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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 살리에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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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께소
추천 : 5
조회수 : 72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2/23 22: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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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를 위하여

 

       난생처음 그림과 사랑에 빠졌을 때를 떠올려 본다. 일곱 살 생일을 맞이했던 겨울의 어느 날, 부모님께서 선물로 수채화 물감과 붓 세트, 그리고 팔레트를 사다 주셨다. 여태껏 크레파스와 색연필로만 그림을 그렸던 나에게 물감은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아버지의 노트북만큼이나 멋진, 어른의 물건이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나는 선물을 가슴에 품어다 거실의 짙은 녹색 카펫 위로 뛰어들었다. 직각형의 검은색 종이 상자를 열자 하얀 덮개 아래로, 마찬가지로 하얀 물감 튜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튜브 하나의 끝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꺼냈다. 그때 아버지가 옆에 와 앉으시고는 내 손에 들려 있던 튜브를 쥐어다 뚜껑을 열고 팔레트에 물감을 짜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차근차근 물감을 쓰는 법에 대해 알려 주셨다. 짜낸 물감이 말라 굳어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에, 정말 간신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나였다. 그날 밤 나는 팔레트에 짜인 색색의 물감을 향해 연신 입으로 바람을 불다 카펫에서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아니, 사랑에 빠졌던 건 일곱 살 생일의 그때가 아니었다. 나는 그림을 계속 좋아하기만 했다. 그날 내 작은 품에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던 물감과 붓과 팔레트, 봄날의 잔디보다 푹신했던 카펫, 아버지의 다정한 손가락, 창밖의 눈이 쏟아질 듯 깜깜한 하늘, 잠든 내가 깰까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 주셨을 어머니, 추운 겨울, 따뜻한 우리 집. 나는 '그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나의 그 기억이, 진짜 그림 같은 그 모든 것의 조합이 마냥 좋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 학원에 다녔고 결국 미대에 들어가 서양화를 공부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미술 학원에 취직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네 그림은 계속 그리지 않을 거니?' 부모님께서 그리 물으셨을 때 나는 작게 웃으며 '당분간은요', 라고 대답했다. 두 분은 그저'그래', 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언제나 내가 내리는 결정을 존중해 주신 부모님이셨다. 신기할 정도로,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내가 그림을 하겠다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게 조금 서글펐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증거는 내 주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같은 학원에 다니던, 모두가 이름을 알던 그 아이, 매번 상을 타던 후배, 졸업 후 유학을 간 선배, 내 그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구들, 미소만 지으시던 부모님. 평범함에 대한 깨달음은 들었던 만큼 슬프고 괴롭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가슴이 햇볕에 그을린 듯 며칠 따끔거리는 정도였다. 그 따끔거림도 일곱 살 적 기억을 꺼내 보면 잠잠해지고는 해서, 나 자신을 스스로 상처를 잘 돌볼 줄 아는 사람이라 착각할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어렵지 않게 찾아온 깨달음 덕에 나는 굳이 그림이 아니었어도 됐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은 단순했다. 간절하지 않았던 것이었고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난 괜찮아'. 내겐 그런 자기 위로의 말을 되새길 필요조차 없었다.

       그랬던 내가 너를 알게 되었다. 나는 너로 인해 마침내--그래, 마침내--그림과 사랑에 빠졌다. 여태 그림을 좋아만 했던 것을 다행이라 여겼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만약 내가 그림을 이미 사랑하기라도 했었다면, 그때의 그 섬광 같았던 순간이 어찌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에 담게 된 것이 또 있었다. 닮고 싶다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았던 그것. 나는 너의 두 손을 사랑했다.

