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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뭐라구요? [ 스 압 ]
게시물ID : panic_76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랭크램파드
추천 : 5
조회수 : 138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0/09/25 18:34:14
-이 이야기는 지인의 경험담을 소설식으로 엮은 것입니다.-





"김 선생...오늘도 늦게 갈거야?"


"예. 내일 수업준비도 해야 되고, 자료 좀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 그럼 먼저 퇴근할게. 에어컨 꺼졌나 확인하고 문 단속 잘하고 가."


"예. 들어가십시오. 원장님."




"딸랑 딸랑~~"


학원 현관문에 매달린 방울소리가 원장의 퇴근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조그만 수학과학 전문학원에 근무하는 학원 강사다.


너무나 작은 규모의 학원이라 선생이라고 해봐야 수학을 담당하고 있는 원장, 


물리와 화학을 담당하고 있는 나, 그리고 생물을 가르치는 여자 선생 딱 세 명이다.


집에 혼자 사는 나는 학원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가장 나중에 퇴근한다.


집에 있으면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1년 전 나는 이 학원에 이틀만 출근하는 파트선생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서 이제는 5일을 출근한다.


원장의 신임도 얻어서 이젠 작은 경리업무도 내가 맡아하기도 한다.


1년이 넘다보니 이 학원의 생리와 시스템을 모두 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외에 본의 아니게 알게 된 것들도 있다.


우리 학원은 5층에 위치하는데 5층에는 우리학원을 포함 3개의 업체가 하나의 홀을 공유하고 출입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하나는 글쓰기 학원이고, 또 하나는 인조치아와 의치, 교정 장치를 만드는 치기공 업체였다.


글쓰기 학원는 항상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치기공 업체는 항상 연마기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글쓰기 학원은 초등생을 받는 학원이라 7시면 문이 닫혔고, 치기공 회사는 9시 정도가 넘으면 문이 닫혔다.


자료준비가 거의 끝나가자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나게 된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창가에 서서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치기공 회사의 출입문 아래 틈으로 촘촘한 빗살처럼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음? 불을 켜놓고 갔나?'



나는 잠깐의 의심을 접고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나는 이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작은 틈으로 새어나오는 그 빗살같은 불빛을 따라 움직이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움찔했고 싸늘한 기운이 척추뼈를 타고 흘러내렸다.



'헉...뭐야? 누가 숙직이라도 하는거야?'



나는 제자리에 서서 침에 젖어가는 담배필터를 입에 문 채 한참 동안 그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기분나쁠 정도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담배를 챙겨들고 발걸음을 옮겨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일부러 학원문을 힘껏 열어제치며, 문에 매달린 방울소리가 크게 울리도록 하였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학원문이 닫히자 나는 본능적으로 치기공 회사와 맞대고 있는 벽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작업하는 것도 아니고......숙직하는 것도 아니고.....마누라하고 싸우고 회사 나와서 자는 사람인가? 


도둑놈인가? 보안설비도 되어있고, 옆의 학원에 불이 켜져 있는데 도둑이 들어올리가 있나?'



나는 여러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총동원하여 조금 전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의심과 궁금증만 더해갔다.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저 건너편에서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자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교무실로 들어와 내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았다.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오늘 작업을 내일로 미룰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노트북을 두드리며 자료 완성을 마무리 지어갔다.




교무실 문은 가운데 좁고 긴 유리가 있고 내부로 열리는 미닫이 문이며, 


문이 열리면 그 문은 내 자리 옆으로 기대며 멈추게 설계되어 있다.


이 때 내 자리에서 교무실 문의 가운데 박혀있는 좁고 긴 유리를 쳐다보면 


반투명지로 코팅된 학원 현관문이 반사되어 보인다.


평소에는 허락없이 외출하는 학원생들을 감시하는 감시창 역할을 하는 문이며, 


누가 출입하고 있는지 업무를 보면서도 알 수가 있다.



밤이라 그런지 반투명한 학원의 현관문이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반사되어 눈에 들어왔다.


신경이 좀 쓰이기는 했지만 나는 무시한 채 작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이내 자료완성에 열중하던 나는 잠시 작업을 멈추어야만 했다.



노트북 화면과 함께 반투명지로 코팅된 학원문 밖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내 등뒤에서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온 몸에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교무실 문에 반사되어 보이는 학원 현관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도대체 뭐야? 건물 관리인인가?'



내가 알기론 건물 관리인은 지하주차장이 텅비는 밤 10시 이후에 퇴근한다.



'옆방에 진짜 사람이 있나?'



이 생각이 들자마자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서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옆의 회사문은 번호키라서 열고 닫을 때 문소리 뿐만 아니라 비프음이 같이 들린다.


그런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내가 그 소리를 못 들을리가 없다.


게다가 주변이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너무나도 무서운 적막감이 감도는 새벽시간이 아닌가?


뼛속부터 퍼져나오는 싸늘한 기운에 나는 리모콘을 들어 교무실 에어컨을 껐다.




"원장님. 접니다."



나는 두려운 마음 반, 궁긍한 마음 반으로 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궁금해서 그런데 옆의 치기공 회사... 새벽까지 야근하나요?"


"뭐? 야근? 글쎄...그런거 본 적 없는데..."


"누가 있는 것 같애서요. 문틈으로 불빛이 보이고,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누가 있나보지. 그것 때문에 전화한거야?


"아...예. 전에는 불켜져 있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별걸 다 신경쓰는군. 그런데 아직도 자료작업 중이야?"


"예"


"대단한 열성이군.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빨리 들어가 쉬어."


"예. 원장님."



전화를 내려놓는 순간에도 여간 개운치가 않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나는 바로 노트북을 종료시키고, 가방에 우겨넣듯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둘러 가방을 둘러매고 교무실을 나서려는데 에어컨을 보고 나오라는 원장의 당부가 생각났다.



"젠장!"



텅 빈 네개의 강의실을 둘러보려고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네개의 강의실 모두 불이 꺼진 채 칠흑같은 어둠속에 묻혀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를 더욱 짜증나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우리 학원은 강의실 전원이 


모두 학원 현관문쪽에 있다.


때문에 현관까지 가서 전원 스위치를 켜고 강의실을 둘러봐야 했다.


나는 잠시 현관쪽을 한 번 쳐다본 후 지옥으로 이어지는 통로같은 어둠속의 복도를 바라보았다.



'아이..귀찮아. 그냥 꺼져있나 확인만 하고 가자.'



그냥 복도를 지나면서 소리만 들어도 에어컨이 작동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강의실 불을 켜는 걸 포기한 채 그대로 어둠속의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내 발걸음 소리 이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원하던대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강의실.....OK 2강의실.....OK 3강의실.....OK....'



너무나 어두운 나머지 나는 좁은 복도벽을 손으로 만져가며 


한걸음 한걸음 마지막 4강의실을 향해 전진했다.



'4강의실...............'



바로 그 때 내 등에서 들리는 낯익은 소리.....



"딸랑 딸랑~~~~~~"



심장이 멎는다면 이럴 때 멎는걸까?


도둑이냐 귀신이냐?


다리가 후덜거렸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조용히 몸을 뒤로 돌려 네모 모양으로 불빛이 몰려있는 복도의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를 볼 수 있지만 너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누군지 모르는 저 상대는 어둠 속에 묻혀있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무토막처럼 꼿꼿한 자세로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불빛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째깍..째깍..째깍.."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적막감이 주변을 감싸자 멀리 떨어진 채 보이지도 않는 현관의 시계 초침소리가 

들려왔다.



"째깍..째깍..째깍.."



먼저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저 밝은 곳으로 나가는 순간 누군가 입을 쩍 벌리고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



"째깍..째깍..째깍.."



내 심장 박동은 초침의 진동수보다 두 배는 빠른 것 같았다.



'기다리자. 누군인지 확인이나 하자.'



