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마땅치 않거나 불만이 있을 때 떼를 쓰며 조르는 일. 그것은 grumbling. 오후가 되고. .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어서 몇 번이나 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곳을 몇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동안 단 한번도 울리지 않은 핸드폰. . 현새에게서 단 한 통화도 오지 않은 전화. 정말로. . 이렇게 끝이 나 버릴까? 거짓말이었는데. . 최악이라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는데. . 현명하고 똑똑한 현새가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린 여자친구의 심술 맞은 투정이라는 걸. .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소진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제 와? 왜 이렇게 늦었어? 아저씨는 오전에 출발했다고 하시던데" 반가운 소진이의 얼굴이. . 나를 향해 웃는 소진이의 얼굴이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다. "소진아. . " 눈이 부어버릴 정도로 이미 울어버렸는데 어디서 솟아나는지 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왜 그래?" 놀라서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 소진이의 목소리에 울먹이는 목소리가 같이 커졌다. "나 유현새랑 결혼 안 할거야. !" 들고있던 가방을 내 던지고 신발을 벗지도 않고 현관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뭐야. . 무슨 일인데 그래? 현새오빠랑 또 싸웠어?" 다짜고짜 들어와서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도 않고 목놓아 우는 나를 보자 소진이가 어쩔 줄을 몰라 나를 달래주다가 같이 울다 가를 반복했다. "몰라. . 나한테 완전히 질렸을 거야. ." 고속도로에서 나에게 건넨 최악이라는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아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진이에게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현새오빠한테 전화해 봐?" ======================================================================================== "싫어. . 하지마. 엄청나게 화났을 거야. ." 너무 울어버린 탓에 코까지 막혀버려 숨쉬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힘껏 풀어버리니 조금은 살 것 같다. "그럼 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답답한 나머지 이제는 화가 나버린 소진이에게 힘겹게 말을 꺼냈다. "재현이 만났어" "재현이. .? 그게 누군데. . 뭐?!" 누군지 모르겠다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재현이 만났다고. ." "우재현. .? 그 우재현 말이야?" 코가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알 거 같아. . 너랑 현새오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 "그게 말이야" "분명히 원인제공은 재현이였겠지. ." 눈치 빠른 소진이의 눈빛이 조금은 어둡게 변했다. 소진아 너도 기억해. .?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가 돼버린 첫사랑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진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진실이 아닌 거짓은. . 날 지켜주지 못했다. 거짓은 친구도. . 첫사랑도. . 아무것도 내게 남겨준 것이 없이 그렇게 빼앗아 갔다. 아직도 신발을 벗지 않고 주저앉아있던 다리를 피고 신발을 벗을 때쯤 조용한 거실에서 낯 설은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 왔어" 멍하니 앉아있는 소진이를 툭하고 건드려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신발 한 짝을 벗었다. "내 거 아닌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 눈앞으로 들이민 소진이의 핸드폰은 아무런 미동도 없다. "내 벨소리는 아베마리아잖아. . 그럼 누구. . 아 맞다. !" 오른쪽 신발을 벗다 말고 가방을 뒤져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는 핸드폰을 찾았다. "누구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소진이에게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핸드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찬울아. . 나야] 낯 설은 벨소리. . 낯 설은 목소리. . 낯 설은 분위기. . 모든 것이 낯 설은 것 투성이다. 마치. . 처음 만났던 날. . 현새와 나처럼. . ===================== .. [wind 현새]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 알맞은 때나 경우. 알맞은 겨를. 그것은 chance. 잔잔한 클래식음악과 술 취한 사람들. 어두운 조명아래 뿌옇게 차 오르는 담배연기. 