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저주의 그날 - 오늘의 유머
게시물ID : readers_118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히힐히라이
추천 : 0
조회수 : 2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13 01:34:18
클린유저 직무규정을 보고 문득 영감이 떠올라서 써 봅니다.








---------------------------------------------------------------------------------------------
[단편] 저주의 그날 - 오늘의 유머



    序.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역사가로서의 양심의 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일 것이다. 인류가 겪은 그 비극을 다시금 회상케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 이야기가 독자여러분께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평생 진실만을 추적하고 서술하려 했으며, 그 결과 얻게 된 작은 명성을 보전키 위해 진실을 숨길 의도는 추호도 없다. 혹자는 내게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그간 나를 믿어준 만큼, 이 이야기도 믿어주길 바라며, 이 글로 인하여 베를린 제1대학 사학과장의 자리를 박탈당한다 해도 내게 미련은 없다. (사실 그 동안 내게 너무 과분한 자리라고 부담을 느껴왔었다) 어찌 되었든, 이 이야기는 ‘오늘의 유머’라는 한 웹사이트로부터 시작된다.




    1.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자주 가던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 라는 인터넷 웹사이트 - 지금의 P-link 의 클러스터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 - 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내 모국 대한민국의 웹사이트였다. 초창기에는 메일로 유머를 보내주는 시스템이었는데, 내가 시작하던 때에는 하루에도 수천개의 자료가 올라오는 중견 웹사이트로 커져 있었다. 제미있기도 하고 이상하게 싱글유저들이 많은게 동질감을 느꼈는지 맛이 들려, 수년간 옵 - 우리때는 눈팅이라 불렀다 - 을 했고, 그 세월이 수년에 달해 웬만한 예전 사건 사고는 다 꿰뚫어, 고대자료가 올라오면 못해도 ‘보고 또 보고’ 짤방이라도 하나 달아주는 수준이 되었고, 나름 이 바닥 터줏대감이라는 자부심도 생길 정도였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오유보다 큰 커뮤니티가 많이 있었지만, 오유는 나름 험난한 길을 헤쳐왔다고 할 수 있다. D모 사이트는 운영자가 횡령을 하기도 하고, H모 사이트는 욕설이 난무한다 해서 논란이 일 때에도, 오유는 운영자 이모씨가 바보스러울만치 착하기도 했고, 유저들도 험한 말을 가려하는게 풍토가 되어 논란에서 벗어나 있었다. 혹자는 선비질이니 콜로세움을 여니 해서 비난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사고가 적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유는 계속 그 성향이 진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이때 신생된 극우성향의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라 칭한다)’ 의 입장에서 보기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일베에서는 익명성을 이용해 사건사고도 많았고, 또 오유에 비난글을 잔뜩 올리거나, 서버를 해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유저들은 운영자를 응원했으나, 당시 운영자 이모씨는 속을 꽤나 썩혔으리라 짐작된다. 어쨌든, 이모씨는 클린유저 - 일종의 자발적인 관리자 집단 - 시스템과 보안구조를 강화하며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런데 곧이어, 당시 대선과정에서 한국의 정보기관이 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해 (후에 실제 당선이 되었다) 오유에 댓글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우파 성향의 당시 당선인을 위해 여론공작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 간 반목이 계속되었고, 우리의 운영자 이모씨는 팔자에도 없던 언론에, 법정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2.

    문제는 이 일로 오유가 언론은 타면서 이용자수가 일약 급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베오베 - Best of Best. 지금의 Hot Board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 에 올라오는 글들은 추천이 100개 전후였던 반면, 사건 이후 베오베 글들은 300개 이상의 추천을 기본으로 받곤 했다. 법정 싸움이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이 된 셈인데, ‘악플보다 무서운건 무플’이라는 옛 속담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인구가 늘다 보니 자연스레 문제가 생겼다. 당시 클린유저들은 분탕종자 - 사이트 내 혼란을 일으키는 유저를 속되게 이르는 말 - 퇴치가 주 목적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클린유저 중 하나가 익명유저의 실제 정체를 들춰보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인류정보헌장이 제정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 일로 오유는 또다시 난리가 나고, 이모씨는 또다시 골머리를 썩이다가 ‘클린유저지침’ 이라는 것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이후 지침의 구멍을 교묘히 파고들어 혼란을 야기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무리가 생겨났고, 특히 일베출신의 유저가 신분을 교묘히 숨기고 클린유저가 되어 일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베에게 당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논란은 계속되었고, 지침은 계속 개정되다가, 법률전문가라는 유저들이 지침을 새로 수리해 보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베오베는 사상 최초로 법률 게시판 글로 도배가 되었고, 마침내 이모씨와 변호사, 검사보, 판사, 국회사무처 유저들 8명이 모여 새롭게 ‘오늘의 유머 유저 헌장’ 이라는 것을 발표하게 된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온라인 민주정의를 구현키 위하여...’ 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총 24개조 38개항의 유전헌장을 보고, 수많은 유저들이 박수갈채와 추천을 보냈으며, 머지않아 오유 내 추천 수 2위에 등극하게 된다. (1위는 한 고등학생이 솔로임을 푸념하는 글에 ‘대학가면 생길 것 같죠? 안생겨요’ 라는 답글이 달린, 전설적인 글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온라인 세계에 영구한 평화가 도래하는 듯 했으나, 이는 섣부른 낙관에 불과하였다.