그러나 저 불빛 속을 가로지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바람.........바람.......맞다!!! 바람!!'



극도의 두려움을 없애고자, 나의 머리가 찾아낸 방울 소리의 원인은 바람이었다.



가끔 강한 바람이 불면 현관의 문이 흔들리면서 방울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바람소리인가 보다.'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내자 바닥으로부터 발이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면서 걷고 있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나는 얼굴부터 천천히 들이밀었다.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뒤를 돌아 볼 틈도 없이 학원을 부리나케 빠져 나갔다.







"김 선생...어디 아퍼?"



"예?"



시무룩한 표정으로 노트북 모니터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나를 보고 원장이 입을 열었다.



"얼굴색이 안 좋아."



"아...예..어제 잠을 좀 설쳐서...."



"그러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니까. 강사처럼 말로 먹고사는 직업은 건강 잃으면 끝이야."




원장의 말에 내 옆에 있는 생물 선생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김 선생님, 제가 비타민 하나 드릴까요? 아침에 엄마가 챙겨준건데.."



생물 선생은 이쁜 얼굴은 아니지만 항상 마음 씀씀이는 천사 같았다.



"아뇨. 그냥 조금 피곤할 뿐입니다."



나는 둘을 향해 억지스런 미소를 한 번 보낸 후 무엇이 펼쳐져 있는지 관심도 없는 모니터를 다시 

멍하니 응시했다.



"어제 새벽에 무슨 일 있었어?"



원장의 말에 나는 그제서야 눈과 귀가 열리는 듯 했다.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 생물 선생은 원장의 뜬금없는 말에 나와 원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게 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기분이 묘하게 심란스럽습니다."



"뭘 봤는데?"



"특별히 뭘 본 것 아닌데...."



이 때 생물 선생이 신기한 듯이 듣고 있더니 나에게 물었다.



"어제 학원에서 귀신이라도 보셨어요?"



"아뇨...그냥 학원에 늦게까지 있는데...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하더라구요."



"아휴...무서워라. 김선생님 그러게 그냥 일찍일찍 들어가시지.

귀신이 아니라 도둑이나 강도면 어떡해요?"



"그러게요..."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다소 침울해 있는 나를 위해 원장은 다독거리는 말을 던졌다.




"힘내라구. 


피곤하면 쓰잘데없는 게 신경쓰이게 하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그림자가 지나가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원장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귀가 번적 뜨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원장에게 물었다.




"전 그림자 얘기 한 적이 없는데요. 원장님."



나의 물음에 원장은 당황한 듯 어색한 웃음을 보이더니 되물었다.



"어제 전화로 그러지 않았나?"



"전 옆 방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했지 그림자 얘기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랬나?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보군. 신경쓰지마. 허허...."



원장의 말에도 나는 여전히 원장의 어색한 웃음이 신경쓰였다.



나는 이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담배 하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 학원 밖으로 나섰다.



"김 선생님. 담배 안 끊으실 거예요?"



마누라 같은 성화를 부리는 생물 선생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흡연장소로 향했다.


치기공 회사의 현관문을 지날 쯤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 회사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도 전혀 미소짓지 않는 얼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의심스러움에 가득찬 눈빛...


평소 늘 마주쳤던 얼굴이지만 오늘은 더더욱 수상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1년 동안 네다섯명의 이 회사 직원들과 말 한마디 섞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무슨 비밀조직처럼 자기들끼리만 수근대며, 길낄거리며 웃고, 낯선 이에게는 

가벼운 눈인사 한 번 주지 않았다.


다들 이상해 보인다. 


그리고 조금 전 원장의 그 어색한 웃음은 뭔가?


의심이 자꾸 의심을 낳는 것 같았다.






"괜찮냐?"


맥주 한 잔도 제대로 들이키지 않고 초점잃은 눈빛을 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맥주 한 잔 하자고 해놓고, 술도 안 마시고 말도 안하고 뭐하고 있냐?"


"야... 민수야. 어젯밤 학원에 1시 넘어까지 있었는데 좀 기분 나쁜 일을 겪어서 말야."


"뭔데?"


나는 그간의 일을 친구인 민수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심각하게 얘기하는 나와는 달리 민수는 아무 것도 아닌 냥 너털웃음을 보였다.



"에이....뭐야. 귀신을 본 것도 아니고, 사람을 본 것도 아니고...그냥 그림자 하나 지나간 거하고, 

방울소리가 전부잖아. 나이먹고 뭐하는겨?"



"아이...그런데..기분이 너무 찝찝하다니까..."



"너 올나이트로 밤샘 근무 안해 봤구나. 바빠봐라. 귀신이 다 뭐냐? 신경 쓸 여력도 없다.


차라리 귀신이 나타나서 놀아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니가 안 겪어봐서 그래.."



내 말에 민수는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하하하...다음에 귀신 나타나면 이렇게 손 한번 흔들어줘. 

하이 귀신!!, 나 사람!! 난 생머리에 소복 차림 싫어함!!"



민수의 장난에 나도 어쩌지 못하는 쓴웃음이 지어졌다.







"오늘도 늦게 가나?"



"예. 원장님."



"요새 컨디션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일찍 들어가지?"



"내일 고3 수업이라 수업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래? 그럼 나 먼저 들어가지..에어컨 점검하고 가는 것 잊지 말고."



이젠 나를 걱정해주는 원장까지 의심스럽다.


원장이 뭘 감추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원장이 나보다 늦게 가는 걸 최근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책을 펼치고 문제를 풀어보는 와중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잡념을 없애기 위해 나는 불이 켜져있는 각 강의실을 돌며 에어컨이 모두 꺼져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교무실만 남겨 놓은 채, 강의실의 불을 모두 끄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교재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아...젠장. 집중 안되네."



그런데 갑자기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학원문을 열고 나가 치기공 회사의 현관문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아래로 내려 문 아래 틈사이로 빠져나오는 빛이 있는지 관찰하였다.


어두웠다.


그 어떤 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빛 대신 허탈한 웃음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힘겹게 머리를 아래로 내리고 문틈을 쳐다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정신을 차린 나는 엘리베이터 옆의 창가로 다가가 담배 한모금을 빨아들였다.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자 나는 천천히 학원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젠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그다지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어둠 속에 묻힌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예상대로 여기서는 저쪽 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일 어제 누군가 들어왔다 하더라도 나를 전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공포로 돌변했다


어둠 속의 복도 저 편에서 차디 찬 기운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에어컨 모두 껐는데...........



'젠장!!!! 이젠 입장이 어제와 반대가 되었네.'



무슨 용기가 나서일까? 


학원 전체가 울릴만큼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빌어먹을....여기 있으나 거기 있으나 무서운 건 마찬가지네!!" 

누군가를 쫒아내듯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금새 불판 위에 올려진 마른 오징어처럼 오그라들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홀을 감싸고 있었다.


저 어두운 통로에 누가 있는걸까?


이 싸늘한 기운의 정체는 무엇인가?



"거기.....누..누구 있어요?"



나의 부름에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나는 천천히 뒤걸음을 치며 강의실 전원이 있는 현관문을 향했다.


그리고 재빨리 뒤로 돌아 불을 켜려고 하는 순간....



"뭐라구요?"



헉.....낯선 여자 목소리.......


내가 잘못 들은걸까?


복도쪽을 향하고 있는 오른쪽 뺨이 얼어붙는 듯 했다.



'아......미치겠다.'



나는 재빨리 전원 버튼을 눌러 모든 강의실의 불을 밝혔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 다시 그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예요? 누구 있어요?"



그 때 우산 보관대에 꽂혀있는 우산 한 개가 눈에 들어 왔다.


나는 그 우산을 집어들어 타석에 들어선 타자처럼 배팅 자세를 취했다.



"누..누구예요? 거기..누구 있어요?"



나의 부름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환하게 밝혀진 저 복도 끝까지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모든 강의실 내부를 하나씩 둘러보았다.



