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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과 데이트.
게시물ID : humorbest_11849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58
조회수 : 11542회
댓글수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1/11 20:37:53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1/10 15:57:05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이모가 길 건너 아파트 살고 제일 멀리사는 이모가 버스 2정거장거리일 정도로 
결혼한 이모들이 다들 집 근처에 살아서 외가쪽 사촌동생들과 왕래가 많은 편이다.
요즘은 타지에 사는 애아빠(진) 친동생보다 이 동생들을 더 많이 보고 살 정도.

3살차이부터 28살차이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중간에 두 구슬동자들 빼고는 죄다 여자애들이고,
복잡다난하게 생긴 나와는 달리, 어디가서 빠지지않는 외모의 소유자들이라 (난 솔직히 전혀 모르겠음ㅋ) 
결혼적령기를 슬슬 넘어서고 있는 친구들이 소개 좀 해줘. 이 정도면 궁합안봐도 돼. 형님으로 모실게.어쩌고 하는데...
나는 내 친구들의 미래를 위해, 그만 징징거리고 난 소고기.를 외치며 넘어가는 중이다.



그 중 나랑 3살 차이로 가장 연령대가 비슷한 유부녀(진) 사촌동생과 있었던 이야기다.



간부들과 밤새 부대껴야하는 몸은 편하고 마음이 지쳐버리는 당직을 후진양성이라는 좋은 핑계로 때려치고, 
차라리 몸은 좀 고달파도 마음은 편한 경계작전을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 후반야는 역대급이었는데,
부대장님이 오늘은 후반야때 어디 한 곳을 털겠다.라고 오전회의때 중대장들에게 선포하시어 모두들 풀경계태세세 돌입하고,
예전에 어느 전방사단에서 철책뚫리고 나서 경계강화어쩌고 저쩌고 하며, 비전문가 손으로 얽기설기 맹글어놓은 경보기를 
날이 좀 풀려 기운차게 싸돌아댕기던 고라니들이 죄다 건드리고 지나다녀 경보기 끄고 다니느라,
밀어내기 중 한번이나 두번 정도만 돌 철책을 몇번씩 돌아댕기고 왔더니,
철수하고 행정반 앞에서 탄을 빼는 소대원들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애들은 씻고 밥먹고 청소 좀 하고 인원파악끝나고 바로 근무취침에 들어갔지만,
나는 후반야 최고참이어서 밤새 일어난 일들을 보고하고 여기여기여기 작업해야한다고 소대장이랑 행보관님과 이야기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드러누울수 있었다.
모포OK, 뒤통수에 베ㄱ...하며 기절하듯 잠들고 얼마나 지났을까.

"분대장님. 분대장님. 일어나십쇼."
"이벼...아니. 병자...ㅆㅂ. 뭐여? 왜?"
오전 중번을 나가야 할 후임이 나를 깨워댔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중대장님이 X병장 깨워서 A급으로 환복하고 행정반으로 오랍니다."
시계를 보니 기절한지...아니아니...잠든지 30분도 안 지나있었다.
"아...또 뭐땜에 그런데...알았어. 너도 얼른 나가봐. 곧 투입해야지."

영문도 모른채 모두 잠든 내무실에서 A급 전투복을 입고, 지나가던 계원한테 뭔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행정반쪽을 보니 행보관님과 회의중이고, 중대장은 소대장들이랑 중대장실 문닫아놓고 회의중인듯 해 
비몽사몽한 채로 행정반 앞으로 가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자, 투입준비 대기하던 애들이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이 남은지라, 옜다. 하고 흡연자들에게 한대씩 물려주고, 기다린다.

