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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게시물ID : readers_118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맥콜같은인간
추천 : 1
조회수 : 1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12 15:34:47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로 매연이 셀로판지처럼 깔려있다. 거둬내면 다시 시퍼런 겨울하늘이 보일텐데?
 
해는 어디갔을까. 내 오른쪽 눈 언저리에서 뭔가 비추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바람때문인가 그다지 따듯하지 않아.
 
담배연기를 뿜는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너무 오래 집안에 있었는지 순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남들은 스무살이었지만 나는 열아홉이었다. 그래서 약간 괴리감이 느껴지는 학교생활과
언젠가 아무 의미도 없이 터벅터벅 걷던 여행지 시골마을이 떠오른다.
봄날의 그곳에서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밭둑 한켠에 앉아 담배를 물었었다.
 
소똥냄새가 유난히 진한걸 보니 이미 거름을 뿌렸나보다. 바람이 뒷집 민가에서 풀태우는 냄새를 뭉터기로
끌고와 소똥냄새와 겹쳤다. 그 냄새를 들이마시는데 이제는 꽃씨까지 데리고 와 내 뺨을 살살 때렸다.
다리를 벌리고 아무렇게나 앉아있던 나는, 그 다리 사이로 꽃씨 하나가 불시착 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생각없이 꽃씨를 담배불로 지지고 일어섰다.
 
 
 
 
 
나는 학교가 싫었다. 중학생때부터 그랬지만 사실 대학에 가고 나서도 그다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학점과 레포트에 목을 맸고, 조별과제니 뭐니 하는것도 잔뜩 있었지만 알게뭐람. 공산사회에서도
삐대는 놈 하나쯤은 있을것이고, 자본주의사회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달리는게 아닌 것 처럼
나 역시 그런 비주류중 한명이니 그렇게 남들 다 뛰어다닐 때 혼자 설렁설렁 걷는것으로 만족하련다.
 
자유라는건 그랬다. 인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자유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책임과 권리가 혼종할 때
그것은 완성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권리는 누리고싶고 책임은 지기 싫고, 그렇다면 방종을 하자. 그건 어떨까?
나는 그래서 방종을 하기로 했다. 수업 도중에 에라이 씨발 하고 일어서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왔지만 아무도 나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남들처럼 자유를 누리지 않고 방종을 했기 때문에 그들도 나를 방종한 것이다.
 
나는 강의실 문을 나와 교정 문을 지났다.
버스를 타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테지?
 
 
 
 
 
 
그래서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시골마을에 홀로 앉아 꽃씨나 지지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걷는 것은 별로였다. 그래도 가까운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괜찮았다. 기다리는 동안 그 소똥냄새와 풀타는 냄새를
맡으며 담배를 세개나 피웠다. 삼십분 정도가 겨우 지나서야 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몰랐다.
그냥 가다보면 정류장에 도착하겠거니...
 
 
 
 
깜빡 자고 일어났는데 빵빵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차 움직이는 소리도 들렸고 트로트비슷한 음악도 들렸다.
나는 날이 좋아서 얇은 잠바 하나만 입고 있는데 노인들은 아직도 추운가보다. 폐자재 태우는 드럼통 주위에 모여 뭔가
이야기를 한다. 어딜 가던가 길이 나오겠다 싶어서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면 뭔가를 해야 하겠지만, 막상 내려보니 우리동네하고 별 다를것도 없다. 여기서 11번 버스를 타면 바로 집으로 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지만 실제로는 한 사백키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테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오후 네시가 좀 넘었다.
시장골목 아무데나 들어가 소주와 두부조림을 먹었다.
소주 한병과 두부조림을 거의 다 먹어가는데 주인아줌마가 당근 썬 것을 내려놓으며 재떨이를 갈아줬다.
수육좀 남았는데 드쇼잉 싸비스로 드릴게 예 아니 그래도 괜찮나요 아 쏘주하나 더먹음 돼얐지 뭐를 예 그럼 감사합니다
나는 계획에도 없이 소주 하나를 더 먹어야 했고, 담배가 다 떨어져 사러 나가려고 하는데 주인아줌마가 여긴 담배도 판다며
음식값에 천오백원을 더 추가했다. 외국담배 없는데 어찌쓰까... 하면서도 그나마 가장 피기 괜찮은 디스를 줬다.
 
술을 두병이나 마시니 약간 알딸딸해졌다. 기분도 왠지 좋아졌고 나는 식탁에 만원을 놓고는 거스름돈 오백원을 받아 나왔다.
 
 
 
 
 
 
 
 
 
 
 
 
십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그 어느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회색분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적당히 방종하고 적당히 책임지면 그만인 삶을 사는게 지치지 않냐고 한다면 또 거짓말이지만, 어쩐지 이 생활에 점점 잠식당하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통장에 돈은 없고 살기는 더 힘들어지고, 눈치도 더 많아졌는데 그것만으로 자기자신이 어떤 성장의 과정을
겪고있다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분명히 이대로 십년정도만 더 지나가면 아마 서울역에서 나도 옛날엔 다 학교다니고 공부잘했어
하고 지나가는 사람 백원이백원이나 삥뜯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쓸데없는 희망을 가지는 것도 힘들다. 여기서 몇년만 더 지나면 뭔가 나아질거라고 하는 그 자체 그 더러운 말이
아무리 방종하는 삶을 사는 나라도 용납하지 못하겠다. 그런 말은 더러운 말이다. 이 더러운 방종과 그 더러운 나날들에게.
 
나는 아마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평생 더럽다고만 그렇게 자책하며 살다가 꿈도 육신도 없는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 되어 폐건축자재가
태워질 때 같이 태워질 것이다. 여전히 나는 일년전을 또 그 다음해에는 후회하던 일년전을 또 그 다음해에는 후회하던 일년전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녹아 없어질 때에도 사람들에게 콧방귀 섞인 조롱만 듣다가 그렇게 죽을 것이다.
 
한때는 은하수를 여행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고 안동소주를 마시고 싶다는 꿈도 있었고,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꿈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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