"누..누구 있어요?"



계속해서 누군가를 불러내며 그 소리의 정체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당분간 학원에서 잔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마 내가 제일 먼저 퇴근하게 될 것이다.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분명히 여자 목소리가 들렸는데....


환청인가?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리고 후다닥 학원문을 나섰다.







"원장님 저한테 뭐 숨기는 것 있죠?"



"뭔 말이야?"



"이 학원에 뭐 있죠?"



나의 뜬금없는 말에 원장이 잠시 내 얼굴을 살폈다.



"이 학원에 뭔가 있어요. 밤만 되면 나타나는..."



생물 선생이 오늘은 출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원장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나의 물음에 원장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내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전에는 못 느꼈는데...다 들 이상해요. 그냥 모르겠어요.


모두가 저만 빼놓고 다 알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뭘 봤는데?"



원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원장님께 전화한 날은 사람 그림자를 봤습니다.


그냥 옆의 회사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그리고 제가 강의실을 돌고 있는데 현관의 방울 소리까지 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오늘 새벽엔 여자 목소리까지 들리더라니까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원장님도 뭔가 알죠?


그렇죠?"



원장은 환풍기를 켜더니 조용히 담배 한대를 꺼내더니 입에 물었다.


교무실과 붙어있는 원장실이라 금연이지만 심각한 일이 있거나 할 때는 종종 원장은 원장실에서 

담배를 피운다.


원장은 담배 한모금을 깊게 빨더니 입을 열었다.



"여름에만 잠시 겪는 일이야.."



"그렇군요. 알고 계셨군요. 그런데 왜 말해주시지 않았죠?




나는 배신당한 기분이 잠시 들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표출할 때가 아니었다.



"후후..."



원장의 허탈한 웃음과 함께 입속에서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그냥 듣고 있어.


5년 전에 이 학원이 처음 들어왔을 때 옆의 치기공 회사 자리는 비어 있었지.


몇 개월 동안 비어 있길래 궁금해서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까 그냥 입주 신청자가 없다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건물 외벽에 임대문의 광고까지 대문짝만하게 붙여놨고, 여기가 외진 곳도 아닌데


몇 달 동안 비어 있다는게 너무 이상한거야.


그냥 나는 모른 채 살았어.


그런데 그 이유를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지.


그것도 고3 졸업하고 알바 뛰러 온 학생한테 말야"




나는 진지한 표정의 원장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바로 옆 자리가 무슨 악귀를 쫓는 사이비 교회였데.


그 학생은 내가 과외하면서 데리고 있었던 녀석인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겪어본 사람처럼 


잘 알고 있더라고.


실제로 할머니가 거기를 얼마 동안 다녔었나봐.


그래서 가족들하고 불화도 생기고.


통성기도 같은 걸 하고, 악귀를 쫓아낸다면서 사람을 이리저리 내치기도 하고, 


죽은 사람 염하는 듯이 줄로 묶기도 했나봐.


그 놈의 주술같은 통성기도 때문에 옆의 입주자들의 항의가 쏟아지니까 시간을 밤 열시 이후로 미룬거야.


그런데 거기를 자주 들락거리던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약간 정신 박약 증세가 있었나봐.


그런데 그 교회 목사가 여자의 부모를 설득하여 여자가 그런 것은 악귀의 소행이라면서 


매일같이 퇴마의식을 하는 걸 권유했대.


퇴마의식이라고 하기엔 너무 보잘것 없는 것이었지.


그냥 여자를 무릎 꿇게 하고 뺨을 때리거나 눕혀서 발로 밟거나 이런 것들이라고 하더군.


작두를 타는 무당이 해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거야.


여자의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가는데도 그 부모는 고칠 수 있다는 일념하에 계속 그 교회를 보낸거야.


며칠 동안을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되었겠나?"




"죽었군요."



"그래...죽었어. 


당시에 일간지에도 난 사건이라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거지."


그런데 왜 나만 바보스럽게 몰랐는지 후회가 되기도 해."



"학원을 옮기시지 그랬어요?"



"그 사실을 한 참 뒤에 안데다가 학원이 어느 정도 안정화될 때였어.


게다가 1년 계약인데 계약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당시엔 다시 학원을 옮길 돈도 없었어.


여기 임대료가 주택가도 없는 길건너편보다 100만원이나 싸다는 것 알고 있나?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여긴 정말 학원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거야.


그건 그렇고 그 여자 사인이 뭔지 아나?"



"내출혈 같은거 아닌가요?"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라 아사(餓死)라더군. 


굶어죽는 것 말야."



"굶어 죽었다구요?"



"악귀가 입을 통해서 전달된다면서 퇴마식이 있는 얼마 동안은 물 한모금 먹지 못하게 했나봐.


다 들 미친거지. 그런데 종교적 신념이 삶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겐 영광스런 죽음일지도 몰라. 


그 목사는 결국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어."



"예? 고작 과실치사 혐의요?"



"그건 법정에서 가려졌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


그 여자가 죽은 날이 이 맘때 쯤이야."



원장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겼다.


나는 원장의 말을 가로챘다.




"이 맘때 쯤 그 여자가 나타나는군요?"




"그래...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어.


여기에 학원을 차리고 몇 개월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물론 그 때는 그 여자가 나타날 시기는 아니었어.


나도 그 모든 사실을 알바 뛰러 온 그 녀석에게 듣기 전이었으니까.


어느 날이었지.


시험을 무지하게 늦게 본 학교가 하나 있었어.


1학기 기말고사를 7월 말에 보더라고.


그리고 바로 방학이고 말이야.


그 학교애들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 학원이 새벽 두시까지 개방되었어.


지금이야 심야학습제한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때는 자습한다고 하면


새벽 2시고, 3시고 개방되었지.


그런데 새벽 시간 때 자습하던 한 학생이 이상한 말을 하는거야.


학원에 여자 샘을 뽑았냐고.


그 땐 내가 수학하고 남자 과학 선생 달랑 둘이었는데.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 학생은 아주 가끔씩 스치듯 낯선 젊은 여자가 보인다는거야.


난 그냥 학생 찾으러 온 학부모를 학생이 착각한 걸로 생각했지.


그런데 그 학생이 더더욱 이상한 말을 하더라구.


조용히 공부하고 있으면 아주 가끔씩 어떤 여자의 묻는 소리가 들린데...


뭐라구요? 이러면서 말야."



나는 마른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헉...제가 어제 들은 말입니다."



나의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장은 면도도 제대로 안한 산적같은 얼굴을 

내게 가까이 하더니 속삭였다.



"더 쇼킹한 얘기 하나 해줄까?


그 여자가 퇴마의식을 할 때 그 사이비 목사한테 머리와 뺨을 엄청나게 맞았나봐.


그래서 한 쪽 귀가 잘 안들렸었는데 그래서 누가 말을 걸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랬대.


뭐라구요? 말이야." 



찬물에 젖은 수건이 등짝이 닿는 것처럼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나도 쇼킹한 얘기를 원장에게 해주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다.


사실 지금은 그 여자보다 내 앞에 가까이 있는 원장 얼굴이 더 무섭다.


"원장님도 겪은 일 있나요?"



"나? 음...귀신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없었는데 비슷한 경험은 있었지.


우리 건물 화장실 알다시피 남녀 화장실 문이 수직으로 붙어있잖아. 


문을 열어 놓으면 화장실에 누가 출입하는지 볼 수가 있어.


어느 날이었어.


새벽 1시 쯤이었지.


교무실 정리를 하고 손이 씻으려고 화장실 세면대로 향했지.


5층엔 나 밖에 없었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손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내 뒤편에서 웅얼웅얼 대는 목소리가 들리더라구.


여자 목소리로 말이야.


와....그 때 진짜 수백볼트에 감전된 것처럼 몸이 굳어버리더라구.