반쯤 남은 위스키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야 진짜 웃기지 않냐? 무슨 어린애들도 아니고. . 첫사랑은 얼어죽을 첫사랑이야" 얼음만 채워진 잔 안에 미지근한 위스키를 부으니 가득 차 있던 얼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찬울이 첫사랑 만났다고?" "그래. 완전히 어린애더라고. . 그런데 걔네들 분위기가 더 웃긴 거 있지" 기가 막히고 어이없음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맞은 편에 앉아서 같이 맞장구를 쳐주며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승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정확히. . 얼굴 가득 웃음을 참지 못해서 야단이다. "하하. . 유현새 너 뭐냐?" 킥킥거리며 웃던 녀석이 배를 잡고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뭐가?" "너 . . 질투 하냐?" "뭐?" 들고있던 잔에서 술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질투라니. . 천하의 내가. .? 그것도 그런 꼬맹이들한테. .? 어느새 내 옆자리로 자리를 바꿔 앉아 무거운 팔을 내 어깨에 두르고 웃고 있는 녀석이다. "이야 . . 천하의 유현새가 질투라니. . 찬울이가 대단하기는 대단한 모양이다" "무거워 임마.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어깨에 둘려있는 팔을 풀어내고 바닥이 나 버린 술병을 들어 종업원에게 흔들어 보였다. "새로운 느낌이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직도 킥킥거리며 웃고있는 녀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니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래서 찬울이를 그 고속도로에 혼자 두고 왔단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하냐? 꿈쩍도 안 하는 애를" 종업원에게 새 술병을 받아 비어진 잔에 가득 채웠다. "전화는 해 봤어?" "몰라" "단단히 삐졌구만" "시끄러워" 술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히자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초저녁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이 자정을 넘어가자 술기운이 온몸에 돌았다. "가희한테 전화 왔었다" 술을 깨기 위해 입안에 털어 넣었던 얼음이 효과가 있는지 아득해져오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뭐래?" 들었던 술 대신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너랑 연락이 안 된다고 어디에 있는 줄 아냐고 묻던데?" "그래서 뭐라고 했어?" 담배연기가 온 몸 구석구석으로 빠져 들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런 꼴을 찬울이가 봤으면 엄청난 잔소리를 해댔을 게 눈에 선하다. "지방 촬영 가서 핸드폰이 아마 안 될 거라고 했어" "잘했어" 끝까지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술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가희 그만 정리해" "해야지. . 할거야"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재즈 선율이 슬퍼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술이 취하기는 취한 모양이다. "가희. . 만만하게 보지마. 이대로 있을 애 아니야. 니가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찬울이한테 어떤 짓을 할지 몰라. 니가 제일 잘 알잖아" "절대 그렇게 두지는 않을 거야. . 찬울이한테는 손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거야" 잔 가득 채워져 있던 위스키를 단숨에 넘기자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설마 가희. . 아직도 그때일 니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렇게 있는 거야?" "설마가. . 아니야. 그렇게 알고 있어" "유현새" 또 다시 어떤 말을 꺼낼 줄 아는 승우의 입을 얼른 막았다. "나도 알고 있어. . 하지만 가희도 상처가 없는 게 아니잖아. . 나만 피해자인 게 아니라고. ." 테이블 위에 올려진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빠르게 발신자를 확인했지만 . . 쓴웃음을 지은 다음 밧데리를 빼버렸다. "가희?" "응" 도저히 일분 일초도 날 가만두지 않으려고 하다니. 그 집요한 집착에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서 이제는 떠나려 한다. "니가 제일 잘 알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 니가 제일 잘 알 거야" "기회를 주는 것 뿐이야. 정말로 마지막으로. . 스스로 떠날 기회를 주는 것 뿐이야" 마지막으로 남은 술을 들이키고 자리에서 쓰러졌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눈과 귀를 막았다. 하지만. . 듣고싶다. 양찬울. . 그 대단한 여자의 목소리가. . 그 대단한 여자의 얼굴이. . 보고싶다. 내 친구 팬 ㅡㅡㅋ 이 사람 팬 거의 없던데... 제 친구는 예쁘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