 

       학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도 삼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곧 여름이 다가오려는지 옷이 자꾸만 피부에 달라붙는 걸 느끼며 점심시간에 맞춰 학원을 나서려는데, 입구에서 처음 보는 두 사람과 마주쳤다. 짙은 남색 원피스에 베이지색 힐을 신은 단발머리의 젊은 여자와 그 여자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나그랑 티셔츠에 옅은 청바지를 입은 초등학생 또래의 남자아이. 새로 온 학생이려나, 하고 짐작하며 갈 길을 가려던 중에 주먹을 지나치게 꽉 쥔 아이의 작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학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나는 꽉 쥐고 있었음에도 단단한 돌이 아닌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지는 달팽이 집 같았던 아이의 동그란 주먹을 계속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내 잊어버렸지만 말이다. 그게 내가 네 손을 알게 된 후 그것을 잊고 지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같은 날, 학원에 천재가 들어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천재가 다름 아닌 달팽이 집 주먹의 주인이라는 걸 알았다. 원장 선생님께서 학원 선생님들을 전부 불러다 모으시고는 평소보다 들뜨신 목소리로 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너의 작품이 담긴 사진 몇 장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사진 속엔 조소품彫塑品이 있었다. 그걸 본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이걸 열 살짜리 아이가 만들었다고요?'

       "왜 저희 학원이래요?" 누군가가 원장님께 물었다.

       "모르겠네요. , 아이가 우리 학원 앞을 지나다가 무슨 청포도 맛 사탕 냄새를 맡았대요. 그래서 학원 이름을 기억했다고......"

원장 선생님의 대답은 끝을 맺지 못하고 또 다른 질문과 감탄 속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탕 얘기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바로 그 사탕 냄새가 진짜 이유일 거라 믿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 스무 살이 되었을 적에, 입구에서 참을 수 없이 좋은 커피 향이 나던 서점을 매일 들르곤 했었다. 집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있던 그곳을 꽤 오랫동안 즐겨 찾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턴가 가지 않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좋던 커피 향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게 된 날부터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점을 찾은 그 날, 서점 입구에선 항상 맡던 커피 향이 나지 않았다. 누가 먼저 입을 댄 커피라도 되는 듯,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시큼했고, 분명 조금 더 차가웠다. 날씨의 영향이었는지 직원의 실수였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남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그 작은 차이에 난 몸을 떨었고, 등을 돌려 서점을 나간 후에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네 첫 수업 날 청포도 맛 사탕 한 봉지를 사서 학원에 출근했다. 약속되어있던 시각에 네가 홀로 학원에 나타나자 모든 선생님이 인사를 하기 위해 네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동안 나는 두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애꿎은 사탕 봉지만 만지작대고 있었다. 내가 스물아홉이란 나이를 먹고서도 인사가 서투른 인간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그런데 어느 순간, 네가 다른 선생님들 사이를 뚫고 내게 와 손을 내밀었다. 작디작은 그 손을 하마터면 마주 잡을 뻔했으나, 다행히 그런 실수를 범하기 전에 들고 있던 사탕을 네게 건넸다. 완전히 정신을 차리진 못했는지, 아무런 말도 없이 대뜸 커다란 봉지를 통째로 주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넌 내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날부로 너의 지도를 담당하는 건,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신 원장 선생님도, 우리 학원에서 제일 예쁜 강 선생님도 아닌, 내가 되었다.   