"야~누가 투입 전에 담배피래. 아? 맞고. 나왔습니까? 맞고가 준겁니까? 내도 한대 주십쇼...아. 감사함다. 
맞고는 여기 투입차량타고 위병소로 가십쇼. 면회왔답니다."
"면회? 오늘? 지금?"
다들 술렁거린다. 그도 그럴것이, 10여 년전, 그 부대는 오직 주말에만 면회만 되는 부대였기 때문이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누가 왔대?"
"모르겠습니다. 중대장님이 전화받으시더니, 맞고 깨워서 보내라고...나도 그 정도만 들었지말입니다."
애들은 탄꼽고 투입준비하는 동안, 나는 선탑이랑 운전병아저씨랑 담배 한대 더 태우며, 온갖 생각에 빠져든다.
면회를...그것도 평일에...그것도 이따가 오후 작전명령서까지 바꿔가면서 밤새 난리난데 보수작업보내려던 애를,
갑자기 면회왔다고 내보낸다고??? 
순간 집에 뭔일이 있어서 나 데리러 누군가 왔고, 급히 내보내다보니 자세한 설명도 못하고 내보내나 보다...
온갖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애들 각각 내려주고, 본부로 내달려 위병소 앞에 차가 멈춘다.
위병소 문이 열리더니, 안면이 있는 위병사관이 나온다.
"야. 위병소 말고, 주임원사님께 가봐. 주임원사실로."
오는 내내, 마음 속으로 아이고 아버지 어머니 하고 있던 터라, 바로 본부로 뛰어올라갔다.

"충성. 병장 XXX은 주임원사님께...어? 야. 땡보. 주임원사님 어디 가셨어?"
부대장님 당번병에 가려져서 그렇지, 숨겨진 최고 땡보. 주임원사님 당번병만 덩그러니 인트라넷을 뒤적거리고 앉아있었다.
"아~땡보라고 그러지 말라고~"
"거울을 봐. 이 양심없는 놈아. 야간만 나가서 달빛만 쬐도 이렇게 살이 타는데, 모니터불빛으로는 살 안타나봐."
"ㅋㅋㅋㅋㅋ 주임원사님. 옆방에 가셨어."
"옆방????...아...주임원사실에 있대매...야. 가신다고 그러면 말렸어야지!!!!"
주임원사실 옆 방은, 부대장실. 최종보스의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ㅠ.ㅠ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땡보가 노크하라는 제스처를 보인다. OK싸인을 하고, 노크를 하자, 문 건너편에서 들어와라.라는 부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충성!!! 병장. X.X.X.은 부대장님께 용무있어 왔습니다!!!...어???"
가운데 쇼파에는 부대장님. 그 왼편에는 운영과장이랑 주임원사님. 오른편에는 그 3살 차이나는 사촌동생이 앉아있었다. 어???

어. 왔니. 앉아라. 라는 부대장님 말에 예!!! 알겠습니다!!!라며 동생 옆에 앉자마자, 
들어올때는 전혀 안보이던 부대장님 당번병이 닌자처럼 나탄나 내 앞에 오렌지쥬스를 세팅한다. 오오...크리스탈잔...맨날 종이컵에 주더니???

