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좋아하지도 않았던 호박잎을 먹으며
이상하게 먹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호박잎 말고도 할머니 음식중에 제가 좋아하는것이
된장찌개랑, 돼비지찌개(돼지고기김치비지찌개)입니다.
둘 다 싫어했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맛있게 먹고
할아버지댁에 가끔 고기먹으러 오라고 부르셔도 된장찌개만 먹구요.
할머니 된장찌개가 뭐 독특한것도 아닙니다.
작은 뚝배기에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된장을 풀고
감자,호박,두부만 넣고 끓인 평범한 된장찌개인데
이상하게 참 맛있단 말이죠...깔끔하고 진하고...
음...4년전쯤 할머니가 관절수술을 받고 거동이 좀 불편해지셨어요.
허리는 점점 굽어가시고 저녁 준비하시는것도 힘들어하시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가 평생 사시는것도 아닌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된장찌개 맛은 평생 못보겠구나"
그래서 할머니옆에 붙어서 된장찌개 하는것을 보았죠.
"사내놈이 이런거 배워서 어따쓸라고 그래"
"할머니...할머니 손자새끼 요리하는새끼에요...언젠간 써먹겠지..."
국물멸치,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재료를 넣고 된장을 풀고...
그리고 할머니 된장찌개맛의 비밀을 알게됩니다.
"다시다 반큰술"
허....참...
할머니 된장찌개는 웰빙하고 거짓없는 맛일줄 알았더니
어쩐지 그 감칠맛은 MSG의 깊은 맛이었구나...
감동도 없고 뭣도 없었습니다.
조금 실망스러웠구요.
근데 이 다시다도 결국은 할머니의 손맛이란말이죠.
제가 오늘 하고싶은 얘기가 이겁니다.
좀 쌩뚱맞은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요리하는 사람으로써 제 요리철학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손맛은 전승되어야 한다."
입니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도 그 사람은 우리 기억속에 있습니다.
납골당이건 무덤이건 어떠한 형태로도 남겠지요.
하지만 저는 얼굴도 못 본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누구신지, 어떤분인지, 성함도 몰라요.
말해주시는 분들도 없구요.
하지만 할머니의 된장찌개를 내가 배우면,
그리고 그 된장찌개를 만들어 내 자식들에게 먹이면서
"야, 아빠의 할머니, 그러니까 너한테 증조할머니가 만드신 된장찌개 맛이야.
이거 아빠가 진짜 좋아했던거거든.
근데 완벽하게 그 맛은 안난다. 너희 증조할머니가 음식은 참 잘하셨는데.
아, 증조할머니가 어떤분이셨냐면..."
이렇게 아이들은 내 할머니가 어떤분이신지 기억하게 될 겁니다.
된장찌개를 먹을때마다 떠올릴거구요.
그리고 그건 또 내 자식들에게 가르쳐주겠지요.
아마 어릴 땐 그 맛을 좋아하지 않아도
제 자식들도 내 나이쯤 되면, 아빠의 된장찌개
증조할머니의 된장찌개를 찾겠지요.
나중에 제 자식이 자식을 낳게된다면
고조할머니의 된장찌개, 할아버지의 된장찌개맛을 기억할겁니다.
이번 주말엔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이 먹어온 음식을 배워보는것도 좋을 것 같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