       말이 선생님이고 지도자였지, 내가 하는 일이란 대부분 작업에 몰두하는 너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작업할 때는 누군가 옆에 있는 걸 싫어한다고, 네 어머니께서(단발머리의 젊은 여자분이 네 어머니시라는 걸 알고 놀랐다) 신신당부하셨다기에 그동안에는 옆에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날, 단체 수업이 끝난 네게 앞으로 혼자 쓸 수 있는 다른 교실을 안내해 주고 그곳을 나서려는데, 몸을 돌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너와 눈이 마주쳤다. 고백하건대, 문고리를 잡은 날 빤히 쳐다보는 네 눈빛에 나는 내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교실에 다시 들어가 등 뒤로 문을 가만히 닫았고, 의자를 하나 챙겨 네게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두고는, 자리에 앉기 전에 허락을 구하듯이 너와 눈을 맞추며 의자 위에 쌓여 있었을 먼지를 손으로 살살 털어냈다. 넌 언제 꺼내 먹었는지 모를 청포도 맛 사탕 하나를 입안에서 계속 녹이며 내게서 시선을 거둔 뒤, 곧 손을 움직여 나는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의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네 옆에 있어도 좋다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다섯 시간이 넘도록 나는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과 버금갈 정도로 놀라운 장면들을 목격했다. 손꼽아 기다려온 콘서트를 관람하는 단 한 명의 관객이 된 감동이 이러할까. 너의 열 손가락이 끊임없이 나를 쓰다듬고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 한 줄기 속 반짝이는 먼지 한 톨마저 날 울컥하게 했다. 그렇게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덜덜 떨리는 손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드디어, 마침내, 사랑에 빠졌구나.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그날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여태껏 손대지 않았던 내 붓과 물감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머릿속에선 서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두 개의 의자가, 청포도 맛 사탕이, 너의 열 손가락이, 햇빛이, 먼지가, 내 심장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열심히 움직여 봐도, 머릿속의 그 장면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마르지 않은 그림 앞에서 나는 조금 울었다.

       그 이후로, 찰나였던 그 순간을 그려낼 수 없는 내 실력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의 수많은 주름, 어지럽고 희미한 손금, 깨끗한 손톱, 분명히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지문. 그렇게 거울 앞에서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손을 뚫어져라 보고있다 보면, 내 손을 이루는 그 부분들 하나하나가 왜 존재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무기력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못난 두 손을 오므리는 것, 그리고 너와 네 조소품을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것뿐이었다.

       너는 나와 달랐다. 너는 아마도 너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을 보석 같은 장면들을 끄집어내 너만의 방식대로 빚었다. 가끔은, 절대로 훔쳐보지 못할 너의 그 장면들이 보고 싶어 숨이 막혔다. 네 조소품은 그저 현실을 보고 베껴서 만들어지는 복제품이 아니었다. 점토를 만지는 작은 두 손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있었다. 너는 너의 일부분을 뜯어다 작품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그것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열 살짜리 소년은 알고 있었다. 네가 어째서 그 사실을 아는 건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너는 작품을 하나 완성할 때마다 심하게 앓았다. '불공평해'. '타고났잖아'. 아무도, 너를 향해 그런 말을 뱉을 자격은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네가 학원에서의 몇 번째일지 모를 작품을 완성했던 날, 내 일곱 살 생일처럼 창밖으로 눈이 쏟아질 듯 깜깜한 하늘이 보였던 겨울의 어느 날, 불현듯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렸다. 암기할 수준으로 보고 또 본 너의 조소품을 떠올리며. 반칙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만 아는 죄책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들게 그려진 그림 앞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때뿐이었다. 다음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내 속에 더는 너의 작품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네가 어서 다음 작품을 완성하길 바랐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네가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길 원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프길 기대했던 것일까.

 

       "선생님."

작품을 완성하고 또 며칠을 아파 학원에 나오지 못했던 네가 돌아왔다. 너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내게만 썼다. 날 부르는 네 목소리는, 내가 '저기'라고 불리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임을 자꾸만 의식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너를 통해 얻은 나만 아는 비밀이, 그림이 떠올랐다. 작업하는 너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순간순간, 흙투성이인 네 손이 시야를 가득 채울 때면, 기도하듯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조금씩 모양을 찾아가는 너의 점토 앞에선, 활활 타는 마음과 함께 순식간에 완성되는 나의 그림은, 어느 시인이 그랬듯이 나뭇잎 하나 푸르지 못하게 했다. 내 그림 속에 담긴 사랑은 진정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창 추운 겨울에, 여느 때처럼 너와 둘이 교실에 있었다. 겨울 해는 일찍부터 져서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바깥이 깜깜했다. 꼭 한밤중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모두 잠이 든 밤.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은 다시 아이이기를 바라는 밤. 그래서였나 보다. 너는 지금 잠이 든 상태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아이처럼 내 속의 이야기를 다 꺼내고 싶다고, 잠깐 꿈 같은 생각을 했다. 마침 네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아파요?"