    3.

    2016년 4월, 이른 바 ‘썰짱’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분탕종자가 있었다. 교묘한 언변과, 헌장에 저촉되지 않는 미지근한 어그로, 때에 따라 정교한 논리로 무장하여 진보파를 공격하는 그를 퇴치하기는 쉽지 않았고, 오히려 이에 동조하는 무리까지 생기기까지 하였다. 이 때, 모 유저가 그의 신상을 밝혀냈는데, 아뿔싸. 그 정체는 지난 총선 때 낙마한 어그로의 황제, 너 고소! 짤방으로 유명한 전 국회의원 강모 씨였던 것이다. 3년여만에 크나큰 분노가 터져나왔으나, 강모 씨는 하버드 법대 경력을 자랑하듯, 유저헌장에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모 유저와 오유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변호사답게 그의 변론은 전문적이었고, 소수의 법률가 유저만이 헌장은 법률적 효력이 없다는 주장을 펼 뿐이었다.

    그러나 최초 공판 당일, ‘모 유저’가 사실 현직 야당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전국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오유가 저녁 뉴스와 일간지 1면을 도배하였으며, 관련 법령의 공백 속에 온라인 헌장과 익명성의 효력에 대한 논쟁이 전국을 휩쓸었다. (무엇보다 우파-좌파 간 인신공격이 주를 이루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다시 이모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법정에 출두해야만 했고, 1년여간의 법정공방속에 모 유저는 유죄, 오유는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유저헌장은 다시 개정되었다) 이후 정부에서는 책임회피를 위해 ‘온라인 정보관리 시행령’을 발표했는데, 이는 온라인 익명성을 보장하되 정부의 신원조회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했다.

    1년여간의 소송기간 동안, 사건이 사건인 만큼 정치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있던 커뮤니티들에서는 관련 글이 차고 넘쳤다. 게다가 이 와중에 일베에서는 소위 ‘개척 놀이’ 가 유행했는데, 이는 정치 글이 없는 커뮤니티/게시판을 정치 글로 도배하고 자신의 선구적인 ‘개척’을 ‘인증’하는 일련의 행동이었다. 이 놀이는 나아가 해외사이트까지 개척하기에 이르렀는데, 분개한 해외 유저들에 의해 몇몇 사이트가 ‘역개척’ 당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분쟁과 소송이 잇따랐는데, 마침내 정부가 유저의 신원을 추적하다가 ‘역개척’ 하던 해외 유저의 신원이 무더기로 공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정부의 수습노력과는 달리, 사건이 언론을 타면서 국가 간 유저들의 분쟁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결국, 보안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한 국가 유저들의 금융정보가 공격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한 일베 유저가 오유 유저임을 가장, 폴란드 유저의 금융정보를 공개하여 오유에 역공격이 가해진 사건도 있었다. (해당 유저는 일베에서 일만 개의 민주화를 획득했다.) 유저 헌장은 또다시 개정되어 결국 총 240개조 454개항에 이를 정도로 방대해져 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법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이모 씨의 고충이 어땠을지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모 씨를 지원하기 위해 유저들은 ‘오유샵’이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 이는 유저들이 오픈소스를 이용해 자신의 글을 꾸미던 것을 한 유저가 유료서비스로 착각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즉, 전문 유저가 구매자의 게시글을 치장하고, 구매자는 그 댓가를 이모씨의 계좌로 송금하는 일종의 재능기부형태의 품앗이였다.

    이 당시 온라인 분쟁은 엄청나게 커져 있었고, 오유역시 일일 접속인원이 1000만명을 초과하는 초거대 웹사이트가 되어있었다. ‘역개척’을 하던 해외 유저도 결국 오유에 흡수되어, 영어, 중국어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던 중이었다.

    결국, 한국정부에서는 교육기술부 산하 ‘대한민국 방화벽’이라는 부서를 신설하게 된다. ‘대한민국 방화벽’은 외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혹은 그 역방향의 불법적인 정보이동 자체를 온전히 차단하는 일종의 거대한 필터였다. 즉, 한국의 문제는 한국 내에서만 벌어지게 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만악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4.

