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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에 대한 생각
게시물ID : movie_542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꽃보다륜미
추천 : 1
조회수 : 54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07 01:09:24
movie_image54QKZEV5.jpg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귀향'은 역사적으로도 참담할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화제와 이슈가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 한 편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치의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던 독일도
이미 국가적으로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고
피해적 보상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끝이 아니듯
'위안부' 문제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귀향'을 영화적으로 좋게 보진 못했습니다.
분명, 좋은 기획과 의도로 만들어 졌지만
연출상 의구심들이 끊이지 않기도 하여
저에겐 이 작품이 실제적 의미와
영화적인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듯 느껴집니다.
(이동진 평론가 보다는 그나마 좋게 본 것입니다 ㅎ ㅠ)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 역사교육을 받았다면
'위안부'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입니다.
(정치적인 이슈를 제외하고 말이죠.)

우리의 역사를 모르니 영화를 그렇게 느낀다는 식의 평에 있어선
굉장한 '어불성설'에 잘못된 접근방식의 지나친 오류일 것입니다.


글을 적는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귀향'이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기준으로) 200만명을 넘기며 이미 흥행영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넵 손익분기점은 이미 넘긴걸로 보입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직업적으로 적지도않고 그럴 의무도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

그 예로, 제가 안좋게 보았던 영화들은
일부러 평을 잘 쓰지 않습니다.
(사실 쓰기 싫고 귀찮아서 그럴때가 많습니다. ㅎ)

안좋게 본 영화들을 굳이 부정적인 말들을
섞어가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게 '귀향'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저와는 반대로
좋은 시선을 가득 담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과정자체가
큰 감동과 기적을 일으키며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입소문을 타고 연일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서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귀향'을 역사적 의미가 아닌
영화적으로 논해 보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귀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소통을 생산적으로 하고 있으니 그것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저도 거기에 동참해보려 합니다.


















강하나, 최리, 서미지, 손숙, 황화순씨가 출연하고
조정래 감독이 연출한 '귀향'을 보고 왔습니다.
(날을 맞춘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도 3.1절에 보고 왔습니다.)

펀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전국적으로
'귀향'의 개봉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요청해
결국 11년만에 개봉을 맞이하게 된 이 작품은
포스터 문구처럼 정말 '국민'들이 만든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배우와 스텝들 개런티 없이 단지 이 영화를 위해
돕고 싶었다는 선한 마음들이 더 뜻깊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제게있어 '귀향'은 소소하지만 작은 힘들이 모여
큰 영화를 만들어낸 몇 안되는 사례들 중 하나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선한 과정들과 숱한 외적인 강압이 있었을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든 이 영화가
작품에서는 그 내적으로 온전히 스며들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지극히 한국적이고 '위로'라는 테마를 잘 드러낼수 있는
설정이 '굿'이라는 것은 꽤 흥미로워 보입니다.
('위안부' 소재에 관한 레퍼런스가
충무로에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겠죠.)

마치, '귀향'은 박찬경 감독의 '만신'의 설정을 빌려
오멸 감독의 '지슬'처럼 전달하려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박찬경 감독이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만신'이 만신 김금화 선생의 일대를 다루며
지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까지 경유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올려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4.3사건을 다루고 실제 제주도 출신이기도 한
오멸 감독의 '지슬'은 본인의 개인적 감정과
역사적인 감정이 겹치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유사해 보이지요.


문제는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가 오고가는 장면들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생략과 비약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장면이 '점프컷' 하는 것이 아닌
인물을 향해 '점프컷'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그 연관성을 덧붙히기 위해 사용된 장면이
최리씨가 맡은 '은경'이라는 캐릭터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담겨져 있는 씬입니다.

은경의 어머니가 무당역으로 나온 송희라는 사람에게
찾아갈때 지난 과거의 상처를 말하면서 나오는 것이
자신의 아버지가 '갓 출소한 성폭행범'에게 살인을 당했다는 장면입니다.

성폭행범과 일본군, 은경과 정민 이라는
유사한 연관성을 찾기 위해 이러한 무리한 설정을 넣은것은
연출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영화적 의미와 태도가
과연 올바르게 표현한 것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일본군에게 강압과 학대를 당하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위안부에 끌려갔던 할머니들은 당시로 미성년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동 성폭행(혹은 성학대)'이나 다름이 없죠.
충분히 민감한데다 끔직한 만행을 스스럼없이 묘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울수 없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탈옥 사건을 계기로 위안부 여성들이 단체로 옷을 다 벗을때
관람가가 15세여서 그렇지 '청소년 관람불가' 였다면
그대로 여과없이 보여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합니다.

