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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는 섬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865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ngbi
추천 : 52
조회수 : 6059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6/02/28 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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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동해바다 어딘가에 지도에도 없고 첨단 레이더에도 포착되지 않는 섬이 있다. 독도로 이르는 항로 중 가장 어둑한 물결의 표면, 그림자가 드리우는 외진 그늘 아래 음산하고 눅눅한 섬이었다. 심연 깊숙한 섬엔 그 어둠만큼이나 암울한 이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거칠고 난폭하며 사나운데다 웃음을 몰랐다. 또한 울지도 않았다. 살아가고 있었지만 활기라곤 없었다. 숨 쉬었지만 쉬지 않음과 다름없었다. 
  
섬에 이름은 없다. 그저 섬. 석유 같은 바다가 사방을 휘돌고 파도는 짐승처럼 엉겨 붙은 곳. 타르 찌꺼기가 뭉쳐진 듯 거무튀튀한 토지 위로 햇볕은 차마 닿지 못한 채 증발해 버렸다. 그곳엔 작물이 자라지 않았다. 동물이 살아남지 못했다. 
    
허나 섬에 그런 것은 필요 없었다. 채식과 육식의 모든 가능성이 차단돼도 주민들은 배 곯지 않았다. 그들은 보다 특별한 것을 먹었다. 재배도 사냥도 관리도 가공도 필요 없는 이상적 식품, 누구의 입맛에나 부합하는 보편적 식품이자 유통기한과 잔반 없는 깔끔한 식품. 주방 없이 요리되고 식탁 없이 둘러앉아 식기 없이 담아 먹는 효율적 식품. 기아와 빈곤 없이 섬사람 모두를 먹일 수 있는 평화적 식품이 그들에겐 존재했다.        
  
그것은 '욕'이었다. 그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욕을 먹는다' 혹은 '욕먹을 짓 했다'의 그 욕 말이다. 다만 우리의 어휘에서 욕을 먹는다의 '먹는다'는 귀를 통해 '듣다'가 되지만 섬에서의 '먹는다'는‘배를 불린다’는 의미였다. 섬의 주민들은 욕을 먹고살았다. 그것이 그들의 주식이자 간식이자 야참이었다. 
  
아침이면 그들은 욕을 주고받았다. 기지개를 켜며 욕으로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입맛과 기호에 따라 욕도 다양한 메뉴가 존재한다. 요즘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하지는 않는다. 섬에도 웰빙 열풍이라 소식과 몸매 관리가 대세인 것이다. 간혹 저녁 6시가 넘으면 어떤 욕도 주고받지 않는 아가씨들이 있는데 그녀들은 밤이 깊을수록 배고픔을 참기 힘들었다. 그럴 땐 가벼운 비속어로 요동치는 위를 살짝 달래주곤 다음 날 아침 거친 욕을 먹으리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간혹 이루어지는 회식은 욕의 천국이었다. 얼근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은 갖은 욕을 주고받으며 만찬을 즐겼다. 섬의 술은 마음 깊이 담아둔 끈적한 앙심을 뱉어내어 빚었는데 미움의 골이 깊을수록 도수가 높았다. 때론 사람들은 취해서 토하고 쓰러질 때까지 헐뜯었다.
  
욕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여 욕 요리법 책이 범람하였다. 가장 고급 음식은 살의를 담은 욕으로 과거 궁중음식이자 왕만이 먹을 수 있던 귀한 요리였다. 그것은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감정을 거짓 없이 내뱉으며 갖은 상소리를 지껄여야 만들 수 있었는데 요리를 하는 사람의 목구멍이 녹아내리고 입 속은 죄다 헐어서 종국엔 벙어리가 된다는 위험한 요리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인지 최근 섬 주민들은 대중화된 궁중요리를 부담 없이 즐기곤 했다. 
  