바로 앞에 거울이 있는데 얼마나 겁이 나던지 거울을 쳐다 볼 용기조차 나지 않더라니까."




원장은 목이 타는지 종이컵에 물을 따라 한 모금 들이켰다.




"용기를 내서 거울을 쳐다봤어. 



그 때 뭐라도 있었으면 아마 기절했을거야.


내 뒤엔 아무 것도 없었어.


난 누군가를 계속 불렀지. 


화장실 문 쪽을 바라보니까 여자 화장실 문이 열려 있더라구.


여자들은 보통 화장실로 들어가면 출입문을 닫잖아.


그런데 그게 열려 있는거야.


나는 살짝 머리만 내밀고 여자 화장실 내부를 들여다 봤어.


변기가 있는 내부 화장실 문도 열려있고,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어.


누가 보면 변태라고 했겠지만, 난 그 때 정말 위급한 마음이었거든.


귀신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나 봐.


나는 이상한 소리만 들었을 뿐 무슨 형상을 본 적은 없어. 


그런데 웃긴게 뭔지 아나?


그게 시기가 있다는 거야.


희한하게 장마가 끝날 때쯤에 시작되서 보름 간 그런 일이 계속돼.


나는 혹시나 학원의 귀신소동이라도 벌어질까봐 그 뒤로 학원 휴가를 그 때쯤으로 잡았지.


다음 주가 휴가인 이유도 그 때문이야.


본의 아니게 자네가 먼저 선수를 친 것 뿐이지."




"이러한 사실을 또 누가 알고 있죠?"



"옆의 치기공 사람들이야."



"어떻게요?"



"몇 번 야근하다가 소동이 벌어졌었나봐.


내가 들은 얘기는 한 직원이 새벽 근무를 마치고 불을 끄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작업실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래.


놀란 직원이 황급히 불을 다시 켜니까 작업실 홀 중앙에 어떤 여자가 무릎을 꿇고 

참배를 올리 듯 팔을 쭉 펴고 엎드려 있더라는거야. 


그런데 그 친구는 신기가 있었나봐.


얼굴까지 또렸하게 봤다더군.


거기 누구예요 하고 부르니까 여자가 뒤돌아 보는데, 얼굴 전체가 검붉은 피멍으로 가득하더래."




"진짜로 봤단 말입니까?"



"나도 믿어야 될지 말지 고민도 했지만, 그 사람이 봤다는데 어떡하겠나?


결국 그 직원은 너무도 놀라서 문 잠그는 것도 잊어먹고 도망을 쳤다는군.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지.


그 뒤로 저 회사는 웬만하면 10시 이후 근무는 안해.


최근엔 한 번도 야근하는 것을 본 적도 없어"





"그런데 회사를 옮기지도 않네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 여기 임대료가 길 건너편보다 100만원이나 싸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업하는 사람에게 한 번의 술값 100만원은 아까운게 아니지만 고정비용 100만원은 정말 아까운 거라네."




"그런데 그 회사 사람들 다 귀신 씌운 것 같지 않아요?


다들 무표정하고, 다른 사람들하곤 말 한마디는 커녕 인사도 안 나누고...


왜 다들 우리에게 적대적인 표정인거죠?"




"그냥 무시하고 살아. 그 사람들도 우리가 낯설게 느껴지나 보지."



"낯선 게 아니잖아요. 벌써 이 학원이 5년 째인데...


저 치기공 회사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는 건 아닐까요? 


생각해 보세요. 


그 교회 자리가 있던 곳인데, 무슨 더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잖아요.


우리한테 이 정도면 저 사람들은 어느 정도겠습니까?"



"별걸 다 걱정하는군. 하여튼 당분간 휴가갈 때까지 새벽에 남아 있지마.


그리고 괜히 치기공 사람들한테 말걸어서 불란 만들지마."







이 학원에 그 동안의 많은 소동이 있었을텐데 학원생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더 신기한 건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는 치기공 회사이다.




"그래서 넌 귀신을 믿냐?"


원장으로부터 들은 귀신 얘기에 민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편의점 밖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민수와 대화를 나눴다.


민수의 질문에 나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의 대답이 없자, 민수가 말을 이었다.



"과학 전공인 애가 귀신 얘기를 한다는게 우습지 않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암흑에너지라고 들어봤냐?"



"물론 들어봤지. 같은 물리 전공끼리 왜 그래?"



"우주의 팽창이 중력만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들이 있어. 그래서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개념을 도입한 거고."



"그런데 귀신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뭔 뚱딴지 같은 얘기야?"



"만일 사람이 뉴트리노 같은 입자로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해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작은 질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건물이고 뭐고 우리가 아는 물질의 세계는 상호작용하지 않으면서 

모두 다 투과했을거야.


우리는 물질세계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지,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많은 것들이 있을거야.


난 꼭 뉴트리노를 말하는게 아냐. 


암흑에너지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있듯이, 현실에서 지각능력을 가지는 


물질 형태의 생물이 아닌 또다른 형태의 지각능력 아니 지적 능력체가 있는건 아닐까?


그 능력체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으면 우리는 환청과 환각을 겪게 되는거야.


아니지, 환청과 환각이 아니라 실재하는거지.


단지, 망막 시세포의 반응과 고막의 울림만 없는거야.


매트릭스처럼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지 않아도 실제로 그렇다고 느끼는 것처럼"




"헐....너 갑자기 초자연주의자가 된 것 같다. 


너 그러다 무당이라도 되는거 아냐? 허허..."



민수는 나의 지나치게 진지한 표정을 풀어보려고 하는지 너털 웃음을 내보였다.



"그런게 귀신 아니겠냐고?"



나는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는 민수의 답변을 기다렸다.


나의 질문에 민수가 환한 얼굴 표정을 풀더니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너, 그러다 미치는 것 아니냐?"



"아직 미치지 않았는데 미칠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니가 내 입장이라면 아마 나와 똑같은 말을 했을거다."



민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몇 십초간을 나를 응시했다.


깍지 낀 손을 배 위에 얹고 플라스틱 의자 위에 최대한 길게 늘어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민수.


왠지 방관자적인 친구의 모습에 서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것은 나의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민수는 뒤로 눕힌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나에게 말했다.



"내일 새벽 1시 쯤에 너희 학원에 놀러갈게. 그 때까지 남아 있어라. 진짜로 뭔지 한 번 보자."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려는 자세를 취하던 나는 생각지도 않은 민수의 말에 살짝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와...학원 깔끔하고 좋구만."



민수는 마치 임대계약하러 온 사람마냥 이리저리 학원 내부를 들여다 봤다.



시간이 막 12시 5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원장님은 가셨나 보네."



"응"



"늦게 남아있는 거 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친구 만날 일 있다고 여기서 기다렸다 간다고 했어."



민수는 여전히 여기저기를 훑어보면 말을 이었다.



"건물 구조가 참 특이하다. 모든 업체가 입구를 마주보고 있는 구조라니...."



나는 민수를 교무실로 안내했다.



민수는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길게 눕혔다.



"여기서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거냐?"



"1시 쯤이니까 잘 하면 지금도 뭔가 보고 들을 수 있지.


민수 니가 있으니까 확실히 무서운건 덜하다."




나의 말에 민수가 피식 웃음을 보냈다.



"민수, 너는 귀신 같은 거 본적 없냐?"



"귀신? 음.........그런 비슷한 현상은 경험해 봤지. 남자들은 흔히 군대에서 경험하잖아.


넌 특공대 출신이라 간이 배 밖으로 나올 줄 알았더니 의외로 무서움 많이 타는구나."




그렇다. 남들은 내가 특공대 나왔다고 하면 겁도 없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줄로 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겁도 많고 혈액형으로 말하면 전형적인 A형 스타일이다.