결정적으로 여러방안에서 성학대 당하는 장면을
부감으로 마치 전시하듯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다가오는 경향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감독님은 영화에서 최소한의 리얼리티와
최대한의 배려를 지켜야하는 이 작품이 반대로,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위해 최소한의 배려로 뒤바뀐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연출자 입장에서 고민끝에 나온 타협점이었을 것입니다.

허나, 그저 열거하는 방식으로 사건의 파장으로 인해
위안부 할머니 혹은 소녀들이 얼마나 심각한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묘사와 사건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색이 잘 된것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의 예로 들면,
'스포트라이트'와 '룸'은 충격적이고 민감한 소재에 비해
무척이나 사려깊고 배려심 있는 작품입니다.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행'을 다루고,
'룸'은 실제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인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와 소설에서는 이야기 모티브만 가져와 각색을 하였죠.
그럼에도 '룸'은 깊은 시선과 사려가 진하게 베여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는 그러한 소재로 진행하고 있으나
단 한 차례도 감정적인 호소나 아동 성폭행에 관한 조금의 묘사도 전혀 없습니다.
(몇 몇 분은 언론인의 기자취재 과정과
단조로워 보이는 서사 방식 때문에 따분하고 지루해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런면에서도 주제나 메세지는 정확히 전달하며
영화안팎에서 보여주는 윤리적인 태도 때문에
깊은 신뢰감과 동시에 꽉 짜여진 장면과 대사들로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니고 굉장히 밀도 높게 영화가 이루어져
마지막에 울리는 여러 전화기의 벨 소리처럼 끝나고도
귀에 맴도는 이명처럼 쉽사리 잊을수가 없었죠.


'룸'도 그렇습니다.
영화와 소설 모두 끔직한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인물들의 마음과 파장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섬세하게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지요.
(더구나 브리라슨과 제이콥의 명연은 덤입니다.)

후에 관습적으로 끝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창작자가 영화를 어떤식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에서 표현되는 잔혹성이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B급영화나 타란티노 영화는 나와선 안됩니다.)
다만,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와 의도가 있다면
그에 맞는 표현을 사용해야 겠지요.

클라이맥스에서의 장면또한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안그래도 전반적으로 깔려왔던 울분과 감정의 호소가
클라이맥스에서는 결국(안 좋은의미로) 폭발하기 때문이지요.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감상적입니다.
(적재적소에 나오는 '아리랑'은 예전에 나왔던
심감독님의 '디워'까지 생각나게 해
저혼자 괜히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습니다.)


시나리오 또한 그렇게까지 훌륭해 보이지 않습니다.
대사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것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배우들 연기도 논해야 되니 이는 제외 하겠습니다.

(분명 아쉬운점이 있지만 이분들은 위에서도 말했듯
개런티를 받지 않고 도움을 주기위해 했다는 점
그리고, 연기경험이 거의없는 아마추어 연기자라는 점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논외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와 연출 상에서는 분명 복선과 화면전환을 통해
극중의 '영옥'이 '정민'처럼 보여지게 해놓고
'영희'로 해놓았다는 점에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감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마지막 그분들의 영령들을 위로하는 듯한
나비들의 날개짓들은 분명 아름답게 다가왔었습니다.

처음 롱숏으로 산을 훑을때의 카메라 워크들은
'지슬'에서처럼 마치 그분들의 영혼들을
시점쇼트로 잡은듯한 장면이 인상깊게 보여지기도 합니다.
(위령의 의미에서 본다면 그 장면은 충분히 좋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여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저같이)어떤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호소하며 봤을수도 있습니다.

'사울의 아들' 같은 그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화언어를 만들어 사유하게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경우 '사울의 아들'은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내부와 바깥에서 보여지는
연출자의 바람과 태도가 상충되지 않고 부합되었다면
어느정도 수긍을하며 감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에는 이러한 역사적 소재와 가치를 다룰때
그만한 영화적 성취까지 나오길 간절히 바라야겠죠.
(그렇다고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안만드는 것만 못하겠지요.)
출처 웃대 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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