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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은 마지막 남은 나의 수치심을 들추어 낸다...
게시물ID : sisa_6791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메탈리카님
추천 : 19
조회수 : 640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3/03 19:13:12
엎드려뻗쳐.gif
 
1.
아직은 구타가 남아있던 군대시절에 강하게 수치심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군대 선진화를 통해 내무반이 많이 변했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치약으로 워싱한다고 박박 바닥을 배급받은 구둣솔로 닦아내던 시절이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좌우로 평상이 있는 그런 내무반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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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합을 받을라치면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좌우의 평상에 팔다리를 걸고 버팁니다. 그런데 가장 수치스러운 기합은 속옷까지 다 벗은 채로 그 엎드려뻗쳐를 하는 것이었지요. 차라리 그냥 대걸레나 사람들 안보이는 지하 보일러 실로 끌려내려가 가슴팍이나 허벅지를 얻어맞는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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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알몸으로 또 다리를 벌린 채 평상에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으면 고참들이 그 밑을 또 낄낄대며 지나다닙니다. 그리고 어떤 고참은 제 뒤로 와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곤 했지요. 저조차도 쉽사리 볼 수 없는 제 신체의 일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렇게 상병까지 버티고 버티다 다행히 잘 풀린 군번이라서 상병 말호봉에 소대 고참이 되서 그 행위는 더 이상 중대 내에서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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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을 제대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나름 연극쟁이가 되어보겠다고 좌충우돌하던 중에 프랑스 리옹에서 열리는 연극축제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길거리 연극축제의 분위기에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2인조로 구성된 마임팀이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됩니다. 공연방식은 간단했습니다. 주변에 관람객들에게 스케치북과 싸인펜을 주고서 그 관람객이 단어를 적으면 그 단어가 연상되는 한 컷을 두 사람이 마임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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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스케치북에 프랑스어로 뭐라고 적자 배우 2명은 그걸 뚫어져라 보더니 이내 자세를 잡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배우들이 잡은 자세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당했던 바로 그것이었거든요. 배우 하나가 엎드리고 또 다른 배우 하나는 그 배우의 엉덩이 근처로 얼굴을 가져가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리고 엎드린 배우의 표정은 매우 수치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시에 전 프랑스 말을 거의 몰라서 같이 있던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저 관람객이 뭐라고 적은거냐. 그랬더니 "수치심"이라고 적었다고 하더군요. 머리에 해머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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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팟짱에 나온 은수미의원의 안기부 고문시절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사노맹 사건에 연루되어 끌려온 은수미의원에게 안기부 직원은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지나가라고 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수미의원은 살기 위해서 그 직원의 가랑이사이를 엉금엉금 기어서 지나가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느꼈던 그 수치심은 인간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발가벗겨버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 고문의 역사에서는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 하나의 기술이었다고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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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닌데, 나는 잘못할 일도 없을텐데... 웹툰 작가 윤모씨가 최근에 그러더군요. 네, 잘못할게 없으면 수치심을 느낄 일도 없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치심"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자 인권의 마지노선입니다. "인면수심" "후안무치"와 같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잘못했을 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행위와는 관계없이 내 일거수 일투족이 그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에도 작동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으로 번지고 내 행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가 됩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러한 것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체화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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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고 정말 두려운 것은 자연스럽게 작동될 자기검열 그리고 체화되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수치심에 의해서 인권이 가볍게 말살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 까봐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포정치는 자리잡게 됩니다. 배려있는 토론은 사라지고 존중받던 다양한 의견은 묵살되며 서로가 서로에게 적으로 규정하는 세상이 도래할 까봐 그것이 무섭습니다. 그게 가장 무섭습니다. 그리고 어느틈엔가 지향하고 있던 가치는 사라지고 치열하고 잔인했던 투쟁의 방법만이 남아 수단을 합리화하는 현상도 일어나게 될 겁니다.
 
6.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합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야권이 단합해서 권력을 잡는 것, 지금의 무도한 정권의 끝을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먹고 살아야 하는지, 왜 이겨야 하는지, 왜 권력을 잡아야 하는 지에 대한 투철한 성찰과 고민의 결과가 없이는 결국 또 똑같은 결과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오유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쟁에도 그것은 투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인격을 짓밟아가며 논쟁에서 승리한 들 그것이 자위 외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짓밟혀진 타인의 인격에 대해서 나 스스로 수치심을 못느끼게 되는 순간 우리는 무도한 저 정권의 나팔수들과 다름없는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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