너 보겠다고 사촌동생이 와서, 실은 평일이라 그냥 돌려보낼까하다가 특별히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씀이 전.혀. 귀에 안들어왔다.
아. 부모님은 무사하시구나. 라는 안도감도 잠시,
딱 2년. 730일. 군생활하고 나가려고 그렇게 조심조심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군생활했는데, 
이 오라질것 덕에 기어이 피아노연주여행가는구나...라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너 여기 어떻게 왔냐라는 나의 원초적인 물음에 택시타고 왔어.라고 원초적으로 대답해서, 한대 쥐어박을 뻔했다.
후임도 때린적 없는데, 사촌동생때려서 영창가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이제 20살, 모대학 사학과에 입학했다는 말을 저저번에 2박 3일 포상나갔을때 오마니가 말해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답사를 마침 이 근처로 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이 쪽에 볼 일 있어서 따로 내려가겠다며 나왔다고 한다.
군대간 사촌오빠 면회간다했으면 어느 의식있는 어느 이가, 평일에 면회를 가다니 장군감이로구나!!!라며 거수경례를 붙였을테지만, 
그저 개인적인 볼 일이라고만 말해서, 내일이 주말이고 하니, 어디 친척집 들렀다오려나보다.하고 그래라. 하고 보내준것 같다.
이걸로 그 꽈 남자선배들의 이 동생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야, XX이 너가 그동안 분대장 오래하면서 군생활잘했으니까, 동생이랑 같이 내려가라고 포상휴가를 주려고 하거든???"
"그럼 4박 5일로 나가야합니다. 화요일 복귀 맞추려면..."
휴가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포상~오오~
"저...그 휴가말입니다..."
"왜? 갑자기 나가서 근무 꼬일까봐 그래? 그건 운영과장이 너네 중대장이랑...."
"아. 그게 아니고...저 내일 모레 휴가나갑니다...;;;; 그것도 말년휴가입니다...;;;;;;;;;"
내가 이등병때, 당시 병장들이 말년에 이런저런 휴가 원기옥처럼 모아다가 정기 10+α로 나가대는게 문제가 되어,
정기휴가에 다른 휴가 붙여서 나가는게 완전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 그 휴가 다녀오고 몇밤 더 자면 전역.

그러니까, 군대있는 오라버니 보러 왔어요. 평일이고 주말이고 난 그런거 몰라요. 오빠 보여줘요.라며 
아가페적인 사촌오빠사랑을 보여준 우리 사촌동생님은,
그 사랑하는 오빠가 3주 뒤에 전역한다는것도 모르고 있었다.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어색한 분위기의 부대장실 공기를 잊을 수가 없다.
부대장님은 멍때리셨고,
운영과장은 의미없이 수첩을 뒤적였고,
주임원사님은 급히 옆 방의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버렸고,
나는 입술이 바싹바싹말라 내 몫의 음료수를 다 마시고는 동생것까지 마시고 있었고,
동생은 아. 내꺼 왜 먹어.라며 철없는 새내기 여대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그래도...여기까지 왔는데...그냥 보내기는 뭐하고...아. 그럼, 특별외출이라도 어떻습니까???"
어색한 공기를 깨고, 운영과장이 그리 말하자, 부대장님도 퍼뜩 정신을 차리시고, 어. 그래. 그러자. 외출. 그래. 그거 좋다. 라고 하시었다.
그러자, 옆방 문너머에서 동태에 귀기울이던 주임원사님이 바로 들어와 그럼 제가 X중대에 사정을 말하겠습니다.라며 나섰고,
운영과장은 바로 사무실로 전화해, 외출층 한장 얼른 작성하라며 내 군번을 물어왔고,
부대장님은 당번병한테, 운전병불러서 읍내까지 데려다줘라. 너가 선탑가고. 점심먹고 일정있으니까 바로 들어와라.며, 1호차를 내주셨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고, 운영과장이 "야. 외출증받으러와."라고 불러서 
나는 충성. 용무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동생은 안녕히계세요.라고 인사하고 부대장실을 나왔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그날,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1호차 운전병 아저씨도, 당번병아저씨도 위병조장시절 다 알음알음 친한 사람들이라,
레토나에 타자마자 퍼지듯이 앉아버렸다.
"그럼 출발할께요."
운전병 아저씨의 전에 없이 친절한 말투. 심지어, 동생이 차에 탈때 손도 잡아주더라.
허긴, 군생활하며 뒷자리에 여대생태울거란 생각은 못했겠지.
"아저씨. 나 담배펴도 돼???"
"14박 15일 군생활 더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리고 숙녀분 앞에서 무슨 담배야."
"숙녀??? 위병소 철책만 통과해봐. 야가 여자로 보이나."
어릴때는 좀 병약해서 이모부랑 운동삼아 태권도를 배웠던 동생의 정권지르기가 어깨에 묵직하게 들어온다. 
읍내 군장점가서 지금 입고 있는 바람막이에 "태권"약장을 박아주마. 라며 결심하는데, 
"추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써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하며 우렁찬 경례소리가 들려온다.
"아차. 전조등 안 껐다."
위병소의 긴박한 움직임이 보인다. 조장이 급히 튀어나온다. 원래는 그냥 통과하던 1호차가 위병소에 멈추니 다들 화들짝 놀랜거다. 
사관은 안보이는거 보니 근처 돌고 있거나 측간에 계시나보다.