"특공대가 귀신하고 싸우는데가 아니잖아. 게다가 내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는 수방사(수도방위사령부) 특공대라 너처럼 사람보기 힘든 곳도 아니거든."




"그러고 보니 너희 형제는 참 희한하다. 


순둥이인 네 형은 특전사 나오고, 개미 한마리 못 죽이는 너는 수방사 특공대 나오고.."




"원래 형이 간 특전사는 지원해야 갈 수 있는데 일반 특기 사병들은 차출하거든.


첫타로 군대 간다고 한 아들이 베레모 쓰고 나타나니 우리 엄마가 얼마나 황당했겠냐?


게다가 형이 훈련 도중에 무릎을 다친 적이 있거든. 그래서 우리 엄마가 더 걱정을 많이 한거야.


형이 제대하고 내가 군대 갔는데 우리 엄마는 설마 했던거지.


내가 첫 휴가 나와서 집에 들어갔는데 내 야전상의의 공수마크 보고 우리 엄마가 자리에 털썩 주저 앉더라.


힘들긴 했지만 나름 군생활은 재미있었는데 말야.


그런데 민수 너는 최전방에 있었잖아."




"최전방은 훈련보다 생활이 힘들어.


낙후된 시설, 생지옥같은 추위, 지겹도록 내리는 눈,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


이런 것들이 군생활을 힘들게 만들어.


그나마 철책 근무 연대가 아닌 사단 직할대 소속인 나도 그런데 GP나 GOP에 들어가 있는 애들은 

어떻겠냐? 정말 죽을 맛일 거다.


최전방 산 속에 처박혀 있어봐.


이십 평생 인공적인 소리에 익숙한 탓인지 특히 밤에는 사회에서는 듣기 힘든 괴이한 소리를 많이 듣게 돼.


하얀 설원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가 여자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장마철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나뭇잎을 때리는 소리는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


소리 뿐만이 아냐. 시각적인 효과도 무시못해.


워낙 볼거리가 없으니까 야간에 비닐봉지 하나만 떠다녀도 귀신처럼 보인다니까."



그러고 보니 민수하고는 군대 얘기를 잘 안한 것 같다.


제대하고나서 몇 년간 보질 못해서 그런걸까?


민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번은 미스테리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


겨울에 야간 초소근무를 하는데 사방이 눈으로 덮여있는 숲을 끼고 있는 외곽초소였어.


너무나도 주변이 하얗다보니까 까만 형태의 무언가만 보여도 의심스럽게 생각되는거야.


그런데 50여미터 떨어진 언덕 중턱에 흰소복을 입은 여자같은 형상이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서 


우리 근무자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거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그런 흰소복 입은 처녀귀신처럼 생겼더라니까.


총을 들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총기를 사용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어.


그냥 계속 지켜만 봤지.


그런데 10분이 지나도록, 20분이 지나도록 꼼짝 않고 있는거야.


조금 소름이 끼치더라구.


부사수인 이등병 녀석은 영문도 모른 채 이미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고.


내가 그 때 상병 때였지...어떤 객기가 발동해서인지 모르는데, 아마 고참 행세를 하고 싶어서일거야.


너무 궁금해서 못참겠더라고. 그래서 뭔지 확인하러 올라가기로 결심했지.


나는 부사수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하고, 총구를 앞으로 향한 채 언덕을 향해 천천히 걸어 올라갔어.


눈이 거의 무릎까지 올라와서 50여미터를 걷는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구.


가까이 접근하면 수하를 하고 암구호를 외칠 생각이었지."



"그..그래서..그게 뭐였는데?"



나는 이미 민수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 것 있잖아. 가까이 접근하여 형태가 확실해지면 전혀 예상치 못한 물체가 되는거...."



"그래서 뭐였냐구?"



"몰라. 그냥 올라가는데 점점 그 귀신 형상은 흐트러지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작은 나뭇가지들, 


미처 눈속에 다 묻히지 못한 바위들, 엄청난 무게의 눈을 지고 힘겹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무들.....


난 뭔가 있나 하고 수십미터를 계속해서 더 올라갔는데 그게 전부였어.


그것들이 합쳐져서 멀리서 그런 형상을 만든거야.


주변을 꼼꼼히 이리저리 살폈지만...


Never!! 아무 것도 없었어."



민수의 말에 나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에이..뭐야 그게? 장난하냐? 미스테리한 일이라며?"



나의 어이없다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민수는 여전히 진지했다.



"그런데 젠장....문제는 그게 아니었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데, 부사수 녀석이 뜬금없이 수하를 하는거야.


아무리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미친 넘이지. 같이 근무서는 근무자한테 수하를 하다니...


난 순간 당황해서 그 녀석이 시키는대로 제자리에 서서 암구호를 댔지. 


우린 근무자에게 실탄이 지급되기 때문에 아무리 쫄따구래도 순간 움찔하더라구.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싸대기나 한 대 올려줄까 하는 생각으로 그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부사수 녀석이 나를 공포에 질린 듯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나보고 왜 그랬냐는거야.


이등병 주제에 갑자기 미친 놈처럼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화가 나더라고.


고참인 내가 대신해서 주변을 수색해 줬는데 이등병이란 자식이 고참에게 근무 중에 수하나 하고 있고, 


그런 말을 하니 열 안받냐?


그래서 개머리판으로 그 녀석 철모를 톡톡치면서 정신차리라고 했지.


그런데 그 자식이 하는 말은 그 뜻이 아니었던거야.


나보러 여자를 왜 업고 갔냐는거야.."




"뭐?"



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여자가 있던 자리까지 가서 아무 것도 없길래 좀 더 올라간 것 뿐이거든...


그런데 그 자식이 말하기를 내가 거기서부터 여자를 업고 시야에서 사라졌다는거야.


이건 뭐....반전 공포영화도 아니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뭘 어떻게 돼? 그 녀석을 졸라 갈궜지. 


정신차리라면서 달밤의 체조를 시켰지. 푸쉬업시키고, 쪼그려 뛰기시키고...


하하 웃기지?"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마치려는 민수가 뭔가 하지 않은 말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다야?"



나의 물음에 민수가 정색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께름칙했지. 불쾌했고....그 자식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한 일이 


주간 근무 중에 일어났어.


이틀 후 같은 초소에서 주간 근무를 서는데 야간 근무 중에 내가 순찰을 돌았던 흔적이 그대로 있더라고.


그런데 젠장 50여미터까지 나의 깊은 발자국이 흔적이 보였거든."



"그 다음부터는 없었다구?"



"아니..그게 아니라 그 다음부터 내 발자국 위로 뭔가 쓸려있는 흔적이 보이더라구.


방한복은 무릎까지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눈을 쓸고 지나갈 일이 없어. 


나는 놀라서 눈밭을 헤치고 허겁지겁 그 곳으로 뛰어 올라갔어.


눈을 쓸고 간 깊지 않은 흔적이 내 발자국 위에 있더라구.


그렇다고 귀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솔직히 그 때는 소름이 돋더라구..."



"니 부사수가 장난질한 건 아닐까?"



"그럴수도 있지. 그런데 혼자 돌아다닐 수 없는 이등병이 그런 장난친다는 것도 우습고, 


내가 확인하러 올라갔을 때 내 발자국 흔적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헐...대박 소름이군....귀신이 니 등에 업힌거야? 너 자신도 모른채?"



"야, 그런 얘기하지 마라. 내 동생한테 얘기했더니 아직도 업고 다니는거 아니냐고 놀리더라."



"귀신은 사람한테 붙으면 잘 안 떨어진다는데..."



"너까지 왜 그래? 난 아무 탈없이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분명 그 자식이 헛 것을 봤을거야."



나는 민수의 저 여유로움이 부럽다.


어떻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인냥 저렇게 넘어갈 수가 있을까?



"그런데 니가 말한 치기공 회사가 어디야?"



"따라와봐."



나는 민수를 치기공 회사의 출입문으로 안내했다.


