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乙未)년은 양띠 해다. 을(乙)자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봄 새싹이 꼬불꼬불 움터 나오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미(未)는 양기와 음기가 교차하는 오후의 첫 시간, 또는 여름과 가을의 교차점을 뜻한다. 과도기를 맞아서 새로운 날갯짓을 하고 꿈틀거리며 자란다는 뜻이다.
주역에서는 태괘를 양(羊)이라고 한다. 밖은 부드럽고 안은 강건한 태괘처럼 양의 성격도 외유내강하다. 그렇지만 숫양은 힘이 넘치는 데다 성격이 조급해 울타리에 뿔이 걸려 다치기 쉽다. 남보다 앞서 가려는 속성을 꺾으려 하지 말고 뒤에서 슬슬 모는 슬기가 필요하다. 옛날에는 ‘담배 담배’ 하고 부르면 양이 잘 따라왔다. 양이 담배를 좋아했다고 한다.
담배는 남병초(南炳草)라고 할 만큼 화기가 강하고, 양(염소) 또한 화기 덩어리다. 고기 맛이 좋아 양을 상징하는 ‘미’자 앞에 ‘구’자를 써서 ‘맛 미(口+未=味)’라 한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도 있다. 비싸고 맛있는 양 머리를 판다고 내걸어 놓고 실제론 값싸고 맛없는 개고기를 판다는 것이다.
또 희생양(犧牲羊)은 어떤가.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왕께서 소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시고 ‘그 소 살려 주어라. 벌벌 떨며 죽으러 가는 모습을 차마 못 보겠다. 소 대신에 양을 잡아서 그 피로 벌어진 종(鍾) 틈을 바르도록 하라’고 하셨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물은 데서 유래했다. 양은 소같이 크고 비싼 짐승을 위해 졸지에 희생당한 것이다.
왕 관련 설화도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혁명을 하기 전에 염소(양)의 머리가 잘려나가고 꼬리가 빠지는 꿈을 꾸었다. 무학대사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하니까 “양(羊)자에서 ‘머리’가 떨어지고 ‘꼬리’가 빠지면 ‘임금 왕(王)’자만 남으니 왕이 되는 꿈”이라고 해몽했다고 한다.
을미를 주역으로 풀어보면 취괘(췌괘·萃卦)의 네 번째 효(爻·괘를 나타내는 가로 그은 획)가 나온다. 취괘는 ‘합한다(合), 모인다(聚), 쌓인다(積)’는 뜻이다. 먹을 것을 보고 몰려드는 상이다. 그러다 보면 다툼이 벌어지기에 “병장기를 잘 준비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했다. 경제·통일 문제 등에서 기반을 쌓을 중요한 해라는 의미다. 갑오년부터 ‘가보(甲午)세 가보(甲午)세’ 하면서 성장하고자 했는데, 을미년에 와서도 을미(乙未)적거리며 허송하면 발음 그대로 병신(丙申)년을 맞게 된다. 병신(病身)이 될지 병신(炳新)으로 탄생할지는 을미년에 달렸다.
그 점사(占辭)에 “크게 길해야 허물이 없다” “밖으로 도와서 길하다”고 했다. 앞에서는 먹을 것을 보이면서 모으고, 모인 사람들은 협조를 잘해서 경제를 키우라는 것이다. 또 “기왕이면 빨리 도와야지 늦게 도우면 오히려 망치게 된다”고 했다. 정치인·기업인·국민 할 것 없이 잘 모이고 잘 도와야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을미년에 일어난 사건으로는 신라의 멸망(935년), 전봉준 등 동학군 지도자 처형, 일본 낭인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1895년) 등이 눈에 띈다. 과도기적인 조짐이 많은 해다. 우리 모두 양두구육의 술수를 쓰지 말고, 공연한 희생양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이 좋아하는 일로 부르고, 개개인의 특성을 꺾기보다 슬기롭게 이끌어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나고 국가가 부강해지고 모두가 왕(王)이 되는 행복한 한 해가 된다. ‘未’자에 획을 보태서 만든 ‘착할 선(善), 아름다울 미(美), 상서로울 상(祥)’ 세 글자가 빛나는 2015년이 됐으면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산(大山) 김석진은 1928년 충남 논산 출생. 호 대산(大山). 현존 최고의 주역학자로 통한다. 야산(也山) 이달(李達·1889~1958) 선사에게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 등을 공부했다. 그에게 주역을 배운 제자가 1만여 명에 이른다. 『주역전의대전역해』 『대산 주역강해』 『대산 김석진 선생이 바라본 우리의 미래』 등을 냈다.