       "아니."

       "말해봐요."

       "무슨 말이니?"

       "있잖아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제 작품이 말을 한대요."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런데 아니거든요. 제 작품은 저한테 말을 안 해요. 항상 제가 말을 걸어요. 그래도 걔는 대답을 안 해줘요. 그래서 제가 매번 대신 그렇게 아픈 거예요. 엄마는 안 믿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선생님, 말해요. 말 안 하면, 모르잖아요."

       있잖아, 나는.

       "말 안 하면, 누가 아플지도 모르잖아요, 저처럼."

       "."

눈물이 터졌다. 내가 지금 왜 우는 건지, 그 이유 하나 알지 못한 채 울었다. 어쩌면, 원래 눈물이라는 존재에는 아무 이유도 붙일 필요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고개는 숙이지 않았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너를 보며, 그런 기다림이 익숙하다는 듯 그저 가만히 있는 너를 보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나를 알아차리며, 한참을 소리 내 울었다.

       눈물이 그치고 들썩이던 어깨가 겨우 멈췄을 때, 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손을 씻고, 가방을 챙긴 너는 계속 의자에 앉아 있던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 애, 선생님 가지세요. 선물이에요." 네가 아까까지 다듬고 있던 작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보고 만든 거예요." 나는 그게 왠지 너만의 위로 같았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 정신을 차리고 네 선물을 찬찬히 봤다. 네가 빚은 건, 나의 두 손이었다.

 

       너는 그날 이후 학원에 더는 나오지 않았다. 너의 부재를 진심으로 아쉬워하신 원장 선생님께선,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네가 유학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이셨던 분이 가장 서운하시겠죠'라는 모두의 말에, 간신히 웃어 보였다.

 

       집에 있는 그림들은 버리지 않았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네 선물과 함께 뒀다. 부모님께는 뜬금없이 다시 내 그림을 그릴 거라는 말씀을 드렸다. 두 분은 언제나처럼 따뜻하게 미소 지어주셨다.

 

       고마워, 나의 두 손 같았던 사람아. 네게 그 말을 못 했다. 어쩔 수 없는 아픔이라면, 부디 조금만 아프기를. 온전히 너의 것인 아픔에만 아파하기를. 나도 그래 볼 테니.

 

 


 

우와, 단편을 올리는 게 얼마 만인지. 원래는 몇 년 전에 썼던 걸 살짝 다듬어서 올리려 했는데, 결국 제목만 남기고 전부 다시 썼어요. 덕분에 요 며칠 동안 이 소설 생각만 했네요. 자기 전에도 이 소설 생각, 아침에 눈 떠도 이 소설 생각, 밥 먹으면서도, 양치질하면서도 이 소설 생각... 그게 참 좋았어요. 온종일 글 쓰는 생각에 푹 빠져 있는 게 오랜만이라서요.

제가 모차르트 음악을 듣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중학교 2학년 때 본 영화 <아마데우스>였어요. 몇 년이 지난 후에, 친구랑 우연히 그 영화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이 친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만 그렇게 눈에 들어왔대요. (그 대화 중에 친구에게서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배웠어요) 친구의 그 말을 기억하면서 쓰기 시작한 게 이 단편이었는데, 다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아무튼, 정말 마음에 들게 쓰인 문장이 몇 개 있어서 뿌듯해요.

가끔 상상해 보기도 해요. 내가 만약 그림을 포기 안 하고 계속 그렸다면, 그래서 글을 아예 안 쓰게 됐다면 어땠을까, 하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rimbaudize/2206361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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