그렇게 평화롭던(적어도 그들에겐) 섬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어머니는 평생을 소식하며 과한 욕을 멀리한 사람이었다. 아이를 가진 당시 여인은 태교를 위해 산책을 하러 갔다. 생기 없는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여인은 씨발디의 클래식을 들었다. 충만한 짜증으로 터벅터벅 길을 걷던 그녀는 잠시 지친 다리를 쉬려 아까워서 주지 않는 나무둥치에 않아 숨을 돌렸다. 그때, 어찌 된 일인지 미처 증발되지 못한 한줄기의 햇빛이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생전 처음 맞는 불쾌한 따스함과 소름 돋는 찬란함에 그녀는 몸서리쳤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대로 시름시름 않다가 2달 후 애처로운 숨을 거둔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어미의 시체를 스스로 가르고 아이는 고개를 내밀었다. 이미 잿더미 같은 어미의 뱃가죽과 달리 아이는 하얗고 투명했다. 사람들은 아이들 보고 불길한 태양빛을 받아 태어났다 하여 흉광이라 이름 지었다. 빛으로부터 태어난 아이는 섬주민들에게 거부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꺼려했고 멀리했다.  
  
흉광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배 부르지 않았다. 어떤 심한 욕을 해도 야위어만 갔다. 주민들은 그런 흉관을 내심 두려워했다. 함부로 죽였다간 어떤 재앙이 닥칠 것만 같아 어쩌지도 못하고 매일 욕만 퍼부었다. 그러다 주민들은 섬에서 가장 모욕적인 처벌을 흉광에게 내리기로 한다. 자신들도 못 견딜 것을 알지만 흉광을 서서히 말려 죽이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한 것이다. 흉광에겐 칭찬의 벌이 주어졌다. 주민들은 교대로 흉광에게 칭찬을 했다. 한마디 한마디 칭찬을 할 때마다 주민들 자신도 머리가 부서질 듯 아팠지만 기꺼이 참아내며 시간마다 흉광의 집을 찾았다. 매 시각마다 한 사람씩 흉광의 귀에 대고 부드러운 칭찬을 속삭였다. 한번 칭찬을 한 주민은 이틀을 앓아누웠기에 사람들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야 했다. 
  
훗날 죽음 앞에 선 흉 광은 그때를 인생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회상한다. 왜냐하면 흉광은 사실 칭찬을 들을 때 비로소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배가 불룩해져 흉광은 오래지 않아 살이 피둥피둥 찌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제야 섬사람들은 흉광이 칭찬으로 배부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내 그를 향한 칭찬을 멈춘다. 
  
흉광은 사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았다. 그곳은 섬 지도자의 저택이며 흉광은 그의 서자였다. 생전 흉광의 어미는 지도자의 첩실이었다. 어둠의 기운이 짙고 욕을 가장 상스럽게 다루는 자가 지도자로 추앙받는 섬에서 빛으로부터 태어난 흉광은 지도자의 약점이었다. 그는 흉광을 제거하려 칭찬릴레이를 펼치지만 되려 그 덕에 흉광이 비옥해지자 죽이기를 그만두고 꽁꽁 숨기어 가둬 버린다. 물론, 물리적 방법을 동원하여 얼마든 죽일 수 있었겠지만 빛을 받은 이를 함부로 찔렀다가는 재앙이 닥쳐온다는 무당의 말이 떠올랐다. 지도자는 모두가 꺼리는 장소인 저택 마당 가장 양지바른 곳에 나무집을 지었다. 그곳은 흉광의 어미가 산책 중 빛을 받은 곳으로 그때 한번 새어 든 빛이 거두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내리쬐었다. 아주 작고 엷은 빛줄기였지만 섬사람 누구도 그곳에 접근하기를 꺼려했다. 
  
그 무렵 섬 주민 모두는 칭찬을 하다가 기력이 쇠해져 몸져누운 상태였다. 하지만 영리한 흉광은 사람들이 찾아오던 시절의 칭찬 소리를 작은 테이프에 녹음시켜 두었다. 그는 아버지의 마당 한편, 개 집보다 조금 큰 나무집 속에서 카세트를 들으며 식사를 했고 배가 부르면 누워 잠을 잤다. 흉광은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곳에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흉광의 존재를 차차 잊어가게 되었다.
  
