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계법을 공부하기 시작한게 작년 9월 말즈음이고 책 한 권 떼는 데에 대충 2개월 걸렸으며 12월 초부터 조잡하게나마 배운 것을 토대로 글을 연재했으니 5개월 정도 노동관계법을 알아보았네요.
노동관계법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별 게 없었어요. 이제 대학도 못 다니게 되었고 부모님의 지원도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이제 완전히 혼자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 내세울 게 없더라구요. 대학 졸업한 게 아니라 학위도 없고, 깊은 교제하는 지인이나 친구 한 명 없어서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뭐 자격증이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꾸준히 해온 것이라고는 독서, 글쓰기와 사색뿐이고 독일어와 라틴어 약간을 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건데 이런 건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어요. 나이는 벌써 23살이고요. 만으로 해야 23살이지 일반적으로 세는 식으로 세면 25살이에요. 누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5년동안 뭐했어?" 하고 물으면 선뜻 입을 열기 힘들 것 같았어요. 인생 허투루 살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걸 증명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하려면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가장 낮은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것에 대해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찾은 게 노동관계법령이고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노동관계법을 알아가면서 마음이 조금 놓이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입법되어 시행되고 있구나, 아무 것도 없어도 최저한의 생활은 해나갈 수 있겠구나,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왜 이런지 좀 이해가 안 되는 법령도 있고 이상한 판례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념은 노동자를 위한 방향으로 뻗어 있었고 방향이 그렇다면 조금씩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다 착각이었어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요즘 일을 찾아보고 있어요. 5~6개월 전에 예상했던 대로 일자리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더군요. 정말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변변한 곳에는 감히 이력서도 못 넣겠었어요.
여우가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니 이런 곳은 다 노동관계법령을 무시하는 곳이었어요. 최저임금을 안 지키고, 근로계약서를 써주지 않고, 주휴일을 보장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사유 없는 포괄임금제를 실시하고, 자기 사업장의 상시 근로자 수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사용자도 있고 상시 근로자 수가 10명 이상임에도 취업규칙을 작성, 신고하지 않은 곳도 있고요.
제가 법을 알아도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을 만나면 다 쓸모가 없어요. 노동관계법령을 아는가, 이게 불법인 것을 아는가 물으면 자기네 규칙이 그렇대요. 다들 그렇게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해요. 옳지 않다고 말하면 반응은 똑같아요. "가. 너 말고도 일 할 사람 많아."
한 정치인이 이러한 근로자의 열악한 대우, 노동관계법이 지켜지지 않는 풍토에 대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가서 그런사람인가 아닌가 구분하는 능력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논란이 되었었죠. 사실이었어요. 여우가 아무리 법을 알아도 바꿀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알아서 피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부당노동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어디 신고할 곳도 없어서 그냥 피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 정치인의 명제가 사실이었다는 거지 그 명제가 도의적으로 옳다는 건 아니에요. 현실이 그러해도 당위는 그렇지 않죠. 그 정치인의 발언은 정치인이란 사회의 개선을 꾀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단편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었다고 판단해요.)
가장 낮은 사람들이 최저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게 노동관계법인데 가장 낮은 사람들은 스펙경쟁 때문에 이를 지키는 사용자에게 고용될 수 없으니 쓸모가 없다는 감상이 생겼어요.
참 웃긴 거 같아요. 법을 지키는 게 당연한 건데 안 지키는 게 당연하다고 하고, 지킨다고 생색내고 있어요.
여우가 이상한 곳만 다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감상은 그래요.
여우가 겪은 건 개별적 노동관계법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판례와 들어들어 알게된 것으로는 집단적 노동관계법 역시 같은 취급을 받고 있어요. 사실 집단적 노동관계법령이 더 안 지켜져요. 판례도 이상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별로 좋지 않아요. 주휴수당 안 주고 연차 못 쓰게 하는 건 분개하면서 단결 못하게 방해하는 것에는 분개하지 않고 별로 단결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한다 해도 사용자는 노동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법으로 노동자들을 뭉개버려요. 사실은 개별적 노동관계법령보다 집단적 노동관계법령이 더 중요하고 효과가 좋은데 말이에요. 개별적 노동관계법령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최저기준에 대해서만 규율하므로 완벽히 시행된다 한들 모든 노동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집단적 노동관계법률은 사정이 다 다른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직접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널리 시행되고 보장된다면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거니까요.
이제 글을 어떻게 써 가야할지 모르겠네요. 머리가 좀 뒤죽박죽이에요. 노동관계법을 알아서 분명 손해되는 건 없어요. 알면 좋죠. 하지만 알아도 쓸모가 없으니 아는 데에 쓰는 시간과 비용을 기회비용 측면에서 본다면 그냥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관계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해요. 노동자들이 노동관계법을 알고, 미흡한 점을 생각하고, 개선방향을 논의해서 입법자들에게 요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안되잖아요.
일시적인 실망감일 거라 생각해요. 나중에 가면 꼭 쓸모가 있겠죠.
이 글을 쓴 건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좀 혼자 갑갑하고 그래서 썼어요.
연재는 적어도 계획했던 개별적 노동관계법령 부분만큼은 끝내고 싶어요. 지금 일자리 구하느라 연재가 많이 드물어졌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