민수는 엘리베이터 문 앞 홀에서 여기저기를 살폈다.



"왼쪽은 글쓰기 학원, 오른쪽은 치기공...이 회사는 간판도 없구나. 그리고 가운데가 니네 학원.


니네 학원만 불이 켜져 있으니 음산하긴 하다. 그리고 맨 오른쪽은 화장실과 비상계단....."



"너 뭐하는거냐?"



"구조를 잘 봐. 여기는 비상계단쪽으로만 창이 있어. 그래서 바람이 불고 나가기가 원활치 않아."



"그래서?"



"생각해 보라고. 창을 통해 바람이 들어오고 나갈때 새벽시간대 유일한 통로인 


너희 학원문이 들썩거릴 수 있다구...


그것 때문에 방울소리가 날 수 있고, 일련의 일을 겪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럼 그림자나 찬 기운은?"



"그림자야 나도 모르지. 몰래 담배피러 올라온 애들일 수도 있고, 노숙자일 수도 있고...


찬 기운이야 에어컨을 끈다고 강의실 온도가 바로 내려가지 않잖아. 


공기의 흐름 때문에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럼....여자 소리는 뭐냐?"



"그게..제일 미스테리네...나도 뭐라 설명하기가 그래...그렇다고 설명 못할 이유는 없지.


여기가 5층이야. 너 아파트 7층에 살아봐서 알잖아.


5층 정도면 밑에 지나가는 사람소리가 들려.


게다가 새벽시간대라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들릴거란 말야.


어쩌면 우연히 건물 밖의 어떤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니가 겁을 먹었을 수도 있었단 말이지."



"젠장 이 모든게 우연일 수 있단 말야?"



"난 니 얘기를 듣고 난 후로 귀신보다는 여기 원장이라는 사람이 더 의심스러워...담배 하나만 줄래?"



민수는 내가 건낸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내 길게 한 모금을 빨고 연기를 내뱉더니 말을 이었다.



"이 연기가 어디로 가나 잘 봐..."



민수가 내 뿜은 연기는 위로 올가는가 싶더니 진로를 바꿔 조금씩 학원 출입문 쪽을 향했다.



"니네 흡연실은 원래 비상계단 위층이라며? 그래서 평소엔 잘 몰랐던거 아냐?"



"그런데 왜 원장이 나한테 그런 귀신 얘기를 했을까? 못 믿기에는 너무 체계적이잖아. 

진짜로 거짓말을 한 걸까?"



민수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몇 모금의 담배를 계속 빨아댔다.



"거짓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거짓말이 아니라면 원장이 뜬소문을 진실로 믿고 있거나, 자신이 겪은 걸 너처럼 과대해석했을 것이고.....


거짓말이라면........뭔가 너에게 숨기고자 하는게 있을거야."



민수는 잠시 창밖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나에게 보내더니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게 뭘까?"


"넌 정말 우리 원장님이 의심스럽냐?"



나는 진지하게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의 대답이 없자 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원장님이 거짓말을 했다면 그렇게 치밀하게 말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금방 들통날 수도 있을텐데 말야."



내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지만, 민수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느긋하게 담배를 빨던 민수가 다시 한번 나에게 그 음산한 미소를 보내더니 입을 열었다.



"분명히 겪은 일인데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거지."



"그럼.....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걸까?"



"그건 니가 알아내야 할 일이다. 옆의 글쓰기 학원이나 치기공 사람들을 이용해 봐."



칠흑 속에 묻힌 창밖을 배경으로 우리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춰졌다.


우리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유리창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비친 민수의 모습에선 조금 전의 여유로움이 묻어나지 않았다.


이런 잠시 동안의 적막을 깬 건 민수의 나즈막한 목소리였다.



"지금 유리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진짜일까?"



"뭐?"



"난 거울을 볼 때마다 항상 그런 생각이 들어."



"공포영화 찍냐? 거울 속에 귀신이라도 있단 말야?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귀신이 아니라..잘 생각해봐.

사물에 반사된 빛이 눈으로 들어와. 시세포가 그것에 자극을 받지. 

그 자극을 시신경을 통해 뇌로 보내는 거야.

그럼 뇌의 시각중추가 그것을 인식해서 사물이 보인다고 인지하는거지."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거야?"



"만일 뇌가 그것을 왜곡한다면 어떨까? 

보이지 않아도 보이거나, 보여도 보이지 않을 수가 있는거지.

보통 머리에 심한 타격을 받으면 눈 앞에 파란색 섬광이 번쩍거려.

이건 빛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신경이나 뇌에 오류가 생긴거래.


착시현상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우리의 뇌가 지멋대로 사물을 해석한다는 것.

배경만 다르게 주면 두 물체의 길이나 색, 심지어 모양까지 왜곡시켜버리잖아.


가위 눌려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과 섞여서 보이기도 하잖아.

그런 것 생각하면 참 신기해.

얼마든지 그 반대도 일어날 수 있는거지.

보고싶지 않은 걸 지워버릴 수도 있어."



창밖을 보며 말을 잇는 민수의 모습이 섬찟하게 느껴졌다.



"영화 식스센스에 보면 그런 대사 나오잖아.

귀신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거만 본다고.......그래서 자기가 죽은지도 모르고..."



"야...민수야. 소름끼치게 왜 그래?"



민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미소를 짓지 않는 그 모습이 조금 전보다 더 음산해 보였다.



"지금 나의 뇌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게 아닐까?"



"............."



필터까지 담뱃불이 타들어감을 모르는 채, 민수는 시선을 나에게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군대에서 있었던 부사수 얘기 말야.


난 아직도 께름칙한게 뭐냐면......


그 여자가 나한테 업혔다고 했을 때......


그 때 나의 뇌가 보고 싶은 건만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뭐야? 아까 그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로 간거야?

아직도 귀신이 니 등에 업혀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 정도는 아냐. 그런데 말야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두려운게 있다."



"뭐가?"



"무언가에 내 모습이 비춰지는게 무서울 때가 있어.

특히 거울.....카메라로 찍지 않는 한 내가 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잖아.

나의 뇌가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을 거울 속에서 보게 될까봐 두려운거지.

그래서 싫어.


가짜가 아닌 진짜를 보여줄까봐."




민수는 다 타들어간 담배를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나는 물끄러미 민수를 바라보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짜로 귀신을 믿는건 내가 아니라 너구나...

너는 단지 귀신이 아니기를 바라며 과학적으로 해석하려 했던거야. 그렇지"



"난 과학의 힘을 믿어. 단지 과학이 이런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만큼 발전하지 못했다는게 문제지."




"그런데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그 부사수 얘기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

이제 한 때 해프닝으로 잊어버릴 때도 됐는데..."



민수는 나에게 향했던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걔가 죽었거든. 그 일이 있은 며칠 뒤에....."



"왜?"



"트럭이 눈 덮인 언덕을 올라가다가 지반이 함몰되어 전복되었는데 깔려 죽었어."



"그 일이 그 친구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냐?"



"굳이 가져다 붙이고 싶진 않은데.....그 녀석만 죽었어. 


운전병, 선탑자 게다가 트럭 뒤에는 여섯명이나 타고 있었는데....


귀신은 심약한 사람에게 잘 붙는다고 하잖아. 

그 때 근무지에서 그 녀석의 공포에 질린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난 갑자기 허탈한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하하하...별 미친....이런 녀석한테 내가 귀신 상담을 했다니....참나.. 정신 차려라. 민수야."



나의 웃음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민수는 심각한 표정을 누그려뜨렸다.



"그냥 너무 찝찝하다 이거야......꼭 귀신이라는건 아니고...그 때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나를 쫓아다녀."