10년이 흘렀다. 사람들이 흉광을 잊어가는 동안 그는 어느새 청년이 되었다. 좁은 나무집에서 웅크려 지낸 그의 허리는 꼽추였고 머리는 한 번도 자르지 않아 온몸을 뒤덮었다. 마치 걸어 다니는 덩굴처럼 되어버린 그에게서 이제는 어떤 활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 듣던 테이프는 늘어지다 못해 요 몇 달 간은 아예 재생조차 되지 않아 그의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었다. 그는 죽을 날만 기다렸다. 풍요로운 욕 속에서 모두가 기름져가는데 그는 너무도 메말랐다. 만일 그가 죽는다면 아마도 섬 최초로 굶어 죽은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게 아사의 날을 기다리던 어느 오후, 흉광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도자에게는 어미가 다른 자식이 여럿 있었는데 흉광을 제외하고는 모두 으리으리한 대저택 안에 살았다. 보통은 흉광이가 지내는 양지바른 곳 가까이 오는 형제는 없어서 그는 아버지의 다른 자식들이 어떤 모습인지 얼굴 한번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사직전에 이른 흉광이가 욕이라도 먹어볼까 해서 스스로 습하고 어두운 저택 가까이 기어가다가 그만 보고 말았다. 해골이 잔뜩 그려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칠흑 같은 머리를 찰랑이며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는 한 여자를. 그녀는 지도자의 막내딸 이었는데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섬 주민 모두가 그녀를 미워했다. 지도자 또한 그녀를 유독 싫어해서 섬의 모든 욕은 그녀 혼자 들어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흉광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다. 사랑이 온몸을 감싸자 들러붙었던 뱃가죽은 거짓말처럼 팽팽해지고 치렁거리던 머리카락은 두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단정히 자리 잡았다. 얼굴엔 혈색이 돌아왔고 굽었던 허리는 곧게 펴져 당당하고 위풍 있는 골격을 갖추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청년이 된 흉광은 황홀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도 이내 눈부신 빛을 내뿜는 흉광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그리곤 수줍게 말했다. 
  
 '아, 뭐야 씨발.'
  
그때 저택을 나오던 지도자는 자신의 막내딸이 소름 돋도록 아름다운 남자와 얼굴을 붉히고 있음을 목격하지만 그 남자가 흉광이라고는 차마 상상치 못했다. 다만 그 아름다움과 찬연한 빛에 압도당해 선명한 불길함을 느꼈다. 이내 지도자는 남자의 얼굴에서 잊혔던 지난날의 저주를 떠올렸다. 뇌리에 떠오르는 하얗고 투명한 저주, 무당은 지도자에게 아이의 드러남은 몰락을 의미한다 당부했었다. 지도자는 그 자리에서 딸아이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그리곤 경비원을 불러내어 흉광을 흠씬 두들겼다. 흉광은 개처럼 끌리어 헌 나무집에 다시 처박혔다.
  
며칠 후 서로에게 온 힘을 다해 욕해주어야 하는 섬의 축제 '헐뜯음의 날'이 찾아왔다. 흉광은 나무집에 있었다. 그는 잠시 빛을 찾는가 했더니 며칠 새 더욱 야위었다. 이상하게도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그는 욕을 들을 때마다  온몸이 아파 왔다. 전에는 배가 부르지 않았을 뿐 아프진 않았는데 이제는 욕을 듣게 되면 머리가 부서질 지경이었다. 흉광은 축제의 날 나무집에 웅크리고 귀를 틀어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이 욕으로 충만했던 하루, 흉광은 죽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때 누군가 지붕을 두들겼다. 흉광이는 기다시피 움직여 문 밖을 내다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엔 지도자의 막내딸이 서있었다.
  
"아니, 아가씨. 오늘같이축복스런 날 어쩐 일로 저를......"
  
여자는 잠시 머뭇대더니 이내 판자 속으로 상체를 전부 들이밀었다.
  
"입 닥치고 듣기나 해.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은 지금 모두 광장으로 나갔어. 축제의 밤을 즐기러 말이야. 나는 지금 그 병신 같은 무리에서 몰래 빠져나왔다고."
  
