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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swf
게시물ID : soccer_118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공발업질럿
추천 : 5
조회수 : 143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12/11 21:18:52
[UEFA 챔피언스리그 특집 / 55년에 녹아 있는 10인의 영웅] :: 여명기를 관통한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 ::
작금 세계 최고의 클럽 축구대회로 각광받는 UEFA 챔피언스리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55년 출범한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로피언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비해 이름, 대회 방식, 규모 등 거의 모든 부분이 바뀌었지만 외형이 바뀌었다고 본질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의 스포츠 전문지 <레퀴프>의 두 기자에 의해 창설된 유로피언컵은 반세기를 넘어오는 동안 월드컵이 부럽지 않은 세계 최고의 클럽 대항전으로 발돋움했다. 지금까지 10개국 21개의 클럽이 영광스러운 우승의 주인공이 되는 동안 무수한 별들도 뜨고 지며 유럽은 물론 세계를 열광케 했는데, 그 초창기 시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이름이 하나 있다. 맞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마드리드의 ‘황금 시대’를 이끌었던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다. # 전설의 탄생 축구 역사상 ‘원조 영웅’으로 평가받는 스테파뇨는 192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온 한 이탈리아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스테파뇨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도 축구를 즐기고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그러던 중 지역 내 중소클럽에서 기본기를 익히며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13살이 되던 1939년엔 아르헨티나 최고의 명문인 리버 플라테 유스팀의 테스트를 받게 됐다. 당시 리버 플라테에는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결승까지 이끌었던 카를로스 페우첼레가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훗날 페우첼레는 “나는 그처럼 완벽한 신체를 가진 선수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스테파뇨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며 스테파뇨를 향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리버 플라테 유스 팀에서 무럭무럭 자라던 스테파뇨는 4년 후인 1943년 A팀으로 승격했는데, 그의 나이는 17에 불과했다. 그러나 리버 플라테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워낙 명문 클럽이고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보니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것. 결국 1946년부터 1년 동안 우라칸으로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전설’로 추앙받는 스테파뇨의 어린 시절이라고 보기엔 너무 보잘 것 없고 평범하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우라칸에서 출전 기회를 잡아나가던 스테파뇨는 페우첼레의 그 말처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고, 급기야 우라칸의 에이스로 발돋움하며 다시 리버 플라테의 부름을 받게 된다. 당시 리버 플라테에는 아돌프라는 주포가 부상을 당해 공격수가 필요했는데, 마침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스테파뇨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자 한 번 테스트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전설의 탄생은 바로 이 때부터다. 스테파뇨는 리버 플라테로 돌아온 첫 해 무려 27골을 폭풍처럼 기록하며 아르헨티나 전역을 흔들었다. 리그 득점왕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고, 스테파뇨의 맹활약에 힘입은 리버 플라테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껏 비상했다. 스테파뇨의 이런 활약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이라고 가만 있을리 없었다. 아르헨티나는 곧바로 스테파뇨를 대표팀에 합류시켰는데, 1947년 에콰도르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한 스테파뇨는 해트트릭을 포함해 6경기에서 6골을 터트리는 발군의 활약을 이어가며 단숨에 아르헨티나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아르헨티나는 영웅을 찬미했고, 스테파뇨는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심장이 될 것 같았다. # 만질 수 없었던 월드컵 그러나 스테파뇨와 월드컵에 대한 운명의 장난이 시작됐다. 1950년 펼쳐질 월드컵을 앞두고 스테파뇨는 ‘하늘의 짓’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어이없는 벽 앞에 무릎을 꿇으며 좌절했다. 