    처음 방화벽의 구멍을 발견한 것은 리비아의 한 유저였다. 그는 리비아에서 금지된 단어를 오유에서 사용하여도 리비아 정부가 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현상을 알아냈다. ‘대한민국 방화벽’이 일종의 거대한 익명성을 제공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독일에서는 운하가 불법이라도, 한국에서 운하가 합법인 이상, 독일인이 한국에서 운하를 파건, 4대강을 파건, 독일정부는 이에 간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구멍’에 대한 정보가 퍼져나가자 곧 오유-차이나에 천안문/티베트와 관련한 글이 수만 개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민주화 의지를 가진 중동, 북아프리카, 동유럽, 남러시아 유저들의 글도, 이를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 유저들의 글도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서버는 증설되어 갔고, 오유는 더욱 많은 언어 버전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에서 이를 눈치챈 것은 오유 접속인원이 일 2억여 명을 돌파하고 43개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난 이후였다. 당황한 중국정부는 한국에 압력을 가했고, 당황한 한국정부도 조사에 나섰으며, 위안화 절상문제로 마찰을 빚던 미국정부까지 얼떨결에 가세했다. 중국의 압력을 감지한 세계유저들은 더더욱 오유로 집중되었고, 이제 베오베를 가려면 최소 10만 개의 추천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중-한 외 7개국 대표가 한국에서 ‘세계 온라인 대책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비통하게도 우리의 불쌍한 이모 씨에게 또다시 출두명령서가 배달되었다.

    해결은 쉽지 않았다. 중국과 미국의 이해는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무엇보다 아직 오유는 이모씨의 소유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중국은 한국정부가 이를 몰수하길 바랐고, 미국은 사적 소유권을 내세우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람 좋은 이모씨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사태가 자신의 손을 떠났음을 인지하고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대한 책임감을 발휘하려 했고, 양국의 대립 한가운데서 협의를 이끌어 내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나였다면 한국정부에 넘기고 조용히 출국했을 것이다)


    5.

    그리고 문제가 반쯤 해결되었을 무렵, 오유-차이나에서 ‘마오쩌둥 개새끼 해봐! 나는 천안문이다!’ 를 외치며 한 유저가 국제급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였다.




    6.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세계 41개국 대표단들과 UN 산하 ITU(국제전기통신연합)의 주최로 서울에서 ‘제2차 세계 온라인 대책회의’ 가 열리게 되었다. 글쎄, 한가지 다행이라 생각되는 것은, 200여명이 모인 국제회의장에서 33개 언어로 동시 통역되는 가운데, 우리의 이모 씨가 온라인 민주정의를 표방하는 개최연설을 담당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회의는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졌다. 수많은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공학박사들이 끝없는 대안과 이론을 제시했고, 이런 전문적인 혹은 정치적인 영역과 무관한 이모 씨는 FBI 증인보호프로그램 하에 조용히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7.

    지지부진한 회의가 1년여를 끌어갈 때쯤, 여러분들이 모두 잘 알고 있을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UN 인구기금 소속 인구학자들은 놀라운 발견을 하나 했는데,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출산율이 놀라운 속도로 감소한 것이다. 이는 선진국, 특히 정보통신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심각했고, 한국의 경우 출산율이 0.01%에 도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원인불명의 출산율 급감에 세계는 당황했고, 곧바로 대책회의가 시작되었지만, 잘 알다시피 명확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했다. 이후 10년간 우리가 ‘저주의 날’이라고 불리우는 악몽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 모국 대한민국도 결국 - 이 기억은 내게도 가슴 아프다 - 붕괴하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수십 년 만에 부활한 UN 신탁통치위원회에 의하여 차례차례 원하는 국가로 귀화하는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제2의 모국, 독일로 귀화를 선택하였으며, 한국에 서버를 둔 오늘의 유머 또한 서비스를 중단하고 말았다.

    많은 학자들은 선진국에만 내린 이 저주를 과다한 전자파 노출, 혹은 그로 인한 유전적 변이 등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분명한 진실을 알고 있다. 전술했듯이, 세계 출산율이 급감한 시기는 온라인 분쟁으로 오유 접속인원이 급등한 시기와 일치하며, 역시 전술했듯이, 오유유저는 누구나 싱글이 된다는 저주에 노출되어 있었다. 비록 내 전공이 인문학이라 그 정확한 기제를 설명할 수는 없으나, 앞뒤 정황을 살펴볼 때, 오늘의 유머가 세계를 강타한 ‘저주’의 원인임은 분명하다. 세간의 이목과 구설수가 무서워 지난 40여 년을 침묵했으나, 이제 나는 이 참되고도 명확한 진실을 독자 여러분께 밝히려 한다.





    終.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수많은 사건 사고 이후 운영자 이모 씨는 화성공화국으로 이주해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 한다. 다행히도 ‘세계 온라인 대책회의’기간 동안 ‘오유샵’에서 기증된 후원금이 넉넉하여, 부족함 없이 남은 삶을 보냈다 하며,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좋은 대학 나와 잘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다만, 그 작자 덕분에 내가 이 나이 - 84년 하고도 3개월 20일 - 을 처먹도록 자식 하나 없이 안 생겼다는 생각에, 그저 분하고, 분하고, 또 원통할 뿐이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