"어째서요 아름다운 아가씨."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엿 같은 말투 좀 치워줄래? 어쨌거나 내 말은 집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야. 내가 그 빌어먹을 하녀들도 모두 축제를 즐기라며 내쫓았거든."
  
"그래서요?"
  
"아 씨발 병신 새끼. 눈치가 왜 이렇게 없어."
  
막내딸은 흉광이의 손을 잡고 판자 밖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둘은 검은 달빛 아래 마주 보고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 왔듯 자연스레 입을 맞추었다. 흉광이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흑발이며 무지개가 드리운 눈동자, 매끈한 콧날과 연분홍 빛 작은 입술, 그리고 하늘거리는 몸매의 숨 막히는 곡선이 그를 미치게 했다. 그녀를 품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잔디밭에 쓰러져 서로를 탐했다. 막내딸은 사랑의 기쁨으로 충만한 순간마다 담지 못할 욕을 내뱉었고 귓전에서 울리는 상소리에 흉광은 머리가 깨질 듯했다. 하지만 사랑으로 참아내며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녀가 계속해서 욕을 하면 키스도 그만큼 잦아졌다. 키스의 순간만큼은 어떤 욕도 입 밖으로 흐르지 못함으로.
  
두 젊은 남녀의 위험한 사랑은 한동안 지속됐다. 흉광은 그녀에게 빠질수록 두통이 심해졌고 그녀는 흉광을 사랑하게 될수록 야위어만 갔다. 섬의 토종 사람들에게 사랑은 실로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감정은 그들에게 따뜻한 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잦아진다면 그들은 굶어 죽을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섬에서의 결혼은 강간과 다툼과 치정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불쌍하게도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마음은 의도치 않게 따뜻해지고 착해지고 아름다워져 하루하루 말라가고 야위어서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자신은 아랑곳없이 그녀는 흉광을 사랑했다. 그녀는 흉광을 위해 무엇이던 해주고 싶었다. 섬에서 배척받고 유린당하는 가여운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한 그녀가 내린 결론은 권력이었다. 흉광이가 높은 지위를 갖게 되고 명예를 얻게 되고 섬의 수뇌부를 차지한다면 더 이상 사람들은 그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곤 아주 정중하게 자신의 소망을 부탁했다.
  
"아버님, 송구스럽지만 제게 작은 소망이 하나 있사와요."
  
  지도자는 크게 놀랐다. 자신의 딸이 사용하는 말투가 너무도 역겨웠다. 크게 노한 목소리로 지도자는 딸을 꾸짖었다.
  
"미친년, 어디서 그 따위 병신 같은 말투를 지껄이는 거냐! 이 썩을 년이 미친놈이랑 놀더니 결국 미쳐가는구나!"
  
하지만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딸은 그런 아버지의 태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그 사람은 미치지 않았답니다. 저는 사랑해요 그이를. 우리는 이미 깊은 정분을 나눈 사이랍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데 부디 그이를 정치권에 앉혀주세요. 섬을 다스리는 권한 일부를 그에게 하사 하시다면 소녀는 행복해 마지않겠어요. 부탁이어요. 그 사람에게 권력을 주셔서 사람들의 무시를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이와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어요."
  
딸의 말을 들은 지도자는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곤 다짜고짜 나무집에 총을 쏘며 흉광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놈. 곧 뒈질게 그래도 핏줄이라고 거뒀더만 지 동생에게 욕정을 품어! 내가 씨발 오늘 너를 가만두나 봐라. 갈기갈기 찢어서 상어 밥으로 던져줄 테다!"
  
늦은 밤 갑작스러운 총성과 죽일 듯 덤벼드는 지도자의 모습에 놀란 흉광은 그대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저 멀리 흉광이가 대문을 지나 사라졌지만 지도자는 아직까지 낡은 판자 위에 총을 쏘며 씩씩댔다.
  
"봐라 미친년아. 결국 도망치는 저 개새끼 같은 꼴이 보이느냐? 결국 저런 새끼야. 미리 죽였어야 하는 쓰레기란 말이다.  내일 당장 수배령을 붙여 찾는 즉시 사살하라고 해야겠다."
  
