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쇠창살
너는 나를 볼 수 있고
나는 너를 볼 수 있다
네가 안에 갇힌 건지
내가 안에 갇힌 건지
공간의 분리는
곧 완전한 분리로 이어질까
문이 따지고 네가 내 쪽으로 오면
우리 둘 다 갇히게 되는 걸까
둘 다 자유가 되는 걸까
애초에 안과 밖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감옥은 평화고 밖이 전쟁터이므로
너와 나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죄수이거나 간수인 채로
영원히 겹쳐질 수 없을까
네가 늑대 인간으로 변신해 쇠창살을 뜯어내는 상상을 한다
그렇다 해도 나는 이성을 잃은 너에게 곧 물려 죽고 말 것이다
애초에 너와 내가 존재하기도 전에도 쇠창살은 있었고
삶은 로맨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쇠창살 너머로 너를 본다
마주 보는 눈빛만으로는 불충분하냐고
장미의 행복
가시가 가위에 잘려나가 아파도
비닐하우스 속 장미는 행복했다
날 사갈 사람이 찔려서 아파하지 않아도 될 거야
다 키워져 봉오리 맺힌 장미가 가위에 꺾어져
키워준 뿌리, 줄기와 이별해도 장미는 행복했다
곧 누군가 날 사가서 예뻐해 줄거야
풍성한 장미 다발이 아닌
가장 값싼 비닐 포장지에 혼자 싸여도 장미는 행복했다
한 송이 밖에 없으니 날 더 예뻐해 줄거야
성년의 날, 그가 장미를 사갔다
공강 시간에 성년의 날을 맞은 그녀에게 장미를 주며 고백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힘 없이 장미를 들고 집에 왔다
그는 장미를 책상 한 구석에 놔두고 오랫동안 봐주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장미는 행복했다
그가 말려진 장미 꽃잎을 소중히 간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을 만큼 아팠던 첫사랑의 증표가 될 수 있어서
그녀가 생각날 때면 그가 책갈피에 살고 있는 장미를 종종 꺼내봐서
장미는 정말로 행복했다
시어
꽃
꽃집을 지나치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라보는 너에게
내가 꽃인데 뭐가 더 필요하냐고 질투하고
너
'너'가 너라는 걸 네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시를 쓰면서 네 이름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꽃을 떨어트리는 바람도 날리는 꽃들이다
땅을 뒹굴어 갈색으로 변한 바람을 보며
하얗게 질린 꽃은
흙으로 돌아가면 잎으로 다시 날 것을 모른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가 또 자라 꽃을 피울 것을 모른다
떨어지는 것은 바람에만 맡겨야 한다
팔이 없어서
그만 놓아버리지도 못 한다
차라리 누군가의 손에 꺾여 가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은 바람이 된다.
꽃
마지막 시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건 나는 게 아니고
펜으로 쓴 꽃과 바깥의 진짜 꽃 사이의 차이는 무한대인데
왜 시를 쓰는가
나의 펜, 그대가 읽는 문자 사이의 무한대의 차이
그로 인한 오해와 곡해에 비하면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이 얼마나 가까운가
펜을 놓고 그저 그대를 품에 안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