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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천경-2 (코멘트 부탁합니다. 무슨 말이라도 대환영)
게시물ID : art_118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섹스피어
추천 : 0
조회수 : 2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22 00:19:16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유나의 은하수 푸른 밤 입니다벌써 우리도 일주년 이네요작년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떨며 진행했던 게 엊그제 같네요라디오가 그게 좋은 거 같아요다리 떨면서 방송해도 청취자 여러분은 모르시잖아요텔레비전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죠생각해 보면 라디오와 텔레비전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참 많아요그죠오늘은 그 얘길 청취자 여러분들이랑 좀 해봐야겠네요오늘의 첫 번째 곡은 성시경이 부릅니다내게 오는 길

 

유나씨또 사고 쳤네요오늘 그런 코너는 없어요.’

 

왜 이래요아마추어 같이요즘 스마트 시대 에요모니터에 글 올라오는 속도 안보이세요벌써 읽을게 산더미 같네요이 정도면 일주일 내내 방송할 수 있겠는데요?’

 

유나는 자신과 PD 사이를 분리하는 커다란 방음 유리를 바라보았다작년 오늘이 떠오른다쇼윈도에 예쁜 옷으로 디스플레이 된 마네킹이 그런 기분이었을까동물원 우리에 갇힌 기린이 그런 기분이었을까쥐 구멍이 있다면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하지만 PD는 그녀의 그런 속마음을 전혀 알 수 없었다그녀는 다리를 떨었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PD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그녀의 다리 떨림은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에 멈춰버렸다.

 

그건 그렇고 이건 머에요?’

 

‘PD님 눈독 들이지 마요저한테 온 거에요팬 레터에요그것도 손으로 쓴 게 분명해요뜯어볼 생각 말아요.’

 

유나는 잔뜩 긴장하며 신이 나서 외쳤다.

 

팬레터는 무슨이렇게 두툼한 팬레터가 어디 있어요무슨 월급 봉투 같네.’

종현은 덥다고 느꼈다미경과의 대화 속에 뜨거워진 피는 그의 파란색 패딩점퍼를 벗겨버렸다생각 할 시간이 필요했다더 이상 미경과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 가 없었다종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미경과 헤어진 종현은 집으로 향했다사상 최악의 한파를 못 이긴 종현은 어느새 파란색 패딩점퍼를 다시 껴 입고 있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한 겨울임에도 욕실의 작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습관적으로 담배를 물고 뜨거워진 욕조에 알몸으로 몸을 누인 종현은 편안함을 느꼈다하루 중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언제까지 이 순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미경의 말처럼 해야 하나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20대 후반으로 치달은 지금 보이지 않는 사회의 압박은 빛의 속도로 종현을 짓누르고 있었다. 100%가 넘는 습도 속에서 꿋꿋이 존재를 증명하던 담배가 소리 없이 꺼져버렸다종현은 코를 막고 욕조 속에 온전히 머리까지 집어넣었다.

 

어느 날 선배가 페이스북에 올린 영화 감상문을 읽었는데 선배가 달라 보였어요.’

 

욕조 속에서 일렁이는 종현의 표정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나는 어린 나이에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가수를 시작했다벌써 8년차다가수 활동을 하면서 덤으로 따라온 DJ 활동도 너무 재미있다수 많은 게스트와 애청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녀는 한 뼘 더 커졌다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대중 가수다그녀는 몸이 작다그러나 그녀가 온몸으로 노래할 때그녀는 이 세상 누구보다 커진다그런 그녀에게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는 이제 익숙하다하지만 그녀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는 수 많은 관객들의 눈빛은 여전히 그녀를 긴장하게 한다기분 좋은 긴장감이다그래서 유나는 행복하다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녀는 가장 완벽하게 가슴 저미는 순간을 찾아갈 수 있다.

매니저 오빠오늘 공연 어땠어?’

 

너는 항상 나쁘지 않지.’

 

좋다고 말해그 말이 그 말이잖아.’

 

유나의 매니저는 멋쩍은 웃음만 짓고 돌아서며 대꾸했다.

 

근데 요새 팬레터 안 오더라뭐 아는 거 있니?’

 

나도 기다리는 중이야그거 되게 재밌는데이제 안 보내주시려나

 

재밌어내용이 뭔지 물어봐도 돼?’

 

이거 팬레터 아니야소설이야내용은 비밀이야근데 나도 되게 궁금하네왜 안 올까이제 한 두 번만 더 오면 소설 완성될 것 같은데…’

 

매니저는 유나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한번 알아봐 줄까?’

 

진짜오빠 그런 것도 할 수 있어그런 거 범죄 아닌가?’

 

유나의 목소리에서 생기를 느낀 매니저는 싱긋 웃고 말았다.

 

매니저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유나를 바라본다처음에 그녀의 무대를 보았을 때그녀의 노래가 좋다고 소리치는 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노래 따위가 밥을 먹여줄 리가 없다그녀의 콘서트 티켓은 십 만원이다어느 미친놈이 그 돈을 내고 노래를 듣는다는 말인가차라리 친구들과 술을 십 만원 치 마시고 술집 사장에게 유나 노래를 틀어 달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하지만 그는 유나 앞에서 속마음을 티 내지 않았다그녀와 사이가 나빠져 이번 일자리에서도 해고되면 정말 생계가 위험하기 때문이다유나의 매니저 일을 맡기 전그는 엄청나게 많은 직장을 전전했다소심한 성격 탓에 여럿이 같이 하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그가 스키장에서 리프트 안전요원을 할 때였다그는 상사에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절대로 혼자 리프트에 탑승 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그는 소심해서 그럼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다행스럽게도 그 날은 혼자 리프트를 타러 오는 초등학생이 없어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다음날결국 그는 사고를 쳤다혼자 리프트를 타러 온 초등학생과 함께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 정상까지 올라간 것이다리프트 작동실 실내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사는 실성 하듯이 웃으며 그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리프트 안전요원 자리를 대체했다

이런 그에게 매니저 일은 아주 고역이었다매일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새로운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생계가 위험하다는 절박함이 가져 온 결과일까그는 꾸역꾸역이제는 여유롭게 적응해냈다그녀와 함께 일한 1년을 되돌아보면 그를 바꾼 것은 절박함이 아니었다유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기운 때문이었다그녀는 가슴속에 해와 달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그녀는 가수이지만 매니저보다 매니저 일을 잘 이해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그를 도왔다그가 실수를 할 때도 비난하지 않았다그녀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저도 노래 못했어요.’

 

너무 뻔한 말 이지만 그녀에게는 그 말을 믿게 하는 힘이 있었다매니저는 서서히 변해갔고 그는 이제 유나의 매니저 일을 천직으로 믿게 되었다그를 그렇게 만들어 준 유나가 팬레터의 주인공을 찾고 싶어한다그는 지금까지 매니저 일을 하며 얻은 인간관계를 쓸 때가 왔다고 느꼈다.  어차피 지금의 밝은 인간관계는 유나가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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