그날 밤 딸은 한없이 울었다. 울다 지쳐 아버지의 곁으로 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는 흡족해하며 딸의 뒤통수를 때려주었다. 에구 미친년, 에구 미친년을 반복하며 측은한 딸의 모습을 흡족해했다. 딸은 아버지 가슴에 묻혀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서럽게 울다가 아버지가 자신의 머리를 타악 때리는 순간 털이 수북한 살찐 가슴 깊이 칼날을 박아 넣었다. 칼은 오차 없이 심장에 들어앉았다. 지도자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힘겹게 딸을 향해 말했다.
  
"그래도 아빠는 널 사랑한다."
  
쓸데없는 말을 내뱉은 지도자의 육체는 그대로 검은 재가되어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뿌려졌다. 흉광의 영원한 사랑이자 아버지의 귀염둥이였던 막내딸은 그날 밤 모든 식구들을 살해했다. 울며 가슴에 묻히고 뛰는 심장소리를 들다가 그대로 칼을 들이박았다. 그날, 그녀의 다섯 언니와 일곱 오빠들은 모두 꺽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날 이후 섬의 지도자는 그녀가 되었다. 주민들은 되려 기뻐했다. 그토록 악독하고 잔인하다면 섬의 지도자 자격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마귀 같은 여자가 선택했다면 흉광에게도 남모를 잔혹함이 숨어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녀와 흉 광은 큰 무리 없이 섬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욕설로 풍요로운 섬 안에서 흉광과 아내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사랑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사랑에 빠진 막내딸은 욕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흉광을 위해 아름다운 말을 내뱉었다. 사랑에 빠진 그녀의 마음은 행복과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섬의 주민인 그녀에게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욕과 미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아사를 의미했고 나아가 사랑으로 아름다운 말을 뱉는다는 건 고통을 뜻했다. 그녀는 흉광과 사랑의 밀어를 속삭일 때면 깨어질 듯 머리가 아파오고 온몸이 욱신댔지만 굳세게 참아냈다. 흉광을 위해 자신을 버린 것이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고 병약해졌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다만, 자신이 죽은 뒤 혼자 남을 흉광이 걱정되었다.


그녀는 죽기 전 흉광을 위해 섬을 바꾸고자 생각했다. 자신이 죽더라도 흉광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법들을 제정했다. 욕 금지 특별법, 시기 금지 특별법, 미움 금지 특별법, 질투, 악의, 살인 금지 등 갖은 특별법들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섬 주민들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마침내 칭찬 장려운동과 사랑 헌법이 발표되었을 때 민중은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먹고살다 간 머리가 터져 죽을지도 모르며 국민의 실생활도 모르는 지도자가 무슨 정치를 하겠느냐고, 또한 뒤에서 지도자를 홀리고 있는 흉광이 가장 문제라며 반발했다. 고위층 간부들조차 그녀의 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터이고 사실은 교활할 거라 기대했던 흉광 역시 알고 보니 착하디 착한 순둥이임에 내심 제거를 도모했던 무리까지, 반란의 불씨는 금세 타올랐다.
  
검은 달이 스산히 비추는 어느 밤 반란군은 저택으로 침입했고 흉광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흉광의 손에는 이미 야위어 주검이 된 여자의 시체가 들려 있었고 모든 것을 체념 한 듯 스스로 걸어 나와 포박당했다. 흉광은 여자의 시체를 묻을 시간을 요구했지만 반란군은 여자를 갈기갈기 찢어 상어밥으로 던져버렸다. 반란군은 그를 광장 한복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섬의 모든 주민이 그를 에워싸고는 각자 한 마디씩 욕을 내뱉었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욕들과 거칠고 상스런 소리에 흉광이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대로 무릎이 굽혀져 차가운 땅 위에 쓰러진 그는 머리를 쥐어 싸고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모든 주민이 동시에 욕을 구호처럼 외치며 그를 압박할 때 머리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시체를 치우던 누군가가 찢긴 그의 머리를 검은 봉지에 넣을 때 죽은 줄만 알았던 그의 입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씨발, 좆나 엿 같은 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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