"아. 뭡니까."
위병조장인 후임이 원망과 안도가 믹스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위병소에 대고, 안나오셔도 된다 그래!!!라고 말한다.
"얌마. 예비역(진)님 급히 나가시는데 상급부대에 연락해서 군악대도 부르고 세팅을 했어야지 ㅋㅋㅋㅋㅋ"
"아저씨 미안해요. 전조등끄는거 깜빡했어."
"진짜 깜짝놀랬네. X병장 어디갑니까? 영창?"
손가락으로 산(山)모양의 엿을 고아다 먹여드리고, 외출증을 보여준다.
"형아 나갔다올테니까 보고싶다고 울지말어라."
"아. 올때 맥심사오십쇼."
"어제 휴가복귀자가 사온거 내 관물대 상단에 있다. 
꺼내다보고, 돌아왔는데 내 동생 어찌고저찌고 말 돌고 있음 너네 소대 관물대 다 엎어버릴거니까 소문내지마. 말년에 조용히 좀 있다가자."
"ㅋㅋㅋㅋㅋㅋ. 알겠습니다. 올때 메리야스 좀 사다주십쇼. 사이즈 100으로. 돈 드리겠습니다.'
"오케바리. 이따봐."

 

1호차가 우리를 읍내에 내려다주었다.
화,목요일에만 휴가복귀하는 부대인지라, 금요일에는 전투복입고 나다니는 병사가 없어야 한다. 퇴근시간대 간부들이면 몰라도.
주변 상인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몇몇 수화기를 드는 사람도 보인다. 야레야레. 이 투철한 신고정신을 보라지.

"야. 여기가 기차역이라는거야. 얼른 타고 집에 가. 훠이훠이."
"뭘 오자마자 바로 가래."
"지금 너땜에 피 다떨어졌어. 내가 물약 먹을 수는 없으니, 피씨방가서 내 캐릭한테라도 맥이고 들어갈테니까, 얼른 집에 가라고. 
이모한테는 내가 전화할께. 큰 딸한테 가정에서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시라고. 조금 풀어줬더니 이런 일탈행동한다고."

