항소 뒤 재판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서울고법은 사건을 질질 끌었다. 지난 2월에도 선고기일이 잡혔다가 갑자기 미뤄졌고, 법원 인사로 시간을 더 끌게 됐다. 사건은 이 법원 행정6부(재판장 임종헌)→행정3부(˝ 이대경)→행정5부(˝ 김문석)→행정7부(˝ 조용호)→행정7부(˝ 민중기)를 거쳐 6번째 재판장에게까지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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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도 고민이 많아 보였다. 변론이 끝나면 선고기일을 잡는 게 통례인데도 날짜는 추정(추후 지정)하겠다고 했다. 결론을 내기 어려울 때 쓰는 방식이다. 재판장은 "언론 보도를 봤는데, 2011년부터 5년간 재판장도 여러 번 바뀌고 선고를 못해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선고에 대한 부담감도 내비쳤다. 그는 "한편으로 이 시점에 이 사건을 맡아서 선고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있다"며 "판사는 사건을 고를 수가 없고, 자기한테 배당되면 심리할 의무가 있다. 또 심리하면 선고를 할 직무상의 임무와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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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에 있습니다.


친일파들 가운데서 건드리기 쉽지않은 인물 가운데 한 명이 김성수이죠..

 

김성수가 남긴 '유산'이 굉장히 막강하게 작용하는데다가 이거 건드린다는것은 '고려대학교의 김성수 제자'들(오늘날  '김성수의 제자'들이 굉장히 영향력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죠. 대표적으로 이철승,현승종 같은 인물들.) 및 동아일보를 상대로 선전포고 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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