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김종인씨는 영조를 보는거 같네요. 강경파는 다 잘라버리는 완론탕평(스압)
게시물ID : sisa_6832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관권
추천 : 7
조회수 : 66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10 15:50:25
김종인씨가 정청래 의원을 자르고 칼을 휘두르는 행보를 보면서,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한번 찾아보게 됩니다.
 
다들 한번쯤은 영조와 정조 대왕을, 그들이 펼친 탕평책이란 것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먼저 탕평책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탕평을 먼저 정의하고 가면
 
탕평이란, 조선시대에 붕당정치의 폐해가 극심해(당끼리의 싸움이 심해서) 국왕의 주도하에 붕당간의 힘을 조절하는 것을 탕평이라 했습니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정치 갈등을 해결 하기 위해서
 
노론 소론 관계 없이 강경파는 다 잘라버리고 어느 당파든 상관없이 온건하고 타협적인 인물들을 주력으로 탕평책을 시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조의 "완론 탕평" 입니다.
 
왕권을 유지하고 힘을 모으기 위한 정책이였지만 소극적이고 철저히 정치적이고 이름만 탕평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지금 김종인씨의 행보를 보면 완론 탕평의 길이 정확히 보입니다. 강경파라고 하면 다 잘라버리고 힘을 모으려고 하죠.
 
 
 
지금 더민주당 지지자들의 분노는 아마 정조의 탕평책이 설명해줄 수 있을텐데
 
정조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암살의 위험에 노출되 밤에 잠을 들지 못해 밤늦게 까지 공부하고 노력한 것으로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정조의 탕평책은 "준론 탕평" 으로 충역, 시비, 의리를 분명히 하고 당파의 시시비비를 철저하게 가리는 적극적인 탕평을 펼칩니다.
 
그는 주도적으로 정책에 참여하고 노론과 소론 서얼 중인 상관 없이 유능한 인사는 받아드렸습니다.
 
정조 또한 처음에 왕에 즉위할 때 사도세자를 바로 복위 시키지 못하고
 
큰아버지인 효장세자에게서 계승된 것으로 영조와 약조해서 영조 - 효장세자 - 정조로 이어지는 타협 또한 했으나
 
그가 왕위에서 보여준 것은 단순히 강경파를 잘라버리는 탕평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준론 탕평을 했다는 점이 분명히 차이가 나죠.
 
 
 
 
지금 김종인씨의 목적은 완론 탕평처럼 그냥 강경파는 잘라버리고 온건한 야당을 만들어 중도 또한 사로 잡는 당을 만드려고 하는 것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한 것은 단순히 더 민주당이란 이름의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말 유능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승리하길 바라는겁니다.
 
국민의 수준을 단순히 강경하게 옳은 목소리 하는 자까지도 잘라버리고
 
겉으로보기에는 온건해보이고 뭉치고 하는 그런 사람들로 뭉쳐놓으면 좋은 사람들 뭉쳤네 하면서 표를 던져줄거라고 판단한건지 ... 
 
김종인씨의 선거 전략이 성공을 거둬도 국민에게 실망할 듯하네요. 이게 현실인가 하면서요..
 
과연 김종인씨의 그릇이 어느정도인지 과연 정청래의원을 잘라내면서까지 얻은 패가 좋은건지 그 패를 얼마나 잘 쓰는지 지켜볼겁니다.
 
 
수정1) 아, 영조의 탕평은 마지막에 어떻게 됬는지 적지 않았네요. 결국엔 노론 강경파에 의해서 사도세자는 죽고 결국엔 탕평은 실패합니다. 정조 또한 노론의 강경파들에 의해서 사도세자 복위를 추진하던 40대 때 죽임을 당하지 않았나 하는 설이 있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