그렇게 가라마라하는데 때마침 점심시간이고 해서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린다.
"밥먹자. 여기는 뭐가 맛있어???"
"흐음...짜장면???"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리...
그도 그럴것이 나는 이 동네에서 아침에 휴가나오자마자 바로 역으로 내달려 상행선이고 하행선이고 오는대로 타고 나가고,
복귀해서는 피씨방에서 마지막 문명세계를 즐리고, 읍내 중국집에서 짜장면에 사장님이 불쌍하다고 내주시던 서비스 탕수육에 빼갈 한잔씩 나눠마시고, 다음에 봐라며 짜장면에 눈물로 간을 하여 먹고 들어오는게 일이라, 2년 군생활하며 그 동네에서 먹은건 짜장면, 분식, 롯X리아, 외박때 먹은 삼겹살 목살 뿐인 동네인지라, 뭐가 맛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하...그래. 그거라도 먹자. 나 탕수육도 사줘야돼."
"군인이 돈이 어딨어-_- 나보고 내일모레 휴가나갈때 집까지 걸어가라는거냐???"
"군인이 왜 돈 없어. 휴가때보니까 돈만 많더만."
이 철없는 것이 고2때, 그리고 내가 백일 휴가 나왔을때. 
첫 손주, 아들, 조카가 군대간거라 모든 친척들이 얼마씩 쥐어주시다보니 군대가기전 1년 동안 알바한 고생이 무색할 만큼의 목돈이 모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집 근처 사촌동생들이랑 흥청망청 써재낀적이 있어서, 얘는 군인은 돈 많은 줄 안다.
정작 이 동생이 고3이 되어 공부한다고 코빼기도 못보고, 나는 이런저런 포상이 마구마구 쏟아져 휴가를 밥먹듯이 나오니까, 
친척들은 물론 가족들마저 나를 외면하여, 집에서 라면 끓여먹고 국 덮혀 찬밥말아먹고, 피씨방도 못가던 궁핍한 나의 상병, 병장시절을 모르니 이러나보다.
"그렇게 말하면 대학교 1학년이 돈이 제일 많아. 니가 사."
그렇게 투닥거리며 군복입으면 혼자가도 서비스로 탕수육주시는 사장님있는 그 중국집에 갔는데, 장날이 아니여서인가 문이 안열려있었다.
예전 외박때 우연히 갔던 정육식당이 싸고 고기가 괜찮아서, 반반씩 내기로 하고 고깃집에 갔다.
오늘 군인이 왜???라며 의심하시는 사장님께 탈영아니고, 외출입니다. 라고 안심시켜드리고, 
목살 삼겹살 섞어 삼인분 시켜서...둘이 아무 말도 안하고 먹기만 했다. 얌얌. 고기가 녹더라. 
우리 외갓집 핏줄이 확실하다. 외갓집 식구들은 고기가 앞에 있으면 다들 말없이 고기를 마셔대거든.
마지막에 고기 한 점 남은거 내가 먹으려니까, 내 미간에 마늘을 던지더니 낼름 집어먹었다.
내가 드라큐라냐??? 왜 마늘은 집어던지고 난리야!!!라며 진짜 한대 쥐어박을뻔했다.

결국 고기는 동생이 사주었다.
그 전설의 내 백일휴가때, 세일도 안하던 바지를 득템했으면 양심이란걸 가지라는 나의 말에 동생이 지갑을 열었다.
이렇게 순순히 내 줄줄 알았으면 돼지말고 소를 먹을걸.이라며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콩나물밥, 콩나물국, 콩나물무침을 먹고 있을 중대원들을 생각하니, 투정을 부릴수도 없었다.
늦었지만 동생핸드폰으로 중대에 전화해서, 이따가 전반야 투입하러 갈거니까 걱정말라고 알리고는 다시 역으로 갔다.

"즐거웠다. 집에 가라."
"뭣만 하면 집에 가래."
"지금 나의 분신들이 저 세계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고. 말리지마라. 세상을 구하고 들어갈테니."
"오빠 부대에 전화해서 피씨방에 군인이 놀고 있다고 말할거야."
"114에 백날 천날 전화해봐라. 군부대 전화번호 알려주...아차."
불과 몇 분전 동생 핸드폰으로 부대에 전화해서 동생핸드폰에 전화번호가 남겨져있었다.
"자~이 동네 디저트는 뭐가 맛있나!!!"

지금이야 밥먹으면 한집건너 하나씩 있는 까페에 들어가 까맣게 태운 콩을 우려낸 값비싼 양탕국을 먹는게 일상이지만,
10여년전, 시골읍내에 그런게 있을리 만무하다. 복학하고 나서도 한동안 커피는 자판기나 캔커피던 그런 시절이었으니, 
시골읍내에 커피마실데라고는 농한기 어르신들의 살롱. 다방뿐이었다.