대회 개최를 앞두고 브라질과 대결을 펼쳤던 아르헨티나가 개최권을 넘겨주게 되자, 앙심을 품고 대회 불참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 스토리의 내막은 이렇다. 아르헨티나는 세계대전으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던 1940년대 이전인 1938년에 열린 프랑스 월드컵에도 불참을 선언했는데, 당시 월드컵을 창설한 FIFA 줄리메 회장이 조국 프랑스가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과시하는 바람에 대회 개최를 노리던 아르헨티나가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에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열려야 하는 월드컵을 유럽에 빼앗겼다며 대회 보이콧을 선언했는데 이게 미운털이 박힌 계기가 됐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FIFA는 ‘다음 월드컵은 남미가 치러야 한다’며 양보의 미덕을 보였는데, 개최지 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FIFA와 유럽이 프랑스 대회를 불참한 아르헨티나에 괘씸죄를 적용해 브라질을 지지하는 바람에 또 다시 월드컵 개최에 실패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막힌 연유로 월드컵에 참가할 꿈을 잃은 스테파뇨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도 불참을 선언한 조국의 자존심 탓에 월드컵에 다가설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월드컵의 목마름을 참을 수 없었던 스테파뇨는 몸속에 흐르는 이탈리아인의 피에 이끌리듯 유럽으로 나아갔다. 스테파뇨는 월드컵을 위해 스페인으로 국적을 바꿨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스페인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고자 했던 1958년 월드컵은 팀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고, 1962년 월드컵에서는 눈물겨운 분전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으나 정작 스테파뇨는 근육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테파뇨에게 있어 월드컵은, 만질 수도 바라볼 수도 없는 그야말로 ‘머나먼 그대’였다. # 월드컵을 잊고, 유로피언컵을 들어 올리다 이렇게 기구했던 월드컵으로 상처를 심하게 입은 스테파뇨였지만, 그런 그의 아픔을 어루만져준 곳이 있었으니 서두에 소개한 유로피언컵이다. 스테파뇨는 리버 플라테에서 맹활약을 이어가던 1949년 아르헨티나에 불어 닥친 경제 한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팀을 떠나 이웃나라인 콜롬비아에서 클럽 생활을 계속하게 됐다. 아르헨티나에서 날아다닌 선수였으니 콜롬비아에서는 더했다. 콜롬비아 밀로나리오스에서 활약한 스테파뇨는 1953년까지 무려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그 기간 무려 267골을 터트렸으니 경이롭기까지 한 기록이다. 남미의 지축을 뒤흔드는 스테파뇨의 활약에 당시 유럽 클럽 축구의 주류였던 스페인의 두 거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가만 있을리 없었다. 두 클럽은 치열한 스테파뇨 쟁탈전을 펼쳤는데, 스페인 축구협회와 스페인 총통의 지지를 등에 업은 레알 마드리드가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물리치고 스테파뇨의 영입에 성공했다. 스테파뇨를 영입한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스테파뇨는 레알 마드리드 입단 첫 시즌인 1953-54년 무려 29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을 차지하며 바르셀로나의 리그 3연패를 저지, 우승 트로피를 마드리드로 공수해 왔다. 레알 마드리드의 이 우승이 1932-33 시즌 후 무려 21년 만의 우승이었으니, 그 감격이 얼마나 대단했고 스테파뇨를 바라보는 눈이 얼마나 사랑스러웠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스테파뇨라는 ‘금빛 화살’이 1955년 창설된 유로피언컵에서도 관통했음은 물론이다. 스테파뇨는 유로피언컵의 첫 대회인 1955-56시즌부터 1959-60시즌까지 깔끔한 5연패를 이끌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찬란한 훈장을 안겨 줬는데, 그 기간 유로피언컵에서만 58경기에 출전해 49골을 성공시켰으니 그야말로 상대에겐 숨통을 끊는 치명적인 화살과도 같았다. 뮐러의 득점력, 플라티니의 경기 조율, 파체티의 태클, 크루이프의 축구 센스, 베켄바워의 지휘력. 이 모두를 겸비한 선수가 스테파뇨였다는 말이 있다. 유럽 축구사를 대표하는 모든 이들의 장점을 다 더해도 스테파뇨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긴데, 혹자의 이 설명 하나만으로도 스테파뇨의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유로피언컵 초창기를 관통해 여명을 비춰준 불세출의 축구 영웅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 그에게 있어 유로피언컵은, 월드컵을 바라보며 흘린 눈물을 보충해준 맑고 향기로운 샘물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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