어느 덧 시간이 1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민수는 학원으로 들어가 다시 한번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귀신들 계모임하는 날인가 보다. 아무 일도 없네"



민수와 귀신과의 맞대면은 성사되지 못한 채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업무를 보는 와중에도 나는 원장의 시선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나를 가끔씩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업을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그것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가슴이 너무 답답해짐을 느껴 바람도 쏘일겸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원 밖으로 나섰다.


앞을 가로막는 건물의 창문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예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건물 1층의 주차장으로 내려와 나는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꽁초 잘 버려요."



입구 관리실에 앉아있던 건물 관리인이 나에게 말했다.



"요즘 학생들이 밤마다 거기서 담배 피우고 얼마나 꽁초를 버려 대는지....

또 그 놈의 침은 왜 그렇게 뱉는거야?"



"예...아저씨..."



그 때 마침 내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나와 같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치기공 회사 직원이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통통한 얼굴, 실내 작업자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만큼 하얀 얼굴...

그리고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알 수없는 실처럼 가는 눈매...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호의적인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모습은 '나는 순둥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나는 머쓱한 인사를 먼저 건넸다.


그는 대답도 없이 고개를 숙이는 둥 마는 둥 하며 답례를 했다.


정말 숫기가 없는건지 싸가지가 없는건지 도통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그에게 말을 걸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저....며칠 전에 회사에서 숙직하신 분이 있었나 봐요?"



"예?"



나의 진지한 물음에 그제서야 그가 말로써 반응을 했다.



"새벽 1시가 되었는데 불이 켜져 있고, 사람 인기척이 느껴지더라구요." 



경상도 사투리인데 꼭집어 말할 수가 없는 지역의 억양으로 그가 대답했다.



"아....그 날예? 사장님이 서류작성 때문에 늦게까지 계셨슴더."



젠장...그럼 나 혼자 쇼를 했단 말인가?


나는 다음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새벽에 혼자 있으면 무서우실텐데...."



나의 말에 그가 바로 받아쳤다.



"어휴....그 쪽이 교회 자린데 훨씬 더 무섭지예."



"예?"



나의 물음에 그가 갑자가 얼굴 표정을 정색하더니 갑자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나는 대어를 놓칠 수 없었다.





"뭐라구요? 우리 학원이 교회 자리였다구요?"


"그만 얘기 하입시더."



"아저씨!!"



애써 외면하며 뒤돌아서려는 그의 어깨를 나도 모르게 잡아챘다.




"아저씨, 얘기해 봐요. 아저씬 뭔가 알고 있죠?"



"난 할 얘기 없슴더. 당신 원장한테나 물어보소"




남자는 급하게 담배를 끈 후 후다닥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아저씨! 아저씨!!"



나는 급하게 그를 불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그 치기공 직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업무가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


항상 제일 먼저 퇴근하는 생물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는지 일어나는 시간이 항상 일정했다.


1시간 쯤 지나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늦게 가려나 보군. 그러지 말라니까. 나 먼저 가네."



원장은 걸음을 학원문쪽으로 향했다.




"원장님. 왜 저에게 거짓말 하셨습니까?"



나의 뜬금없는 물음에 원장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입니까?"



원장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인가?"



"치기공 직원한테 들은 게 있습니다."



"뭐를?"



"여기가 그 교회 자리라면서요?"



원장은 잠시 나의 얼굴을 살폈다.



"이런.....마스크 쓰고 이빨이나 갈고 있을 일이지 쓰잘데없는 말을 했군."



원장은 옆의 상담용 의자를 끌어내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나?"



"어디까지 진실입니까? 알고 싶습니다."



"말해주면 나에게 무엇을 해줄텐가?"



"예?"



"김선생. 세상은 주고받는거야. 공짜라는게 없거든."



"제가 뭘 해주길 원하십니까?"



"학원을 떠나게. 조용히 말야."



"예? 학원을 그만 두라구요?"



"그래. 그러면 얘기해주지."



"좋아요. 그러죠. 저도 이 학원에 오래 근무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원장은 나의 대답을 듣더니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말한건 다 사실이야. 귀신 얘기와 교회 자리만 빼놓고."



"모두 다요? 여자가 죽은 것두요?"



"그래. 모두 다...."



"그런데 왜 귀신얘기와 교회 자리만 거짓말을 하신겁니까?"



"이 자리가 그 교회자리라고 하면 자네라면 근무를 계속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애초부터 그 귀신 얘기같은 거짓말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것 아닙니까?"


"그걸 말하고자 하는거야. 어차피 자네와 생물 선생은 이번 여름방학이 끝나면 나가야돼."



"뭐라구요?"



"난 여기에 교회를 차릴거거든."



"교회를 하신다구요? 목사 안수라도 받으셨어요?"



"물론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어. 돈도 좀 벌어놨고. 시작만 하면 되지. 


정말 오랜 기다림이었어. 5년 동안 기다린 계획이니까. "



"목사를 하신다는 분이 담배나 피우고 그게 뭡니까?"



"담배? 후...이제 끊으면 되지 않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원장은 담배맛을 더 즐기는 것 같았다.



"치기공 사람들에게 입막음 하셨죠?"



"무슨 입막음? 


그냥 모른 척 할 뿐이야.


웃긴게 뭔지 아나?


나도 처음엔 죽은 여자 얘기가 퍼지는게 두려웠거든?


그런데 독을 이용해서 병을 고친다고 해야 하나?


치기공 회사와 우린 적당히 타협점을 찾은거야. 


그 사람들도 엄청 싼 값의 임대료를 내고 있거든.


건물주가 세를 올릴 만한 재계약 시점이 되면 여자 얘기와 귀신 소문을 퍼뜨렸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귀신얘기까지 첨가하면 금상첨화 아닌가?


건물주는 감히 세를 올릴 엄두도 못냈지.


두 달 뒤면 재계약 해야 하는 시점인데 자네에게 너무 일찍 소문을 퍼뜨린것 같군."




"정말 기가 막히게 장사를 하시네요."



나는 원장의 말에 혀를 찼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사업하는 사람에게 한 번의 술값 백만원은 아깝지 않지만 매달 나가는 고정비 백만원은 아까운 거라고.


치기공 회사는 그야말로 대박이었지. 


걔들이야 오더 따서 제작만 해주는 사람들이니까 임대료만 싸면 됐거든.


그런데 학원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좀 있었지.


그러나 걱정할게 아니더라구.


우리 소규모 고액 학원이다 보니 다들 입소문으로 들어오게 돼.


학원생이 많지 않아도 되거든.


그리고 어차피 나의 계획은 교회를 차리는 거였어."




"대단하시군요. 말이 안나올 정도로.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싶었습니까?


정직하지도 않으신 분이 게다가 목사라니요?"



"정직하지 않다고? 천만에 나는 옆의 치기공 회사와 더불어 특이한 협상 방법을 펼쳤을 뿐이야."



"제가 건물주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라도 한다면 어쩌실겁니까?"



원장은 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하하.....건물주는 상관없어. 

이곳에 계약하러 오는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들었느냐 안들었느냐의 문제니까.

이 건물을 다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다 하여도 몇 년간 약효가 지속되고 있을걸?

그리고 난 이곳에 있을거고..."



나는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가장 정의롭고 정직해야 될 직종에 종사하려 한다니...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습니다."



"그래? 맘대로 하게. 대신 월급은 남은 기간을 제하고 지급하겠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을 하나둘씩 챙겼다.



"천천히 챙겨. 내일해도 되지 않나? 우리가 원수지간도 아니고..."



원장은 담배불을 짓이기더니 꽁초를 휴지통에 던져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에어컨 꺼졌나 잘 확인하고 가게. 그리고 오늘 한 얘기는 되도록 비밀로 해주게.

해도 상관 없지만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원장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주섬주섬 이것 저것을 챙기고 있는데 학원문을 나서려던 원장이 뒤돌아 나에게 물었다.



"아..참. 김선생. 나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원장에게 보냈다.



"자네 진짜 여자 목소리 들었어? 뭐라구요라고 했다는..."



