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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와 실화가 섞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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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으로 내리는 비
1. 프롤로그 - 란의 첫 비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은 매우 극단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이었으며,
그것이 불러올 너무도 당연한 결과에 대한 대책 또한 전혀 없었다.
벼랑 끝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내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그 앞에 도착하니 태풍의 눈처럼 허무하게 적막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전혀 들리지도 않았다.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어둠이 지독해서 끝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깊은 어둠 사이로 간혹 불어오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그곳은 가보지 않아도 위험한 곳이라고 조용히 타이르는 듯했다.
이런 것이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이럴 때 자포자기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냥 벼랑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돌아갈 길도 없다.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었고 최선이었다.
습관처럼 일찍 일어났지만,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하고 싶은 것들,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 작은 수첩을 꽉꽉 채워나가기 바빴는데,
막상 회사를 나가지 않고 그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몽땅 사라졌다는 것은 사람들의 발이 차이는 대로 바람 따라 굴러다니는 길거리의 빈 깡통처럼 멍청하고 한심했다.
굳이 요란스럽게 자위하며 연민을 느낄 새도 없이 현실은 내 목줄을 죄었다. 집주인아저씨였다.
이 집으로 이사와 살기 시작한 지, 대학 시절 때부터니까 벌써 10년이 되어 가는데 팍팍하고 에누리 없는 인심은 여전했다.
아니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나는 어제 막 실직을 했는데 10년간 전세로 사용하던 이 집을 당장 월세로 돌리자는 것도 비상식적인데
월세를 60만 원이나 받겠다는 것은 당신이 도둑놈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실직한 것을 알 리 없는 집주인은 당장 이번 주 안에 타협하지 못하면 집을 비워 달라는데,
이게 무슨 타협이란 말인가. 진정한 갑질이며, 강압적인 통보일 뿐이데.
사실, 10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이 동네 일대가 이렇게 번화해질지 몰랐기에 싸게 전세로 들어왔고
그 뒤로 급작스럽게 상권이 형성되어 순식간에 번화해졌을 때도 나는 꿋꿋하게 주인아저씨와 협상을 해왔다.
10년이면 그도 나름대로 최대한 나를 기다려 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저씨와 타협을 하기엔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여유가 없었다.
곧 짐을 모두 정리하여 10년 살았던 내 추억과 함께 근처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갔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래?”
언니의 첫 마디였다.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나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추궁하듯 첫 질문을 던지는 언니에게 섭섭하지는 않다.
그녀도 걱정스러워서 던진 말이었다는 것을 잘 아니까.
그런데 그 뒤에 붙인 말에서 진짜 언니의 본심을 알게 되어 서운해졌다.
“너도 알겠지만, 큰딸이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자기 방이 필요해. 금방 다시 취직할 거지?”
그녀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그녀의 집에 얹혀살게 될까 봐.
적당한 애교로 살갑게 엉겨 붙어 언니를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성격이 아닌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를 안심시키고 한 두어 달 창고에 내 짐만 맡아달라고 하고 나왔다.
최소한의 짐만 대충 배낭에 욱여넣어 들고 나왔는데 막상 갈만한 곳이 없어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어머! 그래서 둘이 어떻게 되었대?”
“나도 모르지, 그런데 분명한 건 남자가 여자한테 푹 빠졌대. 이번엔 또 한국에 온다나 봐.”
구석에 처박아 두고 살아왔던 호기심을 끄집어내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둘의 대화를 엿듣다가 무엇에 홀린 듯이 항공권을 예매하고 말았다.
벼랑 끝에서 추락하는 김에 끝까지 막 가보자는 뒤늦은 객기였다.
어려서부터, 집, 학교, 학교, 집 또는 집, 회사, 회사, 집, 하고 바른 생활을 유지했던 나의 최초이자 마지막 일탈이라고 생각했다.
2년 전에 다녀왔던 도보 여행길을 다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 긍정의 힘을 얻었던 그곳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드니 생각도 고민도 무의미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이미 내일 떠나는 항공 티켓을 한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것을 내 마지막 희망이라고 합리화했지만 결국은 무책임한 도피에 불과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 내가 복용하던 약병을 짐 사이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약이 얼마 남지 않아서 병원에 다시 들렀어야 했던 터라 일부러 밖에 빼두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상태가 호전 중이며 곧 약물치료도 그만둘 예정이어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잠이었다. 수면제에 의존하며 겨우 새우잠이라도 청할 수 있었고 최근에 겨우 조금씩 양을 줄이는 시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불과 하루 전에는 당장 재취업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게 급선무였는데,
막상 다 던져버리고 비행기에 오르니 이런 원초적인 문제들이 더 시급하고 중요해지다니,
어쩐지 그동안 삶이란 일상에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배신을 당했는지 대상이 없으니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대상 없는 감정 표출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미친 사람일 뿐이었다.
벌써 재미없는 영화를 세 편이나 끝냈다.
그중에 두 편은 억지로 잠을 청하기 위해 영어로 시청했다.
부분부분 알아듣는 단어가 있더라도 내내 집중하여 보면 잠이 올 것이라는 계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눈만 더 피곤해지고 원치 않는 두통까지 덤으로 얻었다.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어느새 자책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늘 엄마에게 들어왔던 말이다.
엄마는 늘 그렇게 칭찬보다는 질책했고 바라는 것도 많았으며 늘 엄마 친구의 누군가와 비교하길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속으로 엄마를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과 비교하곤 했다.
엄마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었다면 나는 당신을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이었다.
온갖 잡생각의 끝은 언제나 엄마와 관련된 주제를 관통하고 끝도 없는 자기 연민의 늪에 도달한다.
무작정 떠나온 충동적인 내 행동을 스스로도 한심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처연한 사람이라는 확신은 언제나 나를 안심시켰다.
어느새 비행기는 프랑스 땅 위에 나를 내려놓았고 지린내 진동하는 파리의 지하철에 들어서자
마침내 내가 한국을 떠나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프랑스나 파리에 대한 환상이 없던 나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몽파르나스역(Paris Gare Montparnasse)으로 향했다.
웬만한 기차는 그 역을 통과할 테니 분명 이룬(Irún)까지 닿는 기차가 적어도 한 대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2년 뒤 지금, 두 번째로 길 위에 다시 섰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년 전에 얻었던 긍정적인 마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고 그때나 지금의 내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이 길에 선 이유는 이 길 끝에서 무한한 긍정의 힘을 얻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비록,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긍정의 힘이지만,
분명 그것은 한동안 내가 버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첫날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끔찍하도록 싫어하는 비가 내린다.
완전히 적시지도 못하면서 귀찮기만한 그런 비가 끊임없이 내린다.
내 생각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시커먼 구름에서 내 마음이 내리는 것 같아서 더 싫은 그런 비가 내린다.
첫날부터 불길한 시작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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