다방갈래ㅋㅋㅋㅋㅋㅋㅋㅋ라니까, 얼굴이 시뻘개진 동생이 다시 태권도로 다져진 정권을 날린다.
아. 맞다. 너 저기 군장점가자. 태권약장 박아야지. 랬다가, 뼈도 못추리게 맞을 뻔 하고, 
시골읍내에서도 프랑스 빠리의 빵맛말고 이름값만 느낄수 있는 빵집에서 빵 몇개 사다가 
읍내 초등학교 운동장가서 그네타고 미끄럼틀타고 놀며 오래간만에 고짓집에서는 먹느라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생활은 어찌냐??? 아직 한 학기도 안 지났지??? 졸라 짬딸리네. 
대학공부 장난아니지??? 아. 아직 중간고사 한번 봤냐??? 졸라 짬딸리네.
맘에 드는 남자애있냐??? 바라만 봐라. 남의 혼삿길 20대 초반부터 막지말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된 국보들처럼 바라만 봐라.
엠티때 예비역선배들이 막 굴려서 멍들고 근육통왔다고??? 그건 군인들 유격에 비하면 암것도 아냐. 잘 배워놔. 내년엔 니가 나라 지켜야지.
무슨 소리냐고??? 너 이제 20살이니까 조만간 신검받으라고 나라에서 부를거야. 넌 무조건 1급. 현역입영대상자...
야. 주먹펴...알았어...맞을테니까 손가락 하나 세운건 풀고 때려다오. 정말 아프다. 
군복입은 군인이 민간인과 폭행시비가 나면, 군인이 잘했어도 처벌받는지라 꾹 참고 맞고 있는데, 동생의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어. 엄마. 나 여기 XX오빠랑 있어. 아니 짝은 오빠말고 큰 오빠.
아니. 오빠 휴가 내일 모레랬지? 내일 모레래. 엄마는 어디만큼 왔어?"
어디만큼 왔어라니??? 
"응. 그럼. 나도 여기서 출발할께. 응. 오빠. 엄마가 바꿔주래."
통신보안. 병장XXX입니다. 전화바꿨습니다. 라고 말할뻔했다가, 
아. 이모지. 이모. 나 군대가기 전날. 
우리 큰 조카 군대간다고 펑펑 우셔놓고, 
나 입소하던 그 시간 친구들이랑 동남아여행가셨던 그 이모. 군인아니고 민간인,이라며 간신히 정신줄 부여잡고 여보세요.라며 전화를 받았다.
"어. 이모다. 너 어떻게 애랑 있어?"
"몰라. 자다가 깨워서 나왔더니 이 가스나왔다고 면회보내주대. 
철없는 여대생이라고 부대장님이 실망하지말라고 보내준듯 해요. 
이따가 들어가서 군장돌면 되니까 신경쓰지마세요. 분위기보니까 영창까지는 안갈것 같애요"
"그래. 이모도 이모부랑 일있어서 서울왔다가 이제 내려가고 있어. 
OO가 답사갔다가 집열쇠 잊어버렸는데, 하필 △△(면회온 동생의 여동생)이도 지금 수학여행가있거든."
"뭐요? 집열쇠?"
"어? 못들었어? 집열쇠없어서 알아서 밖에 있다가 들어간다더니, 너한테 갔네??? 나는 그냥 다른 이모집이라도 가 있으랬거든."

모든게 들어맞는다.
나랑 있어봐야 갈데라고는 지독히도 가기 싫어하는 피씨방뿐인데, 
이것이 집에 가래도 안가고 지 돈 써가며 밥먹고, 
할것도 없고 볼것도 없는 시골 읍내에서 나랑 쓰잘떼기없는 농담따먹기나 하며 시간을 보낸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거다...;;; 
 
휴가나오면 이모한테 연락해. 아뇨, 3주있음 전역입니다. 그 사랑과 여기 따님의 몸값 현금으로 주십쇼.라며 통화종료하고 
이 오라질!!!하고 정말 한대 쥐어박으려는데, 이 가스나는 벌써 운동장 저만큼 가고 있다.
"야!!! 전화기가져가!!!! 어디가냐!!!!"
"역. 집에 가려고."