나는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



"거참.....모를 일이네. 우연의 일치인가? 


학생들이 겪은 얘기는 진짠데 자네도 같은 말을 들었다니.....아무튼 나 먼저 가네."



원장은 뒤로 돌아 가볍게 오른손을 치켜들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의 책상 정리는 30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원장에게 답변을 들었음에도 영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원장이 떠나도 그 여자는 아직 여기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나는 서둘러 정리를 마무리짓고 

학원문을 나섰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거다.








"니 학원 갔다 온 뒤로 며칠 동안 컨디션이 안 좋다."



민수의 말대로 녀석은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넌 오늘 술은 하지 말고 간단히 식사나 하고 가라"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뒤로 주말이 아닌 주중 초저녁에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해본 적이 없다.


한창 수업하고 있어야 할 저녁 8시 시간대에 술자리를 하고 있다니 아직도 잘 적응이 안된다.



"일자리는 알아보고 있냐?"



민수는 내가 걱정이 되는 듯 말을 건넸다.



"한 두 달만 쉬고 싶다."



"그래. 쉴 때 쉬는게 최고지.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라."



"여행도 귀찮다. 그냥 방에 처박혀 있을란다.가끔씩 니 보러 올게"



"니가 그 학원 다녀서 그나마 자주 만났는데 이젠 어떡하냐? 멀리 가겠네."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민수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너는 원장말을 믿냐?"



"뭐?"



"원장이 지금까지 한 말 말이야. 그 걸 믿냐구?"



"이젠 믿던 안믿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나는 이젠 원장의 모든 것이 관심밖 사안이었다.


그러나 민수는 의심스런 눈빛을 풀지 않았다.



"교회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그게 의심스러워.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교회를 차릴려고 하다니.."



"이젠 다 끝난 일이다."



민수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어했지만 나의 태도를 보고는 말을 거두는 것 같았다.





이젠 그 학원으로부터 모든 것이 멀어졌다고 생각이 들쯤, 


민수와 나는 머리 벗겨진 그 치기공 직원을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학원을 그만 둔지 한달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민수를 만나러 갔다. 


민수와 내가 그 술집에 들어섰을 때 그는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전과는 달리 나를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고...옛날 그 선상님 아닌교? 반갑습니더"



그는 합석한 나머지 두 사람을 무시한 채, 민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원장님한테 얘기 다 들었지예?"



"예"



"본의 아니게 선상님께 의심만 사게 만들어서 죄송함니더. 

임대료 낮춘다고 별 짓을 다하지예?"



"아..아닙니다. 모두 같이 잘 살자고 하는건데요 뭘.."



"근데 원장님이 와 그라시는지 모르겠어예"



"뭘 말입니까?"



"교회 차린다고 그라지 않았능교? 그것 땜에 선상님도 나간거 아닝교?"



"아...예"



"처음에 그 학원이 들어왔을 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슴더.


거의 1년 가까이 비어 있었던 자린데예 소문도 모르고 들어오는가 싶어서 참말로 걱정이 많이 되었지예."



뭔가 이상하다. 원장이 말한 것과 순서가 맞지 않는다. 


원장은 원래 치기공 자리가 비어 있었다고 했는데...


나와 민수는 옆자리의 의자를 끌어와 그 앞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그의 말을 더 끌어내기 위해 몇 잔의 술을 권했다.



"참말로 그 원장님 둘도 없는 선인이었지예. 


그 교회 다니문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궂은 일 마다않고 자기가 앞장서서 다 했지예."




"예? 원장님이 그 교회에 다녔다구요?"




"원장님이 얘기 안했능가 보네예. 그 교회의 유명한 신도였는데예.


얼굴 잘 생겼겠다 머리 좋겠다 또 믿음 충만하겠다. 하이고 말도 마소. 


여신도들이 난리가 아니었지예.


그 죽은아... 금마가 원장님을 젤 좋아했지예.


원래는 행실이 음청 안 좋은 가스나였다 아닝교.


술담배질은 기본이고, 남자관계가 억수로 복잡한 가스나였는디, 금마 부모가 그 교회에 끌고 온거 아닝교.


그런디 그 가스나가 원장님한테 홀딱 반해가꼬, 술담배도 끊고 아예 교회에 눌러 살다시피 했지예.



근디 그 목사라는 사람이 금식기돈가 뭔가 하믄서 예전의 죄를 씻어야 칸다믄서 애를 잡은거 아닝교.


그 일 있고나서 한 동안 안보이더마는 1년 뒤에 학원 한다믄서 나타났는디, 그 땐 참말로 놀랬지예.


우째 예전같지 않게 사람이 좀 무섭기도 하고...."



민수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그래서 원장님이 그간의 일을 모른 척 해달라고 했겠군요."



"그게 사람의 도리지예. 그동안 얼매나 힘들었겠능교?


근데 오구나서 원장님이 좀 이상해졌어예."



"뭐가요?"



"전에는 술담배같은거 안했는데 담배 태우는 것도 몇 번 봤고, 술에 취해 지나가는것도 봤다 아입니껴.


가끔씩 사람도 몰라보고....그거 못 느꼈어예?"



"술담배하는건 알았는데 사람 몰라보는 건 몰랐는데요."



"내만 오랫동안 봐와서 그런가? 원장님이 온 뒤로 이상한 일도 많았지예.


우리 회사에는 가끔씩 새벽 출근하는 근무자가 있는데, 금마가 말하기를 


원장님이 학원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카데예.


그라고 여자 목소리도 들린다 카고...."




"여자요?"




"원장님 아직 총각 아닝교. 마누라가 있을리도 읍고......


글고 우리 건물에 어느날 시주받으러 온 스님이 있었는데예, 겁나 무서운 얘기를 하고 가는거 아닝교."



민수와 나는 다시 한번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무슨 얘기요?"



"그 학원에 주인이 둘이라능교. 뭔소리냐고 했더니마는.....

이 곳을 떠나지 않는 주인이 하나 있다카데이...

그 말이 뭔 뜻인지 알긋지예."



"주..죽은 그 여자 말입니까?"



그 직원은 술김에도 소름이 끼치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율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이고마..말도 마소. 그 뒤론 원장님 얼굴 보기도 무섭다 아입니껴."



그는 목이 타는지 술이 고픈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이제야 꼬였던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의 술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12시가 가까워지는 어두운 밤길을 민수와 나는 말없이 걷고 있었다.


목적지가 일치하지 않음에도 나는 일단 걷는 것이 지금 해야할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민수였다.



"자박령...."



"뭐?"



"자박령 말야...."



"지박령은 들어봤는데, 자박령은 뭐야?"



"지박령은 땅이나 건물에 붙어있는 귀신이고, 자박령은 사람에게 눌러앉은 귀신이야."



"그럼..원장이 자박령에 메어있단 말야? 그 여자?"



"잘 생각해봐.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술담배를 한다는 것......


그리고 새벽에 기도할 때......목소리는 두 개지만 정작..안에 있는 사람은 한 명이라고 생각하진 않냐?"



민수의 말에 나는 소름끼치는 전율에 휩싸였다.



"뭐야...빙의? 다중인격?"



"몰라...하여튼 다시는 그 원장을 만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나와 그 기괴한 원장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겠지만, 원장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잊지 못할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민수야...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게 있어."



"뭐?"



"학생도 들었다는 뭐라구요라는 그 목소리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 


그건 원장도 궁금해 하던데........."




갑자기 민수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나의 물음에 민수는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스님도 모르는 또다른 주인이 있을 수도 있지."





























[ 원본 출저 : 웃긴대학  '하드론'님 ]



































대단히 글재주가 좋으신 분이십니다. 

 간간히 시간내서 공포물셔틀질 하겠습니당  참 .. 중복검사를 깜빡한 몇개의 글들이 있는데 앞으론 빼먹지 않고 하겠습니다 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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