오빠야~ 내 잡아봐라~
하하하. 이 가스나야~ 오늘은 잡히면 진짜 다리몽둥이를 뽀사줄테다~라며
사랑 1g도 없는 추격전을 벌이며 역까지 내달렸고, 동생은 20여분 뒤에 오는 기차를 타고 떠났다.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시계를 보니, 복귀시간까지 정말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있었다.
딱 한시간, 내일모레 휴가나가서 본격적으로 던전을 돌기전에 내 캐릭 워밍업해두자.며 피씨방으로 갔다.
봄이라 날도 다 풀렸는데, 카운터에 사장님이 감기라도 걸리셨는지 피씨방의 히터는 빠방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날 무슨 군인이여? 탈영이여?라며 전화기로 손을 뻗는 사장님께, 
지갑에서 돈꺼내려다 실수 한것처럼 외출증을 꺼내보이고, 콜라 하나 사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가 내 기억에 16시. 딱 한 시간하고, 햄버거 사먹고 부대로 복귀해서 전반야가면 되겠다.가 내 계획이었다.

한달만에 만나는 내 캐릭은 다행히 대륙의 해커에게 털리지 않았는지,
초라한 아이템, 실제 나처럼 빈곤한 골드. 그대로 였다.

마을 앞 경비병들이, "어? 너 이새끼. 군인새끼가 왜 시간에 게임질이야???"라며 자동으로 캐치해서 도륙을 낼 헌병도 아닌데,
긴장 빠싹하며 마을을 빠져나와 던전으로 향했다.

마음은 이미 당시 만렙이던 50을 찍을 태세였지만,
간밤의 후반야때 철책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근육통,
30분도 채 못 자서 덜 풀린 피로,
밥집고른다며 돌아다니느라 피로 +1,
오랜만에 먹은 고기를 소화하느라 지쳐버린 간(간때문이야),
이모와 통화 후 동생잡는다고 뛰어댕겨 피로 +1,
뜨끈뜨끈한 지하피씨방의 훈훈한 공기,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져 어떤 자세로 앉아있어도 몸이 푹 파묻히는 시골읍내피씨방에 사치스럽기까지한 의자,
그리고 잠자기 스킬은 만렙을 찍은 말년병장이라는 조합이 모이고 모여...
경비병이드아~하며 나간 이후로 기억이 없다.



그리고, 왜 휴가나갈때마다 복귀 직전까지 피씨방에 붙어있지말라고 귀따갑게 교육하는지를 말년에야 깨닫게 된다.



"어이. 이봐요."
누군가가 흔들어 깨워서 겨우 눈을 떳다.
아까 그 피씨방사장님이다.
"아까 외출증이었지? 안들어가도 돼?"
"네?...헉!!!!!!!!!!"

외출증에 적힌 복귀시간은 18시인데, 
그때 시간은 17시 45분이 다 되어있었고,
모니터 속 내 분신은 말끔하게 털려서 드러누운 상태였다.
대학가서 친구 잘못 만나(ㅋ) 빠져들었던 NC의 그 게임을 나는 그렇게 깔끔하게 끊어버릴 수 있었다.

영창?? 영창?? 메이데이. 메이데이.하며 당황한 나와 달리, 
사장님은 이런 군인 놈들을 많이 상대해보셨던 듯 전화기를 건네며 일단 부대로 전화하라고 하시었다.

중대에 전화해서 초큼 늦는다. 그리 알아라.
그리고 위병소에 전화해서 15분 내에 택시타고 날아갈테니, 같이 중대복귀하게 차량 잠깐만 대기해달라고 전해라.
그리고 중대장님과 행보관님께 사랑한다고...이번 한번만 살려달라고 그랬다고 말 좀 전해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잽싸게 계산하고 튀어올라가, 지나가는 택시 잡아타고, 기사님 손과 발에 제 군생활의 14박 15일 연장유무가 달려있습니다.라며 
모쪼록 빨리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기사님은 아스라다!!!! (료카이, 하야토.)라며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지날때말고는 정말 시원시원하게 밟아주셨다.

그리고 기적과 같이 18시. 국기하강식 시작할때 위병소를 통과했다.



그렇게 복귀해서는 간부들한테 오그라들게 혼나고,
소대원들은 아~평일에 외출해놓고 빈손입니까~라며 원망을 듣고,
오전 위병조장 놈도 메리야스 안사왔다고 우리 소대까지 찾아와 투덜거리고,
전반야 투입하는데, 당직사관이 이거 정신머리 돌아왔나보자며 
암구어며 초병수칙, 초소브리핑을 캐물으며 조리돌림을 당하였다.
아~말년의 위엄이...



그 다음날이 다행히 토요일이라 군장은 돌지 않았고, 
일요일 휴가 나가서 기차내리자마자 우리집이 아닌 이모집으로 뛰어가서
내가 저 오라질것 때문에 군생활을 14박 15일을 벽보고 피아노 연주하다가 올뻔했다며, 
이모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원통함을 호소했다.
동생은 평일에 면회가 안되는지 몰랐지 뭐야 데헷~이라며, 
전날 밤 뭘 먹었는지 떠지지도 않게 부어터진 얼굴로 귀엽고 상큼한 표정을 내보고자 안면근육을 씰룩거리길래,
물러가라!!! 이 사탄아!!! 주일에는 예수님도 군인도 좀 쉬자!!!라며 숟가락을 집어던질뻔했다.



내가 그때 왜 우리집 두고, 이모집으로 갔냐면, 
우리집 식구들이 큰아들 마지막 휴가 나오는 날이 오늘인지 모르고, 
친가식구들이랑 할머니 생신기념으로 남해여행을 가셨다가 오늘 밤에 오시느라, 
집에 문 열어줄 사람이 없어서였다...




쇳덩이 없이 문을 열 수 있는 도어락이라는 신문물이 우리집 현관으로 들어온건 그로부터 수년 후.



그로부터 또 수년 후, 
안 그래도 친동생이 형보다 먼저 장가를 들어 눈치밥이 장난이 아닌데,
사촌동생마저 올 봄에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하게 되어, 유부녀(진)이라고 부르고 있다.

당시 그렇게 오빠를 (반쯤은 내 잘못이지만) 영창보낼뻔한 군알못 동생이 
올 봄에 착실히 진급 중인 촉망받는 소령(진) 군인아저씨랑 결혼하게 되었다. 

군인의 부인이 되신다고, 예비군도 끝나셔서 
제일 앞에서 졸다가 끌려나가 상체만 있는 인형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친구에게
"야!!! 저 새끼, 이게 첫키스인거 아냐???? 깔깔깔깔."
웃었다가 사실이어서 분위기만 숙연해져버린(첫키스의 맛이 라텍스의 맛이라니...) 민방위 오빠 앞에서 
오빠가 군대를 알아??? 라며 깝치고 있는걸 보고있자면,
그 휴가 나간날, 숟가락을 그 흉측한 얼굴에 집어던지고 구마의식을 했어야 해...라며 후회 중이다.

그리고 그 때 분명히 나한테
"군인이 돈이 왜 없어."라고 했던 그 스무살 여대생은 어디가고,
"군인이 돈이 어딨어. 오빠가 냉장고해준다고 큰이모가 그러던데?"라며 얼굴에 철판을 깐 30대 아줌마만 남아있다.





밀게에 글을 쓰긴 했지만, 조만간 시집가는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며 (이 못난이도 가는데, 내 반 쪽은 어디에 라며)쓴 자조적 글입니다.
절대로, 그때 이 동생때문에 빅엿을 처먹을뻔한 일에 대한 앙갚음이 절대 아닙니다.
출처 수양록과 별도로 적던 내 일기장.

그리고, 당시 그 시골동네까지 면회왔던 동생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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